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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5화 (7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5화

광풍 (4)

털썩-!

그렇게 거의 떨어지다시피 한 속도로 땅에 착지한 마탑주는, 내 상태를 보자마자 경악했다. 온몸에 낭자한 상처들과 핏물을 본 탓이었다.

“이, 이 상처는 대체…….”

“별것 아니다.”

“별것이 아니라니요?! 이토록 심한 상처를 어찌……!”

마탑주가 기함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 일순 마력이 움직이자, 흙먼지와 피로 범벅이 된 몸이 물로 인해 깨끗하게 씻겨져 나갔다.

사제가 아닌 이상에야 상처까지 치료할 수는 없다지만, 이미 상처가 아물고 있는 신체였으니 상관없었다.

……역시 마법사가 있으면 편리하긴 하군.

괜스레 전쟁에서 마법사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깨를 으스대며 웃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마탑주가 허공에 손을 뻗으며 복잡한 마력의 수식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우우웅-!

뻗어진 손끝으로부터 다른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검은색의 미지(未知)가 나타났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론 밖의 영역마저 지배할 수 있는 대마법사에게 주어진,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권능이었다.

“그것이 바로 아공간이라 부르는 창고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아공간 너머로 손을 집어넣은 마탑주가, 이윽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미 찢겨 나간 1왕자의 정복보다야 못하지만, 꽤 화려하게 생긴 귀족의 의상이었다.

“전하, 한동안은 이걸로 갈아입고 계시지요.”

“뭐, 그렇게 하지.”

덕분에 남작에게 혼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졌다 해도 무방했다. 솔직히 고마웠다.

나는 순순히 옷을 갈아입은 뒤에 옷맵시를 정리해 나갔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는 마탑주의 입이 차분하게 열렸다.

“경하드리옵니다. 원하시는 것을 손에 넣으신 모양이시군요.”

“음.”

“전하께서라면 가능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원소의 힘을 흡수한 마법 각인,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무엇보다 이후에도 비슷한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신으로 다가온 것은 더욱 그러했고.

그런 의미에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모든 원소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는 건가?’

물론 아직도 마법 각인과 원소의 관계는 미지의 요소로 남아 있었다.

몇 가지의 힘이나 담을 수 있는 것인지. 상반된 두 기운을 내포할 수는 없는지. 그렇게 되면 어떤 부작용을 가지게 되는지 등등.

애초에 마법 각인에 원소를 담는 것은, 회귀 전후를 통틀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힘으로 만족할 것이냐?

‘그럴 수는 없지.’

연방제국과의 전쟁은 시한폭탄이 터질 듯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의 힘이라도 비축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놈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줄 수만 있다면.

……나는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아 힘을 마련할 것이다.

“목적은 이뤘으니 슬슬 돌아가겠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다가오지도 않은 당장의 기우에, 기회를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각오였다.

* * *

번쩍-!

거대한 빛이 일행을 감쌌고, 어느새 나와 마탑주는 공간을 뛰어넘어 아렌델의 왕궁에 위치한 연무장에 서 있었다.

마탑주는 시야를 가리는 빛을 휘적거리며 치워 낸 뒤에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아직 파티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뭐, 그럴 만도 하지. 협곡에서 있었던 일이라 해 봐야 마력을 흡수한 것이 전부였고, 이동에는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역시 대마법사인가.’

공간의 도약은 그만큼이나 편리했다.

아니, 비단 공간의 도약뿐만 아니라 마법 자체가 그러했다. 마음 같아서는 요즈음 반항이 늘어난 조지와 바꾸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녀석에게 마법을 가르쳐도 나쁘진 않겠지.”

“예?”

“직접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군.”

적당한 수준까지만 올라와 줘도 데리고 다니기에 쓸 만할 터였다. 물론 녀석은 언제나처럼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에 죽도록 싫어할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들을 하며 왕성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당신이 에스테반의 1왕자 입니까?”

찰나, 낯선 목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 누군가의 익숙한 실루엣이 담겼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으나 그 인상착의만은 누구보다 익숙한 남자였다.

“카라반 자이트.”

