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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51화 (5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1화

마탑 (3)

“아직 멀었나?”

“그, 그것이…….”

나는 짐짓 여유롭게 턱을 괴며 말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찻잔은 식은 채로 방치된 지 오래였다. 또한 무언가를 상의하기 바쁜 마법사들의 모습은 아직도 분주해 보였다.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마도 그 실현을 두고 가능성을 논하는 모양이었다.

뭐,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저들에게 알려 준 지식은, 20년의 세월을 거쳐 발전한 미래의 기술이었으니까.

‘마정석을 마법진에 활용하는 기술이 나온 것은 10여 년 정도겠지만.’

하여튼. 지금의 저들에게 있어서 마법진을 덧대는 것은, 그야말로 혁신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저들에게 일부러 미래의 기술을 알려 준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최소 20년의 발전을 앞당긴 셈이다.’

마법진을 덧대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시에도 훌륭한 기술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크게 상용화되지 못한 비운의 기술이었다.

이미 대상의 마나를 흩트려 버릴 수 있는 ‘마법 각인’이라는 아티팩트가 널리 알려진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 지점부터 이미 20년이나 앞당겨진 뒤라면?

그것도 모자라서 드워프들의 무구와 마법 각인의 정보까지 에스테반의 손에 쥐고 제어할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갑옷을 뚫을 방법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로 무장한 에스테반의 기사들은, 타국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강함을 지니게 되리라.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미래겠지.’

내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 있을 터였다.

그래, 이를테면 이번 사찰을 통해 ‘놈들’의 정보를 차단한다든지 말이야.

나는 시계를 한 번 쳐다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를 발견한 윌포드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시간이 늦는군, 슬슬 사찰을 이어 갔으면 좋겠는데.”

“죄,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예?”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구소장이 보이질 않는군.”

“음? 크롬웰 공 말씀이십니까? 아까 전에 연락을 보내 두었으니…… 아, 마침 도착했군요.”

때마침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연구소장 크롬웰이었다.

크롬웰이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전하.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지시사항을 전달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렇군.”

“하하, 역시 연구에 정통한 사람이 함께 안내해 드리는 것이 좋겠지요.”

부탑주 윌포드가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다음 연구실을 향해 손짓했다.

“시간을 지체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연구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인 훈련장이었다.

금방의 장소가 아티팩트의 제작을 위한 공방이었다면, 이곳은 여러 마법이나 아티팩트의 성능을 실제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겠지.

크롬웰은 그곳에서 종이 뭉치 여러 개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이 종이는 스크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스크롤?”

“예, 물체에 마법적인 성질을 부여해 주는 소모품입니다. 거의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는 기술 중 하나이지요.”

“호오.”

드물게 감탄사가 나왔다.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던 기술이었던 탓이다.

나는 마탑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흥미가 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스크롤은, 기사들의 검에 일시적으로 마법을 부여해 주는 효과를 지녔습니다.”

“그렇군.”

실험을 위해 비치된 단검 위로, 기하학적 무늬가 화려하게 그려진 종이 한 장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러자 종이 위로 그려졌던 무늬가 살아 움직이듯 빛무리로 화해, 단검을 향해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빛무리가 흡수되고 남은 것은 미약한 빛이 남아 아른 거리는 단검이었다.

크롬웰은 그 단검을 집어, 내게 건넸다.

“전하께서는 검술에 일가견이 있으시다지요. 한 번 간단하게 그 효능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직접 사용해 보고 효과를 체감하라는 모양이었다.

“……뭐, 그러지.”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에 단검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단검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그 외형부터 확인해 나갔다.

하지만 빛이 아른거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형적인 측면은 통상적인 단검의 사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성능은 어떨까?

까드득!

“……!”

순간, 부탑주와 연구소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내가 단검을 감싸고 있던 손바닥을 순식간에 오므려, 칼날을 세게 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떨어져 내린 것은 배어 나온 핏물이 아니었다.

챙그랑-!

“저, 전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 칼날이, 땅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손바닥이 아닌 칼날이 상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법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손이……!”

“호들갑 떨지 마라.”

나는 쇳조각을 마저 털어 낸 뒤에 손바닥을 살폈다.

……칼날을 쥐었던 손바닥에는 오러를 덧씌우지 않았음에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내 눈썹이 불만족으로 꿈틀거렸다.

‘차이가 없군.’

역시 크게 변하지 않은 외형만큼이나 그 내용물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모양이겠지.

뭐, 그럴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구두 굽에 차이는 쇠붙이를 보며 무던히 말했다.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달리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

마법은 등가교환이다.

비록 손끝에서 벌어지는 이적의 대가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아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마나’라는 힘을 끌어다 쓴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리라.

그렇기에 이 기술은 쓸모가 없었다. 마력을 증폭하고 유지시켜 줄 매개체는 마나가 거의 없는 종이 따위에 불과했고, 강화랍시고 집어넣은 마법의 실용성은 더더욱 부재했다.

만약 이를 보강하기 위해 마정석을 사용한다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겠지.

