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2화
마탑 (4)
“…….”
최심부의 연구실, 그곳으로 기이한 감각이 흘렀다.
답답함? 긴장감?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이함’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꺼내든 서류를 음미하듯 훑어보는 나에게서 흘러나온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리라.
이윽고 나는 꺼내든 서류를 우아하게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곱씹듯 그 내용을 감상해 나갔다.
“최근 내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지.”
“어떤 것입니까?”
“에스테반의 기술을 타국에 팔아넘기는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떨리는 눈썹. 그리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지금껏 없던 동요가 윌포드의 몸에서부터 일었다. 하지만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려지는 고개는 놀랄 만큼이나 침착했다.
“……마탑의 기술을 말입니까?”
“나는 마탑의 기술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만?”
“…….”
“뭐, 이 마탑 역시 공작원들이 숨어 있는 장소 중 하나로 추측하곤 있지. 방어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는 그 단서로부터 나왔다.”
마침내 모조리 훑어 넘겨진 장부가, 처연하게 건네져 그들의 앞에 멈춰 세워졌다.
“자네들도 보겠나?”
“…….”
그토록 간단한 권유가 이리도 태연자약하게 강요로써 다가온단 말인가?
마지못해. 하지만 누구보다 이 이야기가 놀랍다는 듯 서류를 받아 들은 윌포드가, 재빠르게 이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크롬웰 역시 놀란 표정으로 옆에서 그 서류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가.”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목소리는 점차 무감각해져만 갔다.
하나 애초에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서류에 담긴 내용은, 더도 덜도 아니고 오로지 마탑 내에서 벌어진 진실만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자네들이 보기에는 마탑에 숨어들은 공작원들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있나?”
“……그건.”
마주한 눈동자들 속에 비친 붉은 안광은 오만했다.
그리고 굳게 닫힌 입술은 더할 나위 없이 무표정했으며, 내려다보는 눈길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싸늘하게 공기를 옭아매고 있었다.
기어코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지그시.
“…….”
그러나 서류를 끝까지 읽어 내린 윌포드의 고개는 하염없이 내저어지고 있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다. 다만 요양 중인 마탑주님이라면…….”
“자네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가?”
“……예.”
내 시선은 그를 지나 다음 목적지를 향했고, 이윽고 놀란 기색이 역력한 연구소장 크롬웰에게 닿았다.
“자네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렇군.”
……어느덧 마탑 최상층을 짓누르던 압박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그 정도면 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협조해 줘서 고맙군.”
“……예.”
윌포드가 흘러내린 땀을 시급히 닦아 내며 짧게 답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유리 장식장 내부에서 발광하는 마정석을 쳐다본 뒤에, 그들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있던 추궁은 기억 저편에 묻어 둔 것처럼 평온하게.
“더 안내할 것이 없으면 슬슬 나가지.”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역할에는 반드시 충실해야 한다는 듯, 윌포드는 재빨리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 최상층의 연구실을 나섰다.
철컥-
“어?”
연구실의 문을 열고 나오자, 보안을 위해 문 앞을 감시하고 있던 경비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할당된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으나 예상보다 빠르게 연구실을 나선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지나쳐 걸어가며, 부탑주 윌포드에게 궁금했던 사실만을 물었다.
“회의실은.”
“아, 슬슬 준비가 끝났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군.
아무런 언급조차 되지 않은 급작스런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회의실 사용의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따위 구색 맞추기 연극에도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
“출발하지.”
“예, 전하. 이쪽으로…….”
“그 전에.”
서걱-
“어…….”
그 순간.
감미로운 음률처럼 흘러나온 절삭음이 퍼지고, 그와 동시에 붉은색 물방울들이 허공을 갈랐다.
잠시 시선을 돌렸던 마법사는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움직이려 했으나, 메스껍게 몰아치는 구토감과 몽롱한 정신이 이를 방해하듯 그들의 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 당연하겠지.
이내 그는 절로 거꾸러지는 몸뚱어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덕분에 바닥으로 부딪혀 꺾인 목으로나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 결과적으로는 그가 원했던 대로 되지 않았겠는가?
아마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로 얼룩져 회수되고 있는 청록색의 검신과 어떠한 감흥도 없이 저를 내려다보는 내 얼굴이었으리라.
“……무, 무슨!”
상황을 지켜보던 경비는 삽시간에 벌어진 상황에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피바다가 되어 버린 마탑 최상층에서, 내 시선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적어도 네놈과 함께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
……세 번째.
처연한 죽음 속에서, 연구소장 크롬웰의 머릿속에 남은 최후의 단어였다.
* * *
나는 내 심장을 꿰뚫었던 전장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다.
독을 먹어 몸뚱어리 하나 똑바로 가누지 못하던 그 상황에서도. 그리고 살의의 열기 속에서 몇 시간이나 폭발했던 아드레날린 속에서도.
그 장면 하나하나를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러니 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나의 기사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뒤에서 내 몸을 옭아맸던 속박의 마법.
