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7화
도약, 혹은 도태 (3)
늦은 밤.
페르니티 상단의 총수는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죄송합니다.”
“쯧. 귀찮게 됐군.”
도망친 머저리를 붙잡기 위해 움직인 수하들.
놈들은 수도의 상점가로 진입했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통신을 보내오고 있지 않았다.
만일 문제가 생겼다면 곧장 비상 연락을 보내왔을 터. 그럼에도 어떠한 소식도 없다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말이었다.
허나 그가 중얼거린 ‘귀찮게 되었다’는 말은, 결코 연락이 두절된 부하들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수도에서 연락이 끊겼다면 보나 마나 경비대에 잡혔을 것입니다.”
“멍청한 새끼들, 괜한 소란을 만들지 말라 일렀거늘.”
“어떻게 처리할까요.”
무뚝뚝한 말투로 살의를 표하는 부하의 목소리에, 총수는 담배를 꺼내 물며 차갑게 대꾸했다.
“암살대를 보내.”
오직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상단의 숨겨진 전력.
물론 그 대상은 도망친 머저리가 아니라, 사라진 제 부하들이 될 테지.
그렇게 총수가 불붙은 성냥을 담뱃잎에 가져다 댄 그때였다.
똑똑똑-
“총수님.”
“……쯧. 간만의 휴식도 별 좆 같은 일 때문에 잡치는 기분이군.”
절로 신경질적인 대꾸가 나왔다.
총수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천천히 떼며 혀를 찬 뒤, 부하에게 눈짓해 문을 열게 했다.
문밖에 서 있던 것은 상단 본부 입구를 지키는 경비였다.
“뭐냐?”
“방금 전, 상단으로 엘 바르도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엘 바르도?”
분명 상단이 쫓던 머저리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 장소를 알 리가 없을 텐데…….
“놈이 뭐라고 하던가?”
“예. 협상을 하고 싶다며 반드시 총수님을 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행으로는 호위로 보이는 용병 두 명과, 총수님의 부하분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랬군.”
총수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빚 독촉을 피해 주제넘게 도망 다니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늘…… 드디어 그 멍청이가 정신을 차렸나 보다.
말이 협상을 위해서지, 사실상 잡혀 온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연락도 없던 것은 괘씸하지만, 놈을 잡아 왔으니 한 번은 넘어가 주지.”
하나 협상이라고 해 봐야 무어가 있겠는가?
그 빚을 탕감하는 대가로 연구 결과를 주겠다 부르짖는 정도에 지나지 않겠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녀석이 호위랍시고 쓸데없는 혹 두 개를 붙이고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총수님. 데려온 호위들은 죽이고 놈만 들일까요?”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인 부하의 말이었다.
하지만 총수는 고개를 저으며 거만하게 답했다.
“아니. 모두 데리고 와라. 놈의 앞에서는 평범한 상단을 연기할 필요가 있으니, 괜히 죽여서 경계심을 자아낼 이유는 없겠지. 알았으면 나가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경비와 부하가 나간 뒤에도 총수는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우연히 눈에 띄게 된 어느 학자의 연구.
아직 완성되지도, 세간이 주목하지도 않는 내용이었으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짙은 금화의 향기는 그의 후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그토록 달콤한 열매가 결실을 맺기까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흐흐흐. 그분께서도 좋아하시겠지.’
이러한 연구 내용을 가져간다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상으로 받게 될까?
내 입지는 앞으로 얼마나 높아지게 되는 것일까?
총수는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끼며,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문질렀다.
* * *
똑똑-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문밖으로 자그마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병이었다.
“들여보내도록.”
끼이익-
총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세 인영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으음.”
방금 인사를 건넨 가운데의 수척한 남성은 그가 잘 아는 학자 엘 바르도. 나머지 두 명은 초면이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귀족들의 종자로 굴러먹다 온 놈들이려나? 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해 봐야 용병으로 전향한 호위 정도겠지.
담배를 물고 있던 총수의 시선은 개중 한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건방지게 누구의 앞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지? 용병길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나?”
“…….”
평범한 마법사로 보이는 예의 다른 호위와 다르게, 로브 사이로 드러난 체형은 여리여리한 것이었다.
호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미숙한 체구.
하지만 그 모습이 도리어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도무지 이유 모를 불쾌감이었다.
“흥! 됐다.”
어차피 용병이란 것들은 죄다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무뢰한일 뿐.
대꾸조차 하지 않는 것은 괘씸했으나, 지금은 놈이 고용한 용병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저 건방진 새끼는 나중에 두고 보고…….
