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1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6)
1왕자가 지시한 것은 여럿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남부 대륙으로 가라는 지시는 상인들에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곳에서 구해 오라는 물품 중 하나가 너무도 생소하고 뜬금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건, 폭넓은 지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국왕과 발테르 후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대륙에서 나오는 나비산호 말이냐?”
“예, 전하. 그렇습니다.”
“흐음…….”
국왕은 상인의 대답에 침음을 흘렸다. 역시나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발테르 후작에게서 흘러나왔다.
“이보게,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서 나는 물건이라 하던가?”
“엘리아 제도에 자생하는 산호의 일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아 제도…… 아, 해양 낙원이라 불리는 곳이군.”
“그렇습니다.”
북부 대륙에 사는 그들이라고 해도, 정세에 밝아야 하는 이상 엘리아 제도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아즈란 왕국에 소속된 해양 낙원. 그 이름답게 펼쳐진 드넓은 바다의 향연은, 온갖 돈이 될 만한 특산물들을 품고 있었으므로.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한데, 그 나비산호라는 것이 애당초 어디에 쓰는 물건이란 말인가?”
“저희도 그것이 궁금하여 알아보았는데, 제도에서는 주로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그,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나비모양이 뚜렷한 것이 가장 이쁘다고…….”
“…….”
발테르 후작의 묘한 시선이 이어졌다. 마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것을 1왕자 전하께서 구해 오라고 하셨단 말인가?”
“정확히는 아즈란 왕국과 협의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나비산호에 대한 납품 계약을 체결하라 하셨습니다.”
“허어, 그렇게까지?!”
1왕자가 이번 일을 그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은 있었다. 만일 그것이 북부 대륙에서 귀한 취급을 받는다면, 상행을 나설 만큼의 가치로써는 충분했으므로.
하지만 후작이 그것에 관해 묻자, 상인은 곧장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알아본 바로는, 애초에 제도에서조차 그 취급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부에서 수입되는 귀중품 중에는 진주 같은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북부 대륙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도…….”
“수요가 없어서 연안에 있는 것들도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라 합니다.”
“…….”
산호초를 아름답게 꾸며 주는 장식품. 나비산호의 취급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직접 가 보면 사정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상업성이 없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소리였다.
그 뒷이야기를 들은 후작으로서는 말 그대로 의아할 노릇이었다.
‘하필이면 첫 번째로 내리신 지시가 이런 것이라니…….’
차라리 1왕자가 국정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면 상관없었다.
단순한 치기로 치부하고 왕국 상단의 일을 재검토하면 되었을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최근 보여 준 1왕자의 모습은 너무도 유능했다. 이런 지시를 내린 그 모습에 도리어 의아할 정도로.
그 순간이었다.
“재검토는 필요 없네.”
“……예?”
“왕국 상단은 1왕자의 지시에 따르도록.”
“……!”
묵묵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국왕이 충격적인 발언을 남겼다.
후작과 상인이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있자, 국왕은 대륙의 전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즈란 왕국의 엘리아 제도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도 한 달이 걸리겠군.”
그나마도 상단이 이끌 짐마차를 최소화해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국왕은 그마저도 늦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최대한 빠른 시일이라고 말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였으니.
“2주.”
“저, 전하?!”
“두 무리로 나누어서 움직이는 걸로 하지. 또한 멀리 돌아가지 않고 해양을 가로지르는 직선거리를 이용한다.”
상행의 책임자를 포함한 일부 인원이 앞서 왕가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그 뒤로 마차를 이끈 무리가 움직인다.
그렇게 나누면 일정을 몇 주나 앞당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후작은 이에 대해 중립적인 견해를 보였다.
“전하, 그분의 뜻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나, 최소한 이에 대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상행은 하더라도 나비산호의 필요성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검토하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차라리 보석을 수입하여 차익을 노리는 것이라면 모를까, 오는 동안에 말라 죽어 버리는 산호를 수입하는 일은 너무도 큰 리스크라 할 수 있었다.
재무를 담당하는 후작으로서는 당연한 절차였다.
하지만 국왕의 뜻은 너무도 확고했다.
“그럴 필요 없네.”
“……국왕 전하.”
“1왕자에게 왕국 상단의 운용 권한을 준 것은 짐이네. 책임을 지더라도 짐이 질 터이니, 우선은 일을 진행하게나.”
“……알겠습니다.”
일국의 왕이 책임진다는데 무엇을 어찌하리.
후작은 결국 상인을 내보내며, 당장에라도 상행을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이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의문이 몰려든 후작이 국왕에게 물었다.
“국왕 전하께서는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말인가?”
“1왕자 전하께서 산호를 구하시려는 의도 말입니다.”
국고를 움직이는 일임에도 너무도 손쉽게 이를 허락했다.
