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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35화 (3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5화

후회 속에서 피어난 연꽃 (5)

자연은 경이롭고 위대하나, 한 편으로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약육강식.

그 절대적인 논리 앞에서는 인간도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이를 증명하듯. 기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개미를 밟는 것처럼 움직이는 포식자로부터 저항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조심해!”

슈우우욱- 슈콰쾅!!

한 아름이 넘는 크기의 주먹이 기사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팔에 휩쓸린 나무들이 여기저기 부러지며 하늘을 날았다.

바닥에 뒤엉켜 한없이 구르면서도 주마등처럼 느리게 재생되는 장면에, 기사는 피가 나는 줄도 모르는 채로 입술을 악물었다.

쿠워어어어어!

“……큭!”

간신히 트윈 헤드 오우거의 공격을 피해 낸 기사가 재빠르게 자세를 다잡았다.

아마 오러를 두른다고 하더라도 저 공격에 맞는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하필이면 이런 녀석을 마주하다니……!’

산맥과 마주한 숲은 이미 혼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울창하게 들어섰던 나무들은 그 흔적조차 없이 바닥으로 몸을 뉘었고, 지반은 군데군데 무너져 기사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마와 같은 저력.

그러나 그 기개만큼은 절대로 공포에 굴하지 않았다.

“좋아…… 조금만 더!”

“녀석의 다리를 공격해!”

기사들의 움직임은 놈의 공격을 피하는 데에 급급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이 공격을 받아 자세가 무너지면 다른 이들이 도리어 놈의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그렇게 포지션이 확보되면 다시금 녀석의 공격 범위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를 지휘하는 것은, 부단장 로데르였다.

“녀석과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안 된다! 자세를 무너뜨리는 데만 집중해!”

허억- 허억-

로데르는 단원들의 용기를 북돋우며 누구보다 앞장서 검을 휘둘렀다.

때로는 빈 수비를 채우듯 재빠른 움직임으로.

때로는 놈의 시선을 빼앗듯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벌써 이십 분에 가깝게 이어지고 있는 사투에,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지친 기색조차 없다니……!’

로데르는 연신 공격을 내지르는 트윈 헤드 오우거를 노려보며 혀를 내둘렀다.

만약 잘못된 판단으로 정면 공격을 지시했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수준이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아직까지 크게 다친 인원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의 몸에도 생채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산맥의 기운을 받은 트윈 헤드 오우거라 해도 오러의 절삭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겠지.

‘……하지만.’

그러나 정작 지쳐가는 쪽은, 필사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기사들이었다.

‘이대로는 기사들이 위험에 빠질 뿐이다.

조금만 더 녀석의 움직임을 저지시킬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만 있다면……!

그 순간. 타개책을 찾아내던 로데르의 머릿속으로 문득 1왕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리고 그 시선이 황급히 주변에 서 있던 기사에게 향했다.

“물건……! 분명 전하께서 신신당부하며 챙겨 주신 것이 있었을 터다!”

“예?”

“물건, 그 물건은 지금 어디에 보관 중이지?”

“……아!”

기사는 그 다급한 목소리에 당황하면서도, 재빠르게 손짓하여 짐 가방이 놓인 방향을 가리켰다.

“붉은 가방! 테리가 가지고 있던 붉은 가방에 들어 있습니다!”

“고맙네!”

로데르는 재빨리 후방으로 이탈하여 짐 가방이 놓인 위치로 도달했다.

그리고는 가방을 풀어 헤칠 시간도 없이 검으로 찢어 내고는, 그 안에 놓여 있던 검은 색 네모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역시!”

1왕자가 전해 준 것은, 로데르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 역시도 사용하던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그렇게 물건을 잃어버릴 새랴 고이 품속에 넣은 로데르는 다시금 전장 속으로 발걸음을 들이밀었다.

“기사들은 들어라!”

전장을 뒤흔드는 외침.

“포위 진형을 해체하고 놈을 벽으로 유인하라! 최대한 붙어 있게 만들어야 한다!”

미끼가 되란 뜻이다.

그것도 저런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녀석을 정면으로 상대하면서까지.

하지만 기사들은.

“충!”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의 정면으로 위치를 옮겨 냈다.

강한 신뢰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큭!”

