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3화
신의 뜻은 어디로 가는가 (6)
가르덴 대사제의 연락이 성국에 닿은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하나 고대했던 소식이랍시고 돌아온 것은, 성국이 손해를 보기만 할 뿐인 협의안이었다.
“뭐, 뭐라?!”
“건방진……! 성국의 지원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요!”
전당에 모인 대사제들은 돌아온 ‘조공 논의’에 분개하며 몸을 떨었다.
이게 정녕 믿고 있었던 가르덴 대사제가 보내온 내용이 맞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따위 협의안을 가져온 대사제에 대한 질책보다, 이 상황 자체에 대한 격노가 더 어마어마했으리라.
“놈들은 지금 주제도 모르고 배교자들과 협력의 여지를 남기며, 성국을 협박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가 감히 성국을 상대로 장사치 노릇을 하려 한단 말인가?
하물며 그 상대는 지금까지 두 열강 사이에서 숨죽인 채로 지내 오던 약소국 따위다.
놈들이 아무리 비밀을 쥐고 뒤흔들려 한들, 성국의 위세를 업은 대사제들에게는 가소로우면서도 건방지기 그지없었다.
“성하! 정녕 놈들을 가만히 두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이야말로 본때를 보여야 할 시기입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본다면 대륙의 무지렁이들이 성국을 우습게 볼 것입니다!”
그렇게 대사제들의 강경한 목소리가 대전을 진동했다.
비록 그 반대 의사가 욕망으로 참절된 것이라 하더라도, 체통도 잊을 만큼이나 분노했다는 것이 눈에 선명할 정도였다.
그 순간.
“현실적으로 생각하시오! 저들이 진짜 배교자들과 협력한다면 성국에는 큰 위기가 닥칠 것이오!”
한 대사제가 외친 말에 전당에 있던 이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실제로,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은 나왔다.
그들로서는 최대한 타협하여 이 사태를 해결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이에 동조한 일부 대사제들 역시 순식간에 목소리를 높이며 그 뜻을 펼쳐오기 시작했다.
“그 말이 맞소! 애초에 지원의 의도 역시 연방제국과의 외교를 끊기 위해서라는 내용을 듣지 못하였소이까? 저들이 바라는 대로만 들어 준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오!”
“하면, 대사제들께서는 그따위 협박을 성국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말하는 것이오?”
“호시탐탐 성국을 노리는 배교자들을 생각하시오! 그들이 정녕 성국을 협박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현실을 보시오, 현실을!”
“뭣이?!”
그건 이미 하나의 광기와 같은 소용돌이였다.
욕망과 이성, 그리고 이해관계가 뒤섞인 하나의 거대한 흐름.
때문에 이미 고함으로 과열되어 버린 전당의 분위기를 거스르려 하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오직 한 명, 교황을 제외하고는.
“기다리십시오. 아직 가르덴 대사제가 보내온 협의안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고 볼 것도 없습니다! 놈들은 이미 배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놈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 전쟁이니, 이번만큼은 성국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그만두라 하지 않았습니까!”
탕-!
교황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그 손에 들린 지팡이, ‘영광의 홀’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무거우면서도 청량한 소리가 전당의 소란을 종식시켰고, 곧 교황은 엄숙한 목소리로 다음 내용을 읊조렸다.
“가르덴 대사제는 에스테반과의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신성철의 광산을 가지고 있다며, 사태 해결 여부에 따라 해당 광산에서 나오는 신성철의 수출을 고려해 본다는 확답을 들었다고도 전해 왔습니다.”
“……헉!”
“시, 신성철?!”
교황이 꺼낸 이야기는 대사제들에게 있어서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신성철 광산이, 신성철 그 자체가 대륙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신의 육체를 상징하는 신성철은 성국에 있어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귀중한 존재를, 무역을 통해 제공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커험!”
이제 더 이상 전당을 휩쓸던 광기는 없었다.
뜻밖의 이야기에 반색한 강경파의 대사제들이 안면몰수하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탓이다.
“험험……! 가르덴 대사제가 확인한 일이니 틀림없겠지.”
“신성철이라니, 놈들도 제법이군요.”
“비록 그 행태가 건방지다 한들, 신성철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손해는 감내할 법하지요.”
신성철은 그들의 신성력과 가장 큰 조화를 이루는 물건.
