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7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2)
“멈춰라!”
대장은 따라오는 마차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마차가 멈추자, 일꾼들에게 지시하여 물건을 옮기도록 시켰다.
“수레는?”
“지금 일꾼들에게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잘했다.”
땅굴이 제아무리 마법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마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마차가 아니라 수레로 움직여야 했다.
물론 짐이 가득한 수레를 끌고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움직이는 일은 힘들었다. 하지만 반대쪽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그들의 임무는 끝이 날 테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흐음, 좋아.”
그렇게 물건이 빠르게 정리되는 사이. 대장이 은밀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미리 통로를 개방하고 있을 테니, 데리고 온 일꾼들은…….”
“예, 준비가 끝나는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크흐흐흐.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급히 고용된 일꾼들이었다. 하지만 일이 일이니만큼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죽여도 아무도 모를 테고, 만약 알아챈다 해도 상관없었으니 걸릴 것은 없었다.
그 순간, 낮게 웃으며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던 대장의 눈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응?”
오두막 사이로 솟아오른 두 인영.
잘못 본 것일까 싶어서 두 눈을 씻고 재차 확인했지만,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그것도 잿빛의 로브를 누가 봐도 수상하게 차려입은.
‘서, 설마 추격이…….’
챙-!
대장은 황급히 칼을 빼어 들며 소리쳤다.
“누구냐!”
에스테반의 추격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에 보이는 것은 두 명이 전부였다.
자세를 가다듬고 검을 겨누어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긴장감이 고조되던 그때였다.
“도착했군.”
“……!”
앞에 있던 인영이 그에게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로브 사이에서 낮으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당황한 대장의 귓가로, 또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에스테반의 물건은 어디에 있지?”
“……물건?”
물건이라니? 당최 무슨…….
대장의 머릿속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돌아갔고,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대장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호, 혹시 그분께서 보내셨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대장은 충분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물론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인제 와서 사람을 보내다니…….’
게다가 고작 두서없는 연락 한 통으로 자신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주제에.
게다가 정작 자신들이 도착하자 물건부터 찾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가지고 온 것들이 중요한 물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제기랄.’
하지만 자신은 그런 생각을 드러낼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상대는 그 4황자가 보낸 사람이 아닌가? 괜히 밉보일 행동을 해 봐야 좋은 것은 없었다.
때문에 대장은 감정을 식히며 애써 저자세를 보였다.
“물건들은 짐마차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양이 많아서 가지고 오기는 어려울 듯한데,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다.”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잠시 후에…….”
서걱-!
“……어?”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에는 떨어져 내리는 팔의 움직임이 망막 속으로 담겼고, 그다음에는 어깻죽지부터 머릿속까지 관통하는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이게 무슨…….’
생살이 도려진 고통 속에서, 대장은 잘려 나간 자신의 신체를 보며 위기를 감지했다.
……알려야 한다. 저기 있는 동료들에게 알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로브의 사내는 그것마저 허락지 않겠다는 듯 반대쪽 팔을 뻗었다.
덥석-
“커, 커어억……!”
이내 차가운 가죽 장갑의 감촉이 입을 틀어막았고, 대장의 기억은 거기에서 점멸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심장을 향해 내질러지고 있는 청록색의 검신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뇌리에 남은 것은, 분명 로브의 그림자 사이로 드러난 핏빛의 눈동자였으리라.
푹-!
털썩-
그렇게 대장의 몸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차가운 시선 역시 그 뒤를 따라 내려앉고 있을 뿐이었다.
* * *
‘물건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것도 많다고 표현했을 정도라면, 지금까지 모아 온 양이 꽤 된다는 소리였다.
하기야, 확인한 창고의 부피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
나는 두 눈을 부릅뜬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조지에게 눈길을 던졌다.
“놈의 소지품을 뒤져서 정보를 알아내고 있도록.”
“지금 저보고 시체를 조사하라고요?”
“그러면 누가 하지?”
“…….”
놈들에게서 조금의 정보라도 더 얻어 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타인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당연히 녀석에게 시키는 것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니, 저는 휴가도 미루고 끌려왔는데요…….”
“조사하기 편하도록 시체를 토막 내 달라는 건가? 그게 좋다면야 말릴 생각은 없다.”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인데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녀석은 꼬리를 내리고 처량하게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는 것치고는 대단히 불순한 태도였다.
“에휴, 초겨울에 용병 시체나 뒤지고 있다니…….”
……아무래도 저 입은 물에 넣어도 둥둥 뜰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소란이 느껴지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옮기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빨리빨리 옮기란 말이…… 엇! 거기 누구냐!”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그러자, 작업하던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로브?”
“저 방향은 분명 대장이…….”
“잠깐, 놈에게서 피 냄새가 난다!”
놈들은 태세를 바꾸며 무기를 빼어들었다. 의문이 경계심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그것이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군. 저게 전부 에스테반에서 빼돌린 것들인가.”
