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9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4)
평화롭지만은 않던 왕실의 재무부가 한바탕 뒤집혔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아침 국왕의 이름으로 내려온 한 장의 서류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
재무대신 발테르 후작은 처음으로 머리가 지끈 아파 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예년 예산의 3배…… 그것도 다른 어느 시설도 아닌, 돈 먹는 두꺼비라 불리는 마탑의 예산을 3배나 늘리겠다는 그 내용.
당연히 머리가 아파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네…… 지금 이거 제대로 가지고 온 게 맞나?”
“그, 그렇습니다.”
옆에 서 있던 재무관리인이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표정을 보니 정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녕 이것이 현실일까?
하지만 그 심경을 비웃듯, 서명란에 찍힌 옥새는 이것이 현실이라 일깨우며 휘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그렇게 발테르 후작은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1왕자의 집무실, 서류에 적혀 있는 예산의 제안자에게로였다.
……그리하여 현재.
“전하, 특히나 지금처럼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는 시점에서는 그 3배의 예산을 충당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가?”
“예, 이대로라면 국고가 거덜 나 세액을 올려야 할 판입니다. 귀족들의 반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
“……후우.”
이제는 아예 열변을 토로할 힘도 없는지, 후작이 자포자기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작이 예산 편성의 불가를 외치며 근거를 제시하면, 나는 수긍하며 듣는 척하다가 한 귀로 흘렸다.
당연히 새로운 대화가 오가도 그 흐름은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대화의 수레바퀴라 할 수 있었다.
“전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어쩌면 5배까지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하…….”
“농담이다. 4배면 몰라도 5배는 너무 과할 것 같군.”
“…….”
그렇게 침묵하는 후작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뭐, 확실히…… 이러한 예산안을 제안한 나도 그렇지만, 재무부로 내려보낸 아버님의 의중도 그가 보기에는 도무지 혼란스럽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생각을 바꿀 여지는 없지만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자재의 국산화는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그나마도 내가 가진 미래의 지식이 있으니 3배였지, 실제로는 고작 3배 따위로 국산화를 시도하기는 어불성설일 터다.
4배면 좋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본격적으로 놈들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라면, 3배가 아니라 30배를 쏟아부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없게 된다.
지체될수록 마탑이 받는 압박이 늘어날뿐더러, 시간조차 에스테반의 편이 아니기에 대비는커녕 국산화를 이루기 전에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결코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기 위해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지금까지의 농담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예산이 문제라는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거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확인했다. 11월 마지막 주로 접어드는 날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윽고 우려에 빠져 있는 발테르 후작과 시선을 마주쳤다.
“다음 국무회의에 참가하겠다. 그곳에서 예산 충당과 관련된 잡음의 종지부를 찍어 주지.”
“……예?”
후작은 알아듣지 못한 듯 보였다. 어쩌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두 번 설명하는 일은 없었다.
“귀족들에게 국산화에 관한 일을 언급해 두도록. 이번 일은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겠다.”
“전하!”
후작은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의아한 듯 쳐다보자, 후작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하지만 그 높아진 목소리 톤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서, 설마 미스릴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십니까?”
“문제라도 있나?”
“무, 문제라니요! 아직 그 존재가 밝혀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미스릴의 존재는 반드시 숨겨져야 했다.
그것의 존재가 밝혀지는 즉시,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연방제국과의 사이가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갈 테니까.
비록 야만족과 전쟁을 붙이는 동시에, 신성제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대책을 안배해 두었다지만,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내 계획은 겨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라. 예산을 충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전에서 이니.”
“예? 대전에서 예산을…….”
“아무래도 예산의 마련은 수월할 것 같군.”
“대,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것이 있다.”
뭐, 보고 있으면 알 수 있겠지.
내 눈이 반달처럼 가늘게 휘었다.
‘국무회의까지 닷새 정도 남은 건가.’
왠지 모를 설렘과 흥미가 동시에 찾아들었다.
아무래도 연방제국의 편인지 아군인지도 모를 귀족들을 구워삶을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는 모양이었다.
* * *
국무회의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귀족들은 대경하며 펄쩍 뛰었다.
“예산을 투자하여 그 많은 마도구의 원자재를 국산화한다니요?!”
“아니 되옵니다!”
여느 기술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특히나 기초 마법 기술을 갈고닦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어찌나 비효율적인지, 들어가는 예산은 어마어마한 데에 비해 결과물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기껏 소득이라 해 봐야 타국의 것보다 떨어지는 품질의 재료가 아니었던가?
“국왕 전하.”
그때, 가디언 급의 마법사이자 궁정의 마법사들을 관리하는 게렉 자작이 조언을 남겼다.
“마도구의 품질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고품질의 재료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원한다고 해서 이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품질이라…….”
