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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31화 (3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1화

후회 속에서 피어난 연꽃 (1)

연방제국의 4황자. 라이덴 델 카롯트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였다.

형체 없는 꿈을 좇는 제 형들을 방패삼아 물밑에서 움직이는 일도.

타국에 심어놓은 세작을 부리는 일도.

이미 모든 것이 황제가 될 그의 뜻대로 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을 다루기를 좋아했던. 그런 4황자에게 있어서, 제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익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이란, 명백하게 지금과 같은 사태를 뜻하는 것이었다.

“시, 식량 창고가 점거당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귀족의 목소리는 감미로운 음악이었다.

4황자는 평소와 같이 눈을 감으며, 황홀한 가락을 음미했다.

곧 저 떨리는 목소리도 눈부신 피날레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쉽게 됐군요.”

대미를 장식할 피날레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찬란함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고 4황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죽여.”

“저, 전하? 부디 한 번만 기회를…… 아, 안 돼……!”

으아아아아악-!

대리석 바닥을 물들이는 붉은 파도의 향연은 기립박수를 치는 좌중보다 아름다웠다.

이로써 한 공연의 막이 내렸고, 자리에 위치한 이들은 여운 속에서 몸을 떨게 될 것이다.

4황자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었다.

“신기한 일입니다. 미리 대비를 했음에도 이 정도까지 고전을 하고 있다니.”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는 제국의 병력이라면 놈들을 막아 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혹자는 이번 전쟁을 연방제국의 위상을 보여 줄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전쟁을 거듭할수록 상황은 나빠져만 갔고, 설상가상으로 북부 평야 지대를 잠식한 놈들의 공세는 날이 갈수록 거세져만 갔다.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역공을 가한다라…….”

역사에서 사라진 드워프를 데리고 왔다고 했지.

그것도 대량의 보구와 함께.

연방제국이 놈들의 공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병력을 이끄는 기사들의 수준이 다른 탓일까?”

흠칫!

시체를 치우던 기사들이 몸을 떨었다.

그러나 결코 겉으로 드러내는 법은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체득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여운에 몸을 맡기던 4황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렌 에스테반.”

그 이름이 요즘 들어서 자주 들려오는 이유가 뭘까.

대체 녀석은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무엇을 알고 있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야만족의 땅으로 들어가 이득을 챙겨 온 것일까.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으론 그에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별개의 세력인가? 그에게 정보를 주거나 숨기고 있는 것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가정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

“……뭐, 상관없겠지.”

벌레 떼처럼 기어오르던 의심암귀가 가라앉는다.

어차피 모든 것은 우리 연방제국의 것이 될 테니까.

건방진 행동을 보이는 것도 어디까지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래. 피날레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악단처럼.

4황자의 웃는 얼굴이 붉게 물든 대리석 위로 비쳤다.

* * *

“……후우.”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시종이 인상을 찌푸리며 변장을 풀었다.

그러자, 선명한 인상과 검은색의 머리카락은 어디 가고, 흔해 빠진 적갈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쓴 조지가 말했다.

“이제 여론을 확인하러 움직일 필요도 없습니다. 전하에 대한 칭송으로 귀가 따갑더군요.”

“음.”

“새로 집결 중인 2왕자의 세력도 혼란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괜히 드워프들을 들쑤셨다가 본전도 못 찾은 셈이었다.

나는 조지의 보고를 들으며 왕궁의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 평소 가던 1왕자의 집무실 쪽은 아니었다.

조지가 변장용 아티팩트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드워프들에게 가는 겁니까?”

“그래. 이쯤이면 사람들의 궁금증도 충분히 풀렸을 것이다.”

“뭐…… 한참이나 불려 다녔으니까요.”

목적지는 에스테반에 찾아온 손님들이 머무는 왕궁의 서쪽 별관이었다.

“헉!”

“1왕자…….”

정원에 모여 있던 드워프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히, 황급히 달려오는 대장 수르트의 그늘진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뭐지?”