“그래. 협상을 위해 나를 찾아왔다지?”
“……그렇습니다.”
엘 바르도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꼴에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이라니…….
이에 총수는 비웃음을 날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하기야, 천만 골드나 되는 채무를 갚을 방도는 없었겠지. 차라리 반평생에 걸쳐 연구하던 것을 내버리는 것이 나을 정도로.”
“…….”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 되겠는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금액이 추가로 붙었어. 이백만 골드 정도.”
“……!”
금액이 추가로 붙었다니?
엘 바르도의 눈썹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꿈틀거렸다.
지금의 채무 역시, 말도 안 되는 누명과 조항을 들먹이며 억지로 위약금을 붙이고 붙인 금액이었다.
그게 놈들의 수법. 거기에서 더 붙을 조항은 없었을 터인데…….
“애초에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연구 결과를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으음……!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말은 똑바로 해야지, 우리 업계에 이자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는가?”
“대체 무슨 말을…….”
엘 바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제게 계약서가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그는 학자였다.
사기를 당한 시점에서 부주의함을 깨닫긴 했으나, 애당초 그런 그가 며칠 새에 이백만 골드나 되는 이자가 붙는 조항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확실히 이자에 관련된 내용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에스테반의 왕실이 인정한 금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분명 계약서를 확인해 보시면…….”
“아, 혹시 그 계약서라고 하는 것은 이걸 말하는 것인가?”
“……!”
총수가 꺼내 든 것은, 분명 그의 서명이 들어간 왕실의 ‘공인’ 계약서였다.
마법적인 강제는 없었으나 서명하는 순간부터 수정이 불가능하고, 왕실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말 그대로 ‘공인’의 계약서.
그러나 거기에 적혀 있는 글귀는 자신이 알던 내용이 아니었다.
“채, 채무일이 만기된 시점부터 매일 10%의 이자를 가진다고…… 서명했을 때만 해도 분명…….”
“이건 자네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한 계약서가 아닌가?”
“하지만……!”
“어허! 이 사람이 자꾸 나를 의심하는군!”
총수는 혼란스러워 하는 엘 바르도를 쳐다보며 멋들어지게 말린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입가에 맺힌 미소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정말로 계약서에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한다면 왕실에 문의 해 봐도 좋네. 하지만 그래서야 투자의 자세한 내용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계약 또한 어기는 셈이 되겠지.”
“…….”
“생각해 보면 호위를 데려온 시점부터 계약을 어긴 것이 되려나?”
그렇게 이죽거리던 총수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계산기를 집어 들고 씨불였다.
“어디 보자…… 채무의 복리를 계산하고, 비밀 유지 계약을 어긴 위자료까지 포함한다면…….”
타닥- 타닥-
곧 방 안에는 계산기의 버튼을 누르는 소음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때때로 아리송하다는 듯 장난스럽게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던 손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침묵 속에서 계산된 금액의 총합은…….
“흐흐. 도합 1,700만 골드 정도가 되겠네만.”
“……!”
“이대로라면 노동력으로 갚지 않는 이상 연구 결과 따위로 무마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 않은가? 흐흐흐흐.”
고작 며칠 새로 1.7배나 높아진 금액의 채무액이었다.
계산된 금액을 확인한 엘 바르도는 허탈하다 못해 분노했는지 몸을 떨기만 할 뿐이었고, 총수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낮은 웃음소리는, 점차 선명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흐흐, 흐흐흐흐…… 어엉?”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웃고 있던 것은 자신이었건만, 이상함을 느끼고 웃음을 멈춘 지금에도 웃음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상황에서 건방지게 웃는다는 말인가?
이윽고, 총수는 눈매를 좁히며 웃음소리의 주인공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네놈은.”
“크흐흡……! 아, 죄송.”
웃음의 주인공은 마법사로 보이던 호위 용병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외모와 저렴한 듯 촌스러워 보이는 낡은 의상.
총수의 얼굴이 붉어지며 분노로 일그러졌다.
“더러운 용병들 주제에 한 번 넘어가 주었더니, 쌍으로 그 방자함이 끝도 없구나.”
“그러니까, 분명 죄송하다고…… 푸흡!”
“감히 누구의 앞에서 실실 쪼개는 것이냐!”
슈우욱-!
분노에 찬 총수의 팔이 마법사의 뺨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 순간.
“거기까지.”
“…….”
어디에선가 들려온 싸늘하고도 낮은 포식자의 명령.
휘둘러지던 팔은 관성조차 무시한 채로 허공에 붙들렸고, 몸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정도로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마치 언령처럼 솎아진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강한 강제력을 띄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뚜벅-
“…….”
