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3화
태동 (1)
뚝-!
통신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4황자의 눈썹이 동요로 꿈틀거렸다.
허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
이내 4황자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꼬아진 발끝을 까닥거렸다.
마치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모습.
그러나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속에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분노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예전부터 짜 오던 계획들.
모든 것은 연방제국의 것이 될 거라는 확신이 처음으로 어긋나게 되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알아챈 것이지?’
이번만큼은 확실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에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재차 자신의 계획을 틀어막는 것이 그 남자라는 사실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알렌 에스테반.
“다른 이들은 무사히 도착하였습니까?”
4황자의 평온한 목소리에 수행원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윽고 수행원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수행원도, 4황자도 알고 있었다.
한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신경 썼던 에스테반 마탑의 정보와 회수책들을 모두 잃었으니.
……거슬리는군.
“…….”
……거슬려? 무엇이?
4황자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굳히며, 까닥거리던 발끝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댔다.
방금 전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정녕 자신이었던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이 내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말을 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인제 와서 그런 시원찮은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우선은. 이 일의 정리가 먼저다.’
벌써 몇 번이고 쓴맛을 들이켰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박살 난 것은 물론이고, 경각심까지 심은 꼴이 되었으니 같은 방법도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 기별을 넣어 주십시오. 준비해 두었던 계획을 앞당기겠습니다.”
“예, 전하.”
“또한 기술을 빼내기는 어렵더라도 감시의 ‘눈’은 지속적으로 유지하십시오. 저들의 움직임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반드시, 작은 것이라도 보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예…… 옙!”
순간 몰아치는 한기에 수행원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굳혔다.
물론 그 한기의 정체가 살기라는 것은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어겼을 때의 결과 역시도.
후…….
잠시 숨을 몰아쉰 4황자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계획을 다시 짰다.
더는 그런 발칙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에스테반 자체를 압박하면 될 터였다.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부터 천천히.
……그래,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하지만 4황자는 얼마 뒤에 돌아온 소식에 입술을 깨물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원자재의 국산화를 시도한단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어째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설마.
“1왕자입니까?”
“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아마도…….”
“하.”
마음속을 훤히 들킨 기분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농락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이변은 없다.
이쪽의 진행도 단숨에 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시간은 이쪽이 더 유리했다.
0에서 10을 만드는 것과,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정리하는 게 같을 수는 없으니.
“……예정대로 수출 품목 규제를 진행하십시오. 원자재의 국산화는 결코 단기간에 이뤄 낼 수 없을 겁니다.”
“예, 전하.”
“그리고.”
4황자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러곤 이윽고 야만족과의 전황이 세세하게 나와 있는 보고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초 예정했던 그 계획도 함께 앞당기겠습니다.”
* * *
비도르 남작을 위시한 상단 일행이 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장 내게로 전달되었다.
지시했던 대로. 그리고 바라던 그대로의 협상 체결 소식이었다.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군.”
그것이 비록 싸구려 취급을 받을 뿐인 나비산호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의미인 것은 분명했다.
나는 전달받은 내용을 상기하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산호 견본의 도착 예정 시간은 앞으로 2주 정도인가.’
조지의 휴가 복귀와 맞물리는 기간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어딘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초 마법 기술을 갈고닦겠다는 왕실의 발표.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진 1왕자의 충격적인 예산안의 통과는, 귀족들의 경악을 사기에 충분했다.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은 둘째치더라도, 그러한 행보가 가진 의미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당연히 귀족들 사이에서는 해당 안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했다.
-헛수고네. 결국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돈만 날리게 될 것일세.
-원자재의 국산화라니…… 쯧, 수출국인 연방제국을 무던히도 자극하려 하는군.
-구태여 예산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남는 연구진으로 차근차근 이끌어 나가면 될 것을…….
물론 긍정적인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도 절대다수의 여론에는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물며 그 예산을 마련한 방법이 무엇이던가?
언제부터 그런 공격을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왕자파가 이를 수긍할 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귀족들의 극심한 의견도 이해는 가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귀족들이 받은 충격이라 해 봐야, 그 명을 받고 성과를 이끌어 내야 할 당사자들이 받은 충격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터였다.
“맙소사…….”
“이, 이걸 모두 국산화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기초 마법 기술 발전에 투입된 마법사들은 왕실에서 내려온 지침에 황망하게 외쳤다.
하지만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거들떠나 보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부탑주 윌포드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말해 두었던 시제품은 완성되었나?”
“예, 그렇습니다. 아직 완벽한 상태를 자랑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본 것입니다.”
“그렇군.”
