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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66화 (6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6화

석연치 않은 작전 (1)

왕성의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외부인들의 극성에 난감을 표했다.

“부디 국왕 전하를 뵙게 해 주시오! 그게 아니라면 잠시나마 1왕자 전하와 대화를 나눌 수만 있어도 좋소.”

“그러니까…….”

“증표도 보여 드리지 않았소! 우리는 아렌델 왕국에서 찾아온 사절단이란 말이오!”

그랬다.

단순한 난동객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대뜸 내민 배지는 정말로 아렌델 왕국을 상징하는 증표가 분명했다.

그것도 국왕의 대리인을 상징하는 배지였다.

그러나 기사들로서는 그 상황 자체가 꺼림칙했다.

“……우선 기별을 넣어 볼 터이니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와 주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말이오!”

통솔자로 보이는 남성은 답답해서 미치기라도 할 것마냥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당장에라도 국운이 기울기 직전인 이 상황에서, 어찌 손 놓고 알현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그러나 피차 답답한 것은 이들을 상대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타국에서 사절단이 온다는 소식은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또한 관련된 내용이 전달된 사실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지치고 초라한 몰골은 아무리 봐도 일국을 대표한 사절단이라 하기에 부족했다.

응당 있어야 할 수행원과 마차조차 없었고, 어찌나 급히 말을 끌고 왔는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써, 얼굴조차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원칙적으로 신원이 불확실한 이들의 출입을 허가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사실관계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왕 전하를 찾아뵙고 직접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아렌델의 왕께서 내리신 문서를 제시해 주십시오.”

“그, 그건…… 통신이 연결되기만 하면…….”

“……후우.”

냉정한 원칙으로 응수하던 기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이대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로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답답하신 줄로 생각되지만, 저희로서도 사명이 걸린 일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왕국의 증표를 보여 주셨으니, 알현의 신청이 빠르게 처리될 것입니다.”

“……결론은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오? 정녕 어떻게 좀 안 되겠소?”

“죄송합니다.”

그렇게 기사는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자리에 꼿꼿이 섰다.

이에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두 남자의 표정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아아…….”

“자작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

지금 이 시각에도 북부의 저지선을 뚫은 야만족들은 아렌델로 남하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통솔자, 엔테 자작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 공허한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헛된 희망에 불과했나.’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떠나기 전 고향 땅의 모습을 그려 나갔고, 국왕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를 그 위로 덧그렸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에스테반의 1왕자를 찾아가라.

연방제국의 황궁에서 최후의 통신을 나눈 지도 벌써 열흘.

일말의 희망에라도 걸어 보자는 국왕의 말에, 마차조차 버린 채로 그 먼 길을 열흘 만에 달려왔다.

하나 그거야말로 헛된 희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끊긴 마법 통신, 게다가 갑작스레 바뀐 일정은 시작부터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어긋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준비를 마치고 움직였을 것을…….

……아니, 차라리 왕궁으로 돌아가 한 손이라도 거드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녕 이것이 아렌델에게 주어진 미래였다면, 이제는 끝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는 없으리라.

엔테 자작은 씁쓸하게 중얼거리고 왕성을 등졌다.

그 순간.

“벌써 돌아가시렵니까.”

엔테 자작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막아선 중년의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그 생김새와 목소리는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다만 이상했다.

올곧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하며. 또한 벌써 돌아가실 거냐며 묻는 것이, 마치 자신들을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애초에 연고도 없는 이 땅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찾아올 이가 있을 리 만무했거늘……

“……누구십니까?”

그렇기에 엔테 자작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은 온아하게 웃으며 그들을 비켜 지나갈 뿐이었다.

농담처럼 그들을 지나치고. 또 그들을 밀어냈던 기사들에게로 다가갈 뿐이었다.

……그리고 왕궁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

비로소.

그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왕궁으로의 길목이 열렸다.

애원하고 사정해도 열리지 않았던 마지막 희망이 저 남자의 존재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토록 믿기지 않는 장면 속에서, 남성의 입이 차분히 떼어졌다.

“따라오십시오. 제 상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게…….”

그게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남성은 왕궁으로 발걸음을 들이며 자작에게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렌 에스테반,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께서 여러분들을 들이라 하셨습니다.”

* * *

비도르 남작이 손님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밤에 찾아온데다 거지꼴을 한 모양새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저들은 전장을 달리던 내 모습과는 달리, 피 칠갑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꼬락서니는 아니었으므로.

“에,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아렌델의 엔테 자작이라 하옵니다……!”

