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2화
물밑에서 탑을 쌓는다 (7)
국왕은 회의실로 들어온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어서 오시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국왕 전하. 에스테반의 남작 테일러 비도르입니다.”
아즈란의 국왕은 에스테반의 무역 사절단으로 찾아온 남작을 직접 독대했다.
저들이 애당초 왕실 간의 공무역(公貿易)을 바라기도 했거니와, 나비산호를 구매하려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탓도 있었다.
때문에, 국왕은 은근하면서도 직설적인 어투로 서론을 떼었다.
“그래, 그대들이 아즈란과의 무역을 원한다고 들었네. 나비산호를 요구했다지?”
“그렇습니다. 에스테반의 1왕자께서는 양국 간의 이득을 위해, 대대적인 무역을 개시하고자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음, 대대적인 무역이라…… 그렇군.”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특히나 에스테반과 아즈란의 거리는 썩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멀었다.
그런 나라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꿀꺽-
국왕이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얼마 만큼의 나비산호를 원하지?”
“국왕 전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전에 왕실에 찾아온 이유를 먼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아, 그렇게 하게.”
“감사합니다.”
순간, 국왕은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기백을 느꼈다.
물론, 그것이 ‘1왕자’라는 사람을 상대하며 생긴 해탈함이라는 사실을 국왕이 알 리는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작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에스테반은 나비산호가 자생하는 산호초 부근에 양식장이 건설되길 원합니다.”
“양식장을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관광지의 미관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인공적인 재배가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허어……!”
이야기를 듣던 국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나비산호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양식장화(化)를 논한단 말인가?
“얼마 만큼의 크기를 원하는가?”
“나비산호가 서식하는 산호초 부근 전체입니다.”
“저, 저, 전체라고……!”
연안만 하더라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수준이 아니던가?!
아즈란의 국왕이 경악했다.
“이보게, 그만한 크기를 양식장화 한다면, 매해 그 안에서 나오는 나비산호는 상상을 초월하네! 마차 수백 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거늘!”
그것도 적게 잡은 양이었다. 아마 에스테반이 이를 구매한다고 하면, 일 년 내내 상행이 오가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넓은 지역을 관리하려거든 많은 인력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것도 바닷속을 관리하는 일이니만큼 고급 인력이 필요할 걸세.”
“예, 그에 관해서는 에스테반의 1왕자께서 모든 부담을 처리하기로 하셨습니다.”
“그,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물량을 얻길 바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그렇군…….”
그 담담한 긍정에 국왕은 짐짓 당황스럽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한데 어째서 하필 나비산호인가?”
국왕은 이제 궁금함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근 연안에는 더 아름답고, 더 가치 있는 특산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당장 그들이 수출하는 귀중품인 진주조개도 있었고, 하다못해 나돌아다니는 생선들조차 진미로 유명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다른 어느 것도 아니고 외형만 그럭저럭 볼 만할 뿐인 나비산호를 찾는단 말인가?
주어진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산호도 엄연히 생명일세. 북부까지 이송하는 도중에 말라 죽을 것이야.”
그렇다면 그 그럭저럭 볼 만한 외형조차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정말이지 단순하고 명확했다.
“간단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에스테반에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 그렇군…….”
그래, 필요한 건 저들이라는데 자신들이 어쩌겠는가?
국왕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어쨌든 그대들이 원하는 양이 경악할 정도로 많다는 것은 알겠네. 하면, 양식장화를 진행하는 것 외에도 다른 원하는 사항이 있는가?”
그러자,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어 그대로 양식장에서 생산될 나비산호의 소유 우선권을 원합니다. 최소한 생산량의 절반은 반드시 독점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호초 전체의 양식장화를 논한 것이군. 아즈란의 왕실이 이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도록.”
“그렇습니다.”
“……혹 그대들은 나비산호의 무역에서 차익을 얻으려 하는가? 진지하게 충고하거늘, 행여라도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나을 걸세.”
하지만 남작은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거부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신한 듯 계약의 조건을 꺼내 들었다.
“1왕자께서 제시하신 사안이 있습니다.”
“그, 그래. 한 번 들어 보지.”
“뭇 무역이란 무엇보다 공평해야 하는 외교입니다. 가장 먼저, 양식장화(化)에 발생하는 모든 금전적인 부담을 지원키로 하셨습니다.”
“허……! 인부를 고용하는 것 외에도 전부를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또한 무역에 사용될 나비산호의 전량은 에스테반이 책임지고 회수하겠다 하셨습니다.”
“……음?”
국왕이 저도 모르게 의문을 내뱉었다.
방금 전의 조건이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했던 탓이다.
“아즈란이 보내는 것이 아닌, 에스테반에서 가져가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사실상 아즈란이 하는 것이라고는 땅을 빌려주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그것도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수준이었다. 운송비에 대한 언급을 생각하고 있던 국왕으로서는 오히려 말려들어 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어진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끝으로 나비산호의 가격은 거래 당시 시세의 두 배로 일괄 매입하겠다 하셨습니다.”
“두, 두 배?!”
“예,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나비산호의 가치가 적다 하더라도, 그만한 양에 시중가의 두 배를 쳐준다면 말은 달랐다.
오히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는 것인지 의문이 가중될 정도였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나비산호의 쓰임새가 따로 있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건이 너무도 이상했다.
