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3화
마탑 (5)
마탑의 대소사를 논해야 할 회의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안에서는 비릿한 혈향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회의가 있다는 연구소장 크롬웰의 호출을 받고 올라온 다섯 마법사가 회의실의 내부로 입장한 순간부터였다.
물론, 이미 죽어 버린 크롬웰이 호출을 남길 수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리라.
“……얼추 정리는 끝났습니다만.”
조지는 손에 든 서류를 주책없이 팔랑거리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게 서류를 건네주려 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바닥을 힐끔 쳐다보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바닥에 웅덩이진 붉은 액체가 자신의 구두 굽을 흠뻑 적신 까닭이었다.
“에라이.”
남작님이 비싼 거랬는데…….
그렇게 녀석은 한 사발 욕을 구시렁댄 뒤에 기어코 서류를 건네며 웅덩이 위를 빠져나갔다.
찰박, 찰박.
까치발을 들고 경망스럽게 움직이느라 핏물이 튀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작은 핏방울들이 검은색 제복 바짓단을 물들인 뒤였다.
“아이 씨…… 아무튼, 마탑에 잠입한 공작원은 크롬웰 아래에 있던 이 다섯이 끝입니다. 장부도 확인한데다, 전하께서 얼굴까지 확인하셨으니 확실하겠죠.”
“잘했다.”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앉은 자리에서 서류를 들춰보았다.
그러자 녀석은 괴이한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표했다.
“조금 더 칭찬해 주면 안 됩니까? 이번만큼은 저도 마탑의 보안을 뚫느라 고생했는데요. 덕분에 마탑 내부 구경도 못 해 봤고…….”
“훌륭하군. 상으로 이번 일이 끝나면 휴가를 보내 주지.”
“…….”
조지의 말문이 황당함으로 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묵묵히 녀석이 훔쳐 온 ‘연구소장’의 장부를 읽어 내릴 뿐이었다.
찝찝하다는 듯 언짢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직후였다.
“그런데 계속 거기에 앉아 계실 겁니까?”
“문제라도 있나?”
“그건 아닌데…….”
조지의 시선이 내가 앉아 있는 의자로 향했다.
실제 의자는 아니었고, 단순한 예시로 들자면 잠시 머무르기 위해 만든 장소쯤 되리라.
공작원들의 시신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간이 의자였다.
“……뭐, 그게 마음에 드신다면야.”
물론 조지가 느낀 감정은 혐오감 따위가 아니라 신기함에 지나지 않았다.
1왕자의 역할에 충실한 내가 연방제국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녀석이었으므로.
때문에 이 상황에 납득하지 못한 것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회의실에 함께하던 윌포드뿐이었다.
“맙소사…….”
마탑 내부에서 1왕자가 살인을 저질렀다.
그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고 허무맹랑한 소리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수도 무려 가디언급 마법사를 포함해 모두 6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연구를 빼돌리던 공작원이라고는 했지만…… 실감도 나지 않는 이야기보다 당장 눈앞의 시체가 아른거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회의실로 불려온 다섯 명이 정체를 들킨 것을 깨닫자마자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이성조차 똑바로 붙들고 있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건 내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알아보라 시켰던 것은?”
“그것이…….”
윌포드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정말로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마탑주님이 요양 중이신 방에 연구소장 크롬웰이 출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기록은 어저께입니다.”
“그렇겠지.”
단편적인 정보.
하지만 나는 이미 마탑주가 앓아누웠다는 것과, 그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후에 마탑주의 자리로 오를 크롬웰의 성격과 행보를 조합하면, 상황은 명확히 드러난다.
‘역시 놈이 마탑주를 죽이고 자리를 빼앗으려 했나.’
나는 조소를 흘리며 시체 위에서 일어섰다.
회귀 전의 시기로 계산해 보면, 마탑주가 죽기까지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조금만 늦었어도 머지않아 마탑주가 죽었으리라는 말이다.
의도치 않게 그 계획마저 깨부순 셈이었다.
“마탑주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겠다.”
“……알겠습니다. 하면, 시체는.”
“정리할 이들이 곧 도착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도록.”
나는 아직까지 굳어 있는 윌포드를 뒤로하고 회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 웅덩이와 시체 사이를 거닐었음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이곳입니다.”
우리는 마탑의 최상층.
……그리고 그보다 더 위에 있는 ‘마탑주’의 방에 들어섰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조명 빛 아래에서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은, 어떠한 미동도 없기에 언뜻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 옆에 주렁주렁 이어진 기구들이 노인의 현 상태를 말해 주는 듯싶었다.
애초에 저것을 살아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마법에만 의존하여 생을 연명하고 있는 저 썩은 몸뚱어리를?
도리어 숨 쉬고 있는 것이 용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노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사실은.”
마탑주의 앞에 선 윌포드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최근이라 말씀드렸지만, 이미 마탑주께서는 반년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반년?”
그 익숙한 단어가 주는 울림에, 인상을 찡그리고 마탑주를 바라보던 조지가 반문했다.
이에 윌포드는 마탑주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시름시름 앓더니, 돌연 석 달 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설명했다. 조지의 눈썹이 꿈틀거린 것은 당연했다.
“반년이라면.”
“그래. 아수스 사태가 낱낱이 밝혀지기 바로 전이다.”
나는 확답하듯 조지의 중얼거림에 응답했다.
