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8화
도약, 혹은 도태 (4)
“흐이익……!”
바닥을 나뒹구는 몸뚱어리는,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공격을 행하던 마법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고작 시체 따위에 마법사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는 너무도 아까운 노릇이었으니.
“빨리! 빨리 저 녀석을 죽이라고!”
“무, 무리입니다! 결계를 설치했는지, 마법이 발동을 하지가……!”
“뭐라고?!”
남은 마법사는 정신을 집중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 애타는 손과 스태프는 수식을 맺기 위해 허우적댔으나, 정작 대기 중에 흐르던 마나는 원인 모를 작용으로 동결에 이른 상태였다.
제 1 임계능력 마력장악(魔力掌握)
오른팔에 각인된 마법 각인의 첫 번째 본식 기술이자, 마법사들의 천적이라 불리던 필드가 발동된 탓이었다.
“이 새끼가……! 그렇다면 억지로 힘을 짜내서라도 마법을 쓰란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였으나, 실력이 좋은 마법사라면 이 공간을 지배하는 규칙을 강제로 깨뜨릴 수 있으리라.
마법 각인은 한정적으로 축척된 마나를 이용해 발동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 방 안에 펼쳐진 현상은 마력 장악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부,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마력의 발현을 억제당하고 있습니다! 저 마법사가 제 마력의 제어권을……!”
“……뭐라고?”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다급한 총수의 시선이, 내내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알베도에게 닿았다.
그러자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나면 마력의 고유 주파를 해석하고 제어권을 탈취하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지. 흔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모를 만도 해. 하지만 나도 이 상황은 조금 놀라운걸?”
그렇게 히죽거리며 웃던 알베도가 내게 다가오며 은근한 어투로 물었다.
“형님은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던 게 아니었수? 근데 지금 펼쳐진 결계와 좀 전의 그 반사(反射)는 대체 뭐랍니까?”
마법사의 공격을 받아 내고, 이후 똑같은 위력만큼 되돌려 주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벌어진 피해는 전무.
녀석이 보기에는 고유의 마력을 똑같이 반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테지.
하지만 이 기술은 어디까지나 마법 각인의 성질을 응용한 복사(複寫)였다.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하는 그 성질을 순간적으로 자극시켜 마법 속에 내재된 마력을 먹어 치운 뒤, 다시 흡수한 마력을 체외로 방출하면 원본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발동된 마법의 정순한 마력을 온전히 버틸 수 있는 신체와, 이에 걸맞은 마법 각인의 숙련도가 필요했다.
적어도 수년 동안은, 오직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기술로 남으리라.
“네가 알 것 없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를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나는 심장을 꿰뚫린 채로 두 눈을 부릅뜬 시체를 지르밟으며, 총수에게 다가갔다.
“허억……! 와, 왕실에 나를 고발할 생각이냐?! 이대로 나를 잡는다면 분명 후회할 거다!”
“후회?”
“그, 그래!”
놈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뒷걸음질 쳤다.
그 표정은 금방이라도 심장이 멎을 듯 두려움에 질린 상태였다.
“에스테반 각지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즐비해 있다! 네, 네놈의 목적은 첩자를 색출하는 일이겠지? 내가 체포당한다면 그들은 보다 은밀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렇군.”
녀석은 그 말을 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확실히 그 말대로.
놈이 당했다는 사실을 공작원들이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조심스럽게 행동할 가능성이 컸다.
적어도 지금의 협력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해 내겠지.
그렇다면 놈들을 솎아 내는 일은 더욱 요원해지리라.
하지만.
“그래서?”
“……뭐?”
“그따위 협박으로 안위를 보장받을 셈인가? 혹은 정보를 줄 테니 목숨이라도 건지게 해 달라고 말할 셈이더냐?”
“……!”
콱-!
“커어어억!”
내 손이 놈의 목을 쥐고, 조여들었다.
애석하게도, 빠져나가고자 발버둥 치는 손짓은 덧없을 뿐이다.
