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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33화 (33/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3화

후회 속에서 피어난 연꽃 (3)

“성벽을 건축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로데르는 내 말에, 건축되어 가는 방호벽을 바라보다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적을 일시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목적의 방책과 침공을 방어하는 성벽의 구성은 엄연히 다르다.

그 규모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방호벽을 쌓아 올리고 있던 드워프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무언가를 건축한다는 것은 설계를 필요로 하는 일이오. 아쉽지만 성벽 건축에 대해 아는 선조들은 이미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소.”

수르트는 축조 기술의 소실을 들며 불가능함을 내세웠다.

오랜 세월 지하에서 살아온 그들에겐 거대 성벽을 지을 필요가 없었기에.

단지 벽돌을 쌓아 올릴 뿐이라면 모를까, 성벽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기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에 고개를 내저을 따름이었다.

“성벽은 건축되어야 한다.”

대형 몬스터들의 습격은 둘째 치더라도, 언젠가 이 땅은 연방제국과의 분란을 정면으로 받아 내야 하는 장소였다.

내가 벌였던 행동들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가 변화하고는 있다지만, 연방제국의 더러운 욕망까지 바뀔 리는 없었으니까.

놈들이 야만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대비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이 땅은 네놈들이 살아갈 장소다. 최소한의 안전조차 남에게 기생해야 한다면 노예와 다를 바가 있나?”

“…….”

“이건 네놈들이 노예로 살아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다.”

내 서늘한 눈길이 태양기사단에게 향했다.

“태양기사단은 인원을 분배해서 경계팀과 수색팀으로 나눈다. 수색팀은 지금 바로 몬스터 토벌에 앞장서도록.”

“충!”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임시로 건축된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뒤로 수르트와 조지가 따라붙었다.

“성벽을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요.”

“그렇소. 우리 드워프들이 말하기는 부끄러운 사실이나, 모든 게 부족하오. 자체 하중뿐만 아닌 마법 공격을 받아 내는 구조역학까지. 불가능에 가까…….”

우뚝-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캑!”

때문에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조지가 내 등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내 시선은 소극적인 태도의 수르드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네놈들은 날 때부터 망치를 쥐고 태어났나?”

“…….”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네게 그만한 각오가 없기 때문이다.”

어설픈 핑계다.

생존에 목숨을 위협받고, 그 누구도 도와줄 이가 없다면.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회귀 전. 일족이 야만족에게 사로잡혀 강제로 성벽을 구축해 내야 했던 그때처럼…….

“불가능한 것을 시킬 생각은 없다.”

회귀한 이후로 계속 생각해 왔던 계획 중 하나.

그 답을 보여 줄 때다.

나는 그대로 휙 몸을 돌려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라와라.”

* * *

“이, 이건……!”

잿빛의 반죽에 정체 모를 액체가 흩뿌려지자, 형체를 잃고 무너져 내리려던 반죽이 빠르게 굳었다.

물질 하나하나가 전부 결합 된 듯 단단함을 잃지 않는 그 모습에, 멍하니 서 있던 수르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굳은 반죽을 매만졌다.

“강철? 아니, 그보다는 무르지만…….”

마찬가지로 옆에서 굳은 반죽을 매만지던 조지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통상적인 바위보다 훨씬 단단하군요.”

그 모습만큼은 건축에 들어갈 자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 계속 단단해진다!”

아까는 바위보다 우세할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에는 더욱 단단해져, 철과 같은 강도로 뒤바뀌었다.

반죽의 내부까지 모두 굳어 버린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만들어진 벽돌에 경악하고 있던 수르트가 황급히 내 쪽을 쳐다보았다.

“대, 대체 이게 무엇이오? 무슨 짓을 했기에…….”

“이 근처의 돌을 물과 함께 갈아, 점토를 섞은 것이다. 거기에 마법에 사용되는 시약을 끼얹음으로써, 그 강도를 활성화시켰지.”

“그게 무슨…….”

자세히 보니, 회색의 반죽은 광산의 벽면을 이루던 바위들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평야에 넘치고 넘친 돌덩이만으로도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대가 말하는 것은 카이멘툼의 제조법이 아니오?!”

“호오. 이미 알고 있었나?”

역시 드워프라는 말인가.

하기야 수백 년을 살아온 대장간의 요정들이라면, 이미 사장된 공법인 카이멘툼에 대해 알 법도 했다.

당연히 조지는 이를 알 턱이 있을 리가 없었고.

“카이멘…… 툼? 그게 대체 뭡니까?”

“수백 년 전에 유행하던 건축 기법이오. 화산재처럼 화기가 강한 암석을 갈아서 건축 자재로 이용 가능하도록 빚은 것을 뜻하지. 그대로도 단단하나, 아까처럼 시약을 사용하면 더 단단해지오.”

“정확하다.”

대륙 어디에나 흔하게 나는 재료였고, 시약의 제조법 역시 간단해서 한때는 건축물 대부분에 쓰일 정도였다.

마침 이 근방의 암석도 그 특성을 띠고 있고.

하지만 녀석은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하나, 이건 카이멘툼이 아니오! 나는 이런 강도의 카이멘툼을 본 적이 없소!”

“그래?”

“특히나 그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마나에 대한 저항이 없다시피 하는 수준이오. 때문에 마법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일반 석재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소. 하지만 이건…….”

그 얼굴이 점차 상기되기 시작했다.

카이멘툼이 사장된 이유에는, 물체의 마나에 간섭할 수 있는 마법이 발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마법 저항력이 없기에 간단한 마법만으로도 그 구조가 즉시 붕괴되는 것이다.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다른 재료보다 비싸며, 마법에도 쉽게 무너지는 건축 자재를 굳이 사용할 얼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면 별 필요 없는 거 아닙니까? 마법을 못 막는 성벽이라니.”

