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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4화 (7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4화

광풍 (3)

우우웅-

나는 검을 감싸고 있던 오러를 모조리 회수했다.

크르르르-?

그러자 그 폭력적인 살기 덩어리가 사라진 것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달려들 준비를 하던 늑대들은 자리에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차라리 달려드는 것이 나았을 것을.”

피식-

나는 조소를 흘리며 검신을 회수했다. 이윽고 빙글 돌려져 검집에 안착한 엘베른을 어루만지듯 천천히 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세를 낮추며 몸을 뒤틀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활시위처럼. 또한 창을 내지르기 위해 팔을 내빼는 것처럼.

그렇게 내 몸은 하나의 무기가 되듯, 녀석들을 향해 겨누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바람이 멈추었다.

크헝헝!

크르르르-

팟-!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늑대들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팽팽하게 조여진 시위는 이내 손에서 떠나가듯 세차게 살의를 내뿜었고,

-----!

쏘아진 살의는 멈추어진 시간 속에서 잿빛의 태풍을 갈랐다.

다만 흐르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백 번. 그리고 다시 천 번.

세계를 난도질하는 것은, 찰나에 허공을 수놓는 검기들이었다. 그렇게 붉은 궤적이 하늘을 뒤덮을 때마다 대기의 떨림이 뒤따랐으며, 그것은 바람을 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기를 잘게 조각냈다.

……그래. 한 번의 검격이 지나간 시간은 단 1초라는 찰나에 불과했다.

그 속에서, 오러의 파동은 수천 번 진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겁 같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을 때는, 이미 멈추었던 광풍이 다시금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늑대들의 몸을 이루던 요소가 아니었으니.

휘이이잉-!

대기는 바람 한 점 셀 틈 없이 촘촘하게 갈라졌으며, 검격이 모두 끝났을 때 즈음에는 무수히 많은 자상 속에서 꽃이 피어나듯 만개했다.

그런 협곡의 위로, 바람에 휘날린 꽃잎들이 찬란하게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아래에서 벚꽃과도 바스러지는 오러의 파동을 느끼며 웃었다.

“……간단하군.”

형태를 복원하는 것이 전부라면 영영 부활하지 못하도록 잘게 부숴 버리면 될 뿐이다.

적어도 검왕이라 불리던 내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 * *

철컥-!

엘베른의 청록색 칼날이 검집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늑대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돌려 실피드의 꽃이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꽃을 감싸는 마력의 벽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방해꾼은 없군.”

나는 오른팔을 뻗어 나갔다.

왼팔처럼 늑대의 공격을 허용하지는 않았으나, 폭풍의 중심부에 다다른 탓에 피부가 여기저기 찢겨 나가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만, 마법 각인을 활성화 시키며 오만하게 뇌까릴 뿐이었다.

“흡수하라.”

마침내 그 오른팔이 마력의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촤아악-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력의 벽을 뚫고 들어간 오른팔에서부터 아릿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마법 각인을 새겼을 때에 느낀 감각이 살갗을 태운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이 감각은 도려낸다는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반구형의 마력의 벽 속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오른팔을 더욱 깊숙이 들이밀었다. 한 발자국만 물러나면 고통에서 해방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휘이이이잉-!

폭풍처럼 몰아치는 마력의 근원인 실피드의 꽃은 이질감을 느끼고 더욱 거센 마력을 발산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른팔의 마법 각인은 이미 먹잇감을 노리고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굶주린 듯. 아가리에 다가온 영양분이 달아날까, 조바심을 내면서.

“만족스러운 모양이군.”

그렇게 꽃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 무심하면서도 유쾌한 목소리에 응수하듯, 칼날 같은 바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단지 불어 닥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노리고 쏘아진 파동이었다.

“감히 내게 반항하겠다는 건가.”

나는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마법 각인에 축적된 마나를 모조리 방출시켰다.

그러자 급격한 마나의 흐름에 자극받은 마법 각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적의는 더 이상 이질감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이윽고 시공간이 휘어지듯 꽃을 감싸던 마력의 벽이 흐려졌다. 빠져나간 마력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주위의 마나를 탐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의 벽이 옅어지기 시작하며, ‘실피드의 꽃’이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더는 보호막을 유지할 힘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호오.”

순백의 바람을 닮은 한 송이 꽃잎. 그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꽃잎 속의 눈망울은, 과연 정령이라는 느낌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딴 감상 따위는 필요 없었다. 단지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흡수한 것이 꽃에서 흘러나온 마력이었다면, 이제는 그 원인이었을 바람의 원소를 먹어 치울 차례였으니.

“내 지배하에 양분이 될 수 있는 영광을 주지.”

나는 오만하게 꽃을 움켜쥐고 그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방해가 없는 꽃 따위가 그 상대가 될 리 없었다.

* * *

“허어.”

로드 엘레이드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위로 손가락을 대었다. 하지만 곧장 침음을 흘리며 팔을 거두었다.

……이질감. 그의 마음 한편에 조그맣게 자리한 감정이었다.

