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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65화 (6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5화

태동 (3)

“전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는 독을 먹고 쓰러져 있었던 그때와 다르게 정정해 보였다.

물론, 단순히 회춘이나 그런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은 모습에 정정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복수심만을 불태우던 그때보다야 한 꺼풀 벗어던졌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었지?”

“전하께서 지시해 주신 마정석과 시약을 제작한 이후로는, 그 아이를 수련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흠…… 그것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

“예, 실은 저 역시도 그 아이와 함께 수련하고 있지요.”

한계를 넘었다 하나, 한번 경험해 봤기에 바로 조절이 가능했던 나완 다르게 아직은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새끼 사슴 같은 단계일 터였다.

그에게 제작에 관련된 일을 시킨 것도 그러한 재활 활동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충분히 새로운 경지를 가늠하고 정리했는지, 마탑주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나이에 마탑의 일도 내려놓은 채로 수련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각성의 여파 탓인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기분입니다.”

“소득은 있었나?”

“허허…… 애석하게도 통 익숙해지질 않더군요.”

“뭐, 그렇겠지.”

가진 힘에서 나오는 괴리감.

인간의 신위를 초월한다는 것은 그랬다. 나 역시도 회귀 전에는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직후에는 한동안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였을 정도였으니.

거기에 마탑주는 오랜 기간 동안 독으로 인해 고생하지 않았던가?

비록 신체의 재구성을 겪으며 회복되었다지만, 마력을 움직이는 데에 있어서 방해 요소가 될 것은 당연했다.

한데 마탑주는 새삼 그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경지에 어느 정도는 적응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전하께서 지니신 힘의 수준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호오, 그래?”

그건, 독으로부터 깨어난 그를 마주했을 때 했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힘은 엄연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절대자라 불리던 회귀 전엔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었던가?

‘단순히 대마법사의 경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보군.’

그렇다면 무력을 이루는 오러 외에도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기는 하다는 소리였다.

때문에 나는 흥미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지금 자네의 눈에 비추어지는 나는 어떤 모습이지?”

“흐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군요.”

……어렵다?

무척이나 애매한 말투였다. 마치 정답을 숨기려는 듯이.

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질 않았다.

“언급하길 꺼리는 핑계로 보이지는 않는군.”

“예, 믿지 못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어렵다는 말은 뭘까?

이에 설명을 이어 가는 마탑주의 표정은 곤란하다는 듯 미묘하게 변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붉은색의 기운입니다. 제가 보아 온 그 어떠한 기운보다도 밝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지요.”

그러면서 마탑주는 태양 같다며 묘한 비유를 남겼다.

아마도 검왕으로서. 그리고 1왕자로서의 내 힘을 뜻하는 것이리라.

평생을 다뤄 온 오러, 그리고 절대자로 군림하면서 쌓아온 ‘격’이 바로 그러하겠지.

“하지만 그다음에 보이는 것은 심연의 어둠입니다.”

“어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둠이라…… 나에게 어둠과 관련될 만한 것은…….

‘설마?’

순간 눈썹이 작게 들어 올려졌다.

짚이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 자네가 말하는 것이 흑마법인가?”

과거의 힘을 한시라도 빨리 되찾기 위해 비도르 남작과 함께 갔던 지하 묘지. 그곳에서 이용했던 흑마법사들이 모아 온 부정의 감정.

아수스의 형상으로 나 자신을 공격하며 자괴시킨 뒤, 천천히 잡아먹으려고 했던 바로 그것.

만일 대마법사인 그가 이상함을 느꼈다면 그것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감정은 분명 오러에 집어삼켜졌을 텐데?’

단 한 줌도 남기지 않고 내가 모조리 처리했으니까.

무엇보다 애초에 내 안에 그런 것이 남아 있었다면 상극의 기운인 빛의 마나를 가진 성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에게 친근한 모습까지 보이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마탑주는 고개를 내저으며 즉각 부정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게 느껴지는 것은 한없이 치욕스러운 감정과 벼려진 일념입니다.”

“호오.”

그렇게 말하는 마탑주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의 나에겐 그럴 만한 요소란 단 하나도 없었으니.

오직 성공하고, 모든 것을 당당히 처리하며 나아가는 존재로만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죽음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개의치 않고, 다만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역시나 재미있군.’

진리에 다다른 눈은 삼라만상의 근간마저도 꿰뚫는다 한다. 특히나 마도의 극한들 걷는 그라면, 어쩌면 그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번쩍-!

