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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36화 (3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6화

후회 속에서 피어난 연꽃 (6)

하얀 침대와 조잡하지만 제 기능을 착실히 다 한 건축물.

“……여기는.”

태양기사단의 3년 차 기사인 베넷 리프레는, 자신이 평야의 임시 거처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절하기까지의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괴물이 갑자기 달려들었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는 사실 외에는.

“깨어나셨습니까?”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에, 베넷 리프레가 힘겹게 몸을 뒤척였다.

그러고는 곧장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며,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의원님?”

“예. 무사히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깨어났다니…….”

태양기사단과 함께 평야로 파견된 왕실의 의원.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부단장을 급히 밀쳐냈던 자신의 모습까지도.

“그 괴물은?! 다른 동료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베넷 리프레가 경직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본 검은 색의 불길한 아지랑이.

그리고 어떻게든 오러를 집중시켰음에도 단숨에 의식을 잃게 만들었던 그 위력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전투가 간단히 끝났을 리 없다.

그러나 의무실의 하얀 침대에 누워 있던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설마.”

패닉에 가까운 모습으로 동료 기사를 찾는 그 표정이 다급해 보이기까지 했으나, 의원은 느긋한 웃음으로 기사를 말릴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분들은 그나마 간단한 치료로도 충분하셨기에,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을 뿐입니다.”

“…….”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제야 베넷 리프레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랬구나.

정말 다행이게도, 기사들은 녀석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부상자인 자신을 이송하면서도 말이다.

‘트윈 헤드 오우거…….’

점점 돌아오는 기억 속에서 베넷 리프레는 조용히 전율했다.

그 소름 끼치는 위력의 전투력과 지능.

바로 전, 기사들이 힘겹게 상대했던 오우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일 수준이었다.

살아 도망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군요.”

“예?”

“악마라는 이름으로 악명 높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토벌하다니요.”

순간, 기사는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잡았다고요?”

“예. 그 흉포한 기세에는 멀리서 사체를 지켜보던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잡았다고? 그 트윈 헤드 오우거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게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생각들로 당황하던 기사의 귓가에,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게다가 그런 녀석을 토벌하시고도 휴식조차 없이 수련에 임하시다니, 과연 태양기사단이라고 하겠습니다.”

“……!”

베넷 리프레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충격으로 전신이 꽤 욱신거리고 말을 듣지 않을 터였으나, 정작 그에게는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베넷 경?!”

“동료들을 보고 오겠습니다.”

“예? 그, 그 몸 상태로 대체 무엇을……!”

기사는 재빨리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등 뒤에서 의원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갔을까.

임시거처에 마련된 공터로 도착한 베넷 리프레의 눈으로,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챙-! 챙-!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분명 태양기사단이었다.

공터는 그들이 흘린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고,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기합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점은, 그 훈련이 결코 평소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맙소사.”

* * *

태양기사단을 공터에 집합시킨 로데르가 당황하며 물었다.

“예? 전하께 공격을 가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대련이라 하더라도 어찌 일국의 왕자에게 검을 겨눈단 말인가?

실력 차이가 압도적으로 난다고는 하더라도,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불경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돌아온 답변은 명확했다.

“두 번 설명해 주어야 하나?”

“아, 아닙니다.”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대련용 검을 집어 들었다.

“이대로라면 몬스터 따위에게 지는 일이 반복되겠지. 내가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

몬스터 따위에게 무력하게 죽어 나갈 것인가?

나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

내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실전을 통해서라도 힘을 기르게 해 주겠다. 그게 바로 내 가르침이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서 느낀 지독한 패배감.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그 부정적인 감정은 저들의 성장을 가속시킬 것이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말이지.’

태양기사단은 에스테반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기에, 힘을 길러 둔다면 언젠간 크게 쓰일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에스테반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 줄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점차 조여 오는 적들의 압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게다가…….

‘로데르 캘버.’

그는 기사로서도, 부단장으로서도 탐나는 인재다.

특히나 그 눈썰미는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지.

로데르는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처한 기색으로 기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허어.”

황송하다는 듯 빨갛게 상기된 얼굴들.

그 속에는 왕족이 직접 나서서 수련시킬 정도로 부족한 실력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간 머물렀던 당혹스러움은 잊어버릴 정도로.

……후우.

인제 와서 이런 실력으로 불경함 따위를 지껄이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그렇게 한숨을 내쉰 로데르가 수긍하며 다가왔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대련의 진행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아서 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무언가를 고민하던 로데르가 고개를 들어 태양의 기울기를 확인했다.

어둠이 내려앉기까지는 아직 여유로운 시각.

이내 그 시선이 가장 앞 열에 서 있던 기사에게 향했다.

“태양기사단의 수가 많으니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자네부터…….”

“멈춰라.”

“어엇, 예?”

“한 명씩 대련해서 어느 세월에 끝낼 생각이지?”

나는 당황하는 로데르를 제치고 기사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만 하루에 불과하다.”

“하, 하지만.”

“나는 분명 시간이 없다 말했던 것 같은데?”

하루라는 짧은 시간은 짧았다.

대련으로 실력을 상승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둘 생각은 없지.’

하루의 시간을 낭비한 만큼, 그에 합당한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반드시.

그런 서늘한 눈빛 속에서 손에 들린 검 끝이 까닥여졌다.

“절반이다.”

“예?”

“절반은 나를 상대하고, 나머지는 대련을 지켜보며 움직임을 배운다.”

갈데르드 평야 주둔에 지원한 기사는 오십 남짓.

두 그룹으로 나누어 휴식과 전투를 반복시키는 것으로 수련의 효율을 극대화시킨다면,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검을 뽑기 시작했다.

