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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64화 (6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4화

태동 (2)

“서, 성공했다!”

1왕자가 정한 기한의 끝을 하루 남겨 둔 시점. 신임 연구소장은 빙빙 돌고 있는 눈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그의 책상 위에는 붉은빛을 띤 액체가 플라스크 위로 넘실대고 있었다.

마침내 견본품과 동일한 품질의 마법 시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드디어……!”

“축하드립니다, 소장님!”

연구소에 있던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마법사란 참으로 무서운 생물이었다. 갈아 넣으면 갈아 넣을수록 효과가 있었고, 어떻게든 성과가 나왔으니.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양산을 위한 공정 과정을 연구해야 했고, 어떻게든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흐흐, 흐하하하!”

그래도 저들만 좋다면 그걸로 상관없었다.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다줄 나비산호가, 지금 왕궁에 도착했음에도 정녕 행복하다면 말이다.

……한편.

먼 남부의 땅, 엘리아 제도.

에스테반과의 무역을 위해 양식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 장소에서, 문득 강렬한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기운이 시작되는 곳은 누군가가 파헤친 흔적이 있는 모래사장이었다.

우우우우우웅-!

하지만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아즈란의 마법사들까지, 누구도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정석에 저장된 마력이 마법진을 만들어 냈을 때도.

마법진이 해안을 뒤덮고 사라진 이후에도.

이윽고 사라진 마정석의 기운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그즈음 아즈란으로부터 조달된 나비산호의 견본이 왕성으로 도착했다.

왕국 상단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달받은 발테르 후작은, 반색하며 결재 중이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오오, 드디어 도착했는가?”

“예, 후작 각하.”

1왕자의 주도로 체결된 나비산호 무역. 하지만 아직 그 이유를 듣지 못한 후작으로서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사 오라고 지시한 것인지. 또한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아무리 정보를 찾으려 해도 알 수 없었거늘…….’

그런 나비산호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때문에 후작은 다급하게 외투를 걸치며 상인을 재촉했다.

“그래, 방금 왕궁으로 도착했다지? 어서 가서 확인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급한 마음은 태도에서부터 드러났다.

왕성의 복도. 품위가 어긋날 정도로 달리는 후작을 본 사용인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이 미스릴 광산을 발견했을 때와 닮아 있다는 것은 본인도 모를 터였다.

“……응?”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왕성의 창고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응당 있어야 할 마차는 어디에 있고, 웬 서류를 살피는 상단 일행들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는가?

후작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상인들을 불렀다.

“이, 이보게들! 방금 왕궁에 도착했다던 나비산호는 어디로 갔는가?”

“아아, 아즈란에서 구해 온 그것 말씀이십니까?”

“그러네!”

이에 상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예의를 차리며 답했다.

“마탑으로 향했습니다.”

“……뭐라?”

“1왕자 전하께서 물건이 왕궁에 도착하는 즉시, 물량만 확인하고 마탑에 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이런……!”

후작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후작의 머릿속으로, 왕궁의 복도를 달리던 한심한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놈의 나비산호가 대체 뭐라고…….’

후작의 허탈함은 당황한 상인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흐음……!”

“이게 바로 나비산호라는 것인가.”

마법사들은 도착한 물건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미 이 나비산호가 마탑에서 쓰일 거라는 사실을 1왕자에게 들은 참이었으니.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다 죽었잖아?”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산호의 모습은 끔찍했다. 바닷속에서 하늘하늘 날갯짓하듯 흔들리던 형태는 대체 어디 가고, 생전의 모습을 가히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 비린내는 어찌나 심하던지,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그 순간, 연락을 받은 부탑주와 연구소장이 나타났다.

“물건이 도착했군.”

“아, 부탑주님…… 물건이 도착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상태?”

부탑주 윌포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호들을 살피다가, 이내 이해했다는 듯 마법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게 말랐군.괜찮네. 물건을 안으로 들이게나.”

“그,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하지만 이건 도무지…….”

“걱정하지 말게. 이미 1왕자께서도 예상하셨던 일이니.”

“……예?”

부탑주 윌포드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었다. 마법사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그 모습이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나는 윌포드와 신임 연구소장이 들고 온 나비산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도착했군.”

내가 알던 그 나비산호가 맞았다.

그것도 가루로 만들어진 극소량밖에 구하지 못했던 과거와 다르게, 말 그대로 온전한 형태였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웃겨서, 순간 실소가 나올 뻔했다.

‘이렇게 구하기 쉬운 물건이었을 줄이야…….’

나비산호는 마법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의외로 밀접한 연관을 가진 물건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말린 나비산호의 마나 저항력이 거의 0%에 수렴한 수치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현존하는 재료 중에서 마나 저항력이 가장 낮다고 평가되는 것이 13%의 수치를 가진 다이아몬드였으니.

0%와 13%의 차이가 적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1%의 차이가 상등품을 결정짓는 원자재 기술의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의 재료인 것이다.

