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8화
전야제(前夜祭) (2)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연회장에서부터 따라온 뜻밖의 불청객에 한숨을 내쉬었다.
“알베도. 네놈까지 파티에서 빠져나오면 어쩌자는 것이냐.”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파티의 주인공이 저인 것도 아니고.”
“쯧.”
녀석이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아 내며 말했다.
“오히려 지금은 북부 수비의 일등 공신인 형님께서 빠져나간 것을 탓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참견이다.”
말은 이렇게 했다지만,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회귀 전에는 아버님의 죽음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던가? 이렇게 마주하는 것도 내겐 10여 년 만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이야.
그렇게 답지 않게 떠오르는 감상을 만끽하기도 전에 녀석의 입이 열렸다.
“여기는 손님 대접도 안 해 준답니까? 차라도 한 잔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닐 텐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나저나, 아까 회장에 있었던 그 남자는 새로운 수행원이라도 된답니까?”
“장차 내 보좌관이 될 사람이다.”
그러자 조금은 흥미가 있는 듯, 알베도가 대충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을 보좌관으로 둔다? 형님답지 않으시군요.”
“내 움직임을 방해하려 드는 쥐새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하겠지.”
“호오.”
참 기묘한 일이었다.
매사에 대충이었던 녀석의 표정이, 순간 진중하게 변해 버렸으니.
“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1왕자의 움직임을 방해하려 했답니까?”
“그런 놈들이 있더군. 국왕파의 수장이었던 아수스가 1왕자의 손에 죽었으니, 이 틈을 타 야망을 불태워 보고자 하는 멍청이들이.”
조금은 추상적인 말에 불과했지만, 알베도의 입술이 말려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네 외조부인 윌리엄 공작은 잘 지내던가?”
마침내 말려 올라가던 알베도의 입술이 환하게 개화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말이다.
“거 어떻게 아셨는지 물어봐도 된답니까?”
“안 될 것은 없지. 하지만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보고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한참을 낄낄대던 알베도가 멋대로 홀짝이던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기댔다.
“형님. 나는 왕 자리에 관심이 없수다. 애초에 제왕학에는 손도 안 댔었고…… 그런데 우리 어머니랑 늙은이는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나에게 세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으라고 하던가?”
“정답. 내 역할은 1왕자가 이대로 왕태자가 되는 구도를 망가뜨리는 것. 그렇게 된 후에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더랍니다.”
지금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말은 결코 가벼이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왕자를 미끼로 왕의 자리를 탐하는 공작.
잘못했다가는 당장이라도 내전으로 번질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다.
나는 여과 없이 맞아떨어진 가설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알베도 녀석 역시,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히죽거렸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원하는 대로 평민의 삶을 준다고 했고, 나로서는 이러나저러나 손해는 없는 계약이었지.”
“그렇군. 자유를 대가로 왕위 싸움에 발을 들인 것인가.”
“막말로 그냥 가출하면 될 일이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라며 우는 어미를 아들 된 도리로 어찌 버리고 간답니까.”
후궁의 자식인 알베도는 기본적으로 회귀 전에도 이런 놈이었다.
바람과 같은 성격으로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극히 꺼렸으며, 늘 상 왕자라는 지위를 버리고 용병이 되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렇기에 왕자의 의무를 내버려 두기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왕궁에 있는 시간마저도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어머니인 사라 왕비와 외조부인 윌리엄 공작의 생각은 달랐다.
‘탐욕이 강한 사람들이었지.’
왕위에 대한 견제는 예삿일이고, 왕위에 오른 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나를 공격해 왔다.
왕관의 무게가 싫어서 도망간 2왕자가 아니더라도, 왕의 자리만 손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오죽했으면 내 후견인이자 귀족들의 중심점이었던 아수스가 없어지자마자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알베도 녀석이 돌연 자취를 감춘 것은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어쨌든…….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냐?”
“고작이라니요. 이래 봬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형님에게 정보나 흘릴 겸 찾아온 건데요. 겸사겸사 안부도 전하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따름이지만요.
뒷말을 삼켜 낸 알베도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조심하십쇼. 같은 편인 내가 이런 말 하기는 뭐 하지만, 늙은이는 두려울 것이 없는 모양이더랍니다.”
“그런 것을 경쟁상대인 내게 알려 주는 이유가 뭐지?”
“…….”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애초에 녀석이 이렇게 찾아와서 미주알고주알 정보를 털어놓는다 한들, 녀석에게는 하등 득 될 것이 없었다.
그 말대로, 녀석의 입가는 씁쓸한 듯 억지로 끌어올려 있을 따름이었다.
“그편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본심과는 전혀 다른 그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은 떠나갔고,
째깍- 째깍-
시간은 지나, 어느새 시곗바늘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내 옆으로, 비도르 남작이 다가왔다.
“전하.”
“…….”
“어찌 연회장에 계시지 않고 이곳에 계십니까?”
잠시 가빠진 숨을 달래는 침묵.
나는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나를 찾아다녔나?”
“예? 예. 드워프들의 임시 숙소를 배정해 준 후에 연회장으로 도착했지만, 전하께서는 이미 계시지 않으셨기에 찾아다녔습니다. 수행을 맡겨 둔 조지 군도 보이질 않고…….”
