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0화
마탑 (2)
“……허, 이건 좀 놀라운데요.”
조지는 눈앞에 솟아오른 대리석을 보며 어울리지 않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그 눈에 보이는 건축물은 고개를 들어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한 장엄했으니까.
“……이게 바로 왕국의 마탑.”
“그래.”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의 세계를 연상하듯 옅게 뿌려진 안개. 그리고 그 속에 숨은 탑.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쌓아 올려진 대리석은 구름에 닿을 듯 뻗어 나가 있었고, 그 높이를 예측하기에 아득히 까마득했다.
과연 마법이라는 불가사의가 빚어낸 세계의 조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광경이었다.
하지만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탑의 옆으로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마정석들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마법에 문외한인 조지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법진.
먼 왕국의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불세출의 대마법사. 그가 설계했다고 알려진 에스테반 최대의 보호 마법 술식이었다.
조지가 흘리던 침을 닦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둘, 넷, 여섯 여덟…….”
“…….”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이 정도라면 마정석 하나쯤은 가져가도 모르지 않을까요?”
물론, 그 술식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은 아니었지만.
그 일관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녀석을 한심하게 바라본 뒤에 말했다.
“가져가도 좋다. 네놈이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말이지.”
“쩝……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시끄럽다. 감상은 거기까지 하고 물건이나 꺼내도록.”
“예, 뭐. 알겠습니다.”
녀석은 주머니에서 통신 마법구 하나를 꺼내고는 내게 건넸다.
연결은…… 양호하군.
나는 이를 받아 들은 뒤에 가볍게 쓰다듬어, 마법구 너머에 있을 상대를 불러냈다. 갑작스러운 통신 연결에 당황하고 있을, 마법사를 말이다.
지지직-
-엇……! 통신 받았습니다. 누구십니까?
상대는 역시나 당황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통신구가 연결되어 있는 장소는 마탑의 최상층이었다. 즉, 마탑주가 기거하는 장소라는 소리였다.
그런 곳에 직접적으로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알렌 에스테반, 1왕자다.”
-……전하?!
상대의 경악한 목소리가 마법구를 통해 울려 퍼졌다. 너머의 표정조차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마탑주에게 전하라. 에스테반의 1왕자가 마탑 사찰을 나왔다고.”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
“지금 즉시 찾아가지.”
뚝-!
“와우. 이게 바로 왕자의 갑질이구나.”
……갑질은 무슨.
나는 조지의 쓸데없는 감탄사를 무시하며 마법구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탑을 향해 눈짓하며 말했다.
“따라와라.”
“진짜 이대로 들어가시게요?”
“당연한 말을.”
“사람들이 곤란해 할 텐데요.”
“상관없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란 듯이 마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조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따라붙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마탑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구태여 준비할 시간을 줄 필요는 없겠지.’
단지 반응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급작스러운 등장에 초초함을 드러낼 ‘놈’의 반응을.
증거를 인멸할 틈도 없이 찾아온 상황에 두려워할, 그 겁쟁이 같은 모습을.
그렇게 내 서늘한 눈길이 마탑의 어딘가로 닿았다.
“마탑의 사찰이라…….”
……재미있겠군.
* * *
“어서 오십시오, 1왕자 전하.”
그렇게 조지와 함께 로비로 들어서자, 연락을 받고 급히 대기하던 두 명의 마법사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중 대표로 나선 것은 가장 앞에 서 있던 마법사였다.
“저는 마탑주님을 대신하여 이번 사찰을 안내해 드릴 부탑주 윌포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전하께서 통신을 남겨 주신 상대인…….”
“연구소장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대마법사인 로드. 그리고 그 아래로 고위 마법사라 불리는 엘더와 가디언 급의 등위.
그들의 로브에 수놓인 은빛의 자수들은, 엘더급 마법사인 마탑주 다음으로 버금가는 가디언급의 경지를 상징했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 윌포드와 크롬웰이라 소개한 이 마법사들은, 사실상 마탑주의 아래에서 주요 실무를 처리하는 마탑의 최고위 간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건넨 인사를 무시하며 주변을 살폈다.
“나는 분명 마탑주를 호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1왕자의 사찰.
왕족이 직접 마탑을 둘러보는 일은 드물었기에 급히 마련된 자리라고는 해도, 관례상으로는 마탑주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안건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대리를 내세워 안내를 맡겼다는 것은, 마탑의 소유주인 왕실과 척을 지겠다는 뜻이거나,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그 날카로운 질문에 부탑주 윌포드는 온화한 얼굴을 순식간에 걱정으로 물들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뢰옵기 송구스러운 이야기 오나…….”
“뭐지?”
“실은, 마탑주께서 최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을 하고 계십니다. 크롬웰 공이 전하께서 보내신 통신을 직접 받은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요양?”