“그렇습니다. 그만한 예산의 마련도 순탄치 않겠으나, 품질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수입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품질을 끌어올리는 일이 쉬웠다면 다른 국가들도 모두 따라 했을 터였다.
차라리 관련된 물품들을 수입해 올지언정, 성과가 확실치도 않은 분야에다가 투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뜻이었다.
“……그럴 바에는 국산화를 포기하고 마탑의 연구비나 지원해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군.”
“예, 정확히 보셨습니다.”
“흐음.”
문득, 턱을 쓰다듬으시던 아버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투자의 필요성을 피력한 1왕자는 대신들의 충언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그러자 놀란 귀족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로 집중되었다. 일부는 일그러진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투자를 제안한 것이 나였는지는 몰랐던 모양이지. 나는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입을 열었다.
“먼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이야기는 일부 공감합니다.”
“일부?”
“그렇습니다. 그 모양새만큼 예산을 소모할지언정, 남는 것은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연방제국의 압박을 대비한다고 말하면 설득은 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정석적인 설명으로 기초 마법 기술의 필요성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에스테반의 마법 발전은 항상 기사들에 맞추어져 있었고, 그에 따른 방향성은 타국과 엄연히 궤를 달리합니다.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음, 그렇지.”
“이는 기초 마법 기술 역시 에스테반에 어울리는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에스테반에 필요한 것들을 원하는 만큼 제작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원자재들 역시 그에 맞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원재료의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도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투자는 필요불가결할 것입니다.”
“……그렇군.”
이에 대해 이해하신 아버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정말로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허황된 꿈과도 마찬가지였으나,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는 귀족들마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 순간 한 귀족이 소리쳤다.
때마침 익숙한 목소리다. 내 시선이 놈에게로 향했다.
아, 그래. 분명 윌리엄 공작의 수하인…….
“루킨즈 자작.”
“예, 1왕자 전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건 너무도 무책임한 말씀이 아닙니까?”
“음? 어째서지?”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
이 상황이 퍽 재미있었기에 나는 짐짓 모르는 체하며 물었고, 그러자 녀석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를 띤 채였다.
“앞서 게렉 자작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품질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전까지는 기약 없는 투자에 불과할 것이다.”
“커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노하우를 에스테반이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귀족들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든 아니든. 현대의 지식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었고, 딱히 그거에 대해 동조하는 것을 고깝게 여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의 지식일 뿐이지.’
당연히 내게는 하찮을 수준의 반박이었다.
거기에 녀석이 반대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저 내 행보를 가로막기 위한 것일 뿐이었으니.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들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자네의 입장은 국산화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겠군?”
“정확히는 그 많은 국가의 예산을 사용해 가며 이루어 낼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데, 아쉽게도 그렇게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
루킨즈 자작을 비롯한 귀족들의 얼굴이 멍하니 변했다. 하지만 그건, 정신을 차린 루킨즈 자작에게는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허! 마탑의 예산을 세 배 늘리는 것이 많은 예산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의 투자라면 필시 국고가 거덜 날…….”
“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투자자는 자네가 아닌가?”
“……예?”
그 순간이었다.
“무,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루킨즈 자작이 당황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말을 하다 말고 대전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슬슬 들어오도록.”
“충!”
“가, 갑자기 무슨 일이…….”
“전하?!”
그 기합과 함께 대전으로 들이닥친 이들은, 아르곤 기사단이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족히 한 개 소대가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숫자.
그만한 인원들이 달려드는 모습에 기겁한 귀족들은 뒷걸음질 쳤다.
물론 그들의 눈에 스친 동요가 루킨즈 자작만큼은 아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대전을 가로질러 다가온 기사들은 죄인을 체포하듯 루킨즈 자작을 에워쌌고, 이내 그 팔을 포박하고 강하게 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커헉!”
꼼짝도 하지 못하고 무릎이 꿇린 놈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숨이 터져 나왔다.
대전이 얼어붙었다.
“…….”
침묵이 흐르는 공간.
나는 왕좌에서 나를 내려 보시는 아버님을 쳐다보았다. 아버님 역시 심히 당황스러워하시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대로 진행하라는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실 뿐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이 무대를 장식할 피날레를 보여 줄 시간이겠지.
“마침 나서주다니 나로서는 소개할 시간을 덜어서 고마울 따름이야. 루킨즈 자작.”
“저,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네놈을 왕족 시해 미수 및 살인 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
“마, 말도 안 되는…….”
그렇게 경악하는 좌중의 앞에서.
마찬가지로 당혹감을 드러내신 아버님의 앞에서.
내 시선이 2왕자파의 중심에 있는 발몽스 백작을 향했다.
그런 내 입은 더할 나위 없이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