“그렇군.”
나는 와인 잔을 부드럽게 흔들며 턱을 괴었다.
“알베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알베도라 하심은…… 알베도 2왕자 전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하, 하지만 그분께서는 전하의 암살을 사주했던……!”
윌리엄 공작의 외손자이지 않습니까?
……그런 뒷말을 간신히 삼켜 낸 비도르 남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으나, 이에 긍정하듯 와인 잔을 단숨에 비워 냈다.
하지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고뇌까지는 털어 내지 못했다.
“적의가 없는 이를 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북부 원정을 통해 더 이상 놈들의 자잘한 견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입지를 얻은 상태였다.
오히려 나를 음해 하는 세력의 정당성을 해치는 수준이 될 정도로.
여론을 움직일수록 스스로의 목을 옥죄게 된다.
그 상황에서 나타나는 놈들의 비리 정황들은, 내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겠지.
그렇기에. 녀석은 모든 것을 알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왕이 되고 싶지 않기에, 왕위 다툼에 직접 발을 들였다.”
“예?”
“감히 왕좌에 눈독을 들인 제 어미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는, 보장된 왕위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했겠지.”
오늘의 파티는 더 이상 원정대의 역사적인 성공을 치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뒤늦게 다가올 왕위 쟁탈전을 위한 전야제(前夜祭).
나는 드물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 * *
짝!
날카로운 소음과 동시에 2왕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조금은 쓰라린 것을 보니, 손톱에 긁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 피다.
“전하……!”
“괜찮으니까 이만 가 봐.”
깜짝 놀란 수행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2왕자는 애써 웃으며 수행원을 물렸다.
그럼에도 2왕자를 향한 분노의 표출은 끝나지 않은 채였다.
“2왕자. 누구 마음대로 그리 움직이라 했죠?”
“하하…… 그래도 2왕자씩이나 되는 사람인데, 얼굴은 봐주십쇼.”
“또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 지금 왕궁의 상황이 어떤지 알고는 있나요?”
하, 곤란하군!
이런 식으로 화가 나시면 한동안은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사라 왕비의 표독스러운 표정에, 알베도의 어깨가 으쓱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휘익-
“어이쿠.”
또다시 휘둘러진 어미의 손.
제 아들에게 휘두르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중에서 낚아채는 데에 성공한 알베도가 너스레를 떨었다.
“말했잖아요. 앞으로는 공식 석상에 서게 될 텐데, 상처가 있으면 곤란하죠.”
“……이번 일은 아버님에게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깨어진 유리잔을 던지지는 말아 달라는 말도 전해 주십쇼.”
“흥.”
그렇게 일그러진 눈빛으로 방을 나서는 사라 왕비의 뒷모습.
일순, 알베도의 얼굴에 쓸쓸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뒤이어 들어온 수행원의 모습에, 평소와 같이 헤실헤실한 가면을 쓰는 그였다.
“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아아, 됐어. 익숙한 일이잖아.”
“하지만…….”
익숙한 일이지만 마음이 깎이는 일은 막을 수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옆을 지켜 왔던 수행원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그의 앞에 선 남자가 웃는 얼굴로 흘려 넘길 거라는 사실도.
“것보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주면 안 될까?”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불러 주십시오.”
“고마워.”
2왕자의 방은 언제 소란이 일었냐는 듯 정적에 휩싸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어질러진 기물들을 정리하는 2왕자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뿐.
체념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이건 더 이상 못 쓰겠네.”
모가지가 부러진 채 외로이 잠든 취침등을 방 한편으로 밀어 넘긴다.
그다음은 내장처럼 처참하게 흩뿌려진 베갯속 깃털.
그러자, 제법 깔끔해진 그의 방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
마지막으로 발끝에 치인 베갯잇을 주워드는 알베도의 눈이 침대 위에 걸린 작은 액자 속으로 향했다.
즐겁게 웃고 있는 젊은 날의 어머님과 아무 걱정 없이 뛰노는 그 자신의 얼굴.
자신이 처지와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에, 그의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덧씌워졌다.
“아무 걱정도 없다는 건가.”
어느새 알베도의 손에는 왕실의 문양이 각인된 낡은 펜던트가 쥐여 있었다.
그는 마치 버릇처럼, 늘 그래 왔듯, 펜던트를 쥔 손을 가슴팍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발동.”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마법의 기운이, 선명하리만치 눈 속으로 파고들어 옴에도 말이다.
알베도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펜던트를 내려놓았다.
“역시.”
이 아티팩트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따라 줬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몰래 숨어 들어가 본 ‘아버님’의 서고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물건이었으니.
명석한 알베도로써는, 이 물건의 정체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잊힌 왕국의 옛 보물.
마법 회로의 종류로 보면, 분명 무언가를 소환하는 술식이 그려져 있으리라.
그리고 그 발동 조건은 분명 왕가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
……이 모든 사실은, 어디까지나 그의 추측에 불과했다.
단 한 번도 아티팩트를 발동시켜 본 기억이 없었기에.
“내가 왕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린 시절의 알베도는 누구보다 명석했다.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단박에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