쉽게 말하면 기본도 지키지 않은 보여 주기식 연구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들어 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

……애초에 실적용으로 만든 마법에 실속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

그 순간, 내 시선이 스크롤 뭉치 옆으로 나열한 서류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담당 연구 마법사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는, 황당함에 실소가 나올 뻔했다.

“내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이름은 윌포드 자네가 육성 중인 제자의 것으로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이 연구에 얼마만큼의 지원금이 투자되었지?”

본질을 꿰는 질문이었다.

이에 평온으로 일관하던 윌포드의 눈썹이 처음으로 잘게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 동요는 찰나였고,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래의 말끔한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하하…… 부디 오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부탑주의 제자라고 해 봐야, 받는 지원금은 여느 마법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별다른 특혜도 없고요.”

“…….”

“상용화에 가까워졌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아직 개발 중이라는 뜻이니, 본디 조금만 손본다면 충분한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겠지요.”

“……그렇군.”

저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려는 실소를 삼켜 내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저따위 스크롤이 아니라, 마탑에 잠입한 공작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대화를 지켜보던 연구소장 크롬웰에게 말했다.

“슬슬 가장 자신 있는 성과를 보여 주었으면 좋겠는데.”

“예, 1왕자 전하. 따라오시지요.”

마지막으로 그들이 안내한 곳은, 엄중한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는 마탑 최심부의 연구실.

그중에서도 연구와 관련된 관계자들이 아니라면 접근이 불허될 정도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연구물은, 나 역시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왕국 마탑이 자랑하는 인공 마정석입니다.”

자연에서 탄생하는 통상적인 마정석과는 다르게, 푸른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자그마한 보석 조각.

크롬웰은 자랑스러우면서도 뿌듯하다는 듯 네모난 유리 장식장 안에 담긴 물건을 설명했다.

그 열의가 가득한 몸짓과 말투는 짐짓 과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실제로 저 안에 담긴 물건은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대기 중의 마나를 응집시킨 것을 마법사가 결정화 시킨 것이군.”

“예, 그렇습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크롬웰은 내 물음에 당당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에 은색의 마법진이 수놓인 로브가 파도치듯 흩날렸다.

“왕국 마탑의 연구진들은, 이 기술을 발전시켜 농축된 마정석을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호오.”

“물론 아직 까지는 농축된 마정석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응집 마법진을 개량한다면 더 적은 인력으로도 양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 마정석의 모습을 상세히 담아냈다.

새삼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정말로 놀라울 정도의 기술이다.

전시상황이 아닐 때에는 이처럼 마정석을 미리 양산해 두고, 전투가 벌어지면 부족한 마법 전력을 대신해 이용한다는 그 발상부터가 말이다.

앞서 보았던 수호 속성 아티팩트가 발전의 방향성을 나타낸 것이라면, 이 마정석은 에스테반의 고유 마도학을 담아낸 정수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대단하군.”

“흠흠…… 해당 연구의 책임자이신 마탑주님의 지식과 왕실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연구소장 크롬웰은 결코 인색하지 않은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로 그 칭찬이 기쁜 듯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정석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입가에 맺힌 감정은 조소였다.

“그래?”

인공 마정석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되어 온 기술이었다.

당연히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연구는 회귀 전에도 계속되었으며, 실제로 연구는 나날이 진척되었다.

마침내 그 수준은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까지도 올라왔다고 마탑이 자부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그건, 인공 마정석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있던 것이 에스테반 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연구의 내용이 탈취당한 것이다.

‘연방제국, 바로 놈들의 손에 의해서.’

생각을 이어 가던 내 눈썹이 비뚤게 들어 올려졌다.

놈들은 연구 인력이 넘친다는 점을 이용하여 에스테반보다 한발 빠르게 인공 마정석 기술을 상용화했다.

때문에 에스테반의 왕국 마탑은 순식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그 마정석 기술마저도 에스테반보다 훨씬 진보했으니, 애써 연구한 것들이 연방제국의 아래에서 무력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인공 마정석 기술뿐만이 아니라, 다른 연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때에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지.’

하필이면 연방제국과 연구 주제가 겹쳤고, 하필이면 그들이 먼저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다. 엄중한 보안으로 지켜지는 마탑 내부에, 기술을 빼내는 공작원이 잠입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것도 내부의 보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높은 사람이 공작원일 거라고는, 그 누구라도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뭐, 이제는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래, 이제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도리어 거기에서도 그치지 않으리라.

진일보(進一步).

에스테반의 기술은 그 어느 나라도 좇지 못할 정도로 앞서 나가게 될 것이다.

또한 인공 마정석의 기술 역시, 회귀 전의 연방제국이 만들어 낸 것에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성취를 이루게 되리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지시하에서, 그렇게.

그 순간, 유리 장식장에 비친 내 눈이 번뜩 빛났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기술의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던가?”

“예?”

갑작스럽게 꺼내어진 이야기에 윌포드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내 품속에서 무언가가 꺼내어지는 순간, 그 눈매가 좁게 일그러졌다.

……그건, 상단에서 회수해 온 공작원들의 서류였다.

“잘 됐군. 때마침 나 역시도 자네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으니.”

마탑 내부의 상황은 충분히 알아봤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일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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