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0화
석연치 않은 작전 (5)
“……그렇군.”
아렌델의 대승.
……그리고 북부의 수복.
나는 아렌델에서 도착한 통신의 내용을 책상 위로 무덤덤이 내려놓았다. 그러자, 승전보를 가져온 비도르 남작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전하, 어딘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으십니까?”
내 얼굴에 조금의 표정 변화도 일지 않았음을 눈치채고, 우려를 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리도 무덤덤하게 행동하는 것은, 다만 이 상황이 그다지 놀랍지 아니한 탓이었다.
“이미 예정된 일이었을 뿐이다.”
또한 그렇게 되도록 설계해 냈다. 그리 정해진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할 정도로 나는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유일하게 감흥이 이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면, 아렌델이 입은 피해에 있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북부의 곡창지대를 불사른다는 작전은, 간단하면서도 결단코 어려운 전략이었다.
첫째로 야만족들이 곡창지대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둘째로는 자국의 식량을 책임지는 곡창지대를 불태워야 한다는 결단력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봄이 다가오기 직전의 시기에만 잠시 불어오는 남풍을 이용해야 한다는 특수한 요소가 필요했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작전의 효용성은 바닥으로 치닫게 된다.
공교롭게도 가장 최적의 기회는, 국운이 기울기 직전인 바로 이 시기였다는 소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략을 완성 시켰던 장본인인 카라반 자이트는, 역시나 내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또한 실행했다.
회귀 전에는 어떠했던가? 아렌델이 멸망한 이후로 해당 조건을 완벽히 갖추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했기에, 이미 그 땅은 야만족들에 의해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뒤였다.
게다가 아렌델의 전역으로 퍼진 야만족들을 북부 곡창지대로 유인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의 해방군이 희생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아렌델은 온전히 되살아났다.’
그야말로, 고작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타국의 운명을 바꾼 셈이었다.
나는 한쪽 손으로는 무심하게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승전의 파티를 열겠다고 했나?”
“예. 언제든지 전하께서 도착하시는 날에 맞춰, 파티를 개최하겠다 하였습니다. 다만, 겨울의 추위를 지낸 뒤에 움직이시는 것이 좋겠다며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지난 다음…… 즉, 3개월 이상의 기간이 남아 있었다.
아렌델까지의 먼 거리를 생각해도 무척이나 여유로운 일정이다. 말 그대로 천천히 준비하다가 따스한 봄날 즈음에 찾아오라는 배려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3개월, 길군.”
“하면, 통신을 보내 불참의 뜻을 밝히시겠습니까?”
“아니.”
나는 책상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어차피 계획을 위해서라도 아렌델을 찾아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를 앞당긴다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겠지.
“일정을 조율하겠다. 지금 바로 통신을 전달하도록.”
“예, 전하. 빠르게 마차로 움직인다는 가정하에, 1개월 정도로 예정하면 되겠습니까?”
“1개월 뒤? 그럴 필요가 있나.”
내 짓궂은 시선이 비도르 남작에게로 향했다.
“3일 뒤.”
“……예?”
순간. 맞닿은 남작의 눈동자에 초점이 황당함에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승전 파티의 개최는 3일 뒤다.”
“저, 전하…….”
저들에게도 최소한의 준비를 마칠 시간 정도는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런 3일이라는 시간마저도, 적어도 내게는 천금처럼 아까울 따름이었다.
* * *
에스테반과의 통신이 있던 뒤로 사흘이 지난 시점.
아렌델의 왕실은 전쟁으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장 나흘에 걸친 축제를 명령했다.
왕실의 곳간을 풀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인 것은 물론이고, 전쟁 기간 내에 지속되었던 금주령을 해제해 전쟁이 끝났음을 공표했다.
그러나 국왕은 정작 왕성 파티장의 내부를 보며 쓰린 속을 달래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1왕자가 거절의 의미를 보내올 줄은 몰랐구나.”
“아마 지체하지 말고 백성들을 보살피라는 의미의 배려였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회가 어찌 이번 한 번만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한 왕세자 역시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먼 타국인 에스테반에서 출발하여 3일 후에 찾아오겠다는 말은, 사실상 거절의 의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굳이 3일이라는 시간을 언급한 이유는, 필시 자신을 기다리지 말고 하루빨리 승전의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리라.
“알고는 있다만, 그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구나.”
“괜찮습니다. 다음에는 오직 그를 위한 파티를 개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렇구나. 그렇게 하면 될 일이지.”
그제야 비로소 입가에 미소를 띤 국왕이, 술잔을 손에 쥐고 파티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슬슬 파티에 참석할 이들이 모두 모인 것 같구려.”
그렇게 국왕이 개회사를 읊으며 파티의 시작을 알리려 했다.
……아니, 파티장의 밖에서부터 무언가 웅성대는 소란이 일지만 않았어도 필시 그리했을 터다.
“으음?”
이상함을 느낀 국왕이 시선을 돌려 파티장의 문을 바라보았고, 이어 귀족들도 눈길을 돌려 같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때, 파티장의 문이 열리고 로브를 뒤집어쓴 왕궁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왕이 술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바깥이 시끄러운데, 이게 무슨 소란인가?”
“구, 국왕 전하…… 그것이, 통신이 도착해서…….”
“통신?”