아렌델의 세 손님은 예를 차리기 위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는 무심히 괴고 있던 턱 끝을 까닥거리며 이를 멈추게 했다.

“그따위 허례허식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

“……아!”

내 차가운 일침에 어정쩡한 자세로 선 그들은 당황하며 행동을 바로잡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남작이 옆에서 무언가를 건넸다.

……와인 잔이었다.

“뭐, 말귀는 잘 알아들어서 다행이군.”

나는 와인 속에 담긴 진한 포도의 향을 음미하며 운을 떼었다.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저들의 모습이 우스웠다.

“왕성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지?”

“죄, 죄송합니다. 민폐라는 것은 알았지만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는 용건이 있었기에…….”

“그렇군.”

……용건이라,

그 용건이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애초에 저들이 찾아올 만한 이유가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긴급 지원 요청이 모조리 거절당했나?”

“…….”

침묵은 곧 긍정.

하물며 그 곤란하고 애처로운 눈빛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내 어깨가 작게 으쓱여졌다.

“뭐, 요즘 같은 시국에 구태여 타국에 병력을 보내겠다는 머저리들이 있을 리 없겠지.”

강하게 말했다지만 이는 모두 사실적인 ‘상식’에 기반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아렌델이 방파제의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야만족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와 만나 작게 바스러지기를 말이야.”

“……예. 지원 요청에 돌아온 답변은, 겨울이 두렵다는 핑계뿐이었습니다.”

슬슬 야만족들의 대규모 남하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참이었다.

야만족의 땅이 다시없을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도. 때문에 저들이 굶주려 있다는 사실도.

엔테 자작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들은 아렌델에 병력을 지원해 주는 것 보다, 희생시킨 후에 그들의 국경지대를 틀어막는 것이 낫다며 이익을 재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야만족들의 굶주림이 해소되면 약탈을 시도할 이유가 없어지니까.”

또한 야만족의 병력이 지금처럼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퍼질 테니, 나름 합리적인 판단임에는 분명했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그들이 원했던 대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아렌델은 멸망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단지 안다고 하기에는 그 과정 하나하나를 꿰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안다.

그 안에서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으니까.

“그런 와중에 에스테반을 찾아온 것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과거에도 없던 일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과거와는 다르게 에스테반은 야만족의 침략을 가뿐히 깨부수고, 놈들의 땅을 역공하는 믿지 못할 업적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엔테 자작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여 왔다.

“야만족을 압도한 에스테반은 저희에게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침략으로부터 가장 큰 공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부디 풍전등화에 놓인 아렌델을 도와주십시오.”

“흐음.”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하며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고민하는 척에 불과했다.

이후에 나올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불가.”

“……예?”

“이런 상황에서 지원이라니, 가당치도 않군.”

……거절이라고?

자작의 눈이 잘못된 것을 들었다는 듯 초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와인을 부드럽게 목 안으로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나는 일국의 왕자일 뿐, 지원을 결정지을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다만?”

“그, 그건, 국왕 전하께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탁-!

나는 책상 위로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원이라 함은 군사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겠지.”

“……그렇습니다.”

“풍전등화에 놓인 자네의 고국이 군사적인 지원을 기다릴 여유가 있나?”

“…….”

없다.

확신컨대, 아렌델은 당장에라도 피난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집무실로 울리는 내 목소리는 다시금 이어졌다.

“남은 것은 에스테반이 놈들의 침략을 막아 낸 방도를 알려 달라는 것뿐인데, 내 생각에는 이 부분은 그대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군.”

“하다못해 놈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그거라도…….”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엔테 자작을 비롯한 사절단들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명령을 내린 이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국왕이 저들을 보낸 데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 있었겠지.

아렌델은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맛보게 될 터였다.

……다만.

와인 잔에 비친 핏빛 안광이 번뜩였다.

“도와줄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

“예? 방금 뭐라고…….”

“놈들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을 만한 전략을 알려 주겠다는 뜻이다.”

“……!”

사절단 일행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졌다.

이어, 사태를 파악한 엔테 자작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아, 아니, 애초에 이 상황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감정이 눈에 선히 보일 정도로 동요한 목소리.

나는 그에 대한 답으로 환한 미소를 내밀었다.

“원한다면 알려 주지.”

인제 와서 같잖은 동냥 따위를 적선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이 상황 모두 내 계산하에 있었기에, 가장 옳은 길을 선택할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이건 내 개인적인 도움이겠지만 말이야.”

차게 내려앉은 내 눈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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