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56화 (5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6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1)

“제기랄! 빨리 옮기란 말이다!”

먼지가 가득한 창고.

발걸음을 옮기고 물건을 뒤적일 때마다, 자욱하게 먼지가 날아올랐다.

숨을 참아도 기침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짐을 나르는 일꾼들이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때였다.

“콜록! 콜록!”

“이, 이봐!”

누군가가 기침을 하며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거렸다.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던 남자가 이를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새끼가!”

퍽!

“커억!”

남자가 발길질을 하자, 기침을 했던 일꾼이 먼지 바닥을 굴렀다.

순간 짐을 옮기는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나, 그 역시도 잠깐의 일일 뿐이었다.

남자의 악귀 같은 표정에 질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빨리 못해?!”

“죄, 죄송합니다.”

“이런 굼벵이 새끼들 같으니라고…… 쯧!”

그렇게 일꾼들을 노려보며 혀를 찬 남자는, 입구를 향해 크게 외쳤다.

“어이, 이봐!”

“예, 대장님!”

그러자 대장이라는 자에게 지명받은 남자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대장은 조급한 듯 연신 바깥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놈들은 어때? 움직일 기미가 보이나?”

“아직입니다. 아직까지 왕궁 밖으로 나온 기사단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창고의 짐들을 마차로 싣는 그 모습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의가 아니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용병단일 뿐이었다.

아마 그 연락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으리라.

“……들킨 것 같으니 재빠르게 에스테반에서 철수하라고?”

제기랄!

대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지어 대뜸 통신을 남긴 ‘그들’은 무책임하게도 중요한 정보는 전혀 넘겨주지 않았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들켰는지. 심지어 언제 누구에게 당했는지조차 알려 주지 않은 것이다.

그때, 왕궁의 상황을 보고했던 용병이 조심스레 말했다.

“애초에 그들은 자세한 사정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모를 수도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들이 전해 준 정보는 마탑과 상단이 당했다는 말뿐이었다.

아니, 당했다고 한 것도 아니다. 당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 것에 불과했다.

들켰으니 철수하라는 말과, 들킨 것 ‘같다는’ 말은 그만큼이나 달랐다.

“실제로 에스테반 내부에서 활동하는 저희조차도 들은 소식이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아마 통신조차 남길 새 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닌 두 군데가 당했다면, 보안에도 철저했을 테고요.”

“흐음…….”

생각해 보면 세작이 들킨 것치고는 너무도 조용했다.

그러니 용병으로 위장해 물품을 회수하는 자신들도 술이나 퍼마시고 있지 않았던가?

용병이 말을 이었다.

“그들 역시도 정기적인 연락이 닿지 않아서 사태를 파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건 그들조차도 예상치 못한 비상사태인 것이지요.”

“……그렇군. 확실히 정기적인 연락이 오가는 시기와 겹쳐.”

만약 그렇다면 이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언제 당했는지에 대해 모르니, 추적이 얼마만큼 진행되었는지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는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제길……! 쓸데없이 불안감만 더 커지는군!”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들이 공격한 곳은 마탑과 상단만이 전부입니다.”

“……오호라! 에스테반에 침투한 세작들을 모두 꿰뚫었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군.”

“예, 그렇습니다.”

애초에 자신들이 들켰다면 이미 마탑과 상단 같은 꼴이 되었을 터다.

그나마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적어도 연방제국으로 피난하기 전까지 들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었으니.

게다가 세작들이 빼돌린 물품들의 회수만을 담당하는 자신들의 존재는, 애초부터 모를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대장이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는 게을리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에스테반을 빠져나간다.”

그 목적지는 연방제국과 맞닿은 국경이 아니었다.

숨겨진 통로.

에스테반에는 아직 놈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통로가 존재했으니…….

‘흐흐흐, 이대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면, 그분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성과금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이 떨어지리라.

먼지 덮인 창고의 내부를 바라보는 대장의 얼굴에 욕망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그런 에스테반의 추적이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그들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 * *

“뭐, 일단은 발견했습니다.”

집무실로 들어온 조지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 가져온 장부가 크롬웰, 놈의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회수책이 존재했더군요. 각각 주기는 다르지만, 이 부분을 보시면 명확할 겁니다.”

“허…….”