“벌써 일주일 넘게 정보 교환이라는 명목으로 불려 다니기만 했소. 대체 언제쯤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줄 생각이오?”

“국빈에 준하는 대접은 네놈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나?”

나는 장난을 담아 싱긋 웃었다.

녀석과 나눈 요정의 계약. 그 최소한의 조건으로 수르트가 꺼내 들었던 것은, 일족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길 원하던 것.

물론 나는 승낙했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의 마음에 들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있잖소.”

수르트가 내비친 황당함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언제까지고 드워프란 존재가 인간에게 낯설게만 느껴지게 할 수는 없었으니.

“이 또한 계약의 의무를 다하는 행동이라 생각하도록.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네놈들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알겠소. 최우선적으로 그대를 돕는 것은 계약에 명시된 사항이었으니.”

요정의 계약은 신뢰를 기반으로 영혼을 나누는 약조를 뜻했다.

대상과의 감정이나 속내 따위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정신의 공유.

때문에 놈의 몸에 흐르는 요정의 피는, 정신을 공유한 내 명령에 진심이 담긴 의무감을 만들어 냈다.

아마 드워프들의 성격상, 요정의 계약만 아니었다면 그간 찾아오던 인간의 부름 따위 응하지도 않았을 테지.

그들로서는 충분히 노력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젠 이쪽이 답해 줘야 할 때였다.

나는 시무룩하게 바닥을 내려다보는 수르트에게 말했다.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네 놈들이 갈데르드 평야에 자리 잡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갈데르드 평야라면…… 설마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그?”

“그래. 아직 광산 개발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지.”

갈데르드 평야의 미스릴 광산에 대한 정보는 아직까지도 극비리에 감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개발에 대한 언급도 일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은, 나였다.

수르트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우리 일족이 앞으로 살아갈 땅……!”

녀석이 내 다리를 붙들고 황급히 보채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면 그 땅으로 갈 수 있는 것이오?”

“원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보내 주겠다. 더 이상 왕궁에 있어 봐야 의미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침을 꼴깍 삼키는 수르트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문제가 있지.”

“……문제라면?”

“광산이 있음에도 개발이 진척되지 않았던 이유.”

녀석은 내 뜬구름 잡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개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오?”

“그래. 아마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 땅은 분쟁이 될 요소가 존재한다.”

어찌 되었든 그 땅은 연방제국의 것이었고, 우리 에스테반에 환원되었다 한들 놈들이 쉽사리 포기할 리는 없었다.

특히나 광산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냐고 나온다면 이 또한 분쟁거리가 될 수도 있었고.

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우리 일족이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리구려.”

“호오, 대화가 빨라서 좋군.”

미스릴 광산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개연성을 주면서도, 이 분쟁에서 한 발자국 빠질 수 있는 방법.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며 조용히 속삭였다.

“네놈들이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 * *

며칠 뒤.

고즈넉한 평야 가운데로, 십수 대의 마차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왕래조차 없었기에 도로는 포장되지도 않은 채였지만, 조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 밖으로 대가리를 내밀었다.

“이야. 내가 야만족의 땅에 이어서 제국령에도 다 와 보네.”

왕국의 국경지대에서 이어지는 작디작은 평야.

사절단과의 합의를 기점으로 더 이상 제국령이 아니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목상으로든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던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감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캑! 이게 뭐야!”

나는 마차가 덜컹거린 탓에 혀를 깨문 조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하게 그리 있지 말고, 앉아 있도록.”

“으으…… 포션이라도 없습니까?”

“네 멍청함에 포션을 낭비하는 것만큼 한심한 일도 없을 테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차 내부에 비치되어 있던 포션을 꺼내,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녀석이 연방제국의 대참모가 된단 말인가.

어쩐지, 내가 행했던 판단들의 가치가 함께 절하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포션을 입에 머금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크으. 이제야 살 것 같네. 사실은 멀미 때문에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렇겠지.”

아마 평소 마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조차도, 이런 험한 길목에서는 토가 쏠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으리라.

