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49화
마탑 (1)
다음 날 아침.
왕실 제3 기사단, 아르곤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에드워드는, 휘하 기사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뭘 했다고?”
“지난밤, 1왕자 전하께서 이웃 영지의 상단 하나를 무너뜨리셨…….”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일세!”
당혹스러웠다.
당장 보고서에 적힌 사망자만 해도 수십 명을 가뿐히 상회하는 상태였다.
한데 1왕자께서 피에 미친 것도 아니고, 당최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그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조사 결과는 뭐라고 하는가?”
“현재까지 밝혀진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힘없는 학자나 마법사들의 연구 기술을 빼앗아 타국에 팔아넘기려 한 일당으로 추측됩니다.”
“기술을 빼돌리려 했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미수에 그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렇군.”
대부분이 미수라는 말은, 어쨌든 일부 기술이 넘어간 흔적은 남아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적어도 죄 없는 사람들을 죄다 죽이지는 않았으리라는 이야기였다.
하나, 턱수염을 쓰다듬는 에드워드의 의문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한데 1왕자 전하께서는 어째서 그들을 죽이셨지?”
“그들이 타국에 정보를 팔아넘길 것을 막기 위해 그리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닐세.”
단지 그들이 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라서 죽였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런 사실로 상단 하나를 무너뜨린 1왕자의 행보를 납득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게. 단순히 전하께서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 하셨다면, 그들을 고발해 왕궁 지하 감옥에 넣는 것이 더욱 편하고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실 리가 없네.”
“……확실히 직접 죽일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군요.”
기사는 에드워드의 의문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1왕자 전하이지 않은가?
아르곤 기사단 전원이 움직여도 알아내지 못했던 오노레오 자작과 아수스의 관계를, 고작 혼자만의 힘으로 밝혀내고 움직이셨던…….
그런 1왕자 전하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셨을 리는 없으리라.
“……!”
그 순간, 에드워드의 눈이 번뜩 빛났다.
“애초에 다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 움직일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그 말씀은…….”
“……다른 이에게 알릴 수 없는 정보가 있었다.”
직접 움직이고, 직접 죽였어야 할 이유.
가장 기초적인 가정이었지만 그거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한 가지 가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페르니티 상단에서 나온 장부들을 가져오게. 그들이 어느 나라에 정보를 빼내려 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장부라면 모두.”
“알겠습니다.”
“그리고.”
끼익-
기사단장 에드워드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신중하게 말했다.
“이 사건이 아르곤 기사단 외에 보고된 곳이 있나?”
“아직 아무데도 없습니다.”
“잘됐군. 지난 밤 조사를 진행했던 기사들의 명단을 알아오도록. 내가 직접 입단속을 시키겠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녕 전하께서 혼란을 초래하기 싫었다고 하신다면, 그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은 자신들 ‘아르곤 기사단’이 될 것이다.
내부의 질서와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제 3 기사단.
에드워드는 단장실을 나서는 기사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연방제국의 사절단이 다녀간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웃는 얼굴 뒤에서 또다시 칼을 들이민 놈들의 행태가 밝혀지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점이리라.
* * *
“여기요.”
조지는 가져온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당분간 편하게 지내는 가 했더니, 이전보다 족히 배는 늘어난 일 거리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탑에 관련된 내용들을 조사한 서류입니다. 관계자들에 대한 인적 사항부터 시작해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까지…….”
“요점만.”
“……일단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끝.”
“그렇군.”
나는 녀석이 가져온 서류를 대충 뒤적거렸다.
과연, 모조리 조사했다는 말이 무색하지는 않은 듯 어마어마한 수준의 양이었다.
그러나 실속 없이 내용만 부풀린 허깨비는 결코 아니다.
“나쁘지 않군.”
“…….”
핵심만을 짚었으나 자잘한 것 하나 놓치지 않은 귀중한 정보들.
처음 녀석이 보여 준 모습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녀석의 능력이 보잘것없고 하찮았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이 되리라.
‘그만큼 굴렸다는 말이 되기도 하겠지만 말이지.’
전략 전술부터 시작해서 정보수집 능력까지.
아마 지금의 녀석이라면 충분히 기대했던 역할을 다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건 보좌관이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녀석은 눈두덩이에 만연한 피로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지옥이니 뭐니 엄살을 부리며 지껄이는 것이, 아직 헛소리를 할 힘은 남아 있었나 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휴가를 보내 주지.”
“예? 진짜요?”
휴가를 보내 준다는 말에 녀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면 가족들과 고향에 다녀와도 됩니까?”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녀석의 가족들은 조지를 따라 수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비록 허름한 집이라 하더라도 이전에 살던 시골의 마을과는 격이 다른 수준의 생활 기반이었을 테지.
하지만 제아무리 수도가 살기 편하다고 한들, 오랜 시간 지내 온 고향 땅을 그리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족들이 좋아하겠네요.”
가족들의 행복.
그리고 이는, 녀석에게 있어서 가장 큰 원동력이나 다름없으리라.
예상대로 조지의 무료한 듯 반쯤 감겨 있던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떠졌다.
“그럼 지금 당장 마탑에 쳐들어가죠?”
“아직이다.”
“왜요? 필요한 정보도 이미 다 캐오지 않았습니까?”