그리고 비열하게 웃으며 아수스의 옆에 서 있던 당대의 마탑주.
……엘더 크롬웰.
“어, 어째서…….”
윌포드가 뒤로 물러섰다.
몇 발자국이나 움직였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발걸음을 물렸다.
하지만 버벅거리듯 떠듬떠듬 움직여진 다리로 얼마나 멀리 도망칠 수 있었겠는가?
아쉽게도 그는 사냥을 마친 짐승의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어째서냐고?”
나는 엘베른에 묻은 핏물을 가볍게 털어 낸 뒤에 칼집 속으로 검을 회수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윌포드에게 다가가 웃어 보였다.
“분명 말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탑에 숨어든 공작원들. 그 이야기를 해 준 것은 불과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게 그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정말로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놈은 에스테반을 좀먹는 벌레다. 그리고 이를 직접 처리하는 것은 차기 왕위 계승자인 내게 주어진 의무겠지.”
“…….”
“아무것도 모르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만 움직였다고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누가 왕실을 능욕하려 했고, 누가 죄를 지었는지.
그딴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내용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움직이는 내게 있어 이를 정의하는 것은 손바닥보다 손쉬운 일이었고, 적어도 그 확신만큼은 누구보다도 정확한 실체에 가까우리라.
그러니.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했던 그 추궁은, 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의문일 뿐이었다.
‘연구소장 크롬웰’을 데리고 온 윌포드는 어떤 인물인지. 어째서 윌포드는 후대의 마탑주가 되지 못했는지.
나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놈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뇌까렸다.
“야망에 방해가 될 인물들은 모두 죽였다는 건가.”
그 사고방식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뭐, 인제 와서 그렇게 말해 본다 한들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야.
“따라와라.”
“……예, 예?”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 주지.”
내 눈이 진정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흥미롭게 웃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회의실.
그 문을 열고, 다섯 명의 마법사들이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뭐야? 회의가 있다고 하더니, 아무것도 없잖아?”
“하!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소집한 것이, 스승인 연구소장 크롬웰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쯧…… 일단 불이라도 켜 봐.”
딸칵-
그렇게 한 마법사가 불평을 토로한 순간, 회의실 내부가 급격히 밝아지며 그 모습이 드러났다. 문제는 그들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마법사들이 부신 눈을 다급히 가리며 성질을 부렸다.
“뭐야?!”
“대체 어떤 녀석이…….”
하지만 빛에 적응한 눈이 망막 속에 누군가를 담아내는 순간, 삐져나오던 불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너……!?”
“아, 또 뵙네요.”
“크롬웰은 어디에 있느냐!”
심히 당황스러울 터였다.
크롬웰이 급히 상의할 것이 있다 말했다며 자신들을 호출했던 남자가, 아무도 없는 회의실 내부에 홀로 있었으니.
그것도, 연방제국의 일이란 말을 덧붙이며 자신들을 확신시켰던 남자가 말이다.
물론 정신을 차린 뒤에 느낀 당혹감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봐요, 제대로 불러온 거 맞죠?”
“그렇군.”
“누, 누구랑 대화를…….”
녀석들이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몸을 떨었다.
저들이 결코 이런 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사람이었기에.
“……1왕자?”
“말이 좀 짧은 거 같은데.”
……그래.
회의실에서 놈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였다.
나는 회의실 내부로 들어온 그들의 면면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이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은 건 아니었다.
“다섯 놈. 제대로 불러왔군.”
“……!”
다섯 마법사의 눈이 흔들렸다.
크롬웰로 저들을 유인한 이 상황과 더불어, 연방제국에 대해 아는 남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는 1왕자 까지.
전후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을 테지만,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을 터였다.
그렇기에.
“이런!”
“들켰다!”
크롬웰의 제자…… 아니, 연방제국의 마법사들이 즉각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눈빛들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못내 그 당혹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제기랄, 대체 어떻게?!’
들켰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데 감찰이 나온 적도 없었을뿐더러, 뒤를 잡힌 기색조차도 없었다.
그들로선 이 상황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확실한 사실만이 그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크롬웰, 이 개새끼가……!”
바로. 그들이 꼬리를 들키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는 크롬웰이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만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런 사소한 ‘원흉’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겠지만. 이윽고 마법사들의 살기가 폭발했다.
“연방제국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쳐라! 차라리 죽여서 입을 막아!”
형형색색의 마법이 하늘을 날았다. 곧장 쐐기처럼 달려든 마력 덩어리들이 내 지근거리에 다다랐다.
……그러나.
“죽여서 입을 막겠다고?”
그 순간에도 내 시선은 마법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대화를 곱씹고, 또한 한껏 비웃을 뿐이었다.
“한번 해 봐.”
“무, 무슨……!”
슈우우욱-!
농락하듯 휘둘러진 엘베른이 공간을 갈랐고, 그들이 내뿜었던 마력의 흔적들은 어느덧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 다만 한껏 비웃을 뿐이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
내 눈이 즐거운 것을 감상하듯 천천히 휘었다.
즐거운 것을 보여 줄 시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