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0화
드워프 (2)
다음 날.
마찬가지로 집무실로 찾아간 수르트는, 조지의 말에 펄쩍 뛰며 기겁했다.
“뭐라! 오늘도 일정이 있단 말인가?!”
“예, 뭐…… 그렇게 되었네요.”
일정 다음에 일정.
그 일정 다음에 또 다른 일정.
그놈의 1왕자는 무슨 영문인지 당최 집무실에 붙어 있는 일이 없었다.
“……일단은 알겠소. 1왕자가 돌아오면 기별을 넣어 주시구려.”
“저만 믿으십시오.”
“…….”
말은 잘하지.
수르트는 마지못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눈 뜰 새도 없이 바쁜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대, 대장님!”
“무슨 일인가!”
별관으로 털레털레 돌아오자마자 들리는 일족의 목소리.
역시나 그 내용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곤란한 것이었다.
“잠시 후에 일족의 생태를 조사할 학자들이 온다고 합니다!”
“또?!”
“그리고 그다음에는 곧장 마법사들이 온다고…….”
“이, 이런……!”
수르트는 이마를 감싸 쥐고 탄식했다.
확실히, 일족의 마을에 갇혀 있었을 때보다야 취급은 나아졌다.
한 왕국의 부속품으로써 확실한 대접을 받는 것이. 그 비좁은 공간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대접을 받고 좋아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벌써 며칠씩이나 인간과의 교류라는 명목으로 불려 다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물며 대장간의 일이라도 가능했다면 불만이 덜하겠건만…….’
놀라울 정도의 호사를 누리는 이 상황도 점차 귀찮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그것이 일족이 원치 않는다 하여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빨리 보금자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의 조건을 신중하게 결정했을 것을.
수르트는 마을에서 맺은 계약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장님!”
그날 밤. 교류가 끝나고 별관으로 돌아온 수르트는, 정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일족들의 눈길에 시선을 피했다.
대장간의 일이 해결되었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들이었기 때문이다.
허가는 물론이고 단 한마디도 붙여 보지 못한 수르트로서는 보일 면목이 없었다.
“미안하네.”
“…….”
그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드워프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는 정원에 놓인 벤치조차도 작업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드워프들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고 합니다. 겉보기에도 드워프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멍청한 새끼.”
발몽스 백작이 조소를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기껏 드워프라는 전설 속의 존재를 얻어 왔으면서 별관에 방치하는 꼴이라니?
덕분에 그 존재가 왕국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는 있다지만, 이렇게 되면 차라리 데리고 오지 않은 것만 못한 수준이 될 것이다.
“아예 놈들을 회유해 달라고 광고를 하는군.”
백작의 미소가 점차 짙어졌다.
어쨌거나 그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철저하게 준비해 두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드워프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었던가?
언제 어떻게 엇나갈지 모르니,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면 나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슬슬 가 보지. 준비된 것들을 챙기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발몽스 백작과 수행원은 무언가를 들고 서쪽의 별관으로 향했다.
* * *
수르트는 기약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 인물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윌리엄 공작 각하를 모시는 길리언 발몽스 백작입니다.”
웬 수하와 함께 찾아온 귀족은 자신을 백작이라 소개했다.
그런 귀족의 뒤로, 수하가 들고 온 맥주 통이 눈에 띄었다. 일족이 맥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공수해 온 모양이었다.
수르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나 일족의 대장 수르트요.”
“……반갑습니다.”
그 무례한 듯 오만한 말투에 발몽스 백작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조금은 나아진 것이라는 사실을, 백작이 알 턱은 없었다.
“그래서, 일족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아, 사실은 왕궁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들은 참입니다.”
“소식?”
“대장간의 사용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곤란함을 겪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흠, 그렇지.”
수르트가 의문을 표하자, 백작이 말했다.
그러나 정작 수르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잇고 있었다.
“한데 그것이랑 그대가 찾아온 이유랑은 무슨 상관이 있소?”
“다른 누구도 아닌 드워프들에게 그런 대우를 하다니요?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요?”
“이걸 봐 주십시오.”
백작이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수르트에게 건넸다.
수르트가 이를 받아 들고 확인하자, 발몽스 백작의 눈이 번뜩 빛났다.
“간단하게 첨언 해 드리자면, 이건 에스테반 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 통용되는 문서입니다.”
“광산의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소?”
“그렇습니다.”
확실히 내용에는 광산의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문제였다. 소유권을 양도받는 대상이, 다름 아닌 수르트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침묵하는 수르트를 보며 발몽스 백작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제가 모시는 각하께서는 드워프 여러분들과 화친 그 이상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이건 그 증표일 뿐이지요.”
“…….”
그 말에 수르트는 1왕자와 나누었던 계약을 떠올렸다.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될 땅. 그곳에 있는 광산에서 채굴한 양의 3%만큼을 양도해 주겠다는 그 조건.
수르트는 다시 한번 서류를 확인했다.
……광산의 소유권 전체를 양도한다는 내용이 확실했다.
“이리하면 그대가 얻는 이득이 뭐요?”
“이득이라니요?”