순간적으로 집무실에 있던 남작의 표정에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상단의 장부라 해 봐야 어떤 용병들을 고용했느냐에 관련된 부분이고, 크롬웰의 장부는 그야말로 예산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기입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한데 그런 두 서류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회수책을 밝혀냈다는 말인가? 대체 어떻게?

“그렇군.”

하지만 적어도 그건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경악할 통찰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녀석이 건넨 서류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적혀 있는 놈들이 연방제국의 회수책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데플론 용병단이라…….”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마 에스테반에서 활동하기 위해 새로운 신분을 마련한 것일 테지.

연방제국에서 사용하던 이름은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아르곤 기사단에게 그 사실을 전하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데플론 용병단의 거처를 습격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미 늦었다는 소식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적어도 사흘 전에 동쪽으로 떠나간 것 같다는…… 그 뒤늦은 후고를.

하나 답변을 들은 내 입술은 비뚤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사흘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놈들이 홀몸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충분하기까지 한 시간이었다.

회수책은 에스테반에서 빼돌린 물자들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을 터였으니.

“놈들은 아직 에스테반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한 소리겠죠.”

“그리고 그 행색은 용병단이 아닌 상단의 형태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심받지 않고 빠져나가기에는 가장 적합하니까요.”

나는 조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놈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늦는다.

내 시선이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비도르 남작에게 닿았다.

“지금 바로 아르곤 기사단에 연락하여 데플론 용병단의 행적을 좇으라 하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아르곤 기사단으로 하여금 국경지대를 틀어막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남작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조지가 내뱉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내 고개는 내저어지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연방제국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그편이 효율적일 텐데요.”

“아니, 놈들은 국경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조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그 순간. 무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는지, 이윽고 눈매를 좁히며 물어 왔다.

“연방제국으로 통하는 비밀루트가 있었군요.”

“그래.”

확신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았다. 함부로 국경지대에 드나들었다가는, 물자를 수상하게 여긴 병사들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까.

“뭐…… 그렇겠죠.”

조지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비밀루트는 어떻게 찾아내실 겁니까?”

그래, 비밀루트로 움직일 거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추적하기에는 늦었고, 이미 움직였을 회수책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그 이동 경로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순간이었다.

“……응?”

조지는 문득 나를 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밀통로를 언급한 순간부터 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비밀통로에 대한 대책을 논해야 할 시기. 이러다가는 기껏 찾은 회수책을 놓치게 생긴 그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어떠한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비밀통로로 향하다니,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비밀통로? 당연히 그딴 것의 존재는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진 내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금의 비밀통로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밀입국방식까지도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니.

다만 즐겁게 만드는 것은 그 대응 방식이었다.

이미 마탑과 상단의 일을 에스테반에 들켰다는 사실을 알고도.

비밀통로의 존재는 모를 거라고 단정 지으며, 회수책을 그곳으로 빠져나가게끔 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우스웠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는 소리가 되겠지.

‘4황자, 네놈조차도 이번 변수에는 여유가 없었는가 보지?’

내 입가에 번졌던 미소가 조소로 돌변했다.

뭐, 어쨌든.

그렇게까지 해 준다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 간계에 속아 에스테반에 시간을 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내게 힘까지 쥐여 주려 했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지에게 눈짓했다.

“따라와라.”

“예?”

“슬슬 놈들이 보낸 선물을 확인할 시간이다.”

“아, 아니…….”

조지가 의문을 품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제 휴가는 어쩌고요?”

……다만 애처로운 중얼거림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 *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런 숲속을 하염없이 달리는 마차들은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하지만 그 선두를 이끄는 남자의 표정만큼은 아니었다.

‘크흐흐! 조금만 더 가면 연방제국의 땅이다.’

인적 드문 숲.

그곳에 숨겨져 있는 오두막의 아래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있었다. 무려 수 킬로미터에 걸친 긴 땅굴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일부 연방제국의 세작들이 전부였다.

거기까지만 도착한다면, 더 이상 에스테반의 추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추적은…… 없다.’

이 숲에 도착하기 위해 여러 관문들을 지나쳐 왔으나, 결과적으로는 마음을 졸인 것과 반대로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당연히 에스테반에서는 그들을 추적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추적에 실패한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척후조를 운용하면 에스테반 내부의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겠으나, 세작들이 모두 퇴각하는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저기 있다……!”

이윽고 남자의 눈에 고즈넉한 오두막 한 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방제국으로 가기 위한 숨겨진 통로!

남자의 입가에는 어느새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