녀석의 말대로 상단에서 나온 장부와 조사한 내용을 종합한다면,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금방 특정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탑에서 확증을 얻어 내는 것 역시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겠지.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예?”
“남작이 손님을 맞이하러 갔으니 기다리도록.”
조지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의문을 표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시곗바늘을 힐끔 쳐다본 뒤에, 녀석이 가져온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사건을 처리하기에 적당한 손님을 불렀다.”
“또 영문 모를 소리를…….”
그 순간,
우우우웅-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온 통신 수정구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군.
나는 통신구 너머의 상대, 비도르 남작에게 말했다.
“집무실로 올려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뚝-!
“……아니.”
연결된 마나가 끊어지는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황당할 정도로 짧은 통화에, 조지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끝입니까?”
“뭐가 더 필요하지?”
“……뭐. 그렇게 끊어 버리는 전하나, 그걸 납득하는 남작님이나 똑같네요.”
“시끄럽다.”
나는 그렇게 일축하며 들고 있던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곧 손님이 올 테니, 따로 부르기 전까지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도 좋다.”
“오오! 진짜요?”
“비도르 남작에게도 그리 전해 두도록.”
“네엡.”
……어린아이도 아니고 뭐가 그리 좋은지.
녀석은 내내 달고 있던 업무에 대한 불만조차 잊은 채로, 그렇게 방방 뛰며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후.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1왕자 전하.”
“앉도록.”
남작의 안내를 받고 집무실로 들어온 것은, 제 3 기사단장 에드워드였다.
나는 눈짓으로 인사를 받은 뒤에,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단의 일이 퍼져 나가지 않게끔 손 쓴 것이 경인가?”
“……그렇습니다.”
“눈치가 빠르군.”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상단에서 있었던 일은 그야말로 깨끗이 묻혔다.
세간에는 1왕자라는 이름이 오르내리지도 않았고, 하물며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가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 제 경솔한 판단이 틀렸다면…….”
“아니.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세간에 밝혀지지 않은 것은 총수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
덕분에 움직이는 데에 생길 번거로움이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이 부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도움이었지.
“어찌 되었든 그렇게까지 손을 썼을 정도라면 사건의 전말 정도는 파악했을 터다.”
“후우…… 예. 그렇습니다.”
에드워드는 안도하면서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에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경을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에드워드에게 건네며 운을 떼었다.
추가적으로 상단에서 가져왔던 마탑의 장부들.
이에 서류를 빠르게 들춰 보던 에드워드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마탑에도 기술을 빼내려던 공작원들이 있었군요.”
“그래.”
그 장부에 적힌 정보는 도저히 한두 명이 알아냈다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에 필시 이 모든 것을 관리하던 높은 직위의 마법사가 한 명쯤은 연루되었을 터.
에드워드의 신중한 표정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이 장부를 보여 주신 이유는, 마찬가지로 제게 사후 처리를 맡기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군.”
“역시…….”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에드워드의 눈빛이 결연하게 번뜩였다.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그는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마주했다.
“제가, 마탑에 잠입한 연방제국의 공작원들을 색출하는 일을 돕겠습니다.”
그 역시, 누구보다도 뜨거운 충성심을 품고 있을 남자였으므로.
만족감에 비틀어진 입가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좋군.”
에드워드 필리르.
회귀 전에도 그의 애국심은 기사단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유별났다.
첩보를 다루는 아르곤 기사단의 단장답게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연방제국과의 전쟁에서 참모를 돕는 것으로, 훗날 에스테반의 공신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친위대라는 핑계로 전장에 나서지 않은 왕실 수호 기사단과는 다르게 말이지.’
애초에 조력자가 생기는 일 자체도 당초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으나, 그것이 아르곤 기사단을 이끄는 이라면 나로서도 환영할 만한 이야기였다.
아마 현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모두가 떠나간 집무실 내부에는 달빛에 길게 진 그림자만이 눈에 들어왔다.
기나긴 사색은 환한 보름달이 뜨고 나서도 이어졌던 모양이다.
나는 달빛과 바람에 흔들려 조각나는 나뭇잎의 형태를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마탑의 공작원인가.”
끼익-
걸터앉은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의자를 지탱하던 축이 틀어지는 소리를 고막에 새기며, 조지가 가져왔던 서류의 한 페이지를 눈에 담았다.
“…….”
익숙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익숙한 얼굴의 생김새였다.
비록 더 젊어지고 직위도 달라졌다 한들, 그 모습을 잊는다는 말은 언어도단이겠지.
스릉-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엘베른이 달빛에 반사되며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유려하게 요동치는 칼날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신에 비춰지는 우습게 끌어당긴 입꼬리. 그러면서도 한없이 시린 분노로 타오르는 두 눈.
……그 순간.
푹-!
그 초록색의 명검은 한 줄기 빛처럼 쏜살같이 날아들어 탁상 위로 내리꽂혔다.
그러고는 마치 심장을 꿰뚫듯, 서류의 중심을 비집고 날카롭게 찔러 들어갔다.
상처를 헤집듯 식은 목소리를 내뱉은 것은, 그 직후였다.
“오랜만이군.”
한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때문에 오랜만이라 지껄이는 입술은 서류 위에 그려진 인물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으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네놈이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