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3화
광풍 (2)
협곡의 내부는 폭풍의 영향으로 시야가 온전치 않았다.
다만 보이는 것은 높게 솟아오른 벽과 피부를 찢을 듯 몰아치는 폭풍뿐이었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기감을 넓게 펼쳐 주변을 탐색했다.
팟!
평소보다 넓게 뻗어 나간 기감. 그러나 들어오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대지를 뒤흔드는 마력 탓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큼 흥미가 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금지(禁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군.”
나는 회귀 전의 일을 떠올리며 턱 끝을 어루만졌다.
타바르 협곡은 본래 대륙 북동부와 아렌델을 잇는 대표적인 무역로나 다름없었다.
다른 동선들의 지형이 원체 험난하기도 했고, 직선거리나 다름없는 위치였기에 거의 유일한 통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수십 년 전. 돌연 나타난 거대한 태풍은 그런 타바르 협곡을 가로막았다.
말 그대로 돌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대륙의 마법사들이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달려들었다고 했던가?’
당연하게도,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대마법사조차 거부하는 이 장소를 한낱 마법사들이 뚫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결국 아렌델은 타바르 협곡을 금지(禁地)로 지정하고 일반인의 발걸음을 제한시키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고, 마침내 폭풍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숱한 피해를 자아낸 ‘재앙’이 들이닥친 뒤였겠지만 말이다.
“뭐, 그 부분은 제쳐 두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앞길을 가로막은 폭풍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나는 품 안으로 마탑주가 건네준 임시 사역마를 집어넣고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거슬리게 몰아치던 마력 폭풍의 영향에서 조금은 쾌적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쁘지 않네.
몸속에 잠든 오러가 전에 없는 속도로 소모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정말이지 완벽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땅을 박찼다.
탓-!
슈우우우욱-
순간, 마력의 폭풍도. 그리고 양옆을 가로막은 협곡의 벽도 흐릿하게 늘어져 시야를 길게 어지럽혔다.
내게는 익숙한 정도의, 주변의 환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연이어 땅을 박차는 내 머릿속은 놀라움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나군.’
이 공간은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마력의 영향이 거세지는 곳이다.
마탑주의 이야기대로 특정한 요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상이었기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보다 그 ‘요인’에 다가간다는 말과도 같았다.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오러를 일으켰으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오러의 소모량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급격히 늘어만 갔다.
몇 번 발을 굴리지도 않았음에도, 이제는 거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수준이 된 것이다.
“쯧, 하는 수 없나.”
이대로 있다가 이도 저도 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혀를 차며 신체의 주위로 전개한 오러를 거두었다. 그러곤 이내 품속에 넣어 둔 돌멩이에 여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휘이이이잉!
사라진 보호막을 뚫고 매서운 마력의 폭풍이 칼날처럼 온몸을 낭자했다.
이에 화려한 정복이 여기저기 찢겨 나가고, 그 위로 붉은색의 핏물이 옅게 배기 시작했다.
휘날리는 옷자락을 바라보는 한쪽 눈썹이 슬며시 치켜 올라갔다.
“남작에게 잔소리를 듣겠군.”
사실 놀랍기는 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위력은 아니었다.
이미 나는 다가올 ‘재앙’을 한 차례 겪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이 정도가 아니었다면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대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없을 것이기에,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휘이이잉!
타닥, 탓-!
그렇게 점차 날카롭게 벼려지는 칼날들을 뚫고 얼마나 달렸을까?
그러니까, 검은색 정복이 모조리 붉게 물들어갔을 때 즈음.
마침내 나는 길목의 끝자락에서 그토록 원하던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저긴가.”
돔의 형태로 뭉친 마력의 벽. 그리고 그 주위를 에워싼 최후의 폭풍.
그 내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나, 무의식적인 기감 만으로도 알았다.
저 안에, 이곳으로 온 목적이자 타바르 협곡에 발생한 괴현상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듣던 대로 어마어마한 마력이군.”
마법사들이 정해 놓은 학명이 따로 있다고 했던가?
뭐, 정식적인 명칭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내 복수의 양분이 되어 준다면 그게 전부일 테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씩 웃음 지었다.
‘실피드의 꽃.’
저 안에 있는 것은, 바람 속에서 자라난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여진 하나의 전설과도 같았다.
실제로 그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저 꽃이 자라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물이나 햇빛 따위가 아니라 대기 중에 머무는 바람의 원소였으니.
이전에 흑마법사들의 은신처에서 보았던 매개체를 생각하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만큼은 확연히 달랐다.
은신처에 남아 있던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감정이었다면, 이건 대기 중의 마나를 수백 년 동안 머금고 태어난 마력 덩어리였다.
주체할 수 없이 커진 나머지 주변으로 그 힘을 발산하기 시작한 하나의 거대한 자연, 그 자체.
협곡에 만연한 폭풍은 저것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대되는군.’
만들어지는 과정도 우연에 의존해야 했거늘.