“아니, 이건 다르오.”

수르트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끊더니, 벽돌을 내려놓고는 등에 지고 있던 곡괭이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벽돌을 노려보며 힘차게 숨을 들이쉬고는.

깡!

그대로 곡괭이를 내리찍었다.

놀랍게도, 벽돌은 겉면이 조금 흠집 났을 뿐. 깨지거나 깎여 나가지 않았다.

수르트가 거친 호흡을 이어 나가며 말했다.

“무엇이 작용했는진 모르겠으나, 성분 하나하나가 카이멘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소. 이 정도라면…… 마법 저항력도 적게나마 있을 거요.”

“잘 봤군. 완벽한 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벽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법 각인에 축적된 마나를 일순간 해방시켰다.

야만족의 땅에서 사용했던 그것처럼.

번쩍-!

쾅!!

코트에 가려진 오른팔이 빛났고, 굉음과 함께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파동이 일었다.

하지만 파동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은 벽돌은 여전히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기화의 첫 번째 임계점을 넘은 이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마력 장악.

축척된 마나를 사용해 주위의 마나를 모두 흩어 버릴 수 있는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보다시피 이 녀석의 마법 저항력은 마갑 그 이상이다.”

기사들의 마갑을 제작하는 데에 사용되는 합금들은, 마법 저항력이 높은 금속을 알맞게 배합해 놓은 것.

사실상 고등위급 미만의 마법은 완전히 방어해 준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기존 상식을 모조리 바꿔 버릴 세기의 대발견이었다.

“대체 어떻게!”

“기존 재료에 이곳에서 미스릴을 정제하면서 남은 부산물을 섞었다. 찌꺼기라지만, 미스릴 성분이 듬뿍 함유된 진흙을 말이지.”

그 말에 녀석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미스릴 성분의 영향을 받아 반죽이 단단하게 경화될 것이고…… 지속적으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시약도 사용하지 않으니, 마나 간섭에도 취약하지 않은…….”

“이제 이해했나 보군.”

“하, 하물며 미스릴 그 자체만으로도 마법 공격에 도리어 강점을 가지게 된다는 건가!”

벽돌의 정체를 깨달은 수르트가 경악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성벽을 건축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라면, 알맞은 크기의 바위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보통 채석장에서 돌을 구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했고, 그 뒤로 바위를 잘라 내는 등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말은 달랐다.

“그, 그렇지……! 광산에서 나온 돌을 갈고…… 틀에 넣어 빚기만 하면…….”

“원하는 모양대로 그 어느 것보다 단단한 건축 자재를 얻을 수 있다는 소리군요.”

“이럴 수가! 카이멘툼의 장점만을 부각한 공법이라니!”

그것도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어차피 미스릴 광산에서 나오는 잔해는 지상으로 옮겨야 했으니, 사실상 채석장에서 일어나는 쓸모없는 과정을 모두 지나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기해야 할 잡석들을 재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리면서 말이다.

수르트가 벽돌을 집어 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이것만 있다면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오! 하중이나 마법 방어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이 정도면 뚫리지 않는 성벽을 만들 자신이 있나?”

“암! 물론이오! 우리 드워프들의 노하우와 융합한다면, 2년 내로 성벽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오!”

통상적인 성벽을 건축하는 데에 들어가는 고려사항은 이제 논외였다.

어쩌면 적을 막아 낸다는 기능, 그 이상에 치중한 기이한 성벽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금부터는 예술의 영역이었다.

“다행이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회귀 전의 일을 회상했다.

미스릴 광산을 이용한 이 기술은, 연방제국이 발견해 낸 건축 기술이었다.

놈들은 이를 이용해서 성벽을 튼튼하게 하거나, 각종 건축물을 만드는 등.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행보를 벌여 왔었다.

물론 거기에 이 갈데르드 평야에서 나는 원자재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디 이번 건축은 우리 일족에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소. 이런 작업이라면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녀석의 확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건축을 도울 잡부들을 보내 주겠다. 그들의 협력이 있는 편이 시간을 할애하기에도 좋겠지.”

“오오! 그런 배려까지 해 주는 것이오?”

“네놈들이 성벽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까.”

이 땅은 어디까지나 에스테반의 것.

놈들은 노예가 아닌, 자유 의지를 가진 ‘협력자’일 뿐이었다.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갈 스스로의 의무.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할애할지는 온전히 네놈들의 몫이다.”

“성벽 건설을 하든, 광산을 개발하든. 하물며 무기를 만드는 것조차 우리의 자유라는 뜻…….”

“그래.”

나는 광산의 진입로를 드나드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와라. 이제 지어질 성벽에 대한 설명을 해 주겠다.”

* * *

나는 대략적인 성벽의 구조가 그려진 종이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조지와 수르트가 고개를 내밀어 이를 확인했고, 그 위로 저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자세한 설계를 덧칠해 갔다.

“성벽은 외성벽과 내성벽으로 분리된 삼중의 구조로 건축될 것이다.”

넓고 깊게 파인 해자. 그 뒤로 놈들을 견제하는 저층 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이를 보호하듯 8미터 높이의 내벽이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장을 아우르는 15미터 높이의 웅장한 외성벽 까지.

그 구조는 이 벽을 마주하는 적들이 외성벽에 다다르는 동안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

“……이렇게 튼튼한 구조라니.”

수르트가 길게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한 후방은 천혜의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으며, 점차 경사가 가팔라지는 탓에 전방에서 이를 뚫으려면 막대한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이 설계대로만 된다면,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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