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0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5)
그건 대전에 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무회의가 진행되다 말고 기사들이 들이닥치는 일을…… 귀족이 삽시간에 끌려 나가는 일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때문에 국왕은 물론이고 루킨즈 자작이 소속된 2왕자파 까지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건 발몽스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콰직-!
손에 쥔 팬을 부러뜨리는 심기가 불편했다. 이미 모든 증거는 인멸했다 생각했거늘, 벌써 몇 달도 전의 일을 파헤칠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바라보던 1왕자의 입술이 마지막에 남긴 그 말은…….
-재산은 좋은 곳에 쓰도록 하지.
무척이나 오만하고, 또한 여유가 넘치는 것이었다.
내부자의 정보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오래전부터 준비해 두었던 공격이었을까.
“…….”
……아니, 그런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그 정보를 제공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발몽스 백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2왕자파의 상황이 좋지 않다.’
2왕자파에 소속된 귀족들은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최대한 통제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도 사건의 진실을 아는 이들이 적어서 망정이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모함이라며 둘러댈 틈도 없었으리라.
문제는 2왕자파가 혼란에 빠진 것이 비단 이번만의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1왕자…… 그가 야만족의 습격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후부터, 2왕자파는 내내 보이지 않는 수령 속으로 발걸음을 들이민 기분이었다.
아수스를 죽인 것부터 시작하여 쓸모없는 땅을 받아 온 일 등등. 분명 공격할 틈은 조금씩 있었으나, 이상하리만치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하지 않으면…….’
정통성에서 밀리는 2왕자파의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1왕자의 움직임을 주춤하게끔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녀석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제기랄!
머리가 아파 왔다. 그렇게 백작이 무언가 뾰족한 수를 궁색하던 그때였다.
“발몽스 백작, 자네는 머릿속에 걱정이 너무 많군.”
“……!”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백작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각하?!”
……베르레토 윌리엄.
현 귀족들의 최고 권력자이자, 2왕자파를 이끄는 공작. 그런 윌리엄 공작이, 발몽스 백작을 찾아왔다.
결코 사사로이 움직이지 않는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 * *
맞은편에 앉은 귀족이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이윽고 눈이 마주하자, 떨리던 몸이 굶주린 맹수를 만난 것처럼 죽은 듯이 굳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마주 보며 만족스럽게 눈초리를 휘었다.
“자네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되었군, 헤르그 자작.”
“가, 감사합니다!”
헤르그 자작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책상에 머리가 박을 정도로 잽싼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 모습은 진정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 그렇다면 약속하신 대로 제 죄는 사해 주시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을 눈감아 주는 것은 아니다.”
“추,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랄 것까지야.”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다리를 꼬며 녀석의 모습을 훑었다.
‘지위를 위협받자마자 동료를 팔아넘기는 꼴이라니.’
헤르그 자작.
루킨즈 자작과 마찬가지로 2왕자파 내부에서 공작을 떠받드는 이들 중 하나였다.
2왕자파에 속한 주제에 공작을 모신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었으나, 우습게도 이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목적은 알베도를 왕위에 세우는 것이 아닌, 녀석이 빼앗은 왕위를 자신들이 갖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런 알량한 목적조차 지켜 내지 못한 건가?’
녀석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2왕자파를 배반했다.
동기는 간단했다. 내가 녀석에게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녀석이 저지를 비리들을 인질로 잡고 증거를 내주기를 권한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느냐, 신의를 지키느냐.
운명을 가른 녀석의 선택은 당연히 배반이었다.
특히나 녀석은 미래에 작위를 보존하지 못했을 정도로 많은 비리를 저질러 왔다.
그 점을 이용했으니, 적어도 내겐 여론을 뒤집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몸을 꿈틀대는 자작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좋은 정보들을 가져올 것이라 믿겠다.”
“예, 예! 반드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서 상황을 살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작은 고개를 조아리며 정중하게 떠나갔다. 나 역시도 무표정한 얼굴로 녀석을 배웅했고.
그러나 그 모습과는 반대로, 내 마음속은 녀석이 들으면 기겁할 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여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심상으로부터 날것의 살의가 번뜩였다.
거슬리기 전에 죽인다. 그건, 놈에게 한 차례 배신의 전적이 있었기에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살의를 차분히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놈은 2왕자파 내부에서도 중역을 맡고 있다.’
그런 놈을 스파이로 만든다면, 보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도 저런 기회주의자들을 다루는 데에는 도가 터 있었다.
