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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55화 (5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5화

마탑 (7)

“너는, 대체 뭐지?”

삽시간에 싸늘히 내려앉은 침묵은 그 자체로 아이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당황한 윌포드가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다가오려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이를 제지했다.

물론 그런 내 시선은 아직까지도 아이를 주시한 상태로 떠나지 않은 채였다.

“부탑주 윌포드.”

“죄, 죄송합니다, 전하. 교육받은 인원을 보내 달라고 일러두었어야 했는데…….”

“지금부터는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도록.”

나는 제복 사이로 드러난 오른팔을 매만졌다.

곧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 아이는?”

“그, 그것이, 오래전에 재능을 인정받고 마탑으로 들어온 수행마법사입니다.”

“그딴 것을 물어본 건 아닐 텐데?”

아이의 몸이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구태여 그딴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을 테지. 그렇기에 내 신경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이 아이가 내 ‘마력’을 깨뜨렸다.”

“……예?”

……마력?

그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선문답에 조심스럽게 되묻다가도, 곧 마탑주의 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는 마력이라는 것이, 오른팔에 각인된 아티팩트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말씀하신 깨뜨렸다는 것은…….”

“말 그대로다.”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이를 윌포드에게로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말을 이었다.

“아이에게 닿는 순간, 발산되던 마력이 무력화되었다.”

“……!”

마법각인은 축적된 마나를 소모해 타인의 마나를 흩어 버리는 능력 외에도 여러 응용법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예시라고 한다면, 바로 일전에 보였던 마력 복사(複寫)를 꼽을 수 있겠지.

하지만 방금 깨어진 것은 그와 다른 응용법으로 만들어진 ‘형체’였다. 각인 내부에 쌓인 마나를 방출하여 상시적인 보호막을 이루는 ‘장벽’.

그것을 깨뜨리는 일은 더욱 강한 마력을 쏟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터인데…….

“전하.”

그때, 윌포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에게서 시선을 옮겨 쳐다보자, 윌포드의 표정이 곤란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사실, 이 아이를 데려온 것은 연구소장 크롬웰입니다.”

“크롬웰?”

“그렇습니다.”

놈의 이름을 듣는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반응을 확인한 윌포드는 즉각 손을 내저으며 첨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가 그자처럼 나쁜 의도를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애초에 가디언급 마법사가 수행마법사를 데려오는 것도 흔한 일 중 하나이고요. 단지 전하께서 아이에게 의구심을 품으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

“하나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이 아이에 대해 직접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리하면 전하께서 품으신 의구심도 풀리겠습니까?”

“……그렇군.”

앞서 밝혀진 공작원의 존재와 마탑주로 인해, 윌포드 본인도 이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큰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먼저 변명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아이가 내 관심을 끈 것이 못내 걱정되어서겠지.

수상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그 사실이 추가적으로 밝혀지는 것보다야, 미리 그 점을 밝히고 감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조사라고 해 봐야 공작원들과의 관계를 묻는 것뿐이지만…….”

“필요 없다.”

“……예.”

나는 그렇게 일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저런 아이는 용의선상에 있지도 않았다. 경각심을 가졌을 부탑주가 감싸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그러니 나는 도리어 궁금한 것을 물을 뿐이었다.

“재능을 인정받고 수행마법사로 들어왔다 했나?”

“그렇습니다, 전하.”

“하면 그 재능이라는 것이 뭐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어쩌면 크롬웰 따위보다도 더욱 중요한 질문.

이에 윌포드가 기억을 더듬더니,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을 읊조렸다.

“제 기억상으로는 아마도 ‘발현’이었습니다.”

“발현?”

“가진 마나를 토대로 몸 밖으로 무언가를 이끌어 내는 힘입니다.”

발현은 마법의 가장 기초였다. 마법진을 만들거나 마나를 방출하는 것 역시도 그 일부에 속했다.

검술로 치면 파지법이나 자세를 교정하는 일 따위가 비슷한 예시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가 가진 재능은 거기까지가 끝이었습니다.”

“무슨 뜻이지?”

아이는 이미 패닉에 빠져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는 상태였다. 도무지 진정될 기미도 보이질 않는 그 모습에, 윌포드는 조심스레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래전. 아이가 만든 정교한 마법진을 보고 압도적인 재능이라 판단한 크롬웰이 수행마법사로서 데려왔지만, 아쉽게도 수행을 이어 가도 더 이상의 진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문에 아이는 하루가 멀다고 재능이 없다며 면박을 받기 일쑤였고, 대부분의 연구나 수련 일정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쉽게 말하면 놈에게 버림받고 화풀이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말이었다.

윌포드가 그를 가엾게 여기고 무고하다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하나,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을 따름이었다.

‘이게 재능이 없는 거라고?’

