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4화
마탑 (6)
쿠구구구구구궁-!
마탑의 마법사들은, 일순 몸을 지배하는 기묘한 흐름을 관측했다.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며 텅 비어 버린 대기 중의 마나와, 후폭풍처럼 몰아친 거센 기류는 원치 않아도 두 눈이나 몸 따위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통제할 수 없는 현상.’
또한 마법사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경외. 마법사인 그들로서는 도무지 거스를 수 없는 의문의 현상이었으리라.
“큭……! 갑자기 무슨 일이…….”
“빠, 빨리 상부에 알려!”
그리고 그 몇 초라는 시간 동안 세상은 격변하듯 움직였다.
마나라는 동력원을 잃어버린 마탑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도 했고.
또한 각자의 일에 집중하던 마법사들이 답지 않게 기함하며 동분서주 움직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여태껏 없던 초유의 사태였다.
……그 순간.
“……!”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던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멎었다.
마탑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왔기에 걸음을 멈춘 것은 아니었고,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없기에 멈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앞선 현상들이 빛바래 보일 정도로 강대한 무언가가 새로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몸이 저도 모르게 통제를 벗어났다고 설명해야 옳을 것이다.
“……대체.”
마법사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 모든 흐름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의문과 조우했다.
혼란 속에서 팽창되고 있는 한 점의 거대한 진리를 향해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존재감을 향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
마탑 최상층의 마탑주의 방에서, 모든 이변은 시작되고 있었다.
고오오오-
“…….”
내내 감겨 있던 남자의 눈이 천천히 띄어지기 시작했다.
삭막한 방 안의 공간 대신 한낮의 푸른 하늘을 하얀 도화지 속에 수수히 담아내듯. 정연하고 맑은 안광을 눈부시게 빛내면서, 그렇게.
……마침내.
파앗-
온전히 띄어진 푸른빛의 눈은, 고오하고 짙은 안광을 남기며 세상을 괄목했다.
그러자 폭주하듯 요동치던 주변의 마나들이 순식간에 진정되며 그 꼬리를 감추었다.
진정한 ‘로드’의 앞에서는, 세상을 이루는 원소 존재조차도 한낱 억압받는 피지배자에 불과할 뿐이었으므로.
그 완성된 격은 더 이상 죽어 가던 한낱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마, 맙소사……!”
누구보다 당당하고 완성된 대마법사, ‘로드’의 모습.
……또한 그 모습은. 가히 마법사라는 명칭조차 ‘멸칭’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마탑주님!”
윌포드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마탑주에게 다가갔다.
젊고 활기가 넘치는 몸. 그리고 난데없이 달려드는 부탑주의 모습까지.
막 정신을 차린 마탑주로서는 이 상황이 사뭇 당황스러울 법도 했으나, 왠지 모르게 침착하게 옷깃을 추스르며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킬 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그가 한 행동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마, 마탑주님?!”
마치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것처럼.
대뜸 감사의 인사부터 건네는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역시 의식은 있었군.”
“예. 그렇습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던 석 달의 시간.
마탑주는 의문의 병세로 죽은 듯 잠을 청했으나, 애초에 단 한 순간도 의식을 잃었던 적이 없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윌포드의 표정이 서서히 경악으로 번져나갔다.
“……마탑주님? 그게 무슨.”
“전하의 말씀대로. 독에 당한 탓에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내 몸을 이루는 감각은 살아 있는 것처럼 계속 남아 있었네.”
“그, 그 말씀은…….”
“……몸을 잠식하던 독의 고통. 썩어가는 살점들의 감촉. 나를 걱정하던 자네의 목소리.”
그리고 욕망에 휩쓸려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이들의 살의까지.
순간, 뒷말을 잇는 마탑주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탑주와 시선이 마주했을 때는, 이미 그의 눈이 격노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비통함을 느끼고 있었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마법 각인의 마나와 오러를 그의 몸으로 흘려보냈을 때쯤.
그러니까. 그의 몸속에서 상충된 두 기운이 폭주를 일으키던 시점이었다.
‘분명 평소와 다르게 더 강한 마력의 힘이 오러를 잡아끌었지.’
마치 스스로에게 더 많은 기운을 내어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흐름에 맞춰, 나 역시도 더 많은 양의 오러를 방출했다.
그것이 죽어 가는 마탑주가 잡은 최후의 생존본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므로.
결과. 마탑주는 그릇을 깨고 세상의 ‘진리’에 다다랐다.
아마도 몸속에서 기운이 폭주하는 그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터나,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각오하고 행한 일이 죽음 사이에서 더한 이상을 엿보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가진 감정은 분노였다.
“크롬웰. 놈은 내게 꾸준히 약을 먹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부탑주인 자네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스스로 마탑주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네.”
