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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41화 (4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1화

신의 뜻은 어디로 가는가 (4)

대사제의 굳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상황에 대해 신성제국의 권고를 무시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

발뺌하는 것 같으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듯한 목소리.

나는 일부러 의뭉스럽게 대답하며 그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러자, 예상대로 가르덴 대사제는 눈빛을 부라리며 경고를 던져 왔다.

“정도에 따라서 배교의 처분이 내려질 수 있음을 아십시오. 에스테반을 대표하시는 1왕자께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회장이 울릴 정도로 살벌한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성녀마저 움찔했을 정도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짐짓 모르는 체하며 여유롭게 반문했다.

“배교, 참 편리한 이름이란 말이지. 헌데,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라 함은 정말로 그들의 땅을 받은 것을 뜻하는 것인가?”

“말씀을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받은 갈데르드 평야는 옛 에스테반의 영토였던 곳이다. 이를 돌려받는 것 또한 교리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나?”

“……성서에, 우상의 것은 그 용태만으로도 불경하다고 나와 있으니. 아무런 대가 없이 이를 받아들인 행위는 곧 스스로 배교의 길을 걷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호오. 좋은 말을 했군.”

그래.

아무런 대가 없이 이를 받아들였으면 이는 그들이 의심하는 배교의 행위로 간주 될 수 있었다.

그 의심에 반박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가 없이 받아들인 일에 한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혹 그대는 에스테반에서 벌어진 내란 미수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건.”

시작은 가벼운 질문.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타인의 일생을 논하듯 무감각하고 조곤조곤한 어투였다.

“참담한 사건이었지. 충신이었던 국왕의 오랜 친우가 타국의 사주를 받고 내란과 암살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야.”

“…….”

“만일 누군가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분명 에스테반은 타국의 마수에 놀아나고 있었겠지.”

순간, 먹잇감의 빈틈을 노리던 눈이 붉게 빛났다.

“반응을 보아하니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흠!”

에스테반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 그리고 그 시초가 되는 아수스 백작의 내란 미수 사건.

그제야 대사제도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 날카로운 확언이 더 빠르게 흘러나왔다.

“우리가 그 땅을 받아들인 것은, 어디까지나 내란 미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원에 불과하다. 이는 이 자리에 계신 에스테반의 국왕께서 직접 협의하신 일이지.”

내 눈빛이 회담을 지켜보시던 아버님께 닿았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이 맞습니까?”

“……그래. 사실이다. 에스테반에 유리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국왕의 이름으로 증언하지.”

표면적인 이유.

아니, 표면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그 땅을 받아들인 대외적인 명분은 에스테반에 있었다.

합의나 지원 따위로 말장난을 해 봐야 변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땅을 받아들인 에스테반은 피해자임을 자청해도 이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쿵!

책상을 강하게 짚고 일어선 가르덴 대사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펄쩍 뛰었다.

“궤변입니다! 어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땅을 받는단 말입니까!”

“기회를 노려 잃어버린 옛 땅을 받아오는 것은 에스테반의 판단이다. 이를 궤변이라 칭하는 것은 신성제국의 잣대겠지. 이 또한 교리에서 말하는 신의 뜻인가?”

“그건…….”

교리를 들먹인 차가운 질문에 가르덴 대사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상황에서 아니다 라고 표현한다면, 그 즉시 외교적 결례가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허나,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연방제국에서는 그대들을 사태의 뒷배로 추정하고 있더군. 내란 음모의 진정한 배후로 말이야.”

“무슨 소리를…….”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번만큼은 냉정함을 가장하던 대사제조차도 눈을 휘둥그레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연방제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일부러 두 국가에 이간질을 행함으로써 이득을 보려 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지.”

실제로 아버님께 전해졌던 서신이나 사절단으로 온 이들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즉, 신성제국이 이 모든 사건의 주범자라는 추측.

입술에 만연한 미소는 점차 짙어졌고, 대사제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늘어만 갔다.

“그,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으시는 것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허나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군.”

연방제국에게 땅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사제를 보내온 신성제국.

그리고 엄포를 놓으며 배교를 운운하는 것이, 어찌 보면 두 국가 간의 관계를 망가뜨리고자 압박을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마냥 말이지.’

그 사실을 깨달은 가르덴 대사제가 입을 다물었고, 나는 침묵의 여운을 만끽하며 말을 이었다.

“신성제국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지. 오히려 묻고 싶군. 신성제국에선 정말로 이번 일에 관련이 없는지 말이야.”

“…….”

본래라면 추궁하는 것은 신성제국의 역할이어야만 했다.

허나, 흐름은 순식간에 바뀌어 에스테반이 신성제국의 해명을 듣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드물게도 가르덴 대사제의 평정심을 깨뜨리는 장치로써 작용하고 있었다.

곧 정적이 깨어지며 여유로운 음성이 회장을 가득 메웠다.

“그 의도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드워프에 대한 이야기 역시도 마찬가지지.”

“……말씀하십시오.”

“드워프들 또한 그대들이 말하는 신의 피조물이다. 헌데 고작 땅을 내어 준 것만으로 배교라 칭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내가 보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턱 끝을 쓰다듬었다.

