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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46화 (4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6화

도약, 혹은 도태 (2)

테이블 너머로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맥주잔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는 기어코 제 앞으로 놓인 핫초코를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랍니까?”

친화력도 좋게 테이블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연신 건배를 선창하는 술꾼.

머리 색부터 눈동자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생김새의 남자다.

하물며 조지는 귀족들은 물론, 그 보좌관들의 얼굴까지 모조리 외워 놓은 상태였다.

그런 조지가 모른다는 사실은, 적어도 귀족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

제 상관은 평민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

녀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알베도는 옆 테이블에서 얻어 마신 거대한 맥주잔을 단숨에 비워 내며 다가왔다.

“크으! 역시 이 가게의 맥주는 탄산이 살아 있단 말이지!”

“…….”

“음? 아아, 실례. 내 소개를 안 했던가?”

순간.

알베도의 주변에서 기이한 마나의 움직임이 발생했다.

마력의 움직임에 민감한 마법사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기묘한 흐름.

어느덧 조지에게 보이던 ‘평범한 남자’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떠들썩한 분위기 사이에서 녀석이 익히 알고 있을 ‘2왕자’의 얼굴이 언뜻 비쳤다.

“2왕…….”

“쉿.”

“…….”

아주 찰나 동안 바뀐 얼굴이었으나, 조지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아, 네 정체는 알고 있으니까 소개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습니까?”

“장차 형님의 보좌관이 될 거라면서? 형님께 직접 들었는데, 능력이 좋은가 봐? 꽤 자랑스러워하시던데.”

“쓸데없는 감상이다. 알베도.”

나는 녀석의 호들갑을 일축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조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럽다 생각했거늘, 진짜 소리꾼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목구멍으로 한 모금을 밀어 넣을 때쯤. 조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희의 정체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허리춤에 달린 인식 저해 아티팩트는 아직도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좁은 공간에서는 그 효과가 반감된다고는 하더라도, 단박에 정체를 눈치챌 정도로 쓸모없는 아티팩트는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권력에 우위가 있듯, 마력의 수준에도 등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아티팩트와 같이 마정석을 이용해 고정된 파장을 출력할 뿐인 물건이라면, 더 높은 등위의 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효용이 떨어진다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통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내 짧은 설명에 알베도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역시 완벽한 설명입니다.”

녀석은 기사의 나라 2왕자라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검술에 대한 재능보다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별종이었다.

검은 그저 폼으로 들고 다닐 정도였으나, 몰두한 마법 실력만큼은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형님께서는 어째서 여기에 계십니까?”

“사찰을 나왔다.”

“이런 곳으로요? 이런 으쓱한 가게가 취향이었습니까? 의외인뎁쇼.”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스윽 훑었다.

확실히 단순히 사찰을 나왔다는 핑계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장소다.

반대로 말하면, 2왕자인 녀석이 있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장소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러는 네 녀석은 어째서 이런 곳에 있지?”

“저야 뭐, 용병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니까요. 가끔 일정이 없을 때 들르곤 합디다.”

“……그렇군.”

나는 적절하게 대꾸하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어쩐지 간단한 대화였으나, 느긋한 분위기에 마음이 동하는 것이 느껴진 탓이었다.

‘……신선한 기분이군.’

이전부터 추측해 오던 것이지만, 내 정신은 점차 스무 살의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를 자각하게 된 것은, 갈데르드 평야 파견에서 귀환했던 그날. 익숙한 공간에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던 그때였다.

처음 회귀했을 때 느낀 일시적인 그리움이나, 맥주를 선택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

숱한 전쟁에 나서면서도 느낀 적 없었던 시답잖은 감성이다.

‘생각해 보면 야만족의 땅에서 돌아왔을 때도 비슷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군.’

그리고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육체를 기조로써 적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 마음속으로 짐작했던 대로 연령에 맞는 정신이 깃든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맥주잔을 매만지던 손에 끼워진 1왕자의 반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스무 살의 몸에 익숙해진다, 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회귀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괴리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어쩌면 이런 반지에 의존하여 1왕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내 속에 각인된 검왕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작 신체의 나이 따위에 변치 않을 정도로 확실한 ‘자아’의 형태이기에.

