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9화
드워프 (1)
국왕이 드워프들이 선물한 무구들을 왕궁에 전시했다.
이에 관련된 소식이 퍼지자, 왕궁은 전설 속에 나오는 드워프제 무구를 구경하려는 귀족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과장일 뿐이라며 콧방귀를 끼던 이들조차 그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되었으니.
무구에 관한 소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번져 나가, 이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는 1왕자가 세운 공훈을 탐탁지 않아 하던 2왕자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대단하군.”
전시된 갑옷을 살피던 중년의 귀족이 침음을 흘렸다.
평소 눈이 높다 자부하는 이들도 침을 흘릴진대, 하물며 상인 출신인 그는 어떠할까?
하지만 감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윽고 중년의 귀족은 어디론가 움직였다.
“예상보다 대단한 수준입니다. 그 외형은 물론이고 성능까지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가치는?”
“모르긴 몰라도 경매에 나온다면 하나하나가 저택에 필적하는 금액일 것입니다.”
“……그렇군.”
중년 귀족의 목소리를 새겨듣던 남자, 발몽스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2왕자파의 실질적인 두뇌라고 일컬어지는 백작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필이면 놈에게 천운이 따라 주다니…….’
만일 드워프제 장비들만 가지고 왔더라도, 승전에 필적하는 공적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 흔적만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성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을 테지.
하지만 놈은 가장 중요한 드워프 그 자체를 데리고 왔다. 그것도 사사로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관계를 구축했을 정도로 아주 공교로운 타이밍에.
그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업적이었다.
에스테반을 통틀어…… 아니, 대륙을 통틀어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업적이었던 것이다.
발몽스 백작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쯧, 처음부터 암살자 새끼들이 똑바로 하기만 했어도…….”
가장 좋은 방법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것.
하지만 이제 놈에게도 경각심이 생겼을 터다. 같은 수법을 시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물론 드워프들을 처리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놈들을 지키는 것은 태양기사단이었다. 고작 고용된 암살자 따위가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좋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의 2왕자파는 놈의 북부 습격으로 나날이 입지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는 수 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발몽스 백작이 눈빛을 번뜩였다.
“말했던 것은?”
“여기,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잘했다.”
백작은 중년의 귀족이 건넨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죽일 수 없다면 우리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지.”
이 정도라면, 놈들을 낚을 미끼로 하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 * *
왕궁의 서쪽 별관.
본디 중요한 행사가 없다면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휑한 곳이나, 원정군이 돌아온 이후로는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당분간 그곳에서 자리 잡고 있을 손님들 때문이었다.
“부족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커, 커험……! 고맙소.”
수르트는 어색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윽고 그를 전담한 시녀가 나가자, 참았던 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이, 이게 바로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구나…….”
살아생전 타인의 수발을 받아 볼일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척박한 오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어색할지언정 싫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혹한의 기후. 척박한 땅. 보잘것없는 식량.
에스테반의 왕궁은 결계 내부에서 숨죽여 살던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르트를 포함한 드워프들은 편안한 왕궁의 생활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또한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의 취급도 마찬가지였다.
밝혀진 드워프들의 존재는 대륙에 있어서 보배나 다름없었다.
그 위대하기로 정평이 난 야금술 실력도 그랬지만, 특히나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대체할 길이 없던 것이다.
때문에 드워프들은 학계의 원로를 대하는 것보다도 공손하고 소중하게 대해지고 있었다.
일족이 기뻐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크흠! 굳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만 있어도 충분하겠군.”
자유가 보장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다고는 했다지만.
어쨌든 대장간만 사용할 수 있다면야, 이곳도 자유가 보장되긴 하지 않겠는가?
그때였다.
“대장님!”
한 드워프가 수르트에게 달려왔다. 대장간의 사용 허가를 받으러 간 드워프였다.
수르트가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오, 자네! 대장간의 이용에 대해서는 물어봤는가?”
“그, 그것이, 물어보기는 했는데…….”
“으음?”
머뭇거리는 일족의 목소리에, 수르트의 머릿속으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찰나였다.
“……아, 그렇군. 대장간을 사용하려면 이용료라도 내라고 하던가?”
“그게 아니고…….”
“음? 그렇다면 사용하는 대가로 대장간 시설을 강화해 달라고 말하던가?”
“시, 실은 인간들이 대장간의 사용을 불허하였습니다.”
“뭐라고?!”
쿵!
수르트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시녀에게 받은 물잔이 바닥으로 힘없이 엎어졌다.
물론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대, 대체 어째서?!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1왕자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당황한 수르트는 황급히 망치를 챙겨 들고 1왕자의 집무실이란 곳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1왕자가 아니었다.
철컥-!
“……뭡니까?”
일족의 마을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분명, 조지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름 따위가 아니었기에, 수르트의 입이 다급하게 열렸다.
“이보게……! 방금 전에 내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네!”
“혹시 대장간 사용 때문에 왔습니까?”
“그, 그래! 그거!”