국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마법사가 무언가를 다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 지금부터 움직일 터이니, 즉각 왕궁의 연무장을 비워 달라고 합니다.”
“연무장을? 누가?”
“에스테반의 1왕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최 그게 무슨 소린가?”
지금 오겠다는 말은 무엇이고, 하물며 연무장을 비워 달라는 말은 또 무엇이던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파티장에 있던 귀족들이었다.
“헉!”
“저, 저게 뭐야!”
“맙소사……!”
연무장이라는 말에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귀족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이에 국왕이 깜짝 놀라며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저, 저기를 보십시오. 전하!”
“저기라니…….”
국왕의 시선이 귀족들의 눈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 이게 무슨…….”
밤이 깊은 연무장의 위로 찬란하게 내려앉는 초대형의 마법진. 그리고 그 속에서부터 걸어 나오는 일단의 무리.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폭력적인 기운은 둘째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테, 텔레포트……!”
그것은, 권능이라는 이름의 기적이었다.
* * *
“에,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와, 그 수행원분께서 입장하십니다!”
사용인의 외침에, 국왕의 경악한 시선이 다시금 파티장의 입구에 닿았다.
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 그리고 거침없는 걸음걸이.
그런 믿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기며 나타난 이는, 소문으로만 그리고 통신으로만 그 존재를 알았던 에스테반의 1왕자가 분명했다.
그러니 실상을 본 이후에도 믿을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에스테반의 왕실에 있던 남자가.
바로 방금까지만 해도 절대 참가할 리 없다고 단정 지었던 남자가.
대체 무슨 수로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십 수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저, 정말로 텔레포트를…….”
고장 난 뻐꾸기 인형처럼 같은 대사만 연신 반복하는 국왕의 눈앞에서.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는 왕세자의 앞에서.
나는 우아하게 예를 차리는 것으로 그들을 일깨웠다.
“분명 3일 뒤에 찾아뵙겠다 했거늘, 그리 놀랄 것이 있겠습니까?”
“하, 하지만, 그대는 바로 전까지…….”
에스테반의 왕실에서 통신을 주고받지 않았는가?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기어코 같은 말만 반복하기를 원한다면, 그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곳으로 온 목적은 고작 타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므로.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마시지요. 저는 오늘 아렌델의 승전을 축하드리기 위해 찾아온 ‘손님’일 뿐입니다.”
“그, 그렇군…… 짐이 실수를 범할 뻔했구먼.”
금세 수긍하고 수습하려는 것을 보니, 나름 사태의 파악은 빠른 편인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경황이 없기에 그저 반사적으로 대답했을 뿐일 테지.
나는 아렌델 국왕의 당황한 목소리를 미소로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우아한 예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아렌델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파티가 시작하기 전으로 보이니, 외부인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행사를 이어 가시지요.”
“……크흠! 그러지, 이제 슬슬 파티를 시작함세.”
그렇게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집중시킨 국왕이 개회사를 읊으며,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방관하다가, 파티가 시작됨과 동시에 움직여 적당한 자리를 하나 차지했다.
……회장의 가장 구석 자리.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장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따가운 시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스윽-
“전하, 저들의 시선이 거슬리신다면 인식 저해의 마법을 걸어드리겠습니다.”
뒤따라온 수행원이자, 중년으로 보이는 마법사. 마탑주가 한 말이었다.
아렌델의 귀족들은 나와 마탑주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흠칫하며, 아닌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꼬물꼬물 시선을 틀어 우리를 흘겨보는 것이, 퍽이나 양 무리에 끼어든 늑대를 보는 눈빛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파티장의 시종을 불러내, 와인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쳐다본다고 해서 정보가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을. 구태여 불편한 행동들을 하는군.”
“…….”
순간. 물러나는 시종의 몸이 미약하게 움찔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파티장의 전경에만 시선을 둔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렌델의 왕세자가 일 처리를 바르게 한 모양이지.”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보안을 유지하라 언급하신 점을 이르시는 것입니까?”
“음.”
경악한 시선들 속에서 느껴지는 의문들이 있었다. 내가 어째서 이런 자리에 초대받았는지 의문을 던지는 시선들이었다.
아마도 저들은 아렌델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이들일 테지.
마탑주는 이에 대한 감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안광을 내놓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셨으니 그리 움직이는 것은 감히 당연한 일입니다. 필시 그리했어야만 할 것입니다.”
“참 독특한 생각이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그조차도 똑바로 하지 못했다면 정녕 구해 줄 가치도 없었다는 소리가 되었겠으니.
바르게 말하면 주제 파악이라는 거다.
“뭐,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이지.”
탁-
반쯤 비워진 잔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정복 소매의 단추를 다듬었고, 이내 가볍게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에 감싸 안듯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그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일련의 움직임이 어찌나 몽환적이었는지.
“흐음!”
힐끔대던 귀족들은 물론이고 수행원으로 따라온 마탑주조차도 순간적으로 넋을 잃고 탄성을 흘릴 정도였다.
물론 단순하게 보여 주기만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저 멀리, 누군가가 파티 회장을 가로지르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1왕자.”
내내 가까워지던 기척의 주인공, 아렌델의 왕세자. 그는 내 손에 들린 와인 잔을 한 번 바라보고는 용건을 꺼냈다.
“아버님께서 그대를 뵙고자 하십니다.”
그건, 내가 가장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