뚜벅-
“무슨…….”
“드디어 찾았군.”
문 밖에서부터 들어온 누군가가 총수에게로 걸어온다.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용병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뒤집어 쓴 남자. 그리고 낯설기만 한 목소리.
그러나 총수는 후드 사이로 가려져 있던 포식자의 두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옅은 조명 빛 아래에서 피에 젖어 번뜩이는 붉은 두 눈을.
“뭐, 뭐냐? 네 놈은 언제 여기에…….”
“이제 끝났습니까? 지루해서 죽을 뻔했습니다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확신하는 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확실한 장부를 찾은 이상에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겠지.”
“뭐, 뭐라…… 대체 무슨…….”
몸과 마음을 잠식하는 공포.
그리고 그 심연의 늪 속에서 남자는, 진실을 속삭였다.
“네놈이구나. 에스테반의 기술들을 연방제국으로 넘기던 공작원이.”
“……!”
하나,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덜컥!
“총수님!”
“괜찮으십니까?”
“……허억!”
소란을 듣고 달려온 것은, 두 명의 마법사들이었다.
상단의 숨겨진 최강 전력.
그리고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총수의 호위.
이에 총수는 바닥을 기듯 황급히 몸을 움직여, 기어코 마법사들에게로 도착했다.
‘사, 살았다!’
정말로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 용병의 눈을 바라본 순간부터는, 살해당한다는 생각만이 몸을 지배할 정도로 생생한 두려움이 몰아쳤다.
감히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죽음의 공포였다.
‘젠장! 어떻게 알아낸 거지?’
웬 영문 모를 놈의 말대로, 자신은 에스테반이 아닌 연방제국에 협력하는 공작원이었다.
기술이나 인재를 빼돌리기 위해 포섭된 스파이.
지금까지는 한 번도 꼬리를 잡힌 적이 없었으나, 녀석이 이를 간파해 낸 것이다.
‘큭…… 조만간 새로운 신분을 준비해야겠군!’
고작 용병으로 보이는 놈 따위가 자신이 연방제국에 포섭되었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들켰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적어도 이 장소에서만큼은 비밀이 새어 나갈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방금 도착한 마법사들은, 무려 고위급 경지를 앞둔 제국 마탑 소속의 치프급 마법사였으므로.
“잘됐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감히 이 나를 위협하다니……!”
“…….”
“더 이상 배려 따위는 하지 않겠다! 편히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감히 내게 맞선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총수의 떨리는 손가락이 세 남성에게 닿았다.
“죽여라! 다만 저 학자 새끼는 살려 두어라! 내 손으로 직접 쳐 죽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우우우우웅-!
두 마법사의 스태프 끝에서 비롯된 마나의 움직임이 대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총수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선명한 마나의 흐름이, 마법사들이 발동시키는 마력의 질을 짐작게 했다.
하나 방심인지 허세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까지도 마법을 맞이한 놈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크흐흐! 끝까지 허세를 부리다니! 잘 가라!”
이내 마법이 완성되며 일직선으로 사출되기 시작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목표물을 향해서…….
……
“…….”
“헛!”
“이, 이럴 수가!”
마법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나, 그 이후의 상황은 명백히 두 눈의 망막 속으로 각인되었다.
마법사로 보이던 미친 용병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마법에 직격당했고, 이후에 들어온 놈은 로브에 가려진 오른팔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마법은 사라졌다.
추상적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황당하지만, 실제로 마법사들이 발동한 회심의 공격은 저들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의문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두 눈을 끔뻑이던 총수는, 그저 입을 벌리고 상황을 이해하려 애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마법을 직접 사용한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마, 마나가 흩어졌다?!”
“마법의 발동이 끝난 마력을…… 강제로 억제당했다고…….”
인간이 가진 공포의 근원은 미지였다.
마법사들은 미지에 대해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었으며, 때문에 누구보다도 미지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족속이기도 했다.
평생을 바쳐 공부해 왔음에도 모르는 의문의 현상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큰 공포로써 다가오게 되기에…….
그 순간.
“끝났나?”
후드를 뒤집어쓴 이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끝났냐고 묻는 그 단순한 질문과는 다르게, 그의 오른손에서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맙소사.”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남자의 오른손으로부터 피어나는 한 줄기의 빛이었다.
자신이 사용했던 마법.
자신의 마력으로 짜내고, 자신의 술식으로 발동해 낸 회심의 공격.
남자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꽃은, 자신의 평생이 담긴 마법의 정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