수르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약속과는 다르지 않은가! 분명 일족의 보금자리가 완성되기 전까지, 부족함 없는 대접을 해 준다고 약조했을 터인데!”
“아니, 뭐…….”
계약의 조건으로 수르트가 꺼내 들었던 것은, 일족에게 최소한 귀빈에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이에 1왕자는 흔쾌히 승낙했다.
한데 그렇게 약조해 놓고서는 드워프라는 일족에게 대장간의 사용을 금지한다니?
지금 상황은 명백히 약속과는 다른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어서 1왕자를 데려와 주게 그와 이야기해 보겠네.”
“일단은 저도 대충 기억은 납니다만?”
“오오! 그렇다면 어서 일족에게 대장간을 사용할 권한을…….”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 아니! 이보게,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가! 이유라도 있을 것이 아닌가!”
수르트가 답답한 듯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진짜로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조지라는 인간은 시큰둥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국빈에 준하는’ 대우를 원한다면서요? 그런데 어느 미친 왕국이 국빈에게 대장간의 일을 시킵니까? 하루 종일 파티를 벌여도 모자랄 판에.”
“뭐, 뭣이?!”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장간의 일은 드워프들에게 있어서 일상이자 활력이나 다름없다.
하루라도 대장간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다.
인간의 기준에서야 비정상적인 일이라고는 해도, 일족의 관용마저 알고 있는 1왕자가 이를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말인즉, 1왕자가 의도적으로 이 상황을 만든 거라는 소리였다.
“그건 궤변이다!”
“뭐,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부, 부탁이네, 우리를 귀빈으로 대하려거든 어서 대장간을 열어 주게…… 우리는 마을에서부터 지금까지 대장간 일을 하지 못했어…….”
“글쎄요? 일단 한번 물어는 보겠습니다.”
“이이익…….”
윽박질러도 안 되고, 빌어도 안 된다.
이 왜소한 인간은 아무래도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그, 그래……! 1왕자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직접 이야기해 보겠네!”
“전하께서는 수련장으로 가셨습니다.”
“좋아, 수련장이라는 말이지? 알겠네, 알려 줘서 고맙…….”
“뭐, 저 같으면 수련 중에 귀찮게 해서 허수아비의 대신이 되기를 자처하느니, 다음에 오겠습니다만.”
“…….”
수르트는 한참 동안이나 침묵하다가 말했다.
“……다음에 오겠네.”
“마음대로요.”
답답했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 * *
수련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오자, 북부 습격으로 밀린 서류를 처리하던 조지가 나를 반겼다.
물론 그 불만에 찌든 얼굴이 반긴다 할 수 있겠냐마는.
어쨌든, 녀석은 수련장에 있었던 동안 벌어진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드워프 일족이 찾아왔습니다.”
“수르트, 그 녀석인가?”
“예.”
뭐, 그렇게 되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쳐다보았다.
갈데르드 평야와 드워프에 대한 내용이 적힌 서류였다.
“대략 나흘 정도면 협의가 끝날 것 같군.”
“아마도요. 이변은 없을 겁니다.”
에스테반과의 동맹관계를 맺은 드워프들이 살아갈 장소.
국무회의에서는, 그 땅을 드워프들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걱정은 없었다.
그 땅이 원체 쓸모가 없다 알려지기도 했거니와, 드워프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귀족들이 협의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물론 이를 반대하는 귀족들이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방제국에 드워프들이 의탁할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억지로 반대해서라도 드워프와 에스테반과의 불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조소를 지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뭐, 그건 그렇고 수르트가 찾아왔다 했던가?”
“대장간의 사용을 허가해 달라 하던데요.”
“재미있는 놈이군.”
나는 들어 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럴 수는 없지.”
욕구라는 것은 결핍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이 상황에 안주하고 안일하게 드러눕게 할 수는 없는 법.
놈들은 왕성에 있는 동안에도, 자유를 향한 열망 속에서 움직여 줘야만 했다.
물론 안전과 자유가 확보된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에게는 잘 타일러서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도록. 그 부분은 네 녀석에게 맡기겠다.”
“……이건 또 잔업이네.”
하아…….
그렇게 한숨 쉰 조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표정이 놀랄 정도로 진지하게 변모했다.
“2왕자파가 움직였습니다.”
“……그렇군.”
슬슬 그럴 때가 오기는 했다.
놈들에게 있어서는 드워프들이 왕성에 남아 있는 지금이야말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최적기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협의의 내용대로 드워프들이 갈데르드 평야에 이주한다면, 그때는 수작 따위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릴 테니.
나는 조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분간은 드워프들을 움직이는 데에만 힘써라.”
“예? 2왕자파의 감시는 어쩌고요?”
“신경 쓸 필요 없다.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두도록.”
“…….”
그러자 조지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창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내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드워프들을 포섭하려는 모양이지?’
한심하게도 내가 놈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이, 단지 우연에 기반한 일이었다 치부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놈들이 보기에는 천운이 따랐다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
……그러니 할 수 있다면 해 보아라.
원한다면 내 업적을 가로채어 가져가 보아라.
어차피 네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