공교롭게도. 조지에게 반년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듯, 이 장면 자체도 내게 있어서 익숙한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반년이라는 그 단어와 현재 상황이 겹쳐 보인 탓도 있으리라.
“독약을 먹였군. 익숙한 것이다.”
“뭐, 정황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이네요.”
내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필시 그 독약의 정체는 회귀 전 아수스가 아버님께 먹였던 물건과 동일한 것.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회귀 전에는 10년에 걸쳐 희석시킨 것을 먹였기에 천천히 기력이 쇠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보다 진한 것을 먹였기에 금세 쓰러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윌포드는 입술을 깨물며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실시한 혈액 검사에서도 독과 관련된 것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국왕 암살에 사용될 정도의 독약이 그리 쉽게 검출될 거라 생각했나?”
“그건…….”
“이마저도 희석시킨 것이기에 검출될 확률은 처음부터 적었겠지. 하물며 마탑의 자체적인 검사라면, 범인이 결과를 조작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 실제로 그의 직책이 뭐였지?”
“…….”
상대는 마탑주의 직계이자 가디언급의 마법사였다.
정녕 진실을 밝혀내고 싶다고 했다면, 마탑주의 상태를 세간에 알리는 한이 있더라도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윌포드는 내 말에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내 수긍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 말씀은 원인을 짐작했으니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겠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손만 빨고 있던 때와는 다르다.
왕성에도 아수스에게서 발견한 독을 연구했던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마탑주의 몸을 잠식한 독도 해결이 가능하리라.
……윌포드는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니.”
나는 단언했다.
“이미 늦었다.”
“……!”
지속적으로 독약을 먹였으니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해독약을 먹인다 한들 이미 몸속으로 흡수된 독의 후유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해독제를 먹이고 정신을 일깨워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 가게 하는 것 보다, 이대로 편안히 잠들게 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잘못된 대응의 최후였다.
……하나.
나는 머릿속에 든 생각을 내뱉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운이 좋았던 모양이군.”
“그, 그게 대체…….”
충격으로 말문이 막힌 윌포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속으로 퍼진 독소가 활로조차 없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또한 절벽 끝에 내몰린 그 신체가 잔혹한 죽음을 종용받고 있는 상황의 어디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전하께서는 이토록 끔찍한 상황을 보시고도!”
“아니. 그는 정녕 천운을 타고 났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
다만 평범하게 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도리어 집념에 가까운 것이리라.
문득. 내 시선이 마도구가 어지러이 펼쳐진 방의 전경을 담아 냈다.
‘이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는 것인가.’
지금 노인의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지기 직전인 상태였다.
또한 일말의 생명력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남은 것이 없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어야 할 생존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몸을 잠식한 독이 적절할 때 생존 의지를 일깨웠다는 것이지.’
충분하다.
또한 그것이면 되었다.
나는 씩 웃은 뒤에, 누워 있는 노인에게로 오른팔을 뻗었다.
“기껏 놈의 계획을 망쳐 놓았거늘, 이리도 간단히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
손이 닿은 곳은, 노인의 심장이 있을 왼쪽 가슴 부근. 수명을 연장시켜 줄 각종 기구 따위가 덕지덕지 붙은 위치였다.
곧 오른팔에 각인된 문신이 번뜩 빛나며, 소매가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저, 전하?”
당황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윌포드.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으며, 몸속의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발동되고 있는 오른팔의 마법각인이 아니라, 내 본연의 기운이자 수족과도 같은 검왕의 오러를.
그리고…….
쿠구구구구구궁-!
“……허억!”
“캑!”
두 기운이 맞닿은 곳에서 마치 폭발과 같은 파문이 일었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듯 상충된 두 기운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길을 따라 질주했으며, 주변의 모든 이물질을 태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또한 이에 동조한 대기 중의 마나가 재빠르게 흡수되며 마법각인을 채워 나갔다.
쿠구궁-!
그러나 한 번 뚫린 길목은 결코 닫히지 않았고, 그 방향은 오른팔을 통해 손끝으로. 그리고 맞닿은 노인의 몸속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검왕의 오러는 흐르는 상황이었고, 대기 중의 마나도 노인의 몸으로 빠져나간 양을 채워 넣기 위해 주변의 마나를 모조리 흡수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공간이 내 오른팔을 향해 휘고 있는 것처럼. 오러를 운용하면 운용할수록, 도리어 더욱 강한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쿨럭-!”
“마탑주님!”
노인은 죽은피를 토해 냈다. 또한 그 얼굴의 혈색조차 평이하기 그지없었다.
마법각인을 이용한 신체의 활성화.
오러에 비해 부족한 신체 능력과 마법각인의 동화율을 올리기 위한 그 인위의 폭주가, 그렇게 전혀 의외의 상황에서 타인에게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맙소사.”
쩌적-
노인의 썩은 몸이 갈라진다.
이내 우화할 준비를 마친 듯, 갈라진 몸이 찢어지고 삽시간에 뽀얀 살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대기 중의 모든 마나가 남자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일순간 세상을 이루는 원소가 사라진 광경은…… 마치 무저갱 저 아래에 무대가 있다고 말하듯 무채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아, 아아……!”
이는 조지는 물론이고 마법사인 윌포드 역시도 익히 알고 있는 현상이었다.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적이리라.
대마법사, 엘더를 초월한 ‘로드’로의 각성(覺醒).
윌포드는 주변의 마도구가 모조리 망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경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