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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2화 (7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2화

광풍 (1)

국왕과의 대화가 끝난 뒤.

아렌델 왕성의 복도를 걷는 발걸음은 변함없이 여유로웠다. 마탑주는 그게 의문스러운 모양이었다.

“1왕자 전하.”

그 물음에 나는 고개만 틀어 마탑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탑주는 마력을 퍼뜨려 주변을 에워싸더니, 소리 한 줌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용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뭐지?”

“감히 전하의 뜻에 의문을 품은 것은 아니오나,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음에도 기회를 쉬이 소모해 버린 것은 아닐지 걱정이 듭니다.”

중년의 눈빛은 그 어떤 노년의 현자보다도 깊은 연못이었다. 실제로 마탑주가 가진 지식은 대마법사라는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방대했다.

그럼에도 내 결정에 우려를 표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뜻이겠지.”

순간, 서재 내부에서 있던 일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아렌델은 이제 어쩌면 좋겠소?

국왕은 분노에 휩싸였으면서도 확고한 눈빛으로 내게 칼자루를 건네었다.

그건. 에스테반이 원한다면 아렌델의 피로 맺어진 동맹관계가 되어 주겠다는 의지이기도 했고, 정녕 놈들이 걱정하던 대로 언제든지 등 뒤에 비수를 꽂아 주겠다는 복수의 표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도 제안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에게는 평상시와 같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대로 가만히 계십시오.

-그게 무슨……

-아렌델은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지금처럼 있으면 됩니다.

가만히 있으라니? 이번에는 왕세자가 더욱 크게 놀랐다.

-1왕자. 짐작건대 그대는 연방제국을 공격할 새로운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왕세자가 짐작하고 있던 나의 행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먼 타국의 위기에 개입할 리가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추측의 영역이었다. 설명해 줄 의무도 없는, 한낱 건방진 짐작.

-굳이 아렌델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

-연방제국을 공격하는 카드는 아렌델이 아닙니다.

종국에 놈들을 공격하고, 짓밟는 것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역할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변수들은 그저 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으며, 이에 의존할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중립을 표방하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으시지요. 연방제국을 긁어 경각심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정녕 그게 그대가 원하는 ‘전략’이오?

-예. 그렇게 이득을 챙기며 때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변수.

그래. 아렌델은, 통제가 가능한 변수일 뿐이었다. 다만 연방제국으로 하여금 눈엣가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견제 수단.

고작 그뿐이다. 아직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명심하도록. 아렌델은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이에 마탑주가 방어막처럼 펼쳐졌던 마력을 해체하며 따라붙었다.

“예, 전하께서 하신 일이니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소득이 없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아렌델의 국왕에게서 직접 받아 온 ‘답례’가 있지 않았던가.

그것만큼은 왕세자도, 국왕도. 그리고 마탑주도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을 떨치지 못했으나, 오히려 내게 있어선 아렌델을 찾아가겠다는 것 자체가 계획의 전부와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렇다면 이제 아렌델에서의 볼일은…….’

……하나뿐인가?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목적지는 에스테반의 사절단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예? 다녀오실 데가 있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용건을 들은 비도르 남작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고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절단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십수 명에 가까운 귀족들이 멍하니 있는 장면은 꽤 장관이었지만, 지금은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는가?

“전하, 그렇다면 저분들은 어떻게 하시려는지…….”

“자네가 알아서 데리고 움직이도록.”

“저, 전하……!”

나는 당황한 남작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마음 같아서는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방 안에 가두라 하고 싶은데, 관리하기 귀찮으면 파티에라도 참석하라고 하던지.”

“그, 그걸 어찌 제가 마음대로…….”

“내가 자네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

비도르 남작은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사절단으로서 이 자리에 온 이들은, 남작부터 백작까지 그 지위가 다양했다. 그런데 고작 남작 따위가 저들의 움직임을 관리한단 말인가?

‘그것도 타국에 사절단으로 온 상황에서…….’

하물며 지금은 양국의 화합이 중요한 때가 아니던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날 것이다.

남작의 울상이 짙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뒤따라온 마탑주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모쪼록 에스테반에 누가 되지 않게끔 잘하도록.”

“전하…….”

“다녀오지.”

“…….”

그렇게 나는 남작과 사절단 일행을 두고 밖으로 나섰다.

그 뒤로 들려오는 남작의 한숨은 애써 모른 척하며.

* * *

아렌델에 강세한 지옥이라는 말이 야만족들의 야성을 본떠 만든 표현이었다면, 실로 그 지옥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장소 또한 존재했다.

“아렌델 동부의 타바르 협곡…… 그렇군요.”