“…….”
“그리하여 마탑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연방제국으로 연구를 빼돌리는 일이 수월해질 거라고 했을 터.”
“……!”
……연방제국이라고?
윌포드는 그 이름을 듣자 경악에 눈을 부릅떴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들이 연구 기술을 빼내려고 했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하나 회의실에 쌓아 둔 그 시체들이, 그리고 눈앞에서 죽은 연구소장 크롬웰이, 설마 ‘연방제국’에서 보낸 공작원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그와 반대로 마탑주의 표정은 더욱이 시린 침착함을 띄었다.
“이미 앞서 하신 이야기들은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군요.”
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언급 마법사의 배신. 놈을 놔두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예정대로 움직였다.
놈에게 ‘죽음’이라는 복수를 내려줌으로써 말이다.
“복수할 대상을 죽여 버린 내가 탐탁지 않은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당한 목소리와 행동에 걸맞게, 그의 눈은 더없이 확고한 믿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알베도 전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가?”
“예. 잠시나마 그분의 스승이었던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마탑주의 눈길이 내 오른손에 닿았다.
“또한 지금 제 눈에는 세상을 이루는 원소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전하께서 느껴지는 붉은색의 오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단 하나, 전하께서 품고 계신 힘의 깊이와 그 감정만큼은 제 눈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와 내 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그 감정.
그건, 감히 로드의 자리에 발을 들인 초인으로서도 감히 재단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
털썩-!
그는 바닥으로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였다.
마치 스승에게 가르침을 빌듯 더없이 공손한 자세.
어쩌면 일개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
“저는 전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목표가 뭔지 모릅니다.”
결코 알지 못했다. 알 수도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짐작 속의 목표는 자신의 분노와도 닮아 있는 것이었음에도, 평생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뼈에 사무치도록 확실했다.
“전하께서 구해 주신 이 몸, 영원히 왕가와 마탑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반드시.
그것이 자신을 복수로 이끌어 주리라는 사실을.
그는, 결연한 목소리 속에 숨긴 분노를 억누르며 영원을 불태웠다.
* * *
일행이 쉬고 있는 방으로 윌포드가 들어왔다.
시선을 던지자, 그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심하듯 한숨을 길게 토해 냈다.
“……몸 상태는 확실히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으나,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으니 진찰을 해야 한다며 내부를 마나로 투영한 결과였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겠지.”
안정되다 못해 정순해진 기의 흐름은 확실히 그가 대마법사의 경지로 발을 들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탑주의 몸에 흐르는 기의 흐름이 달라져 있다는 것쯤은…… 적어도 내게는 진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때문에 이 상황은 꽤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대마법사라…….’
그것을 표하는 단어는 많았다. 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표현들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두 개를 선택할 수 있었다.
……비대칭 무기. 혹은 상호확증파괴.
그 전략적인 무기는 더 이상 일개의 개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개개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힘이었고, 뭇 일국이라 부르는 세력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리라.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는 내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크롬웰이 내게 선물을 안겨 주고 가는군.’
분노.
전략적인 가치를 가진 에스테반의 무기는, 그 덕분에 복수라는 확고한 목적성을 가지게 되었다.
목표물을 조준한 무기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하물며 그것은 나의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나만을 은인으로 섬길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녀석이 준 선물이란, 정말로 뜻깊은 것이 분명했다.
“아마 조금만 기다리시면 마탑주께서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부탑주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나와 조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기다리시는 동안 마실 차를 올려보내라 일러두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지.”
“감사합니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상념에 빠졌다.
그 순간.
덜컥-
방의 문이 열리며 열두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내부로 들어왔다. 손에 들린 쟁반과 그 위로 올려진 찻잔을 보니, 심부름을 맡은 아이인 모양이었다.
“아, 도착했군요.”
윌포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아이는 작은 몸집에 비해 커다란 로브를 펄럭이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넘어질 것 같은데요.”
우당탕-!
“앗!”
그 로브가 너무도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비뚤어진 조지의 목소리가 원인이었는지. 아이는 도착까지 고작 몇 발자국만을 남긴 채로 로브 자락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윌포드가 흠칫 놀라며 팔을 뻗어 아이를 잡으려 했지만, 보다 빨리 뻗어진 것은 내 오른손이었다.
덥석-
“……아!”
“이럴 줄 알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나는 윌포드의 경악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하필이면 나를 향해 넘어진 것은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불행이었을까.
아이는 아무 데도 다친 곳 없는 모습이었고, 달라진 것은 오직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울먹이는 표정뿐이다.
……그러나 아이를 일으켜 세운 나는 아니었다.
“……너는, 대체 뭐지?”
그 표정은, 드물게 놀라움으로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