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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39화 (3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9화

신의 뜻은 어디로 가는가 (2)

철컥-!

“접니다.”

“……그래.”

집무실로 들어가자, 은빛의 서신을 읽고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보였다.

서신의 뒤로는 가시에 둘러싸인 십자가의 문양이 드러나 있었으니, 로에나 여신의 상징이 분명했다.

나는 상투적인 예의도 없이 즉각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게 신전에서 보내온 서신입니까?”

“맞다.”

“신성제국에서 성녀와 대사제를 보내온다고 들었습니다만.”

“……신전에서 직접 보내온 내용이니 사실이겠지.”

스윽-

아버님은 읽고 있던 서신을 책상에 내려놓으시고는. 내 쪽으로 밀어, 내가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나는 앞으로 떠밀려 온 은빛의 서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집어 올려 그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온갖 쓸데없는 미사여구로 꾸며진 내용이었으나, 간단하게 함축하면 간단한 내용이었다.

“에스테반과 연방제국. 그리고 드워프 사이의 관계를 묻는 듯한 느낌이군요.”

“…….”

나는 마저 읽은 서신을 내려놓은 뒤에 웃었다.

“마치 드워프들과의 연결고리를 지닌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지요.”

신전은 때때로 신성제국의 뜻을 전달해 주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도맡아 수행하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교리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놈들의 눈과 입을 타국에 심은 것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경우. 신성제국이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지.

탁- 탁-!

멈춰 있던 손가락이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중한 어투와 비공식적이라 못 박은 방문, 아마 드워프와 연방제국을 운운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 목적은 에스테반을 압박하는 것 자체에 있다고 봐야겠지요. 조금의 꼬투리라도 있다면 곧장 압박이 들어올 겁니다.”

“……후우.”

확신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놈들이 바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한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이야기를 듣던 아버님이 관자놀이를 주무르시더니 말씀하셨다.

“교황의 눈에 들었다니…… 이래서야 앞으로의 움직임이 제한될 수도 있겠구나. 네 생각이 궁금하구나.”

“교황은 아닐 겁니다.”

“음?”

아닐 수도 있다, 가 아니라 아닐 거라고?

확신에 찬 내 대답에 아버님의 목소리가 신중을 기하듯, 한층 낮아지셨다.

“그건 무슨 뜻이냐.”

“적어도 지금의 교황은 그럴 성격이 아닙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한 이야기입니다.”

“……흐음.”

이번 일은 대사제들의 목소리가 빚어낸 일이겠지.

최소한 내가 알기론 그는 신성제국의 썩은 대사제들 속에서도 신의 뜻을 관철하던 성실한 사내였으니…….

‘애초에 그럴 깜냥이 될 인물도 아니었고.’

그래. 적어도 지금 대의 교황은 말이다.

나는 손잡이를 두드리던 손을 들어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황이 움직였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그 말은…….”

“어차피 놈들이 움직이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움직임을 어떻게 이용할지가 관건이겠지요.”

그러자, 아버님이 화들짝 놀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기정사실이었다고?! 네게는 이 상황마저도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는 말이더냐?”

“왜 아니겠습니까.”

“대, 대체 어떻게…….”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놈들의 입장에선 에스테반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건 미래에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그건 놈들이 품고 있는 검은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하겠다.

‘그러니 재미있지 않을 수 없겠지.’

그 속에서 일어날 알력 싸움은 나 역시도 기다려 왔던 것이기에…….

바로, 연방제국 놈들의 땅을 받겠다고 떠올린 그 순간부터 말이다.

이쯤 되자, 아버님께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여실히 깨달으실 수 있었다.

“신성제국의 움직임을…… 연방제국을 견제할 새로운 수단으로 쓰자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는 웃고 있었다.

핵심은 두 제국이 아직 에스테반의 계획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이번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성녀가 직접 오는 것은 변수였으나, 그마저도 하나의 수단으로써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중요한 것은 에스테반이 놈들의 압박에서 얼마나 굳건하게 버텨 낼 수 있느냐.

혼란스러운 북부 대륙 정세의 물밑에서 얼마나 크고 은밀하게 성장해 나가느냐.

아, 이런 말을 아버님께 드리는 것은 처음이었나.

“지금 우리의 적은 로에나가 아니라 카롯트지 않습니까.”

“……!”

연방제국의 이름을 담는 그 목소리는, 차게 식어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 *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귀족들의 모습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애초에 왕궁 전체가 다급하게 움직이는 상황 자체가 유별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에 평소와 같은 일상을 이어 가던 시녀들은, 미약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힐끔 시선을 옮겼다.

“저,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한 시녀가 토로한 불안감에, 창문을 닦아 내던 시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아까는 가벼운 소동인가 했더니, 이제는 무슨 사태라도 벌어진 것처럼 보여.”

“큰일은 아니겠지…….”

“글쎄…….”

시녀들은 어수선함의 이유를 꼽아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왕자가 파견으로부터 귀환한 일이었다.