“그렇습니다. 하여 부득이하게 저희가 마탑주의 대리로 나서게 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라…… 역시 그런가.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은 뭐라고 하지?”
“그것이…… 원인 불명의 악화라고 합니다. 의사들도 도무지 병명을 알지 못하는 것이, 혹 마법 회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진찰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군.”
신체에 쌓인 기를 이용하는 검사들과 다르게, 마법사는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고 이를 이용한다.
쉽게 말하면, 외부로부터 새로운 손 하나를 빌려오는 셈이다.
때문에 이를 똑바로 제어하지 못하면 마나 회로가 꼬여 버리는 경우가 생기는데, 부탑주 윌포드가 말하는 마법 회로와 관련된 것이란 대부분 이런 경우였다.
……물론 그것이 진정한 원인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부디 쾌차했으면 좋겠군.”
“예. 부족하나마 오늘은 제가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마음대로.”
대답을 들은 윌포드는 반색하며 앞장서 걸어갔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다가 말고 멈추어 서더니, 이내 뒤돌아서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일이오나…….”
“수행원은 데리고 가기 힘들다는 건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들어갈 장소는 왕국 마탑의 연구실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만큼, 신분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관계자가 아니라면 출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이는 1왕자의 수행원이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뭐,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시죠.”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고는 슬며시 주변을 훑어보더니, 애써 호기심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장소에 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대충 로비나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크흠.”
어찌 그라고 해서 마탑 내부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연신 헛기침하는 윌포드의 얼굴에는, 미안하다는 표정이 아른거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하. 규율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지라…….”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안내하도록.”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지가 빠진 일행은 그의 안내를 따라 이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앞장서서 안내하는 윌포드도, 그리고 뒤따라 걸어가는 크롬웰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이 돌아선 찰나의 순간, 녀석의 표정이 조소로 돌변했다는 사실을.
* * *
윌포드와 크롬웰은 연구 공방을 돌며 마탑의 성과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쪽은 흔히들 말하는 보호 속성의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장소입니다.”
에스테반에 마법사가 부족한 것은 아니나, 기사를 주축으로 병력을 편성하기에 마법 전력은 타국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마법은 기사들의 전력 보강을 기조로 발전되어 왔다.
보호 속성 아티팩트의 성능이 뛰어난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그리고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이 물건은, 아마 전하께서 보시기에도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연구소장 크롬웰은 손에 들린 물건을 보며 성과를 자랑하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 보면 야금이 갓 끝난 강철판과 같은 투박한 모양새의 아티팩트.
그는 손등으로 노크하듯 그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이건 특수한 마법진의 수식이 음각된 강철판입니다. 기사들의 갑옷 내부로 덧댈 수 있도록 얇고 가벼운 형태로 제작했죠.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할지 모르지만, 속에는 무려 최첨단의 마법 기술이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갑옷이 뚫릴 만한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몸을 보호해 주는 마법이 각인되었겠지.”
“엇, 어어…….”
순간 두 마법사의 얼굴에 짧은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간 수준이었다.
“마, 맞습니다. 혹 누군가가 이 물건에 대해 전하께 알려 드린 적이 있습니까?”
“그럴 리가.”
“아…… 하하, 그렇습니까? 놀라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조금은 아쉽군요.”
……그런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강철판을 넘겨받으며 짧은 상념에 빠졌다.
다른 어떠한 감상은 아니었다.
‘확실히 아직까지는 어설프군.’
회귀를 겪은 내게는 익숙한 형태였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말 그대로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 자체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특히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 용도에 있었다.
“몸을 보호해 주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은 없나?”
“예?”
“내부에 각인 된 수식이 보호 마법 하나뿐이냐고 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 기술의 진화는, 여러 개의 마법을 강철판에 담는 것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자면 착용자의 컨디션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활력 증대 마법이라든가, 상태를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 온도 유지 마법 따위를, 상황에 맞게 각인시킨 형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던 연구소장 크롬웰은 당황하며 말했다.
“저, 전하. 여러 개의 마법을 한 매개체에 각인시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지?”
“음각된 술식이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거나, 운이 나쁘다면 착용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그렇기에 강철판에 수식을 음각시키는 작업은 무척이나 고되고 세밀한 일이었다.
성과가 있음에도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도,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유였고.
……하지만 그건 현대 마법사들의 얄팍한 지식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수식을 음각시키지 않으면 될 뿐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간단한 이야기다.”
나는 강철판 옆에 있던 마정석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공에 그린 마법진을 인쇄하듯 강철판에 덧붙여라. 수식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미세하게 거리를 유지한다면, 몇 장이고 원하는 수식을 붙여 넣을 수 있을 것이다.”
“……!”
“그, 그게 대체 무슨……!”
그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
두 마법사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더 없을 정도의 경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