외투 속에 가려진 오른팔이 빛났다.

어느새 내 손에는 팔에 새겨진 문양 대신, 검은색의 보석이 박힌 반지가 들려 있었다. 마법 각인을 일시적으로 아티팩트화(化) 시킨 형태였다.

나는 반지를 손안에서 몇 번 굴려 보다가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던 마탑주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낯선 물건이지만 익숙한 마력의 형태가 느껴지는군요. 혹 그것이 저를 치료해 주셨을 때 사용하셨던 아티팩트입니까?”

“그래, 고대의 아티팩트다. 한번 확인해 보도록.”

“고대…….”

마탑주는 말끝을 지그시 흐렸다.

고대라고 부르는 것은, 인류의 대전쟁이 벌어졌던 ‘혼돈의 시대’ 이전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 기록조차 얼마 남지 않은, 머나먼 과거의 시기.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뒤, 손을 내밀었다.

이윽고 반지를 손에 든 마탑주가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재미있는 구조군요.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하고 방출하여 흐름을 교란시킨다니…….”

“그런 것까지도 알 수 있나 보군.”

“자세한 것은 세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골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대마법사라는 이름답게 단박에 그 용도를 파악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데 이 아티팩트는 완성된 것입니까?”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요, 문제라기보다는…… 무언가 그 형태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음.”

나는 그가 말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아마도 그건 동화율이라 부르는 것일 터다.”

마법 각인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 아티팩트들과 다르게, 꾸준히 사용하는 것을 통해 성능을 끌어올려야 하는 아티팩트였다.

나는 그에 관한 미래지식들을 마탑주에게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명을 들은 마탑주의 표정은 도무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화율이라는 말이지요…….”

탁-

마탑주가 책상 위로 반지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본론을 언급했다.

“전하, 제 생각에는 이 아티팩트의 성능이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 판단되옵니다.”

“끝이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부족한…… 혹은 미완성 된 형태를 채워 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는 뜻입니다.”

“……뭐라?”

……동화율 외에도 성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마탑주를 바라보는 내 눈이 의아하게 좁혀졌다.

* * *

마법 각인에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나는 오러와 숙련도를 이용해 회귀 전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동화율을 올려 나가고 있었고, 한 번의 임계점을 넘은 동화율은 지금도 여느 마법사들의 재앙이 되기에는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끝이 아니라면? 마탑주의 말대로 이것의 진정한 성능이 따로 있다면?

“…….”

나는 묵묵히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마탑주의 설명을 상기해 나갔다.

-이것은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원소를 흡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기 중의 마나는 곧 세상을 이루는 원소다. 두 개가 다른 것이 있는가?

-엄연히 다릅니다. 그렇기에 원소를 분류하는 지금의 마법 형태가 있는 것이지요.

대마법사는 그렇게 말한 뒤에 짐작한 사실을 결론지었다.

순수한 원소를 온전히 흡수한다면, 능히 그 힘을. 즉, 원하는 속성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순수한 원소라…….”

내가 아는 미래의 지식 또한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무언가 이론의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었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검사이기에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걸 배제해도 여러 지식들이 철저히 밝혀지지 않고 숨겨졌을 수도 있지.

나비산호의 정제법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내가 아는 정보 또한 편향된 지식일 수 있었다. 마법 각인의 진정한 형태가, 단지 문신에 국한되었을 거라는 그 지식이.

그렇다면 연방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하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리라.

똑똑-

“부르셨습니까?”

휴가에서 돌아온 조지는 잠시 보좌관으로서의 일을 내려 두었다. 그리고 정보수집을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명령이었다.

“왕국 상단의 관리자는?”

“무역에 대한 일을 최종적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기적으로 나비산호를 회수할 상인들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렇군.”

나는 그런 조지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상단의 관리자에게 전하도록.”

“어떤 겁니까.”

“지금부터 갈데르드 평야에서 생산되는 미스릴의 물량을, 점차 시중에 풀기 시작할 것이다.”

“……!”

조지가 경악하며 물었다.

“물량을 푼다니…… 그건……!”

“어디까지나 극소량만이지. 그들에게는 아즈란에서 정체를 숨기고 미스릴을 판매하라 전달해 두도록.”

나비산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테지만, 결국 그건 차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가까운 미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에스테반의 힘이 되어 줄 수단.