“이쪽이다!”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

그리고 그 아래에서 아슬아슬하게 놈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사들.

그렇게 상황을 애타게 지켜보는 로데르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사들이 등진 절벽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놈의 공격을 피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지겠지.

점점 더.

더 깊게.

그 순간. 일 초가 일 년 같은 시간 속에서, 로데르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

그 무엇보다도 기다리던 상황이었기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 속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로데르가 재빠르게 팔을 휘저으며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다! 즉시 뒤로 물러서라!”

“충!”

타닷-!

마침내 떨어진 퇴각의 신호.

이에 회답하듯, 기사들이 순간적으로 절벽을 박차고 길게 도약했다.

남아 있던 오러까지 모두 사용했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쿠워어어어어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동 패턴에 트윈 헤드 오우거가 굳은 듯 자리에 몸을 세웠다.

아니. 정확히는, 수상한 장소로 유인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리라.

그리고 그 위로 로데르의 침착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엎드려라!”

콰과과과광!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이 숲을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버릴 정도의 밝은 섬광과 이명을 자아내는 소음.

마치 대마법의 파괴력을 정면으로 받아 내듯 막강한 폭발에, 엎드려 있던 기사들이 몸을 떨며 전율했다.

“저건…….”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채광 폭탄.

거기에 1왕자가 아티팩트를 달아 준 것을, 절벽으로 던져 무너뜨린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순간적으로 떠올린 기지에 불과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확실한 효과가 나타날 줄은……!

로데르는 고개를 들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솟아오르는 먼지구름을 얼떨떨하게 쳐다보았다.

“어, 엄청나군. 이게 바로 드워프들의 기술인가? 설마 전하께서는 이런 상황마저도…….”

“부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음? 아, 나는 괜찮네. 다친 인원은?”

“다행히 부단장님께서 빠르게 지시해 주신 덕분에 폭발에 휩쓸린 인원은 없습니다.”

“그렇군.”

로데르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사방으로 휘날린 흙먼지와 파편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숲.

트윈 헤드 오우거는…….

“……죽었나.”

더 이상 트윈 헤드 오우거의 흉포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야. 저만한 폭발과 돌 더미에 휩쓸렸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제야 로데르는 긴장감으로 젖어 있던 손바닥을 쓱쓱 닦아 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일세.”

기사들의 능력에만 의존해야 했던 전투였다.

그대로는 분명 기사 여럿을 잃었겠지. 그럼에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괴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되었다지만…….’

……한데 마음 한편에 남은 이 석연찮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째서 아직까지 불길한 기분이 떠나가질 않는 것이지?

“…….”

로데르는 차갑게 식은 손을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쥐었다 펴며 지시를 내렸다.

“이 정도의 폭음이라면 먼 거리에 있던 몬스터들도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지.”

“알겠습니다.”

드디어 임시거처로 귀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사들이 반색했다.

모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무너진 절벽을 피해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흠칫-!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강하게 느껴지는 위화감.

이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 했으나.

크워어어어어어!

흉성과 함께 바위 더미가 터져 나가면서 검게 물들인 거대한 주먹이 순식간에 로데르의 시야를 가렸다.

“이런!”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일격이 그를 덮치려는 그때.

“부단장님!”

콰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옆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그의 세상이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흐릿한 소음.

“이런, 부단장님이!”

“젠장, 베넷 경!”

로데르는 이어지는 소란에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금 검을 뽑아 달려오는 기사들.

저 구석, 부서진 바위를 등지고 있는 괴물의 모습과 근처의…….

“……!”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부하 기사의 모습.

그 갑옷의 등갑은 종잇장처럼 뒤틀려 있었다.

로데르는 그 광경만으로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멍하니 있을 틈은 없다. 바로 움직여야 했다.

크르르르-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낮은 숨소리.

트윈 헤드 오우거는 전신에 피를 칠갑하고 배엔 굵은 바위 조각이 박혔음에도 어느새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리고 있었다.

로데르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베넷 경을 보호하며 검을 들어라.”

그 순간 녀석이 달려들었다.

전신에 검은 아지랑이를 두른 채 방어선을 뚫고 다가오는 핏빛으로 물든 붉은 눈동자.

‘빨라!’

간신히 오러를 일으켜 짓쳐 드는 놈에게 맞섰으나.