“필시 순수한 바람의 원소가 분명하거늘…….”

진리에 다다른 눈은 결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또한 현자의 하해와 같은 지식은 진실을 꿰뚫어 보는 육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찌 그런 순수가 이렇듯 무자비하게 폭주할 수 있단 말인가?

생소한 현상이었다. 정녕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은 지식이었다.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터다.”

그렇게 중얼거린 마탑주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폭풍의 마력이 그의 의지를 따라 다가오며 하나의 마력 조각으로 결정화(結晶化)했다.

마탑주는 조각을 꿰뚫어 보며 눈매를 좁혔다.

“하나의 원인. 그리고 위력을 변질시킨 특정 요인들.”

우선은 불가능에 가까운 여러 변수 들을 배제해 나갔다. 다음으로 결정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고 분석하며 그 가능성을 좁혔다.

그중에서 이렇게까지 기이한 여파를 남길 수 있는 것이라면…….

“고대의 마법?”

이미 사장되어 사라진 고대의 마법 밖에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랬다면 이질감이 함께 느껴질 이유가 없었다. 조금 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이 있을 터였다.

이를테면…….

……

……설마!

마탑주의 두 눈이 부릅떠진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무슨……!”

거대한 굉음과 함께 협곡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경악할 만큼의 기운이 협곡의 중심으로부터 형성되고, 방출되기 시작했다.

“이건!”

저 허공을 수놓은 핏빛의 오러.

대마법사의 눈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1왕자의 몸에서 느껴지던 것이었다.

하지만 저렇게나 경악스러울 만큼의 힘을 뽑아낼 이유가 있는가? 저 안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두근, 두근-!

초인의 반열에 오른 감각이 매섭게 날뛰었다. 가파른 위기감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갈 수밖에 없었다. 가야만 했다. 아직 1왕자께서, 저 중심부에 남아계실 것이었으므로.

정녕 위험에 처했다면 그 자신이 돕는 수밖에 없으리라.

어느덧 협곡에 흐르던 태풍도 점차 잦아지고 있었다.

이를 악문 마탑주의 몸이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곧 그 몸이 쏜살같이 움직여 폭풍이 사라진 협곡의 중심부로 향했다.

* * *

협곡에 몰아치던 폭풍은 사라졌고, 이제 바람에 가려 거뭇하게 보이던 시야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하늘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력의 각인 위로 잿빛의 바람이 머물렀다.

처음 살갗에 새길 때처럼 번져나간 바람은 이윽고 두 획의 문신만을 남긴 채로 오른팔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바람의 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법 각인이, 정말로 협곡을 망가뜨린 마력의 폭풍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군.’

나는 찢어진 겉옷 속으로 보이는 오른팔의 문신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원소 그 자체를 흡수하는 장면은, 회귀라는 현상을 겪은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가지고 올 영향이나 효용 따위는 아는 것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 감각을 알 것만 같았다. 실제로 원소의 영향을 받은 늑대들의 움직임을 보지 않았던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잘만 하면 새로이 추가된 문신과 원소의 힘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무심코 넣어 두었던 검을 재차 뽑았다.

“흐음…… 이렇게 인가?”

스르르르-

마법 각인의 마력을 끌어올리자, 살랑- 하고 머리칼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한 번의 바람이 더 불어온 순간.

내 몸을 이루던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허공을 향해 검을 흩뿌리고 있었다.

“……!”

……잔상?

아니, 단지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것이 나 자신조차 잔상이라 착각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을 뿐.

‘과연 바람이라 이건가.’

그야말로 바람과 같은 신속함과, 그에 걸맞은 은밀함이었다.

검은 격하게 휘둘러지고 있음에도 작은 소음만을 낼 정도였으며, 애써 신경 쓰지 않아도 쾌검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나가는 데에 몰두했다.

샥- 샤샥-

슈슈슉-

원소의 힘을 담아 검을 휘두를수록 머릿속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내게 가장 어울리는 것인지.

또한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마법 각인이 최대의 출력으로 발동되자, 몸이 붕 뜰 정도로 강한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그와 동시에 폭풍 같은 바람이 몸을 감싸 안았고, 전방을 향해 내질러진 검은 어느새 잔영과 함께 바위라는 목표물을 꿰뚫어 냈다.

콰직-!

그리고 바위가 뚫렸다. 하지만 그렇게 바위를 꿰뚫은 검기는 한 개가 아닌, 명백히 두 개였다.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군.”

실체가 있는 잔상이었으나, 결코 잔상이 아니었다.

검을 내지른 것은 한 번이었을 뿐이라 해도, 바람과도 같은 몸의 흐름이 재빠르게 인과를 뒤틀고 두 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인과의 뒤틀림이 만들어 낸 잔상 공격. 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겠지.

나는 그 경악스러운 원소의 위력에 멍하니 검을 회수할 뿐이었다.

그때, 맑게 갠 하늘로부터 한 개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마탑주였다. 그는 움직임을 제한하던 마력의 폭풍이 사라지자, 즉각적으로 날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 다급한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빠르게도 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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