답지 않은 조지의 존경이 되돌아왔다.

“전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모양이십니다.”

험한 길에 접어 달리는 몇 시간 동안, 나는 다리를 꼰 채로 책 따위를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몸을 움직이거나 앓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으니, 녀석의 존경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고작 그런 일로 존경심을 품는 것이 우스웠다는 것뿐.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말했다.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 하고 내려라.”

“예? 이제 도착했습니까?”

“그래. 여기부터는 도보로 이동한다.”

조지의 표정이 단박에 환해졌다.

곧 문이 열린 마차에서 뛰어내리듯 지상을 밟은 조지가, 오랜 마차 이동에 찌뿌둥해진 몸을 기지개로 풀어내며 말했다.

“흐으으! 남작님이 휴가를 가신 이유가 있었군요.”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남작의 이번 휴가는, 자그마치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신청한 것이었다.

본래 그가 살던 남작가로 휴가를 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없는 상황.

그런 헌신이 고작 도피 정도로 폄하되는 것을 남작이 알았다면, 미치고 팔짝 뛸 것이 분명했다.

“모든 사람들이 네놈처럼 득과 실을 따지지는 않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말에서 내리는 태양기사단의 모습을 면밀히 살폈다.

“모두 도착했나?”

“예. 그렇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단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저 멀리서 뒤이어 다가오는 드워프들의 마차를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드워프들이 보금자리를 만드는 동안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겠다.”

“충!”

이곳 갈데르드 평야는, 국왕의 명에 따라 드워프들이 살아갈 장소로 지정되었다.

천혜의 산맥 ‘실 타프 그란데’가 가로막고 있기에 불의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협력관계에 있는 그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태양기사단 부단장 로데르.”

“부르셨습니까.”

내 부름에 답한 로데르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바로 얼마 전, 태양기사단과 처음 대면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자네와 태양기사단이 이번 임무를 자진해서 맡았다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에게서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감정은, 비단 경외심뿐만이 아니었다.

……뭐, 덕분에 일이 편하게 흘러갈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기사단이 주변의 위험 요소를 수색하는 동안, 자네는 나와 같이 움직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태양기사단이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확인한 뒤, 로데르와 조지를 이끌고 드워프들이 내리기 시작한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앞으로 그들의 일족이 새로이 살아갈 자유의 땅. 녀석들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평야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선이 그 지면을 향해 있었다.

“느껴지는 것은 있나?”

“오오! 당연히 있소. 이렇게 거대한 기감은 난생처음이오! 그야말로 자연의 축복이라 할 수 있는 정도요!”

“그런가?”

“정확히 이 장소를 기점으로, 점차 아래쪽으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지. 어찌 이 지점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땅을 파헤치면 바로 원석들이 보일 거요.”

수르트는 왕궁에서의 방치조차도 잊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졌던 강대한 광석의 기운.

요정족인 그들에게만 느껴지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 증거로. 녀석들은 보금자리고 나발이고 당장이라도 땅을 파헤치려는 듯, 곡괭이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 정도 기운을 가진 광맥이라면, 3%라도 감지덕지라 할 수 있겠지.”

“암! 적어도 그 썩은 땅이나 답답한 왕궁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하는 일이 딱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광맥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기대는 점점 증폭되어만 갔다.

그 말대로. 안전과 자유를 확실히 보장받은 지금이. 차라리 일족에게 도움이 될 따름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드워프들의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나는 드워프들의 대장, 수르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네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협의에 따라, 그 대부분은 우리 에스테반에 넘겨주기로 했지.”

수르트의 뒤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 드워프들의 곡괭이질 소리가 들려왔다.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몸소 느끼고 있을 거대한 기운이, 바로 그들의 발아래로 펼쳐져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무구들 역시, 자유를 보장해 준 에스테반에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 상납하는 것이다.”

“물론이오.”

“좋아.”

그럼 이제 이들에게 보여 줄 때다.

나는 손을 뻗어, 땅을 파헤치고 있는 드워프들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네놈들이 발견한 광석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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