“큭!”

일격을 받아 낸 순간 단숨에 상체가 밀려난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 공격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연타로 들어온다.

“이 자식이!”

“부단장님을 도와라!”

그 모습에 대경한 다른 단원들이 달려들었으나 소용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커억!”

그들은 미쳐 접근도 하지 못한 채, 놈이 흩뿌린 팔에 단숨에 쓸려 나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행해진 일련의 공격.

그 모습을 보며 로데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일부러 진형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한눈을 판 작은 틈을 녀석은 놓치지 않았다.

‘아뿔싸!’

콰아앙!

저 멀리 튕겨 나가는 검.

그와 동시에 놈이 치켜든 주먹이 머리 위로 휘둘러졌다.

“……!”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주위의 풍경이 거뭇하게 일그러졌다.

다급한 기사들의 표정. 손아귀로부터 흩뿌려지는 핏방울.

녀석의 주먹을 마주하는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머리는 상황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처음, 일말의 기척도 없이 다가와 발을 뭉개던 그 모습.

수십 분간 싸움을 이어 나가면서도 지친 모습조차 보여 주지 않았던 그 모습.

그리고 지금 녀석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검은 기운까지!

믿을 수 없지만 인정해야 했다. 녀석은 마치 기사처럼 체내의 기운을 발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을 유인해서 해치웠다고 생각했으나, 놈은 말 그대로 가지고 놀고 있던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에서 드러난 놈의 붉은 눈이, 어쩐지 웃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빌어먹을.”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녀석이 휘두른 주먹이 로데르의 머리에 닿았다.

……아니, 분명 닿으려고 했다.

아마 오우거의 팔이 아슬아슬하게 멈추어지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리되었으리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장면을 보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는 미래였다.

하지만 단지, 녀석은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뿐이었다.

“무슨…… 일이…….”

그렇기에 멈춘 것만 같은 시간을 지켜보는 로데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지. 또한 어째서 공격을 멈춘 건지도.

그리고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점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칼로 베어 낸 듯한…….

베어 냈다고?

“트윈 헤드 오우거라.”

문득 로데르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 위를 향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등진 태양 사이로 무너지는 오우거의 사체를 짓밟고 뛰어내린 한 남자를.

“기감을 따라온 것이 정답이었나.”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이 천천히 칼집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마침내 시체가 땅바닥에 처박혔고, 다시금 자욱하게 이는 먼지구름 속에서 남자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딴 것에 고전하다니.”

“전하…….”

“왕실 직할 기사단의 이름이 울고 가겠군.”

오만하나,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

“아무래도 수련을 시킬 필요가 있겠군.”

* * *

“저, 저건!”

작업을 하다 말고 뛰쳐나온 드워프들이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기사단이 임시 거처에 뉘어진 수 미터 크기의 사체는,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기에.

갑작스런 소란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왔던 수르트가, 시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분명하군.”

산맥의 제왕이자, 악마의 현현.

군데군데가 오러에 찢기고, 폭발에 그을리긴 했다지만, 분명 이건 트윈 헤드 오우거의 사체였다.

그것도 산맥의 영향을 받아 더욱 포악하고 강인해진 개체.

사체에 남은 사기(邪氣)로 보건대, 족히 대장장이라면 침을 흘릴 정도의 상등품임이 틀림없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하지만 1왕자는, 그저 무심하게 사체를 던져 두며 말했었다.

-좋을 대로 이용하도록.

좋을 대로 이용하라니?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도 쉽게 보지 못한 것들을 연달아 겪고 있는 그로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던져 두고 떠나가는 그 모습에는,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오히려 기사들을 통솔해 집합시키면서 다음 일에 집중하는 모습까지.

‘정말로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일족들이 시체를 둘러싸고 호들갑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오, 맙소사!”

“대, 대장! 이 어금니는……!”

“이 정도로 질긴 가죽이라면 그야말로 상등품의 무구를 제작할 수 있겠소!”

“그, 그렇겠지.”

수르트는 다가온 일족들의 방정에 당황하면서도 급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사체를 잘만 가공한다면…….’

갑작스럽게 일이 늘어났으나, 드워프는 본디 망치를 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종족.

오히려 이런 일은 더욱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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