제아무리 마력장이 단순한 응용 개념에 그친다 한들,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마법 각인의 기술을 전반적인 지식조차 없는 상황에서 깨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등위의 마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한데 아무리 봐도 이 어린아이의 몸에서는 그런 수준의 마력이 보이질 않았다.

‘이는 그만큼 아이가 발현한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방비는 너무도 허무하게 깨어졌다.

애초에 아이에게서는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그가 한 일이라고는 우연히 몸이 맞닿은 것에 불과했다.

……말인즉, 무의식적으로 기감을 퍼뜨리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

“……기감을 퍼뜨린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눈매가 좁혀졌다. 이내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천천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크롬웰이 데리고 온 수행마법사라고 했나?

“재미있군.”

“예?”

또다시 닥쳐온 의외의 상황은 내 흥미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뭐지?”

* * *

몸을 추스르고 찾아온 마탑주는 당면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로엘, 이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한낱 등위조차 없는 수행마법사에 불과한 어린아이.

마탑주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피하는 로엘이 있었다.

그 역시도 이 아이가 어떤 사연으로 마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 상황이 더욱 놀라울 뿐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아이는 크롬웰, 그자가 데리고 온 마법사입니다.”

“상관없다.”

그 걱정은 윌포드와 같은 맥락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미래의 정보들을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서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런 인재가 로드가 죽은 뒤 마탑주가 됐던 크롬웰의 아래에 있었다면, 내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대마법사로 각성한 지금의 자네라면 알 수 있겠지. 이 아이의 진짜 재능을.”

“……예.”

로엘의 몸으로 흐르는 마나는 결코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좋은 교육을 받아 온 또래 마법사의 성취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런 마나의 양은 아이의 재능을 빛 바라게 할 요소가 아니었다.

“몸속의 마나부터 시작해서 무의식적으로 발산되는 주변의 마나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증폭되어 하나의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건 차라리 마법사의 것이 아니고…….”

“그래.”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오른 팔목을 쓰다듬었다.

“기사의 오러나 기감과도 유사하다.”

마법사와 기사의 차이점은 수도 없이 강조되어 왔으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 하면 그 힘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몸속의 마나를 매개체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오는 마법사들. 그와 반대로 몸속의 기운을 증폭시켜 외부로 발산하는 기사들.

그런 의미에서 로엘이 발산하는 마력은, 놀랍게도 그 두 가지의 특징을 모두 섞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나를 기반으로 힘을 증폭시켜 외부로 발출하는 특수한 재능.’

이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돌연변이와도 마찬가지.

나쁘게 말하면 그 갈래조차 다르기에, 마법사로서의 성공은 필시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재능이 기사로서 발휘된다면 어떨까?

“몸이 닿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지만 엘더 윌포드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이 아이는 마탑에서 썩을 인재가 아니라는 것을.”

“예, 이는 곧 세상에 없는 재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재능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장님이나 다름없던 과거가 부끄럽습니다.”

마탑주는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으나, 정작 그 미소에 떠오른 것은 안도감이었다.

“전하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아이는 크롬웰 그자의 아래에 있기에는 안타까운 재목이었거든요.”

“그렇군.”

“하물며 전하께서는 저따위가 감히 재단할 수 없는 힘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필시 그 재능을 살릴 수 있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낯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사실이었기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 재능을 온전히 이해했으므로, 나 이상으로 로엘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

마탑주는 그렇게 아이의 처우를 결정했다.

“마탑은 전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좋아.”

나는 대화를 듣고 있던 로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의 표정에는 재능을 알아봐 주었다는 감사함 따위가 아니라, 익숙해진 마탑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정확히 아이 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딴 사정 따위를 일일이 봐줘야 할 의무는 내게 없었다.

‘재미있겠군.’

특수한 재능과 나의 가르침이 합쳐진 힘.

과연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때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전하. 여기에서는 제게 맡겨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마탑주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윽고 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마주하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전하께서 이 아이를 어떤 목적으로 데려가시려는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전하께 민폐만을 끼칠 뿐입니다.”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자네가 직접 키우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탑주가 그 물음 속에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 손가락들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다섯 달. 제게 다섯 달의 시간을 주시면, 반드시 전하께서 놀라실 정도의 성과를 내어 보이겠습니다.”

“호오.”

놀랄 정도의 성과라…….

그 자신감이 다른 이었다면 모르겠으나, 그는 에스테반의 유일한 ‘로드’가 된 마법사였다. 게다가 나를 향해 몸을 숙이며 충성을 맹세한 신하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말은 간단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그 시선은,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지에게로 향해 있었다.

“마탑 시찰은 끝났다. 이만 왕성으로 돌아간다.”

“……예?”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기대하고 있겠다는 입바른 소리 따위도 필요 없었다.

그저, 문을 나서는 작은 미소만이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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