그러니 알지도 못하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 헤맬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그 몸이 어떠하든, 내 정신은 비로소 나의 형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므로.

“……나쁘게 말하면 정신이 어려지고 있다는 소리겠지.”

“예?”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또다시 맥주잔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때였다.

철컥-

굳게 닫혀 있던 여관의 문이 열리고 한 수척한 남성이 가게의 내부로 들어왔다.

순박한 인상과 남부 대륙인 특유의 구릿빛 피부. 그리고 학자들이 주로 입는 비단결의 펑퍼짐한 의상은, 듣던 누군가의 인상착의와 너무도 같다.

그자였다.

나는 눈매를 좁히며 안경을 치켜올리는 조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군.’

엘 바르도.

빚쟁이가 된 이후로 계속된 연구 실패에 비관하며 자살한 비운의 학자이자, 한때는 천재라고 불렸던 발명가.

그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들었던 대로, 그리고 알고 있었던 대로의 모습이 분명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기다렸던 것은 나와 조지뿐만이 아니었다.

“드디어 만났군.”

“히익……!”

구석에서 조용하게 술을 마시던 잿빛 로브의 일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을 것도 없이 좋은 의도로 기다린 것은 아니다.

녀석들은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씹어 뱉듯 말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런 곳에 있었나.”

“아, 안 돼……!”

“뭐, 여기가 아니라면 네 놈 따위가 우리의 추적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학자는 재빨리 몸을 돌려 여관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 팔을 잡아끄는 이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콱-!

“이, 이러지 마십시오.”

“그러게 순순히 연구 결과를 넘겨줬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 연구는 제가 반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닥쳐라. 그 분께서 네 놈을 찾고 계신다. 죽고 싶지 않다면 입 다물고 따라오도록.”

그 모습을 보니,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전해져온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겠지.

상황을 주시하던 조지가 나지막히 속삭여 왔다.

“쟤네들, 혹시 보고서에 있던 빚쟁이들입니까?”

“그래.”

사실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저들은 조용히 계속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고, 세 무리로 나뉘어 퇴로가 될 만한 곳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억지로 빚을 떠안게 하고 연구물을 가져가는 더러운 수법은, 역시나 ‘놈들’이 저지르던 수법이었다.

‘적당한 때에 찾아오긴 했군.’

그때,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듯 머리를 이리저리 들썩이던 조지가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됩니까? 저대로 끌려가게 생겼는데요.”

“구해 줘야겠지.”

어찌 되었든 이 상황을 놔둔다면 우려했던 사태가 다가올 것이고, 미래는 또다시 회귀 전처럼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번 사찰의 목적부터가 그걸 막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나설 차례는 없을 것 같군.”

“예?”

“이봐 형씨들.”

순간, 바람이 불어온다.

대기 중의 마나는 폭풍우가 몰아칠 듯 격앙에 이른 상태였고, 정확히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남자의 주변만이 유일한 안전지대처럼 고요할 뿐이다.

남자. 알베도 에스테반이, 학자를 둘러싼 일당들을 향해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딱 봐도 싫다하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려는 거 같은데, 아무리 이곳이 그레이존이라곤 해도 대놓고 사람을 납치하는 것은 아웃이라고?”

“네놈은 뭐냐?”

“나? 나는 그냥 지나가던 정의의 애주가라고 하지 뭐.”

녀석은 넉살 좋게 대답하며 붙잡힌 학자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놈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작게 눈짓하며 명령을 내렸다.

“……쯧. 더 시끄러워 지기 전에 처리해.”

“네.”

순식간에 알베도를 향해 쇄도하는 로브의 남자들. 녀석들은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품속에서 시퍼런 비수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컥!”

“으윽!”

“……?!”

돌연, 달려들던 로브의 사내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조금의 전조도, 낌새도 없이 찾아온 미약한 파동에 기절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습에도 알베도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볍게 어깨를 털 뿐이었다.

“후. 말로 하자고 말로.”