“살의를 담아서 검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적은 절대 봐주지 않을 테니.”

* * *

기사들과 마주한 1왕자의 눈은, 조그마한 먹잇감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챙-!

“큭!”

기사가 아려오는 손목을 붙잡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기사의 애검이 애처롭게 내동댕이쳐졌다. 새로운 열외 인원이 탄생한 것이다.

“후우, 후우.”

“…….”

이제 남은 기사는 셋.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정면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한 기사들은, 눈짓하며 포지션을 변경해 나가기 시작했다.

“흐아앗!”

슈우우욱-!

정면으로 검을 내지른 미끼.

그리고 이를 노리고 양옆으로 빠져나간 두 명의 기사.

하지만 1왕자는 그려진 원 안에서 침착하게 몸을 젖혀, 기사들의 합격을 피해 냈다.

“헙!”

“헛!”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검의 궤적을 흘려 내는 그 장면이, 꼭 대본이라도 짜인 연극 같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1왕자와 얼굴을 맞댄 이들 역시도 묘기에 가까운 장면에 대략 정신이 멍해질 따름이었다.

허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면 반격을 허용하게 되지.”

“……헉!”

“멍청하게 행동하지 마라.”

챙!

“커억!”

털썩-

정면으로 몸을 던졌던 기사가 바닥을 굴렀다.

정확한 일 점을 노려 무게중심을 무너뜨리는 공격은 왕실의 기사로써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양쪽으로 들어온 기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챙 챙-!

“으윽……!”

기사들은 날아가는 검을 허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졌다.

1미터 남짓의 작은 원 안에서만 움직이는 1왕자를 상대로, 단 일 검도 적중시키지 못한 것이다.

양쪽으로 들어오는 칼날들을 찌르기로 밀쳐 내는 묘기를 보여 준 1왕자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심하게 감상을 던졌다.

“무엇을 하는 거지? 또 자세가 기울어져 있군. 그러니 오우거 따위를 상대할 때도 그런 단순한 공격조차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습관이란 것은 무서웠다.

몸이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그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

1왕자의 시선이 손목을 붙잡고 있던 다른 기사에게 향했다.

“자네는 검을 쥐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편이 좋겠군. 고작 손목에 타격이 온 것만으로 검을 놓치는 것은 기사의 수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연하게 몸은 다룬다는 점은 칭찬해 주지. 단점을 최소화하고 유연함을 극대화하면, 지금보다 나은 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1왕자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기사들의 얼굴은, 이제 경악을 넘어서 질릴 지경이 되었다.

정확한 진단으로 기사들의 문제점을 짚어 내는 그 모습이 놀라워서?

물론 그 또한 기겁할 만한 일이기는 했으나.

“다음.”

스물다섯 명씩 네 번.

그들을 경악게 하는 것은, 벌써 백이 넘어가는 기사들을 상대하면서도 아직까지 저 원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호흡조차 가빠지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옷자락에 검이 스치는 일도 없었다.

단지 움직임과 검술만으로도.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저건…….”

“……말도 안 돼.”

단순히 마스터라는 경지만으로 저게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는 사이.

챙-!

“억……!”

어느덧 다음 대련 역시도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쏜 살과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집중하고 있던 탓에 체감 시간이 짧았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짧았다.

기사들이 1왕자와 일 합조차 나누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내는 그 모습에는, 부하들의 전력을 꿰뚫고 있다 자부하는 로데르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수련 방법과 조언들.

아니.

알렌 에스테반이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할 행동들.

‘정말로 저분께서는……!’

그렇기에 로데르는 다시 한번 1왕자라는 남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호수 속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단장님!”

“……베넷 경?”

베넷 리프레는 황급히 달려오더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데르에게, 호들갑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 아니. 그보다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았다는 것은 무슨 말이고요?”

“그런 자네야말로 의무실에 있지 않고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그, 그건…….”

로데르의 따가운 지적에, 베넷이 찔끔한 표정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갈아 입혀진 환자복. 기절의 후유증으로 인해 무겁게 가라앉은 몸.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둘린 붕대까지.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을 용납할 부단장이 아니었다.

“기사의 첫 번째 의무는 몸단장을 바르게 하는 것일세. 이는 스스로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또한 포함이지.”

“저, 저는 괜찮습니다! 누워 있던 탓에 뻐근한 것을 빼면 이미 거의 낫기도 했고…….”

“지금은 조용히 의무실로 돌아가게나. 원하는 설명은 나중에 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결국 베넷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를 걱정하는 이야기였으니,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무룩한 얼굴로 몸을 돌린 그 순간.

“멈춰라.”

1왕자의 무감각한 말투가 귓가에 울렸다.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다음 대련을 준비하고 있던 1왕자의 시선이 자신에게 멈추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 자네 이름은 뭐지?”

“저, 저, 저를 부르셨습니까?”

3년 차 기사, 베넷 리프레.

더는 어수룩하지 않을 경력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지목에는 그조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로데르 경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기사였다지.”

“예? 아, 그렇습니다!”

“다급한 상황이었을 텐데 훌륭한 판단이었다. 잘했다.”

“가, 감사합니다!”

지목은 당황스러웠으나, 베넷 리프레는 제 행동에 보답을 받은 양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이는 존경해 마지않는 이로부터의 칭찬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뜻밖에도, 1왕자의 시린 목소리가 그 위로 내려앉았다.

“허나 그건 실력이 받쳐 줬을 때의 이야기다. 그 의기에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면, 당시의 행동이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지.”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베넷 리프레가 마주한 것은,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1왕자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검을 들고 와라. 다시는 몬스터 따위에게 당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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