게다가 그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말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물론 국왕이라고 해서 알 턱이 없었다.
“모르네. 나 역시도 산호의 용도가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군.”
“…….”
“하지만 책임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네.”
책임을 진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일이 잘못 되었을 때나 쓰이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국왕은 그럴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알렌 에스테반, 그 아이가 또 어떤 놀라운 일을 벌이고 있을지를.
“음?”
그 순간, 국왕의 눈이 상인이 들고 왔던 서류에 닿았다.
정확히는 이번 상행에 소모될 예산이 적힌 대목에 닿아 있었다.
“……한데 아즈란 왕가와의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했던가?”
“예? 아아, 분명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알랜, 그 아이는 무엇을 미끼로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것이지?”
“예?”
국왕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는 후작의 표정이 굳었다.
예산에 요구된 금액이 경비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탓이다.
“그, 글쎄요. 그것까지는 잘…….”
하지만 상인이 떠나간 자리에, 이에 대해 답해 줄 인물이 있을 턱이 없었다.
* * *
북부 대륙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서늘하거나 추운 편에 속한다면, 그 대척점인 남부 대륙의 기온은 정반대였다.
따스하거나, 혹은 무덥거나.
그런 의미에서 해양 낙원이 존재하는 아즈란 왕국은, 열대기후 속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온도를 자랑했다.
4계절이 존재하나 영하 이하로 온도가 내려가는 법이 없었으며, 여름에도 그 기온이 40도를 넘지 않는 대륙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휴양지도 서러운 남작의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남작님, 잠시 후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음? 아, 그렇소?”
남작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그 정신은 이미 다른 데로 가 있는지 오래였다.
‘나는 또 왜 이런 곳에…….’
테일러 비도르.
그가 원치 않은 역할을 지게 된 것은, 연방제국의 사절단을 맞이한 것을 포함하여 두 번째였다.
……아니다. 잘 생각해 보니 세 번째였다.
1왕자의 임시 보좌관이라는 자리도 어디까지나 국왕 전하의 명령으로 받게 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의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평범한 남작급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전하께서도 별말씀이 없으셨지…….’
슬슬 영지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거나, 조지의 교육이 거의 다 된 것 같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벌써 몇 개월 전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왕궁의 생활이 더욱 익숙해진 것 같기도 했다.
문득, 그런 남작의 머릿속으로 1왕자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남부 대륙에 다녀오도록.
-……예?
-반드시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그래, 연방제국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것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사절단을 맡으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전과는 다르게 선택지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선택지라는 것이…….
-자네가 싫다고 하면 조지 녀석을 보내야겠지만.
-…….
-아쉽게도 녀석의 휴가가 또 미뤄지겠군.
다가온 휴가에 들뜬 수하를 제물로 삼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거절하지 못하고 이곳에 온 것은, 차마 웃지 못할 일이었다.
……하아.
그렇게 남작이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사이, 재빠르게 도로를 질주한 상단의 일행은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아즈란 왕국의 수도로 도착한 것이다.
한 상인이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남작님, 바로 왕성에 기별을 넣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들어가는 걸로 하겠소.”
남작이 손에 들린 에스테반 왕실의 증표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시를 내린 1왕자는 무엇보다도 속도를 우선하라고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협상을 성사시키라고…….
무척이나 의문스러운 지시였으나, 이미 1왕자에 대한 신뢰가 가득한 남작이었다. 그렇기에 지시한 대로 따를 뿐이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분명 남아 있었다.
‘어째서 이런 것을 가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남작의 품 안에 들어 있는 마정석이 작게 흔들렸다.
마정석은 그가 본 어떠한 보석보다도 찬란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북부 대륙의 왕국, 에스테반에서 무역을 위해 찾아왔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아즈란의 국왕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 무얼 사러 왔다고?”
타국이 제안한 외교를 비웃는 것은 실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만에 하나 무역을 하겠답시고 찾아온 이들이, 길가의 돌멩이를 팔라고 말한다면. 혹은 잡초를 수출해 달라고 말한다면.
그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
국왕이 느끼기에는, 지금이 딱 그러한 상황이었다.
에스테반에서 찾아온 이들이 요구한 것은 그만큼이나 황당했던 것이다.
“나비산호? 그딴 것을 어디에 쓴다고 구매하겠다는 건가?”
정말로 순수한 의문에서 나오는 질문이었다.
나비산호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쓸모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녕 의문인 것은, 저들이 나비산호를 구하기 위해 왕실에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허어, 대체 이게 무슨…….”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이제는 도리어 황당함을 넘어 답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러나저러나 이득을 보는 것은 아즈란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비산호를 수출하는 일은, 말 그대로 해변의 물을 퍼다 파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래, 일단 조건을 듣겠다고 전해 두도록.”
그런 아즈란 국왕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