“대뜸 찾아와서 이를 건네는 것에는 의도가 있을 것이 아니오?”
받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발몽스 백작은 고개를 내저으며 선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하, 오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각하께서는 단지 미련한 귀족들의 행동을 이대로 두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셨을 뿐입니다.”
“…….”
“1왕자를 포함한 귀족들은 여러분들을 아무것도 없는 땅으로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갈데르드 평야라는 곳인데, 그야말로 흙과 풀밖에 없는 빈 땅이지요. 하지만 드워프들이 어떤 존재입니까? 대장간의 요정이라 불리는 야금술의 대가들이 아닙니까?”
그런 드워프들이 갈데르드 평야에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백작은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드워프분들의 진가도 모른 채로 방치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궁에서도 대장간의 사용을 허가해 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광산을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이오?”
“광산과 그 주변 땅의 소유권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곳이야말로, 드워프 분들의 능력을 펼치시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될 테지요.”
“……그렇군.”
결론은 갈데르드 평야 대신에 저들의 땅으로 오라는 소리였다.
이야기만 들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드워프들에게 좋은 조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할 대로 능력을 펼쳐 보라는 말이 싫을 리가 있겠는가?
거기에 그 조건 역시 3%와 전부의 차이였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아, 물론 저들과는 다르게 대장간도 지어 드릴 것입니다.”
“…….”
“그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볍게 한 잔 나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침 남부에서 수입해 온 고급 맥주이니, 입맛에 맞으실 것입니다.”
“……흐음.”
그 침묵의 의미가 긍정인 줄로만 알았던 백작이, 수하를 시켜 맥주 통을 들고 오게 했다.
이윽고 거대한 잔 위로 거품이 날 정도로 호쾌하게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맥주 통에는 마법 처리까지 되어 있었는지, 잔에 담긴 맥주는 금방이라도 얼어 버릴 듯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백작은 웃으면서 잔을 건넸고, 수르트가 잔을 받자마자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그때였다.
“그대는 요정족에 대해 아시오?”
“예?”
두서없는 수르트의 목소리에 백작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
“하하, 세간에서 드워프들을 칭하기를 ‘대장간의 요정’이라 하지 않습니까? 전설 속에 나오는 요정들은 용사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아마 말 그대로 대단한 의미를…….”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아니오.”
“…….”
“뭐,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소.”
탁!
수르트는 맥주가 담긴 잔을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설명하듯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이 대장간의 요정이라 불리는 것은, 말 그대로 요정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오. 요정족은 그대들이 말하는 이종족의 시초가 되는 핏줄이지.”
“……아.”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내게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요.”
“예…….”
순간, 그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문득 백작의 머릿속으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고, 수르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에 우리 드워프에게 세 가지 결례를 범했소.”
“그, 그게 무슨…….”
“첫째.”
쨍그랑!
“……!”
맥주가 담긴 잔이 커다란 소음과 함께 바닥으로 깨어져 나갔다.
수하는 물론이고 백작까지, 그 광경에 할 말을 잊은 모습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수르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맥주는 어디까지나 적막을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것. 그러니 우리 일족에게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은 크나큰 모욕이오. 상대방과의 대화가 그만큼 의미가 없다는 소리와도 다르지 않으니.”
“…….”
“둘째. 감히 선심 쓴다는 양, 우리의 대장간을 지어 주겠다는 헛소리를 지껄인 것.”
대장간은 드워프들의 자긍심 그 자체였다.
타인의 대장간을 빌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타인이 자신의 대장간을 지어 준다는 말은 그들의 정신을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셋째.”
마침내 수르트의 눈이 분노로 차올랐다.
“내게 신성한 요정족의 계약을 어기라고 꾀어낸 것.”
“대,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잘…….”
“그래, 그대는 모르겠지. 하지만 알 필요 없소. 지금부터 그대는 우리 일족에게 없는 사람이니.”
“……!”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린 일도 있었다지만, 그라고 해서 마냥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일족을 위해 헌신하던 드워프의 대장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그때의 일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상황에 가까웠고, 타국에서 일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지금은, 보다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내가 보내는 눈빛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먼 옛날, 자신들을 부리던 인간들의 시선이 저러했다는 사실을.
반대로 1왕자는 아니었다.
“내가 1왕자라는 남자를 선택한 것은, 단지 그가 우리 일족을 구해 주어서가 아니오.”
그는 적어도 한마디 말속에 조금의 거짓도 들지 않은 남자였다.
결코 노예로 부리지 않겠다는 그 말.
자유와 함께 합당한 대가를 주겠다는 그 말.
“이제 나는 그가 우리를 괴롭게 할지언정, 틀린 길로 데려가지는 않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오.”
비록 그 점을 이용하려고 했던 수르트 자신이었으나, 요정의 계약을 나눈 지금에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이다.
“일족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 썩 꺼지시오. 두 번 다시는 보지 맙시다.”
“아, 아니 한 번만 더 이야기를…….”
“분명 꺼지라 했소.”
“…….”
백작은 그렇게 영문 모를 소리를 들으며 쫓겨 났다.
그 짧은 순간, 수르트가 느낀 분노는 그만큼 어마어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