본래라면 힘을 발산하기도 전에 흩어졌어야 할 마력이었다. 하지만 특정 요인에 의해 지상에 붙들려진 마력은, 그 힘을 다할 때까지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가올 미래에는 별이 소멸하듯 주변의 모든 것을 앗아 가겠지.
나는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오른팔의 문신을 쓰다듬었다.
“……저 마력을 집어삼킨다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마법 각인은 이에 회답하듯 급격한 마나의 움직임을 보였다. 벌써부터 허기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렌델에 일시적으로 불어오는 의문의 남풍.
그건, 이 꽃에서 생성된 기운이 과도하게 응집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또한 바로 얼마 전에 벌어졌던 일.
말하자면, 지금이 바로 그 꽃이 가진 바람의 힘이 가장 강할 때라는 소리였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도착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미 마탑주를 살리는 과정에서 동화율의 급격한 상승을 겪지 않았던가? 그런 와중에 이 정도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마법 각인의 두 번째 임계점을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강대한 힘을 얻게 되리라.
마탑주가 예상했던 대로. 순수한 원소라고 불리는 거대한 힘의 편린을…….
그 순간이었다.
스스슥-
폭풍 사이에서 미세한 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척은 나를 경계하듯 모습을 숨기고, 내 주위를 맴돌기를 반복했다.
그 경계는 명백한 적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섯 명…… 아니, 다섯 마리인가.”
크르르르르-
“뭐, 그렇게 쉽게 내주지는 않겠지.”
나는 외투 위로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윽고 내 시선이 향한 곳에, 꽃의 향기에 홀린 선객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대한 몸집과 송곳니를 자랑하는 잿빛의 늑대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느껴지는 기운은 통상적인 늑대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바람의 힘을 집어 삼켜왔군.”
크르르르르-
놈들은 내 말에 회답하듯 낮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마력을 품고 있는 것이, 본능적으로 기운을 다루는 방법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갈데르드 평야에서 태양 기사단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오우거처럼 말이다.
‘물론 강대한 마력을 쐬어 온 이쪽이 더 강해 보이지만…….’
뭐, 이러나저러나 잘 되었다.
회귀 이후로 제대로 된 전투를 겪지 못한 탓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렇게 선객들이 나를 맞아주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여태까지의 누구보다 나를 재미있게 해 줄 것이 분명한 상대였으니.
“한 번 놀아 볼까.”
스릉-
나는 엘베른을 뽑아 들고 여유롭게 몸을 풀었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내 행동을 경계하던 다섯 마리의 늑대가 재빠르게 쇄도했다. 마치 바람처럼, 기감이 아니었다면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속도였다.
……그래 그래야 재미있지.
가장 먼저, 엘베른의 날이 선두의 늑대를 갈랐다.
슈우우욱-
하지만 놀랍게도 청록색의 검신은 늑대를 베어 내지 못하고 허공만을 베어 냈다.
검격을 적중시키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늑대의 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검신을 통과하여 공격을 무효화시킨 것이다.
그건 마치 서로의 공간이 단절된 듯한 모습이었으나, 이윽고 가해진 공격은 아니었다.
크헝-!
그 선두에 선 늑대의 이빨과 살기는 허상이 아니었다. 아마 방금 전에 공격을 피해 낸 것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아쉽게도 다섯 마리가 달려드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피하지 않고 왼팔을 내밀어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콰작-!
그리고 왼팔에 늑대의 이빨이 박힌 순간, 나는 몸을 틀어 다음 늑대의 공격을 피해 내고는 왼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평범한 검격이 아니었다.
붉은 궤적을 허공에 수놓을 만큼 막대한 오러가 담긴 공격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늑대의 몸이 갈라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호오.”
허공으로 흩어지던 늑대의 몸이 재생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그 형체가 다시금 복구되고 있던 것이다.
내 눈이 놀라움으로 뜨여졌다.
‘과연 바람의 힘을 흡수했다 이건가.’
마법 각인이 아니더라도 원소의 힘을 흡수하는 것은 가능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도 자연의 원소를 빌리는 것이었고, 애초에 식물조차도 그 힘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었으니.
하지만 저 모습은 강대한 마력에 노출된 돌연변이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이미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수준이겠지.
‘처음의 공격도 단지 통과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군.’
잘렸다가, 붙었다.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옳으리라.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돌아온 늑대들의 합공에 반격했다.
파앗-!
슈욱-!
파스스스-
하지만 죽었어야 마땅할 늑대들이 부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지, 바람 속에서 오롯이 형체를 생성해 낼 뿐이었다. 물론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러에 닿은 녀석은 회복의 속도가 느리군.’
이를 증명하듯 검격에 휘말려 사라진 늑대는 즉각적으로 형태를 복원했고, 오러에 적중당한 녀석들은 주위의 바람을 끌어오듯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즉, 파괴력이 강할수록 부활하는 것이 힘들어진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