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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1화 (7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1화

석연치 않은 작전 (6)

왕세자를 따라 이동한 곳은 국왕의 서재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렌델의 국왕은, 야만족들에 의해 받았던 피로감이 그대로 드러나듯 피폐해진 몰골로 나를 반겼다.

“1왕자, 파티를 채 즐기기도 전에 불러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지 마십시오, 국왕 전하.”

“……하하, 배려에 감사하오.”

국왕은 그 말이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옅게 웃으며 쑥스러움을 털어 내려 했다.

하지만 이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자국도 아닌 타국의 파티에 즐길 거리가 있을 리가.’

하물며 내게 있어서 파티장의 분위기는, 전장의 그것보다도 낯설었으며. 또한 일말의 흥미조차 끌지 못하는 것과도 다름없었다.

오히려 건설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서재의 분위기가 백배 천배는 낫다고 하겠다.

“거기에 이렇듯 사절단까지 이끌고 본격적으로 초대에 응해 주다니, 참으로 영광이구려.”

“아렌델의 국왕 전하께서 내리신 초대에 어찌 홀몸으로 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커, 커흠……!”

국왕의 입에서 연신 헛기침이 흘러나왔다.

이내 서론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먼저, 아렌델을 구해 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오.”

하지만 그 표정만큼은 진정성 있는 희망을 띄었다.

“먼 타국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발 벗고 나서준 그대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렌델은 축배가 아니라 핏물을 들이마시고 있었겠지.”

“과찬이십니다. 그게 어찌 온전한 제 공이라 하겠습니까.”

그렇게 겸손하게 공을 돌리자, 국왕은 기꺼이 손을 내저으며 이를 만류했다.

“아렌델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는 하지 마시오. 그건 그대에게 구원받은 아렌델의 수백만 백성들과 짐의 마음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구원.

금방, 국왕이 뱉은 단어는 통상적인 외교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애당초 국왕의 입에서는 결단코 나와서는 안 될 단어였다. 그 상대의 존재가 국가의 존망을 결정했다는 뜻과도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함께 후일을 도모할 관계에서라면 말은 달랐다.

‘제법이군.’

내 시선이 국왕에게서, 이윽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왕세자에게 닿았다. 이와 교차하듯, 국왕의 시선은 천천히 마탑주에게로 향했다.

“짐의 상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연무장에서의 그것은 대마법사의 고유 권능인 텔레포트인 것으로 알고 있소만…… 혹시…….”

“예, 정확합니다.”

“……허, 허어. 실로 경악할 일이구려.”

그렇게 말했다 한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아렌델의 국왕으로서도 사실 관계를 확신하기 위해 어물쩍 떠본 것일 테지.

물론, 이리도 명확하게 수긍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면 함께 찾아온 저자는…….”

“에스테반 왕궁 마탑의 마탑주, 로드 엘레이드입니다. 편하신 대로 불러 주십시오.”

“로, 로드라니…… 역시.”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스스로를 로드라 칭하는 자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까지 경악을 드러낼 만큼 위엄과 경황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도무지 궁금증만은 참을 수는 없었는지,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아가며 입을 열었다.

“왕국 마탑에 대마법사라는 존재가 있다니…… 그렇다면 에스테반은 지금까지 대마법사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오?”

“숨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요.”

실제로 기초 마법 연구를 이어 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대마법사라는 존재를 드러내서 혼란을 야기하는 일은 불필요했다. 물론 그 본인도 명상을 통해 경지를 점검하고 싶어 하기도 했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 지금은 아니었다.

“아마 이번 교류를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아, 그, 그렇군.”

국왕이 식은땀을 닦아냈다.

‘대마법사라니…… 아렌델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를…….’

단지 마지못해 붙잡게 되었던 에스테반이라는 지푸라기가, 예상외로 튼튼하고 귀중한 구명줄이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다시금 와닿은 탓이었다.

나는 그런 국왕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고, 반대로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숨긴다는 것. 그건 그대가 개인적인 도움이라 못 박은 일을 뜻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흐음…….”

이것 역시 아렌델에게는 의문투성이인 행동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당최 무슨 방법으로 내부의 사정을 꿰뚫고 미래를 예견하듯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또한 그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으실 터인데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주한 책상 위에 놓인 기물들의 배치를 여기저기 움직였다.

언뜻 보면 그 용도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무작위하게 섞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국왕의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왕세자는 곧장 알아채고 국왕에게 귀띔했다.

“아버님. 북부 대륙의 전도입니다.”

“……과연.”

두 거대한 세력 사이에 끼워진 작은 물건. 그리고 그것들의 주변으로 나열한 주변국들.

마침내 완성된 전도는 나름대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나는 그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구석으로 열외 시켰다. 그러자 남은 것은, 연방제국과 신성제국을 포함한 일부 주변국들 뿐이었다.