마탑주 엘레이드가 협곡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력의 영향으로 검게 물든 공기.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황폐한 대지. 마지막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잿빛의 폭풍들.

저 무자비한 폭력의 향연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라면, 이를 지옥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를 굽어보는 그 눈빛이 일순 번뜩였고, 이치를 꿰뚫듯 뻗어 나간 감각이 협곡 전체를 뒤덮었다.

“……듣던 대로 강도 높은 마력의 폭풍이 협곡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마력의 농도가 짙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음.”

“저로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폭풍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 이는 초인의 반열에 오른 마탑주라 하더라도, 마법사인 이상 쉽사리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 저 안으로 들어가는 인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해도 무방했다.

“저 폭풍에 조금만 노출되더라도 인간의 육신 따위는 순식간에 찢겨나가겠지.”

“예. 아마 스스로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기사나 마법사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 순간, 말을 이어 가는 마탑주의 목소리가 확신하듯 내뱉어졌다.

“전하께서는 전에 말씀드린 아티팩트의 힘을 얻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잘 알고 있군.”

순수한 원소. 마탑주가 짐작하기를, 그것을 흡수하면 마법 각인으로 능히 원소를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라 했다.

비록 짐작에 불과했으나,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이가 한 말이니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 마력의 폭풍이야말로, 순수한 바람의 원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

“……위험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옥체를 보전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나도 안다.”

폭풍의 마력은 검술을 갈고닦은 내게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 내부로 보이는 마력의 수준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초인에 다다른 경지가 아니라면, 감히 그 위험성조차도 똑바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럼에도.

“그럴 수는 없지. 눈앞의 이득을 두고도 못 본 체 할 수 있나.”

나는 위험을 눈앞에 두고 호기롭게 웃었다.

과거의 경지를 어느 정도 되찾은 지금.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물며 신체 또한 불안정하기에 그러한 성장 방법마저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곳은, 지금의 내게 가장 적당한 양분이 되어 줄 테지…… 위험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늘 그래 왔듯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입꼬리를 비틀며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마탑주의 눈이 미소를 띠었다.

“허허, 사실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이나 협곡을 살피던 마탑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본디 대기 중의 마나는 정순하고 안정적일 터인데, 자연적으로 생겨난 마력이 이렇게 격한 움직임을 보인단 말인가…….”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말인가?”

나는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에 마탑주는 눈매를 좁히며 부정도 긍정도 아닌 것 같은 말을 꺼냈다.

“다만 이 정도의 마력을 의도적으로 생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한 가지 원인을 중점으로 여러 요소를 덧붙여 발생시킨 현상이라는 말이 옳을 테지요. 믿기는 어렵지만, 누군가의 의도가 섞인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군.”

나는 놀라움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먼 거리에서 잠깐 살폈을 뿐인데도 충분히 정답에 가까운 추측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미래에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계속 엇갈렸었지.’

모든 사실관계가 입증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의 시점이었던가?

뭐, 그 점을 생각한다면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역시 대마법사가 마법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확실한 점은, 이 현상 자체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연구?”

“예. 그 원인과 성질을 이해한다면 에스테반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탑주의 손이 허공에 내저어졌다.

그러자, 푸른빛의 마나가 허공에 맴돌며 자그마한 돌멩이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 색깔부터가 투명한 푸른색이었다.

“마나를 응축시켜 만든 임시 사역마입니다.”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예. 통상적인 사역마와는 많은 것이 다를 테지요.”

“…….”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마탑주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사역마는 살아 있는 동물에 마법사의 의지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뚝딱 만들어 낸 돌멩이를 사역마라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허허 웃으면서 돌멩이를 건넬 뿐이었다.

“사역마를 육성하는 목적은 감시입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 물건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테지요.”

“임시로 만든 눈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원소 법칙에 따라 금방 흩어질 터이지만,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끄떡없을 것입니다.”

“호오.”

그런 수가 있었단 말이지?

그마저도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나쁘지 않았다.

나는 감탄사를 흘리며 마탑주의 손에 들린 돌멩이를 받아 들었다.

“뭐, 내부의 정보를 얻기에는 가장 적당한 방법이겠지.”

“모쪼록 마력의 영향으로 고장나지 않도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때 동안 주변을 돌며 환경을 조사하겠습니다.”

“음.”

회귀 전.

오직 검왕이라 불리며 기사들의 우러럼을 받았던 나만이, 저 지옥 속으로 발길을 들일 수 있으리라.

“그럼 다녀오지.”

나는 폭풍이 몰아치는 협곡의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윽고 무저갱과 같은 폭풍 속의 어둠이 내 몸을 집어삼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