물론 썩어 빠진 사제들이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겠으나, 그 존재가 성국을 부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크흠! 그들이 신성철의 유통 독점을 성국에게 넘기겠다, 하였습니까?”
그리고 이는 응당 신성철에 혈안이 된 성국의 대사제들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한 대사제가 묻자,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교황이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유통에 관련된 결정권은 오롯이 그들에게 존재합니다.”
“흐음…….”
“허어!”
반대 의견을 표출했던 대사제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의 육체인 신성철의 소유권은 당연히 그 뜻을 따르는 성국의 것.
먼 과거, 미스릴 광산의 주권을 둘러싼 ‘백 년 성전’이 어째서 발발했던가?
이는 편협하고 낡은 생각과도 가까웠으나, 적어도 대사제들에게 있어서는 정설과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짝- 짝- 짝-
“좋습니다. 참으로 좋은 제의가 아닙니까?”
“……요르한 대사제.”
에스테반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대사제.
고요한 박수갈채 속에서 욕망이 번뜩이는 웃음을 마친 요르한 대사제가, 그 고개를 주억였다.
“저들로서도 이번 일로 하여금 배교자가 아님을 완곡히 표현했으니, 성국도 마땅히 저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관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팔을 활짝 펼쳐 그 뜻을 드러냈다.
“그들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것 역시 성국의 입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치료 사제야 남아도는 것이니, 문제가 있겠습니까?”
“…….”
“게다가 이 땅은 로에나의 거룩한 축복으로 비옥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식료품 역시 그들에게 적선한들, 하등 달라질 것이 없을 것입니다.”
처음의 강경했던 목적은 어디 가고, 어느새 신성철을 향한 욕망만이 남아 있다.
이는 여타 대사제들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그 방향성이 다를 뿐 누구도 반대 의사를 표하는 이가 없으니, 교황으로서도 조용히 의견을 수긍할 뿐이었다.
“대사제에게 일러 성국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또한 이번 협의는 공표되기 전까지 당분간 양국 간의 비밀로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신의 뜻대로.
왜곡된 믿음은 비수와 같거늘.
목소리는 광신도의 염원처럼 메아리쳐 전당을 뒤덮었다.
누구도 그리하라 지시한 적 없이 자연스러운 동조였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여운은, 전당을 나선 교황이 밤의 찬 공기를 머금으며 정원을 거닐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성국의 일을 해결하는 것은 고작 개인의 욕망.”
명백히 성국의 위기였거늘.
저들은 눈앞의 이득과 신성철에 눈길을 빼앗겨 턱 밑까지 닥친 칼날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위세라는 맹목적인 믿음의 늪 속에서, 그렇게.
그런 교황의 발길이 멈춘 곳은, 밤의 달빛이 아스라이 드리운 대성당이었다.
“…….”
힘겹게 드리우는 첨탑의 빛. 그리고 은은하게 퍼져 나간 달빛의 파편들 속.
그 안에 서 있는 교황의 모습은, 고독하면서도 씁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흐르는 달빛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이리저리 뒤틀렸고, 교황이 서 있는 자리만큼은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홀린 듯 이질적이게만 느껴졌다.
“이곳은 신의 뜻을 받드는 성국의 심장이자, 감춰진 그늘.”
그리고 짊어진 죄악의 편린을 담아 놓은 장소.
문득, 교황은 아무도 없는 허공 속에서 대사제로의 연락을 떠올렸다.
-알렌 에스테반, 1왕자는 이미 성국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
그 이질적인 공간 속에서 교황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았으나 빛이 보였고, 눈을 뜨면 어둠에 뒤엉킨 대성당의 아련한 모습이 보였다.
그 감정은 허탈함을 넘어서 더욱이 복잡한 것들이 섞여 만들어진 하나의 초연함에 가까웠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알렌 에스테반.”
교황의 입은 천천히 열렸고.
“역시 당신은…….”
곧 그 목소리는 허무에 부딪혀 바스러졌다.
* * *
이튿날.
에스테반과의 협의를 마친 신성제국의 사절단은 곧장 떠나갔다.
그들로서는 더 이상 이 땅에 남을 필요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조지는 회담의 전말을 듣더니, 인상을 쓰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곧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외투를 받아 든 팔을 으쓱였다.