“아쉽게도 나는 바퀴벌레들 따위에 지레 겁을 먹을 만큼 멍청하지 않지.”
“사, 살려…….”
“체포? 협상? 나는 단지 너를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내게 일말의 자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착각이다.”
처음 아수스의 목을 베어 내며 맹세했다.
놈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은 모두, 내 손으로 직접 짓뭉갰노라고. 그 죽음 속에서 다짐했다.
마지막에는 한 줌 잿더미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가슴 깊숙이 새겨 놓았다.
그러니 나는 개의치 않았다.
“원한다면 숨어들라고 하라. 하나, 얼마가 되었든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일 것이다.”
“……!”
오 년. 십 년.
지옥 끝이라도 따라가, 반드시 그 씨앗조차 멸하리라.
그것이. 비로소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너는 설마…… 1왕…… 자…….”
풀썩-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털어 내듯 땅바닥으로 내던진다.
바닥으로 쓰러진 몸은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절명(絕命).
단말마의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한 허망한 죽음이었다.
* * *
얼마 뒤에 소식을 듣고 도착한 왕궁의 기사들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크흠!”
본디 늦은 밤이라도 사람이 있어야 할 상단 본부였으나,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경비부터 직원까지.
한 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고, 모조리 핏물 속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훔치고 있는 기사에게 명령했다.
“놈들은 타국에 기술을 판매하려던 산업 스파이들이다. 감히 나와 내 백성들을 해치려 했기에 직접 죽였지. 시체는 한데 모아서 불태워라.”
“예……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애초에 무고한 이는 없었다.
따로 빼돌린 주요 장부에 고용인들에 대한 정보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으니까.
주의를 요하는 공작원의 휘하에 일반인을 둘 리가 없다는 소리겠지.
나는 그렇게 명령하며, 그 뒤에 나열한 기사들을 불러냈다.
“나머지 기사들은 상단 내부에서 장부를 회수한다.”
“충!”
기사들은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장부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방제국과 관련된 내용들은 모조리 회수했으므로, 남은 것들은 딱히 기사들이 알아도 상관없는 내용들뿐이다.
“여기 금고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장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엘 바르도의 신상 정보를 비롯한 각종 공작의 단편적인 증거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개중에는 그와 비슷한 수법으로 기술을 넘겨받았다는 보고서도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 대부분은 연방제국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정도 피해에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한 번 수법을 들켰으니, 놈들로서도 당분간 조용히 있으리라.
또한 이후에 등장할 주요 기술들이나, 엘 바르도의 연구는 지켜 낼 수 있었으므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마법 연구에 관련된 대목이었다.
“양이 엄청나네요.”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조지가 장부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뒤에, 입꼬리를 싸늘하게 비틀었다.
“왕국 마탑에 첩자들을 집중적으로 심어 둔 모양이겠지. 실마리를 발견했으니 금방 색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피바람이 불겠네요.”
기사의 나라라고 마탑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닌바.
오히려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했으니 녀석들에겐 나름 군침이 도는 먹이였을 터다.
그래서 그런지 마탑의 연구 목록 대부분이 유출의 목표였다.
심지어 그 목록들은 외부로 공개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듯 내부의 사정을 자세할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마탑 내부에 첩자들을 심어 놓은 덕분이리라.
‘익숙한 내용도 여럿 보이는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연구들이었으나, 회귀 전 연방제국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던 배경의 원초 격인 기술들인 것은 틀림없었다.
새삼 간악한 놈들의 수법에 마음속이 차게 식어 가는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회수 작업은 막바지에 치닫게 되었다.
“경과는?”
“보이는 장부들은 모조리 회수했고, 시체들의 신원은 파악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감추어진 금고나 장부의 존재가 의심되기에 기사들이 남아서 추가적인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군.”
만에 하나 추가적인 증거가 발견된다면 일 처리가 더욱 수월해진다.
기사들도 그러한 발견이 실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밤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대로 하도록. 현시점부터 현장의 지휘는 자네에게 일임하지.”
“충!”
슬슬 왕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경례하는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상단 본부를 빠져나왔다.