한때는 아렌델 최악의 범죄자라 불리며 멸시당했던 비운의 사내이자, 구국을 위기에서부터 지켜 낸 영웅.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꽤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가 다가오기를 친히 기다려 주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내 눈앞에 멈추어 섰다.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그리고 겉옷 너머로 꿈틀거리는 근육들.

“용건이라도 있나?”

“이제 에스테반으로 돌아가시려는 것입니까?”

“초대받은 손님으로써의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한다만.”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카라반 자이트는 그 표면적인 이유를 꿰뚫고 본질을 말했다.

“전하께서 노리시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무슨 의미지.”

“등 뒤를 견제하는 수단. 진실로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누군가가 듣는다면 뜬금없다고 여길 만한 내용의 물음들. 하지만 나는 단숨에 이해하곤 답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국왕과 왕세자에게서 내 뜻을 전해받은 모양이다. 그 어떤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황당한 제안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이고 있자, 카라반 자이트는 더욱더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아렌델의 내부 사정을 포함해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당신이 연합의 의사를 표해 왔다면, 저 역시도 전하의 능력에 감탄할지언정 의구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속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나?”

“생각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실제로 그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어째서 연방제국의 음모를 밝혔으면서도 중립을 유지하라 하였습니까?”

처음, 카라반 자이트는 1왕자라는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형지물이나 전황 등 내부의 사정을 꿰듯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마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던가?

억울한 누명을 씌고 범죄자가 된 자신이 도리어 다시금 충성을 맹세하리라 예측한 것도.

그런 ‘카라반 자이트’가 고작 단어 몇 개만으로 전략을 떠올리리라는 사실도.

그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의미심장하고 석연치 않은 제안으로 아렌델을 이용하려는 순간부터, 1왕자라는 사람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대상이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의 설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위화감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녀석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생각을 읽어 낸 나는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냈다.

“내가 아렌델을 연방제국의 시선을 돌릴 미끼로 쓰기라도 한다는 건가?”

“…….”

“재미있군.”

안타깝게도, 그 표정은 재미있다는 말과는 달리 싸늘하게 식어 있었으니. 나는 발걸음을 옮겨 카라반 자이트에게로 다가갔다.

“……!”

뚜벅- 뚜벅-

그렇게 세 뼘 남짓한 거리까지 다가가자, 알 수 없는 기세에 눌린 카라반의 몸이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났다.

“무슨…….”

“썩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확실히 아렌델과 연방제국을 싸움 붙이면 에스테반이 움직이기에 편리하겠지.”

회귀 전과는 다르게 아렌델이라는 국가는 살아남았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이들로 하여금 연방제국의 병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소리였고, 그렇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과거보다 그 힘이 약해질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놈들에 대한 적개심은 물론이고 빚까지 지워 두었으니, 결코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그건……!”

문득 반박하려던 카라반 자이트의 몸이 굳었다.

체급의 차이 탓에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으나, 정작 그 본인은 이 상황을 굽어본다 생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 이게 무슨…….’

물러서야 할 발과, 반박을 치대야 할 목구멍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새 1왕자는 태산과 같은 위치에서 자신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고, 자신은 깊은 어둠 속에 발목이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압박도 없었다. 단지 마주한 은연중 기세만으로도, 온갖 수모를 겪은 자신을 제압한 것이다.

거역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분위기.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숨김없는 진심을 내뱉기 시작했다.

“후방을 견제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더라도 만족스러우리라 생각했다. 반목 세력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쓸모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지.”

“…….”

멸망의 직전까지 내몰린 아렌델은 미약했다. 만일 연방제국의 병력을 갉아먹는다 한들, 결국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니, 나는 차라리 저들이 중립을 표방하며 힘을 기르기를 원했다.

“한데, 자네는 제자리를 지키라는 제안이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운가?”

“…….”

쯧-

나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녀석의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차며 발걸음을 떼었다.

한 발자국. 그리고 두 발자국. 그 뒷모습이 비로소 스쳐 지나갈 때쯤 돼서야, 마지막 충고를 남겼다.

“카라반 자이트.”

“…….”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그런지 실망이군.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보도록.”

핏빛으로 물든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운명을 거스르고 네게 기회를 제공해 준 나를……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면서.

……아렌델에서의 일정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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