“너, 넌 대체 뭐냐…… 방금 전의 그 파동은…….”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제압을 지시했던 남자는, 눈을 부릅뜨며 허둥지둥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었음에도 그 괴현상의 원인을 알아채지 못한 탓이었다.

허나 마법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눈치 채었을 테지. 찰나의 순간, 여관 내부로 한 줄기의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는 사실을.

“뭐, 그건 알 것 없고. 우선은 뒤를 보는 게 어때?”

“뒤라고……? 헛!”

어느새 놈의 등 뒤에는, 목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내가 있었다.

파동의 정체를 파악해 내지 못한 것과는 다르게, 마치 유령을 마주하듯 그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몸을 피해내거나 반격할 틈은 없었다.

“…….”

풀썩-

“호오라.”

손가락이 뒷목에 닿은 것만으로도, 우두머리의 사내는 허망하리만치 쉽게 쓰러졌다.

혈맥에 오러를 주입시켜 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은 탓이다.

부작용이 심할 테지만 상관은 없겠지.

나는 바닥에 무너진 놈의 몸뚱어리를 무감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오지랖은 여전하군. 알베도.”

“뭘요.”

혹자는 그를 최소한의 의무조차 내버린 한량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알베도의 모습은. 회귀 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누구보다 자유롭고 의젓한 인물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으며, 내세울 정의 따위는 없더라도 불의를 보면 넘어가지 않는 모순적인 성격.

아마도 그 성격 자체가 녀석의 가장 큰 재능이자 무기라고 할 수 있겠지.

“형님이야 말로 재미있는 기술을 사용하십니다 그려. 혹시 이 형씨들에게 볼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

나는 고개를 내저은 뒤에,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학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발견했는지,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이려 했다.

그러나.

“아! 감사합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 덕분에…….”

“엘 바르도.”

“제, 제 이름을 어떻게…… 설마.”

제 이름이 불린 순간, 불안한 상상을 했는지 그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를 잡으러 오셨습니까?”

“고개를 들어라.”

“여, 연구 결과는 절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세 번 명령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라.”

“예, 옙…….”

그 어떠한 위협보다도 위압적인 명령에 엘 바르도의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근육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을 정도로 신속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주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연구에 투자해준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든 놈들의 수법도 모두.”

“……!”

“처음에는 장부를 교묘하게 조작하며 횡령의 누명을 씌웠을 테지. 이후 계약서의 조항을 들먹이며 학계에서 제명당하기 싫다면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협박했나?”

“그, 그걸 어떻게…….”

그는 확답은 아니었으나 멍하니 긍정했다.

당연히 사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어쩌면 돈을 받은 시점부터 어긋나고 있었겠지.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자 따위가 ‘놈들’의 수작을 이겨 낼 리 없었으니까.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복수하고 싶나?”

“……!”

순진한 학자를 꼬드겨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을 지게 한 이들에게.

그 빚을 탕감하는 대가로 평생을 연구해 온 지식들을 바치라 협박하는 쓰레기들에게.

정녕 정당한 심판을 받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보, 복수라고 하시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라. 나는 목적 중 하나를 이룰 뿐이고, 그것이 네게는 복수의 형태가 되겠지.”

이내, 고개를 가까이하며 낮게 속삭였다.

“내가 직접 네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

“…….”

엘 바르도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굳이 학자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그 말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

하물며 그것이 신원 모를 남자가 하는 말일지라도.

“저…… 정말로, 아무런 면식도 없는 저를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저는 최근 몇 년간 별다른 연구 성과도 얻지 못해 후원 한 푼 받지 못한 사람인데…….”

“그딴 실적 따위는 내 행동을 결정지을 요소가 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끊어진 미래의 지식 사이에서 운명을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 자리에 왔으니까.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하다.”

그런 내 시선이 방금까지 앉아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마지못해 핫초코를 삼키고 있는 조지의 모습과,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알베도 녀석의 모습.

마지막으로…….

“으…… 으윽…….”

제압에서 풀려나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우두머리 괴한의 모습까지.

나는 차갑게 식은 손으로 녀석의 목을 쥐고, 조용히 속삭였다.

“안내하라, 네 놈들의 배후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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