최근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왔던 1왕자였기에, 그에 관련된 내용으로 소란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시녀가 고개를 내저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전하께서 돌아오신 시간이랑 맞지 않는걸? 게다가 1왕자 전하께서도 방금 전에 급히 발걸음을 옮기셨고.”

“그런가…….”

그렇다면 딱히 짚이는 데가 없는데…….

그때, 창문을 닦던 시녀가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에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 혹시 그게 아닐까?”

“응?”

“그 왜, 아까에 왕성으로 들어온 마차 말이야!”

“마차?”

이야기를 들은 시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대씩의 마차가 드나드는 왕궁에서, 마차가 들어오는 일 자체는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의미의 마차가 드나들었다면 말은 달랐다.

무심코 넘어간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머리가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은색의 마차가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은색의 마차.

신전 측의 방문. 혹은, 종교와 관련된 사절이 타고 있는 마차를 뜻하는 색상이었다.

하지만 에스테반에 퍼져 있는 종교는 극소수. 그리고 에스테반에 지어진 유일한 ‘신전’이라 한다면, 그들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 신성제국의 마차?”

그 순간.

시녀들의 등 뒤로 미약한 산들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봄의 향기. 혹은 여름의 산뜻함. 어찌나 가련한 흔들림이었는지, 시녀 중 이상을 느낀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나, 분명 바람은 불고 있었다.

“어쩐지 소란스럽다 했더니,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나.”

꾸밈없는 미소와 시원스러울 정도로 쾌활한 목소리.

시녀들의 재잘거림을 듣던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일이 귀찮아지겠는데?”

이내 바람은 서서히 그늘 속으로 몸을 감추며, 긴 여운을 남겼다.

* * *

인간의 역사에서 신학을 빼놓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탄생의 비화부터 역사의 일부분까지, 인간은 신이라는 존재와 그 누구보다 밀접한 관계를 지닌 탓이었다.

그러니 주신, 로에나를 섬기는 이들이 큰 권세를 지니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본인은 대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는 가르덴이라고 합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숙인 고개를 따라 사제복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정연하지 아니하게 자라난 수염과 머리카락 또한 주신에게 받은 것.

‘원리주의자.’

단지,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성격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 인사를 받았다.

“알렌 에스테반. 에스테반의 1왕자다.”

척 보기에도 드센 성격과 까다로운 면모는 찻잔을 나르는 시종들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아마 몸에 밴 살기와 마찬가지로 은연중에 피어나는 분위기라는 것이겠지.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사용인들을 물리고는, 스치듯 질문을 던졌다.

“성녀께서 오신다고 들었다만. 그 모습이 뵈질 않는군.”

“송구합니다. 로에나의 성녀께서는 이 땅에 머무는 신도들의 삶을 돌아보시고자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렇군. 아쉽게 되었어.”

에둘러 말하긴 했다지만 그 뜻이야 뻔했다.

─도망쳤구나.

나는 넉살 좋게 어깨를 으쓱한 뒤에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가벼운 담화 자리에 불과하니 개의치 말도록. 에스테반에 온 것을 환영하지.”

“불청객을 이리도 환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틀에 박힌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왕국’의 예법.

역시.

원리주의자. 그것도, 꽉 막힌 수준의 성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가르덴 대사제의 성격을 재차 확인하고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신성제국이 외교 사절을 보내오는 것은 근 50년 만이지. 그래, 교황께선 어째서 그대를 이곳에 보내셨지?”

“……성하께서는 에스테반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고 계셨습니다.”

“호오. 교황께서 말이지?”

순간, 가르덴 대사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록 찰나의 움직임이었으나, 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교황께서는 제국의 선민들을 보살피시느라고 바쁘실 터인데, 어찌 이런 소국에까지 눈을 돌리셨는가?”

“이 땅 위에 있는 이들은 모두 로에나의 백성들입니다. 성국의 눈이 닿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분명, 교리라는 것이었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야.”

“그렇습니다. 때문에 성하께서 저를 보내시어 이 땅에 다시금 로에나의 말씀이 깃들게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웃음을 지워 내지 않았다.

짧은 대화로 확신하게 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하나. 성녀라는 존재는 얼굴마담일 뿐, 실제적인 업무는 저 가르덴이라는 대사제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

둘. 지독한 원리주의자인 대사제를 일부러 보낸 것은 다름 아닌 교황의 판단이라는 점.

하나, 이건 교황의 실수였다.

꽉 막힌 성격의 대사제를 보내는 것으로 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져오기를 바랐겠으나.

이미 놈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그 성격은 정직함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으니.

‘마지막으로…….’

셋.

저들이 말하는 ‘우려’라는 것이 단순한 외교적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

놈들은 우리가 연방제국 측에 붙는 일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우리의 행동 자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단순히 신성제국의 심장을 내어준다는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

“이 자리를 빌려서 그 불안감이 해소되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찻잔을 들어 올리는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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