“남아 있는 것들은, 연방제국에 적대적인 외교를 펼치는 국가들입니다.”

“적대적인 외교?”

“예.”

“……흐음.”

국왕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다른 어떠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남아 있는 것은 아렌델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분명 아렌델이 연방제국과 맞닿아 있기는 하나, 적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인데…….”

“교묘하지 않습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오?”

생각에 빠져 있던 국왕이 갈피 없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테이블 위로 펼쳐진 기물 중, 아렌델에 해당하는 것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국왕이 존재에 의문을 표했던 그 물건이었다.

“연방제국의 등 뒤를 점거한 이 방호벽의 위치가 말입니다.”

“방호벽? 아렌델이 말이오?”

“아렌델만 없다면 북부의 거슬리는 가시들 모두 연방제국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새가 아닙니까?”

“그건…….”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동쪽으로의 진출에 장애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국왕의 머릿속으로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1왕자, 그대는 연방제국이 아렌델을 공격할 거라고 말하는 것이오?”

아렌델과 카롯트의 사이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방제국으로서는 두 국가 사이의 외교에서 이점을 내주더라도, 언제든지 등 뒤를 노릴 수 있는 아렌델과 반목할 이유가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녀석들이 특정한 목적들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 내 눈이 냉철하다 못해 공허하게 보일 정도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뭐, 뭣이?!”

쾅!

국왕이 경악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이번만큼은 뒤에 서 있던 왕세자 역시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공격을 시작했다니?!”

“연방제국은 명백히 아렌델의 땅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어질 야욕의 교두보로 사용하기 위해서.”

“결코 그럴 리가 없소!”

확신이 가득한 국왕의 눈빛이었다.

신성제국과의 냉전이 이어지는 이 상황에서, 등 뒤의 적을 공격할 여유가 당최 어디에 있겠는가?

국왕은 조금은 차분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이 아렌델을 점령하면 적을 앞뒤에 두게 되는 셈이오. 차라리 아렌델과 친목을 도모하고 후방을 막는 것이 올바르지 않겠소?”

그렇게 말을 끝맺은 국왕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애당초 연방제국의 공격이라니,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분명했다.

……그러나.

“연방제국의 공격은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이제이(以夷制夷).”

“……!”

그다음의 말을 듣고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꼈다. 국왕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야만족을…… 그들이 야만족을 이용했다는 말이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작 굶주린 야만족들 따위에 국운이 기울고, 북부 제일의 기사가 행방불명 되었다는 사실이.”

“서, 설마…….”

어느새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의심의 씨앗. 나는 조금의 완곡함도 없이 냉철히 읊조렸다.

“북부의 기사들을 무너뜨린 것은 연방제국의 병력들이 유인한 야만족들입니다. 게다가, 그 이전에 광범위한 마법 공격을 가했었지요. 그들이 노린 것은 처음부터 두 가지 이득이었습니다.”

“감히!”

쿵!

책상을 내리친 국왕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렌델에 일어났던 불행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없었으므로.

“감히 아렌델을 야만족들의 먹이 따위로 취급하다니!”

분명 야만족들은 전쟁을 위해 연방제국의 평야 지대로 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방제국은 여유를 되찾았고, 그와 반대로 아렌델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너무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밖에도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아아, 그래, 통신! 통신이 두절 되었다는 말은, 놈들이 통신 마법에 간섭했다는 뜻이겠구나!”

퍼즐이 꿰어맞추어지듯 단서를 남기고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탓을 외부에서 찾을 리는 없었다. 국가의 존망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모든 상황이 끝난 지금이라면 어떨까?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놈의 목적은 아렌델을 야만족들의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후우! 야만족의 땅? 그리하면 무슨 이득이 있는 것이오?”

“말씀드린 대로, 그리하면 힘들이지 않고 교두보인 아렌델을 집어삼킬 수 있을 거라는 의도입니다. 덧붙이자면, 만에 하나라도 아렌델이 등 뒤에 비수를 꽂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까드득!

그 격노는 귓가에 들릴 정도로 선명했다.

실제로 야만족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뻔한 땅이 아니었던가? 고작 분노만으로 이 사실을 무마하기에는 너무도 잃은 것이 많았다.

“분명 그대는 ‘놈’의 목적이라고 했지. 1왕자, 그대가 말하는 ‘놈’은 누구요?”

국왕은 씹어 뱉듯 분노를 표했다.

이에 나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라이덴 델 카롯트.”

“……!”

연방제국의 4황자이자, 장차 황제가 될 광인.

그런 내 입술이 침묵 속에서 천천히, 진실을 말하듯 뜨여지고 있었다.

“놈은, 정복 전쟁의 야욕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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