“고정적인 미스릴의 유통로도 생겼고 연방제국에 의지하던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대로 몰아붙였으면 더 큰 이득이 있었을 텐데요?”
“그랬겠지.”
결국 녀석들은 어떻게든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녀석은 그러면서 추측을 덧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궁지에 몰려 공세로 전환하는 것을 염두 하신 겁니까? 도망칠 구석조차 남겨 두지 않는 협박은 전하께서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가 아닙니까.”
……자신 있어 하는 분야는 무슨.
나는 그 어처구니없는 감상에 씨익 웃음 지었다.
당연히 그 건방진 언행에 대한 꾸짖음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조지 군!”
“……헉!”
집무실 구석에 쌓여 있던 서류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피로에 찌들어 초췌해진 몰골.
또한 몬스터의 포효와 같은 음성과 그 기세에 녀석이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 쳤다.
“내, 누차 말하지 않았나! 자네의 언행은 곧 전하의 불명예로 이어질 것이라고!”
“아, 아니 그게,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시끄럽네!”
“…….”
그렇게 남작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자, 조지는 찔끔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내 뒤에 모습을 감췄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그 왜소한 몸이 내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준의 은신이었다.
물론 그런 방법이 통할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전하를 모시고 파견을 갔다 온 이후로 나아졌다 생각했거늘…….”
“사, 사실, 사실은 전하께 애정을 표하는 장난으로…….”
“아직도 그런 핑계를 대다니……! 앞으로는 일과가 끝나고 나를 찾아오게!”
“억!”
나는 쥐 잡듯 조지를 휘어잡는 남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저 성격은 신성제국의 외교 사절인 가르덴 대사제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덜 깐깐하고 융통성이 있다만, 그 원리 원칙을 따지는 모습은 분명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역시 비도르 남작이군.’
몇 달간 함께 지내며 느낀 점이었지만, 조지는 나보다 남작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깝죽거리는 것을 보면 안다.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본능이 발휘한 탓이다.
내가 녀석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것과는 반대로, 남작은 그를 엄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만.’
나로서는 오히려 저 참모의 자리까지 오를 인재를 감당하는 것이 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휘어잡는다 해서 어디 지랄맞은 성격이 가시기라도 하겠느냐마는…….
“죄송합니다, 전하. 아직 조지 군의 소양이 보좌관으로서 활동하기에 부족한 것 같으니, 당분간 함께 다니며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음.”
저 성격에 이를 박박 갈았으니 오죽하랴.
안타깝지는 않겠으나 마음속으로 조지의 무사를 빌 뿐이었다.
그때.
똑똑-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시간대를 보니, 곧 점심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아마 식사 자리를 알리는 왕성의 사용인이 도착한 모양이겠지.
나는 남작이 정리해 둔 서류를 눈대중으로 훑으며 말했다.
“들어오도록.”
끼이이익-
“히익!”
“저, 전하……!”
……뭐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지와 비도르 남작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자, 정말로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집무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읽고 있던 서류를 대강 던져 두고 입술을 끌어당겼다.
“어찌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교황을 뒤이어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고 일컬어지는 소녀.
성녀가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자, 화사한 옷자락에 교차로 수놓은 십자가가 향기로이 휘날렸다.
금빛의 아담한 머리 장식은 이따금씩 그 시선을 따라 움직였고, 마지막으로 그 눈빛이 향한 방향에는 어깨를 으쓱이는 내가 있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
손을 휘저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수하를 밖으로 물렸으나, 성녀는 그 자리에 얼은 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나는 접대용 소파의 상석에 앉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드워프들에 대해 여쭙고자 오셨습니까?”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그녀는 이미 떠나간 외교 사절단의 행동과는 반대로 에스테반에 잔류하는 것을 택했다.
내가 들먹인 것은, 그녀가 에스테반에 남은 이유.
즉, 드워프들에 대한 검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뿐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성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을 표했다.
“전하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렇군.
성녀의 의문을 맞이한 내 눈은 가늘게 휘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 이유겠군요.”
앞선 회담의 내용들을 생각하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앙증맞은 눈을 움직여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회담에서 말씀하셨던 성국의 비밀, 그게 뭔지 알려 주세요.”
신성제국이 감췄을 역사의 진실.
요구한 것은, 지배자들이 만들어 낸 그 성스러운 이면의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