애초에 녀석도 진심으로 공작을 따른 것은 아니었겠지.
‘당분간은 살려 둔다.’
죽이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쓸모가 있을 때까지는 살려 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그 발걸음이 향한 곳은, 발테르 후작이 있는 왕실의 재무부였다.
“1왕자 전하?”
곧장 나를 발견한 후작은 들여다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다가왔다.
처리할 일이 많았는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찌, 부르시지 않고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예산은?”
“아…… 국고로 환수된 루킨즈 자작의 재산 말씀이십니까?”
대뜸 나오는 본론에 후작이 당황했다. 하지만 재무대신이라는 이름답게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일단은 충분한 수준입니다. 전하께서 국무회의에서 예산 편성을 마무리 짓겠다 하셨을 때는 당황했는데, 이런 묘수가 있으셨군요.”
물론 묘수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런 말을 할 후작도 아니었고.
“이 정도라면 3배는 물론이고 말씀해 주신 4배까지도 염두에 둘 만합니다.”
“그렇군.”
“물론 당해의 예산에 한해서입니다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
나는 대답하는 후작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이로써 예산에 관한 부분은 일단락되었다. 생각해 두었던 카드 중 하나를 사용했으나,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이끌어 나가느냐에 관한 것이겠지.
다만, 마탑 투자에 앞서 해결해 둬야 할 과제가 있었다.
“당해의 예산이라는 말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인가.”
“아,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예산이라는 것이 워낙 불확실하게 운영되다 보니…….”
“그 말은, 당장 내년의 국고가 문제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후작은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대화의 흐름이 무언가 이전의 것과 닮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에 화답하듯 웃으며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국고를 채워 줄 무언가가 있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테지.”
“예…….”
“그러니 오늘부터 왕국 상단의 운용은 내가 맡겠다.”
“저,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뱉은 말이었으나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후작이 눈에 보일 정도로 펄쩍 날뛴 것이다.
드러난 표정은 의심할 여지없는 경악이었다.
반대로 내 짓궂은 미소는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버님께는 이미 허가를 받아 두었다. 가서 상단의 관리자들을 불러 오도록.”
“이, 이런……!”
이미 그 흐름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 * *
왕국 상단.
이름 그대로 왕실이 공식적으로 운용하는 교역 상단이었지만, 의외로 그 존재에 대해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당연했다.
공식적으로 운용한다고는 하지만 그 용도는 주로 내정에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당연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왕국 상단의 운용을 맡겠다는 뜻은 간단했다.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에 손을 대겠다.
아직 왕세자에도 책봉되지 않은 왕자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주제넘은 이야기다.
또한 누가 보아도 명백한 월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시기였다.
아버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시기에. 아니, 그렇기에 내게 맡기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에스테반이 노려지고 있다는 경각심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이었으니까.
“4황자에게 선물이라도 보내 줘야 하나?”
정보부처라는 무기를 쥐어 준 것부터 시작하여 왕국 상단의 일까지.
정말이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싱거운 농담을 지껄이며 시간을 때웠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퍽 기대하던 손님들이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상인임을 나타내는 의상들. 물론 그러한 의상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는 일은 간단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말이다.
“반갑다.”
익숙한 얼굴들.
나는 왕국 상단의 관리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1왕자 전하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군.”
그런 저들의 표정에는 조금의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무리의 리더가 달라지면 그 조직원들도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마련이었기에.
특히나 왕국 상단은 내정과 관계있는 기관이지 않았던가?
대개는 본인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자네들은 지금부터 여러 국가들을 돌며, 차후 에스테반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사고파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나는 회귀 전에도 저들을 채용했다.
내가 왕위에 즉위했을 때는 한참 연방제국이 도발해 올 시기였었기에, 그것마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저들은 연방제국의 무역 규제를 뚫고자, 먼 타국까지 오가며 물품들을 구해 오는 공적을 남긴 이들이었으니까.
그 애국심과 능력이 입증된 이상, 더 이상의 서론은 필요 없었다.
“또한, 내가 말한 ‘사고판다’라는 의미는 자네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미래지식.
나는 그것을 토대로 저들을 움직일 생각이었다.
단지 돈을 위해 움직이는 것만이 아닌, 정말로 미래까지 내다보는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작은 정말로 즐거울 것이 틀림없을 테지.
“남부대륙으로 가도록.”
“남부대륙이라면…….”
……그래, 바다 건너의 낙원. 태양의 땅.
일순, 내 눈이 번뜩였다.
“그곳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