이는 신성제국의 뜻을 재차 의심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으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대사제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해명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겨, 경전에서 말하기를, 로에나께서는 이 땅에 자식을 낳으시고 자기와 닮은 모습을 빚었다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자식을 위한 땅을 이종족에게 공공연히 내어주는 것은, 신의 뜻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인가?”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후 달에게 이르되, 생명이 태동할 준비를 하라. 이 땅 위에 있는 생명은 모두 내 자식일 것이니.”

“……!”

“이 땅은 곧 내 자식들이 살아갈 터전이 되리라. 그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교리가 아닌가?”

교리에는 교리로 반박을 한다.

경전의 내용을 줄줄 읊는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대사제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 내용을 어떻게…….”

“에스테반은 따로 국교를 두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로에나의 교리를 따르지. 1왕자인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이상한가?”

“…….”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신성제국이 이종족을 신의 자식이 아니라며 멸시하는 것은, 교리를 인간이 보기 좋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겠지.”

신성제국에서 자라온 이들로서는, 어릴 적부터 배워온 왜곡을 올곧이 믿는 방법밖엔 없었으리라.

그건 단지 혐오라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적조차 없겠지.

허나 신성제국을 이끄는 대사제들과 교황은 아니었다.

그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로에나의 독실한 사제여야 했을 그들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교황이 대사제와 성녀를 보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무대를 연출해야만 하는 이유.

배교와 사상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드워프들을 이 땅에서 쫓아낼 필요가 있는 이유.

그래. 이를테면…….

“그들은 혼돈의 시대와 흑마법사 말살 작전을 지나오며 마침내 소실시켰을, 신성제국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이들일 테니까.”

“……!”

의뭉스러운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이제 저들은 교리를 들먹이며 명분에 입각한 정의를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더 이상 그럴 여유조차 없을 테지.

나는 의자에 깊숙이 기댔고, 그런 머릿속으로 조지와의 대화가 되뇌어졌다.

-세계를 관장하는 것은 여섯 개의 원소다.

불, 물, 바람, 땅.

그리고 어둠과 빛.

고대의 학자들은 대기 중에 흩어진 세계의 원소를 발견하여 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는 오늘날 마법의 기초가 되는 학문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제 4원소와, 척살된 흑마법사들이 사용한 어둠의 마나.

그렇다면 빛의 마나는?

어째서 세상에는 다섯 원소의 마법사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지는 주어진 질문에 팔짱을 끼며 고민했다.

-빛의 마나는 다른 원소에 비해 다루기가 까다롭다……. 뭐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고민도 해본 적 없는 내용이었을 테니, 그 추측 역시 상식과 단순한 말장난에 기반한 것이었다.

물론 정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빛의 마나는 분명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아직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지.

-……설마! 그 빛의 마나라는 것은…….

순간, 얼굴에 만연하던 미소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불경한 추측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래. 바로 그들이 말하는 신성력이라는 것이다.

성녀는 아득히 월등한 신성력의 그릇을 타고난다.

다른 말로 하면, 빛의 마나를 받아들이기 쉬운 체질을 타고 난다는 것이다.

으레 원소의 축복을 타고 난 천재 마법사들이 그렇듯 말이다.

-놈들이 내세우는 신성력은 허황된 힘이다.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한낱 마법에 불과할 뿐이지. 이는 신성제국의 지휘부에게만 전승되고 있는 놈들의 기밀이다.

-…….

성녀는 신의 축복으로 탄생하기에 오직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또한 우스운 이야기였다.

놈들은 자국과 타국을 넘나들며 ‘성녀’의 숫자를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바로 이 같은 믿음을 꾸며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면 로에나의 사제가 될 것이며, 자질이 뛰어나다면 어린 소녀가 원소의 축복을 깨닫기 전에 죽인다.

성녀는 오로지 대륙에서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그러다가 전대의 성녀가 죽거나 은퇴하면, 그제야 죽이지 않았던 씨앗 중 한 명을 선택한다.

대상은 아직 개화하지 않은 신성제국의 딸.

즉, 유년기를 간신히 넘긴 소녀였다.

조지는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말했다.

-새로운 성녀가 탄생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른 소녀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끝에는 불행만 있을 뿐이지. 일말의 예외는 없다. 타국의 소녀들처럼 발견 즉시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해야겠지.

-…….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단어였다.

신성제국의 눈을 운 좋게 피해간 소녀들이 빛의 원소를 스스로 터득했을 때에.

저조차 모르던 재능을 꽃피웠을 때에.

그녀들을 죽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단으로 지목하여 처형하는 것이었기에…….

-과거, 신성제국의 교황이 흑마법사 척살을 명한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들이 단지 빛의 마나와 상극의 힘을 쓰고 있다는 종교적인 이유입니까?

-그래. 그들에게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만, 신성력이라 부르는 그 상극의 원소를 사용하는 자신들의 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혼돈의 시대와 흑마법사의 말살 작전을 통해 소실시킨 진실들.

그 진실은 연방제국이 야만족의 땅에서 도망친 드워프들을 손에 넣음으로써 세상에 밝혀졌다.

회귀 전의 일이었다.

-놈들은 드워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이번 회담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녀석들의 속내를 모두 알고 있는 나였으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놈들의 검은 속내를 꺾어 낸다면, 에스테반의 활로가 열릴 것이 분명했다.

‘바로 놈들을 이용하여 연방제국을 막는 방법으로 말이지.’

정적이 내려앉은 회장.

내 차가운 미소가 성녀와 가르덴 대사제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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