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2화
신의 뜻은 어디로 가는가 (5)
“감춰진 신성제국의…… 비밀?”
그런 것이 있었나……?
성녀의 고개가 갸우뚱하게 기울었다.
오랜 기간 동안 성녀로서의 교육을 받아 온 그녀였기에, 그 생소한 이름이 주는 의아함은 더욱 컸으리라.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가르덴 대사제가 손을 들어 성녀의 중얼거림을 저지시켰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무엇을 알고 있었다 하는 것이지? 신성제국이 감춰야만 했던 비밀? 그게 아니라면 그대들이 이 압박으로 얻고자 했던 이득?”
“…….”
나는 얄팍한 선문답의 끝이 도래했음을 피부로 실감했다.
저들은 명분을 잃었고, 정보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거짓된 인과관계를 틀어막는 방법.
다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굴복이 아니라 위세를 등에 업은 압박이었다.
“거기까지 하십시오. 듣자 하니 내란 음모의 배후로 지목한 것부터 시작해서 못하시는 말이 없으시군요.”
“부디 닥치라는 말을 그리도 길게 하는군.”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대사제에게, 또다시 평정심을 깨뜨리는 이죽거림이 작렬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허나 주의하십시오. 성국은 그따위 허위사실에 웃으며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호오.”
그래?
역시 깐깐하고 꽉 막힌 성격다운 대화법이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연방제국 측과 협의를 나눠 보는 수밖에 없겠군.”
“…….!”
“뭣이!”
쾅!
아버님께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이미 그 스스로도 카롯트를 적이라 단정 짓지 않았던가!
헌데, 대체 어찌하여 그들에게 붙겠다는 말을 그리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냔 말이더냐……!
마찬가지로 언급된 연방제국과의 협의에, 대사제는 사색이 된 채로 내게 삿대질했다.
“그, 그 말은 기어코 배교자의 길을 걷겠다는 말입니까?!”
“배교자의 길이라니 말이 심하군, 가르덴 대사제.”
“하, 하지만…….!”
그건, 아마도 놈들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에스테반은, 늘 그래왔듯 두 열강 사이에 끼어 고개를 조아렸을 뿐인 약소국에 불과했으므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리석 책상 위로 올려진 두 손을 깍지 끼고, 여유롭게 눈을 감은 채 시선을 만끽했다.
“에스테반의 힘이 미약하니 어찌 성국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겠나? 연방제국과의 협력이야말로 응당 주어진 당연한 활로인 것을.”
“애, 애초에 성국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무 문제도…….”
“권고?”
아, 그 굴복의 선언을 이르던 단어였던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잊고 있었지.
나는 무료하다는 투로 답변을 툭 던졌다.
“불가.”
“……예?”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되묻는 대사제에게, 나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에스테반은 연방제국과의 무역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 그리 간단히 그 관계를 끊어낼 수 없지.”
이는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그들의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식량들이 싼값에 에스테반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서민들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물품 중, 상당수가 연방제국과의 무역으로 생산되는 것들이었다.
“뭐, 드워프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겠고.”
사상 검증?
그따위 핑계에 움직여 준다니,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조금 더 나은 핑계가 있다면 듣는 척이라도 할 생각은 있었다만.
“아쉽지만 권고사항을 검토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자세한 답변은 추후에 전달할 터니, 그대는 이만 성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
“말도 안 됩니다!”
그가 말하는 ‘말도 안 된다’는 문장은, 비단 성국으로 돌아가라는 축객령에 한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전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연방제국과의 협력은 배교의 행위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에스테반의 국민들에게 위협이 되는 행위란 말입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쩌겠나.”
“말씀드린 대로 그들과의 외교를 끊고 권고사항을 받아들인다면…….”
“그러니까.”
나는 녀석의 말을 칼같이 끊어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두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
더 이상 존재하던 예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싸늘함.
그 속에는 오직 귀찮음에 손짓하는 내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뭔가? 상행조차 제한하라 협박하는 그대들이 에스테반과의 무역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그건.”
“아, 그건 좋은 생각이겠군. 나 역시도 그리한다면 이번 권고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순간.
무감각한 눈빛이 가르덴 대사제를 관통했다.
“헌데, 아무래도 그 권고안으로 인해 초래되는 재앙은 그대들의 고민 밖의 문제였던 모양이군.”
“…….”
권고안은 압박의 수단이었다.
그 누구도 이를 받아들일 거라, 그리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단지 늘 그랬듯 그들의 힘을 보여 주는 수단이다.
이를 통해 에스테반을 주무르려 하는 방식은 이미 힘으로 증명된 것이었으니.
“허나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 모양이야.”
배교자의 낙인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연방제국과 협력하는 일은 없다.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두 국가가 협력할 가능성은 전무…….
……그건 누가 정했지?
“역사는 언제나 힘의 논리로 세워진 것에 불과할 뿐이거늘.”
“그만.”
그때, 아버님께서 일관하시던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짐은 그대들이 말하는 비밀이란 것을 모른다. 허나, 이 자리가 만들어진 계기에 성국의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알겠군.”