각종 원자재의 중화제로 사용되는 화이트 코럴.

……그래. 그것이 바로 미래의 연방제국이 독점했던 최고급 재료의 정체였다.

‘역시, 오히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자연적으로 마르는 것이 낫군.’

나비산호는 해수가 없는 곳에서도 일정 기간은 잘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역을 진행한다면 적당히 잘 마른 상태로 에스테반에 도착하게 되고, 구태여 말릴 필요가 없기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냄새가 고약하다는 점 하나뿐인가.’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제도에서도 장난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미리 마법 처리를 해 둘까?

그 부분은 어떻게든 감내해야 하는 일일 터였다.

덕분에 죽은 나비산호의 용도가 밝혀지는 게 늦어질 것은, 그나마 장점이라 할 수 있겠지.

그래도…….

“결국 가공에 성공했었으니, 방법은 있겠지.”

미래, 연방제국의 황제에 대한 정보보다 보안이 심했던 특급 기밀 중 하나가 바로 이 나비산호의 냄새를 없애는, 결정화에 대한 공정이었으니.

스윽-

나는 미리 이야기해 둔 대로, 견본으로 가져온 나비산호 하나를 보관함 위로 으스러뜨렸다.

그러고는 냄새가 밴 장갑을 슬며시 벗으며 말했다.

“확인해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신임 연구소장 레바테인이 산호 가루를 한 움큼 집어 갔다.

그러고는 미완성의 마법 시약 내부로 이를 슬슬 흘려 넣기 시작했다.

“이제 섞겠습니다.”

이윽고 잘 섞일 수 있도록 시험관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 액체 사이로 하얀색 별똥별 같은 것이 수놓아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레바테인의 표정은 밝아지고 있었다.

“오옷……! 이건……!”

“이보게, 괜찮게 되어 가고 있는 건가?”

“예? 아니, 이 차이를 부탑주님께서는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네만…….”

부정인 듯 아닌 듯 변명을 늘어놓은 부탑주가 괜스레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도리어 자네처럼 이런 미묘한 차이를 아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예?”

“크흠! 아무것도 아닐세.”

마법사는 으레 그렇듯 괴짜들이 많았다. 하지만 신임 연구소장은 그 정도가 더욱 지나쳤다.

연구에 인생을 바친 남자. 마탑에서 그를 부르는 별칭이었다.

실제로 그 별칭답게 마탑주의 선택을 받지 않았던가?

뭐, 어쨌든. 지금은 윌포드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미완성 상태에서 따로 결합 되지 않고 있던 재료들이 원활하게 섞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래라면 마나 저항력 탓에 잘 섞이지 않는 재료들이 섞였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마나 저항력이 적은 다이아몬드의 결정을 중화제로 사용하더라도 권장되는 재료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13%에 가까운 마나 저항력을 감소시킨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레바테인은 남부 대륙에서 나오는 커피를 예시로 들며 이를 설명해 나갔다.

“제아무리 뜨거운 물에 설탕을 녹이더라도 그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정해진 한도, 그 양을 초과할 수는 없죠.”

“그, 그렇겠지?”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시약 내에서 사라진 13%의 저항만큼 재료를 더 섞을 수 있다.

그 말인즉, 기술에 사용되는 재료가 많아지니 성능이 그만큼 더 올라간다는 소리였다.

설명을 들은 부탑주는 손뼉을 맞부딪치며 감탄했다.

“오오, 그런가? 정말 대단하군.”

“이건 대단하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마도구 원자재의 혁명과도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그, 그래. 아무튼 엄청나다는 소리가 분명하겠지. 잘 알았네.”

13%라는 수치는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만일 연방제국보다 조금 못한 성능의 원자재를 만들더라도, 이를 압도할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부탑주는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1왕자 전하, 그렇다면 이후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런 사실을 모든 마법사들이 공유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얄팍한 독점이 아닌, 기술 보안을 위한 대응 방안이었다.

그리고 윌포드가 말한 것은, 이러한 보안을 유지하면서 연구를 이어 갈 방법을 묻는 것이었고.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기초 마법 기술을 연구하여 원자재를 만드는 이들과 최종 공정을 이끄는 인력을 나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인원 배치는 직접 하겠다.”

그래. 적어도 에스테반을 배신하지 않을 이들만을 배치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를 분류하는 것 역시 간단했고.

슬슬 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공정에 참여할 연구원의 목록을 보내 주지. 그때 동안 자네들은 원자재들의 품질을 올릴 방법에 관해 연구하고 있도록.”

“예, 전하.”

이로써 마도구 원자재에 대한 것은 당분간 일단락이었다.

아직 많은 품목이 남았지만, 나비산호라는 큰 산을 넘은 이상 지금처럼만 하면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

그런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마탑 최상층의 어느 방이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마력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해져 왔다.

마침내 마력의 근원과 마주한 내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탈해 보이니 다행이군.”

……에스테반 왕국 마탑의 탑주. 그리고 마법의 주인, ‘로드’ 엘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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