대화를 듣는 마법사들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그가 무언가의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소식은 처음 들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윽고 윌포드가 꺼내 든 것을 확인한 마법사들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졌다.
“여기에 있습니다.”
“……마법 시약?!”
“저, 저게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정확히 말하면 마법 시약의 완성본은 아니었다. 성능을 테스트하고 마법적인 처리를 완료하기 직전의 단계.
그렇다고는 해도 에스테반의 마법사들이 보기에는 이미 완성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 품질적인 측면이, 그리고 그 형태가 말이다.
그렇게 기다란 시험관 안에 들어 있는 붉은 액체를 쳐다보던 내 입꼬리가 한껏 휘었다.
“……나쁘지 않군.”
공작원 사태 이후로 마탑주와도 상시로 통신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기초 마법 기술 연구에 대한 사실은 그의 제자인 윌포드가 가장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윌포드가 건넨 것은, 연락을 받은 이후로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던 시제품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내가 틈틈이 마탑주에게 전해 준 미래의 지식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같은 것이겠지.
‘역시 기대했던 만큼이라 해야 할까.’
그 품질은 단기간 내에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시중에 풀린 연방제국의 것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간 못한 수준.
……뭐, 그만한 지식을 쥐여 주었는데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대마법사라는 이름이 울고 갔을 테지.
그리고 그것은 부탑주, 윌포드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마탑주가 시킨 것을 직접 제작한 것은 그였을 테니.
설사…… 그것이 그 논리를, 방식을 완전히 흡수하진 못했을지라도. 윌포드라는 자는 시킨 것은 확실하게 해내는 이였다.
나는 시험관을 가볍게 한 번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드느라 수고했다고 전하도록. 흠…… 아니지. 조만간 충분한 포상을 내릴 터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네, 감사합니다.”
“음.”
……그렇다면.
내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자, 그러면 새로 임명된 마탑의 연구소장은 누구지?”
“엇……! 예, 1왕자 전하. 저를 찾으셨습니까?”
부름에 응한 것은 소심한 인상의 중년 마법사였다.
로브에 수 놓인 자수의 색상은 파란색. 어쨌든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은?”
“치, 치프 레바테인이라고 합니다. 어, 얼마 전에 내려온 마탑주님의 뜻으로 연구소장의 자리를 임명받았습니다.”
“그렇군.”
마법의 주인 로드. 그 아래로 고위급의 마법사를 칭하는 엘더와 가디언이라는 등위가 있다면, 치프는 그보다 아래인 중위급의 경지를 뜻했다.
그런 이가 왕국 마탑의 가디언들을 제치고 연구소장이 되었다는 말은, 분명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방증이었고.
처음 본다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크롬웰이 마탑주에 오른 뒤에 죽였나 보군.’
그대로 놔두었다면 연구소장의 자리를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험관 안에 든 마법 시약을 건넸다.
“받아라.”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로 시험관을 받아 든 신임 연구소장의 고개가 주억여졌다.
“새, 샘플이군요. 언제 이런 것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능을 테스트해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일축했다.
“그럴 리가.”
“…….”
“그건 자네들이 만들어야 할 견본품이다.”
“예? 견본품이라니…….”
“최소한 그것과 똑같은 품질을 양산할 수 있도록 연구에 돌입하도록.”
“똑같은 품질을 원하신다면 이것을 만들었을 때와 같은 조합식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합식은 없다.”
“…….”
“아니, 정확히는 그 조합식은 너희가 사용할 수 없지.”
그건 대마법사와 가디언급 이상의 천재들이 축약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구소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조합식부터 양산 과정까지. 모든 것은 자네들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그게 대체 어떤…….”
“그건 자네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조악하게나마 만들어 낸 임시용이니까.”
최우선과제는 마법 시약이었다. 하지만 비단 마법 시약이 마도구 원자재의 전부 일리는 없지 않은가?
아직 남은 품목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같은 방법을 택했다.
미래의 지식과 대마법사의 힘으로 우선 시제품을 만들고…….
‘그 뒤에 이를 양산을 위한 방식으로 풀이하며 따라오게 하는 방법으로 말이야.’
그래.
결과에 과정을 덧붙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물밑에서 탑을 쌓아 올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으니까.
물론 기술을 베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연방제국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하지만 이건 베끼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에 대한 준비는 끝나 있었다.
“2주.”
“…….”
“그 안에 조합식과 양산 과정을 비롯한 모든 공정을 성사시켜라. 부탑주가 자네들을 도울 것이다.”
신임 연구소장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멍하니 바뀌었다.
당연히, 그들은 까라면 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