“……!”
“이렇게 한 번에 회수하여 보내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야.”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장내를 휩쓴 직후였다.
그 순간, 무기를 빼어든 이들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내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명백한 살의를 감지한 것이다.
“오, 온다!”
나는 엘베른을 쥐고 달려들었다.
내게 적의를 드러낸 이들의 얼굴은 이미 파악했으니, 망설임은 없었다.
샤샤샤샥-!
재빠른 검격이 바다를 수놓는 그물처럼 허공에 갈라졌고, 그 뒤로 붉은 피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러자 선두에 서 있던 두 용병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다음은 처음 나를 발견했던 용병.
“으아악!”
녀석은 갑작스러운 동료들의 죽음에 당황했는지 힘이 풀려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푹-!
이미 그 심장에 청록색의 칼날이 쇄도한 뒤였다.
털썩-
“이, 이런!”
“정신 차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용병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다잡는다.
또한 가장 후열에 있던 이는, 등 뒤에서 지팡이를 꺼내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있었나?
뭐, 놈들이 평범한 용병단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단에서 한 차례 연방제국 마법사들의 존재를 확인했기에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내 오른손은 놈들을 비웃듯 까닥여지고 있었다.
그러자.
“커헉!”
“이, 이봐?!”
“갑자기 이게 무슨……!”
급격히 동결된 대기 중의 마나에, 마법사가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를 지켜보던 용병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음에도, 그 전조조차 모르게 아군의 마법사가 당하지 않았던가?
그것만큼은 나 역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꽤 성장했군.’
이미 오래전에 첫 번째 임계점을 넘은 마법 각인이었으나,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탑주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폭주시킨 마법 각인의 동화율은, 놀라울 정도로 크게 성장해 지금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아마 운 좋게도 각성한 마탑주의 마력에 영향을 받았을 테지.
‘조만간 두 번째 임계점을 넘길 수도 있을 터다.’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남은 용병들의 얼굴을 살폈다.
이제 남은 용병의 수는 여섯 명. 전의는 꺾이지 않았으나, 두려움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아무래도 네놈들은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는 것 같군.”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지금은 실전을 겪을 일이 손에 꼽았다. 때문에 이런 별것 아닌 경험조차도 내게는 귀중하게 다가오는 요소였다.
특히나 전쟁을 대비하여 가진 힘을 측정하고 쌓아나가야 하는 지금은 더욱 그러했고.
아쉽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만족감을 느끼기도 어렵겠군.”
“…….”
“뭐, 숫자만을 내세우는 네놈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
일순, ‘나’를 이루던 신형이 흐려졌다가 나타났다. 이윽고 나타난 곳은 놈들의 뒤였다.
물론 놈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
“하다못해 조금의 유흥거리는 되어 주어서 다행이구나.”
나는 피로 물든 엘베른의 검신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윽고 여섯 구의 시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조금의 유흥거리. 그게 놈들에게 주어진 가치의 전부였다.
* * *
나는 조지가 들고 온 것들을 확인하며 눈매를 좁혔다.
“이건.”
“놈들의 소지품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물건입니다.”
그건, 언뜻 용병단이 나누어 가진 배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디에나 흔히 있을법한 디자인이었고, 그 누구라도 신경 쓰지 않을 물건. 하지만 그게 자국에 잠입한 세작의 물건이라면 말은 달랐다.
‘용병으로 위장한 기사들이었나.’
기사단의 증표. 그것도 수년 뒤에야 편성되는 4황자 휘하의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미래에 나올 기사단을 예상하고 지금 편성했을 리는 없었으니, 이 경우에는 4황자가 비밀리에 기사들을 운용해 왔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숨기기 어려운 때가 오자, 그 정보를 공개했다는 셈이겠지.
나는 주머니 속으로 그 증표를 집어넣으며 웃었다.
“……재미있군.”
역시나 단편적인 정보였으나, 덕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미래의 지식이라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4황자가 내 예상보다도 빠르게 손길을 뻗어 오고 있었다는 점.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며 경시했던 사태들이, 곧장 내일로 다가왔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단지 전쟁만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뭐, 마침 잘 되었나.’
내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꾼들에게 닿았다. 그들은 수레로 옮기던 짐을 다시금 마차에 집어넣고 있었다.
내가 저들을 다시금 고용한 것이다.
“왕궁으로 옮기실 겁니까?”
조지가 물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꼬리를 당겼다.
“아니.”
저것들은 나의 힘이 되어 줄 터였다. 내 선택지를 넓히고 행보를 보조해 줄, 나만의 힘.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런 것을 왕실에 고스란히 바칠 수는 없겠지.
마지막으로 나는 조지를 쳐다보았고, 그런 내 눈은 재미있는 것을 떠올린 듯 싱긋 웃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