그렇기에 부족해질 국고를 채우기 위한 방법이 추가로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시점에서는 예정대로 남아도는 미스릴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기도 했다.

“거기서 획득한 자금으로 이번에 보고가 올라온 것들을 구입하게 하도록.”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

“그리고.”

하지만 내 명령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렌델.”

“예?”

“아렌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보고하도록.”

내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진 대륙 전도에 향했다.

그곳에는 대륙의 반대쪽. 깊은 산맥이 맞닿아 있는 국가가 있었다.

……아렌델.

거기에 내가 원하는 답이 있을 것이다

* * *

쿵-!

육중한 철문이 부수어질 듯 거세게 열리자, 왕궁 회의실 내부에 앉아 있던 귀족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한낱 기사였다.

하지만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호통이나 질책 따위는 없었다.

다만, 부디 저 병사의 입에서 나올 보고가 가벼운 것이기를 빌며, 면면에 띈 불안감을 애써 감출 뿐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지?”

“아,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국경지대 북부를 지키던 성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뭐라?!”

운명은 야속하게도 결코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그것도, 상정하던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부, 북부의 성벽이 함락되었다고…….”

아렌델을 이끄는 국왕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혼미해지는 정신이 간신히 붙잡으며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윽고 내뱉는 목소리는 제 스스로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했다.

“하펜델 경은…… 아니, 북부를 지키던 기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여, 연락이 완전히 두절 되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럴 수가……!”

설마…… 정말로?

진정 최후의 전선이 뚫렸단 말인가?

아렌델이 몰려드는 야만족을 막아 낼 수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왕국 제일의 기사인 하펜델과 그의 기사단이 북부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북부가 무너졌다.

그야말로 정문이 열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 이대로 가다가는 정녕 야만족들의 발굽에 국토가 유린당하는 꼴을 지켜봐야 하리라.

국왕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말했다.

“지원을…… 지원을 요청하러 간 사절단들에게서는 연락이 도착했나?”

연방제국을 위시한 주변 국가들에는 이미 도움을 청한 상태였다.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손을 거들어 준다면, 남하하는 야만족들을 몰아내고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희망 역시 그들의 편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연방제국에서는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핑계로 지원을 거절했고, 이웃 국가들은 추위 탓에 병력을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로 병력 지원을 꺼리고 있습니다.”

“……정녕.”

절망적이었다.

추운 겨울이 이어지면 전쟁의 불씨가 사그라드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그건 혹한의 오지에서 자라온 야만족들에게 통용되는 상식은 아니었다.

도리어 아무런 지원조차 받아 내지 못한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겨울이 사형집행과도 같은 유예에 불과하겠지.

“아렌델의 수백 년 역사가 이리도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구나…….”

그렇게 국왕은 절망에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골몰히 생각에 빠져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아직입니다.”

스물두 살의 젊은 왕세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떼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에스테반이 남지 않았습니까?”

“……에스테반?”

신성제국과 연방제국이라는 대륙 두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

……분명 에스테반에는 사절단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미덥지 못하다거나, 외교적인 접점이 없다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아렌델과 그들 사이에는 연방제국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만일 그들이 지원을 수락하더라도, 결코 병력을 보내오진 못할 것이야.”

“…….”

연방제국이 타국의 병력이 제국령을 통과하는 일을 허락할 리 없다.

설사 우회시킨다고 하더라도 국운이 땅에 떨어진 뒤에야 지원 병력이 도착하겠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야만족의 땅을 통해 병력을 파견한다는 현실성 없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왕세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야만족의 난을 이겨 낸 이들입니다. 적어도, 이 사태에 대해 같이 논의해 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됩니다.”

“허어…….”

“게다가 그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야만족의 땅을 습격하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정론이었다.

국왕은 물론이고 귀족들 역시 고민의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하자, 왕세자는 주먹이 하얗게 질린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주장을 이어 나갔다.

“그게 아니라면 아렌델에는 더 이상의 가망이 없습니다. 또한 더 이상의 미래조차 없을 것입니다.”

“…….”

그들에게 기대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멸망뿐이라는.

조금의 완곡함도 없는 날 선 표현.

비빌 언덕은 따로 있다지만 그 말대로 발악해 봐야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왕세자의 뜻대로 연방제국에 보낸 사절단을 곧장 에스테반으로 파견시키겠다.”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전해 들은 귀족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지푸라기를 잡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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