그 귀환의 의사를 알아차렸는지, 등 뒤로 따라붙는 조지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드디어 귀환이네요. 그런데 2왕자 전하는 어디로 갔습니까? 같이 움직이셨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녀석의 보모가 아니다. 녀석도 더 이상 보모 따위가 필요할 나이는 아니겠지.”
“모른다는 것을 길게 설명하는 재주도 있으십니다.”
“시끄럽군.”
“……쩝.”
그렇게 시끄럽다는 한마디에 녀석의 입이 다물어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고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방의 대화와는 달리 가벼운 어투는 아니었다.
“엘 바르도. 그 학자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관련 정보가 밝혀지겠죠.”
“그렇겠지.”
어찌 되었든 그는 이번 공작 사태의 피해자 중 하나이자, 현시점에서는 가장 가까운 이해 당사자였다.
나와 함께하며 파악한 사건의 전말은 함구하겠으나, 그 자신에 대한 정보가 밝혀지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조지가 우려하는 부분도 거기에 있었다.
“시끄러워질 텐데 괜찮겠습니까? 그 ‘연구 결과’라는 것에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지?”
“뭐, 전하께서 직접 나섰으니까요.”
연방제국의 공작원이 노릴 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연구.
1왕자인 내가 직접 나서서 저지했음에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게다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대비하여 연방제국의 흔적까지 지우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녀석의 추측에 수긍을 표했다.
“그 연구는 온전히 완성된다면 역사에 남기 충분한 가치가 있겠지. 반은 정답이다.”
“반이요? 그럼 나머지 절반은…….”
“간단하다. 그가 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녀석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회귀 전의 일이었다.
연방제국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가 넘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엘 바르도.
그의 죽음으로 인해 처음으로 공론화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이미 늦었다.
놈들은 에스테반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주요 기술들을 빼낸 뒤였고, 공론화가 된 시점부터는 그 꼬리를 감춘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학자의 자살을 에스테반의 탓이었다며 선전을 이어 갔었지.’
단 하나의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로.
결과적으로는 부스럼만 남긴 애석한 죽음이었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그가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태어난 곳은 비록 타국일지라도, 그는 어엿한 에스테반의 백성이니.”
“…….”
나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인간들을 구원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내 눈에 밟히는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고개를 돌리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것이 필시 고된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증거로, 미래는 또다시 바뀌었다.’
내 손과 두 눈으로 연방제국의 헛된 야망을 짓밟았고, 학자의 암울했던 미래는 이제 흰 도화지에 새로이 쓰여 내려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군주론이다.”
“……그렇군요.”
느릿하게 납득하던 조지는, 의외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의외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자각한 탓에 멍한 기분이 되었다는 것이 맞겠지.
‘생각해 보면 저 사람의 행동 대부분은…….’
단지 그 움직임의 목적에 보상이 따라온다고 생각했었건만, 정작 그 보상의 초점은 늘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순리대로 국왕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었으나, 더욱 순탄한 길이 있음에도 기어코 나서서 불길을 헤쳐 온 것이다.
나라를 위해.
그리고 백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렇게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것까지 불사하면서 말이다.
“…….”
“마차가 도착했군.”
“……으음? 아, 그러네요.”
1왕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어둠을 뚫고 다가온 한 대의 마차가 보였다.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빠져 있었나?
조지는 답지 않게 떠오른 감성적인 감정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습니다. 근데 야근 수당은 나온답니까?”
“시끄럽다. 조용히 하고 마차로 올라타도록.”
“예이.”
마지막으로 1왕자의 시선은 상단 본부의 어딘가를 훑었다.
그리고 멈추어졌던 마차는 왕궁을 향해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
부스럭-
그 순간.
자욱한 어둠에 감추어져 있던 수풀 속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서풍이 일 듯 주변에는 작은 흔들림이 생겨났고, 이내 남자는 마지막에 마주쳤던 1왕자의 눈빛을 기억하며 입술을 다물었다.
“…….”
기이할 정도로 감정이 어린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