배교자들인 연방제국과의 단절.
그리고 드워프들에 대한 검증 외에도 무언가가 드러난 셈이었다.
비록 그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에 불과했지만, 그 의도에 불순함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심증이 아니라 확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대로다.
그리고 녀석들이 예측하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만에 하나 드워프들에 의해 신성제국의 비밀이 탄로 나는 것.
하지만 지금 상황은 녀석들이 상정하지 못한 ‘진정한’ 심연이었다.
‘이미 나는 그 비밀을 쥐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놈들의 압박으로 연방제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
그리하면 성국의 심장을 향한 교두보가 활짝 열리는 셈이다.
교단을 이루던 절대적인 명분, 즉 ‘신앙’이 와해 된 상태에서 말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번 회담에서는 마땅한 합의점을 찾기 어렵겠군.”
“……!”
회담을 파한다.
“다음 회담이 진행된다면, 그때는 부디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군.”
그 회담이 정녕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유유히 출구를 향해 거닐던 그때였다.
“……기다리십시오.”
가르덴 대사제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에 말했다.
“뭐지?”
“말씀하신 대로 성국과 에스테반의 생필품 무역을 전면 허가하겠습니다.”
“……호오.”
그 어떤 국가와도 어깨를 나란히 이루지 않았던 고고한 신의 땅.
그 도도한 위세의 끝은 결국 굴복이었다.
하지만 내 웃음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권고를 받아들이고 신성제국에 협력하라는 것인가?”
“…….”
“싫은데?”
“그, 그게 무슨…….”
콰당!
믿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급히 일어난 대사제의 몸에 밀려, 의자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정녕 성국과 척을 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답지 않게도. 대사제의 표정은 하루에도 십수 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얼굴에 띈 것은 명백한 비웃음.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대리석으로 된 책상 위에 걸터앉고 턱을 쓰다듬었다.
“연방제국에서 나온 곡물들은 값싸고 품질이 쓸 만해 백성들의 굶주림을 덜어 주었지. 그리고 그 가격은 통상적인 식료품 시세의 80% 정도. 신성제국은 이 가격에 곡물을 제공해 줄 의향이 있나?”
“그, 그 정도는 어떻게든…….”
“허나, 그렇게 해서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지.”
그래. 이는 비단 식료품 가격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권고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연방제국과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같은 가격에 해당 곡물을 제공받을 바에야, 지금과 같이 살아가는 편이 나에게도, 그리고 백성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그 얼굴에 띈 미소는 더 이상 없었다.
“75%.”
“……!”
“또한 신성제국은 연방제국과 맞닿은 에스테반 동부 국경지대 강화와, 만에 하나 있을 군세의 방비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 범위는 성벽의 보강과 물자의 지원. 그리고 치료 사제들의 무상 파견일 테지.
사실상 협력 관계를 가장한 조공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놈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대사제의 눈을 차갑게 내려 보았다.
신성제국은 에스테반과 연방제국의 사이를 견제하는 대가로 무엇을 지불할 수 있느냐?
그리고 거짓된 인과관계를 틀어막기 위해 무엇을 제시할 수 있지?
내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잠시 정적이 내려앉은 회장 속에서, 대사제는 홀쭉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머뭇거렸다.
“이는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
“너무도 불균형한 협정입니다. 성국의 대사제들이 이를 납득할지도 모를뿐더러…….”
“그 불균형한 협정은 그대들이 먼저 꺼내 들은 권고안을 말하는 것인가?”
“…….”
침묵이다.
그래. 할 말이 없을 테지.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으로 에스테반을 압박한 주제에 인제 와서 앓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말이야.
자, 채찍은 충분했으니 그럼 이제 당근인가?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 팔짱을 끼다가 손을 움직였다.
“이렇게 하지.”
그 순간,
띵-! 떼구르르르-
“……!”
대사제의 고뇌를 묻고, 맑은 물방울 소리가 회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책상 위로 내던져진 자그마한 청록색의 주괴.
대리석 재질이 고스란히 비쳐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정제된 물건이었다.
“이, 이건…….!”
힘차게 구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선 대사제의 몸에 가로막힌 그 물건은.
대사제로서도, 그리고 성녀로서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부터가 그 본질을 꿰뚫고 있지 않았던가?
“이건…….”
“……신성철!”
신성제국이 찾아 헤매던 극강의 금속.
즉, 미스릴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최근 에스테반에서 미스릴의 광산이 발견되었지.”
나는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미스릴 주괴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 형태를 눈에 만끽했다.
같은 부피의 금붙이 따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보물.
그리고 이미 에스테반의 것이 되어 버린 기회.
“허나, 공교롭게도 그 판매처를 찾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그 말씀은……!”
“그래.”
나는 선심 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만한 협의가 이루어진다면야 우리가 이를 수출해 줄 수도 있는 일이겠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말이야.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비로소 회장을 떠나는 발걸음은 그 누구도 붙잡지 못했다.
“내일까지 새로운 권고안을 가져오기를 기대하지.”
다만,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끝은 파국으로 스러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