생산된 전량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절반의 우선권만을 달라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인즉, 아즈란 측에서 원한다면 함께 쓸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돈으로 투자한 양식장의 물건을 말이다.
‘또한 현 시세의 2배가 아닌 거래 당시의 2배라는 말은…….’
정녕 쓰임새가 밝혀져 값어치가 높아지더라도, 헐값에 구매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겠다는 소리였다.
마치, 두 국가 간의 신뢰를 약속하는 것처럼.
국왕이 당혹감과 의문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생을 위해서입니다.”
“상생?”
“저희는 같은 연방제국의 피해자이지 않습니까?”
“……!”
분류상으론 남부 대륙에 위치한 아즈란이었으나, 그 위치는 북부 대륙에 밀접해 있었다.
그런 그들이라고 해서 연방제국의 횡포를 피해 갈 순 없었다. 비록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역사에 남아 있는 엄연한 진실이었다.
남작이 말한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과거부터 그들에 의한 피해를 입어 온 에스테반과 아즈란은 같은 처지입니다. 그런 두 국가가 이익을 위해 반목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이겠습니까?”
“그, 그건 확실히…….”
“연방제국의 존재가 대륙에 남아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될 것입니다.”
국왕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역사를 배우고 자란 일국의 국왕이었으므로.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문득 북부의 소식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연방제국이 타국의 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소문이 있었지.’
한 귀로 흘러간 소식이었지만, 떠올려 보면 에스테반의 일이 확실했다.
한편으로는 남작이 말하는 ‘1왕자’라는 사람에게 역시도 관심이 쏠렸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1왕자는 아즈란과 함께 걸어 나가기를 바라는가?”
“그렇습니다. 제 말이 곧 1왕자께서 생각하시는 뜻일 것입니다.”
“……허.”
결국 이 무역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에스테반이었다.
그 대가로 두 배의 돈을 받는다지만 국가 전체의 수입과 비교하면 그다지 먹음직스럽지도 않았고.
뭐니 뭐니 해도 아즈란은 해양 낙원인 엘리아 제도라는 큰 수입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1왕자는 그것을 무역이 아닌 국가 간의 화합으로 유도했다.
상생을 언급하고 상대를 배려함으로써,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고까지 증명해 냈다.
말 그대로,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칭찬으로 자신을 옭아맨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신들과의 조율도 없이 공무역을 진행할 수는 없겠지.”
국왕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드시 대신들을 설득하여 에스테반과의 계약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겠네.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였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감사합니다, 전하.”
그나저나 대단했다.
남작이라는 낮은 작위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왕을 상대로 원하는 협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담력이라니.
기사들의 나라라고 하더니, 무장도 아닌 남작급의 귀족들부터 그 기개가 어마어마한 듯 보였다.
새삼스럽게 에스테반이라는 이름을 다시 되새기게 된 아즈란의 국왕이었다.
……
……하지만 정작 물러나는 비도르 남작은 아니었다.
‘기, 긴장되어서 죽을 뻔했구나…….’
남작은 긴장감에 젖은 손바닥을 아무렇게나 쓱쓱 닦아 냈다.
평소 조지를 꾸짖던 행동이었으나, 지금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단지 출발 직전에 1왕자로부터 급히 교육받은 내용이 떠올랐을 뿐이다.
-협상의 기본은 냉정이다.
남작은 하루 동안 지켜보았던 1왕자의 눈빛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것이 더한 지옥이었다는 사실은, 차마 본인에게 얘기할 수 없었다.
* * *
에스테반과 아즈란의 무역 협정은 순식간에 체결되었다.
국왕의 뜻이 워낙에 확고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로서도 딱히 쓸모없는 나비산호를 공짜로 팔아넘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의견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양측 모두에게 의문스러웠던 이야기는, 양측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끝이 났다.
“허…….”
“오오…….”
남작을 위시한 상단 일행은 아즈란을 떠나기 전, 엘리아 제도를 방문했다.
국왕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1왕자가 내린 의미심장한 명령도 아직 남아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남작은 그런 1왕자의 명령도 잊은 채로 구경에 몰두했다.
“허어! 참으로 명관이구나!”
그 넘실거리는 파도와 해안은 말로만 듣던 것보다 배는 아름다웠다. 북부의 상대적으로 척박한 땅과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남작으로서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명관은 따로 있었다.
“저게 바로 나비산호입니다.”
“오오!”
바로, 나비산호가 자생하는 산호초 지대였다.
형형색색의 산호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하얀색 나비들. 이 광경을 처음 보는 남작과 상인들로서는, 어째서 그것이 돌멩이만 한 취급을 받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전하께서도 미관을 헤치지 말자고 하신 이유가 있었구나…….’
그 순간, 문득 구경을 이어 가던 남작의 머릿속으로 1왕자의 명령이 떠올랐다.
“아……!”
남작은 품속에서 보랏빛의 보석 같은 것을 꺼냈다.
최상급. 어쩌면 그보다 더욱 고급으로 보이는 마정석이었다.
햇빛에 비추어 보자, 무언가 깨알같이 음각된 모습이 보였다.
어디 보자…….
“이쯤이면 되겠지.”
이 마정석이 최상급인지, 무언가가 음각되었는지는 남작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단지 남작은, 1왕자가 내린 명령을 그대로 이행할 뿐이었다.
푹-!
산호초 지대 주변에서 마정석을 아무도 모르게 파묻는 것.
그것이 바로, 남작이 받은 1왕자의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