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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7화 (7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7화

흔적 (1)

“그렇습니다.”

대마법사의 탄생.

그건, 마탑의 이상이 감지된 이후로 마법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던 속설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있을 리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들의 나라인 에스테반에서 대마법사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날 리 없었으니까.

에스테반의 역사에 대마법사가 나타난 일은 손에 꼽는다. 기껏 해 봐야 건국 신화나 마탑의 거대 마법진을 설계했던 대마법사를 포함해 두셋이나 될까?

하물며 에스테반에서 기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가 마지막으로 탄생한 것도 70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여러 재능 있는 기사들이 두각을 드러냈을지언정, 정녕 인간의 신위를 벗어난 이는 탄생하지 않았다.

그런 점들을 미루어 본다면, 대마법사의 탄생이라는 속설은 그 말대로 허무맹랑한 농담에 불과할 뿐이리라.

하지만, 그런 상식이 깨졌다.

농담은 더 이상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사람들의 눈앞에서 공공연히 그 정체를 드러냈다.

에스테반의 왕국 마탑에서 정말로 대마법사라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그 정체가 마탑주라는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였다.

“……물론 그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에스테반에서 제일 마학(魔學)이 높은 자이니 그 말고 다른 이를 유추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긴 하다.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제 요양 중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지 않겠다는 말이겠지. 슬슬 마탑의 업무에 복귀하려 하는가?”

“그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애를 태우고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아쉬워할 터인데?”

지금 이 순간에도 마탑의 마법사들은, 대마법사라는 존재를 영접하고자 왕궁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부탑주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마법사라는 작자들이 말을 들을 인물이었던가?

그런 아버님의 농담 같은 어조에 마탑주가 설핏 웃어 보였다.

“곧 있으면 질리도록 보게 될 것입니다. 1왕자 전하께서 내리신 명령들을 이행하려면 말입니다.”

“명령이라…….”

“기초 마법 기술 연구입니다, 전하.”

“그랬지.”

아버님의 묘한 시선이 마탑주의 맞은편에 있던 내게로 향했다.

탁-

그리고 나는 마시고 있던 차를 내려놓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법 시약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지만, 아직 다른 원자재들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기반마저 없는 이상, 대마법사의 지식과 눈으로 만들어 낸 견본이 필요하겠지요.”

“그래. 마탑에서 보내온 보고서들은 확인했다. 마도구 원자재들을 완성 시킬 수 있는 핵심 재료가 나비산호였다지.”

“예, 아버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버님이 하실 말씀을 재빨리 선수 쳤다.

“운이 좋았습니다. 때마침 읽은 고서에 관련된 내용이 남아 있더군요. 덕분에 재료를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고서란 것이 참 대단하군.”

“아무래도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고대의 기록들이니까요.”

“…….”

내 어깨가 으쓱여졌다. 물론 이딴 변명으로 독단적인 상행을 감행한 것까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지식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윽고 말을 이어 가는 눈빛 역시 익살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왕이면 대마법사가 된 마탑주가 원자재의 보강법을 발견했다고 하지요.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지면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숨길 수 있는 것은 잠시뿐일 터다. 왕국 상단의 일과 내막들이 드러나면, 1왕자. 알렌 에스테반의 지시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텐데?”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하지요.”

“……알겠다.”

대충 넘어가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되는 걸로 납득 하신 것인지…….

아마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이 머리 아프리란 사실을 깨달으신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버님께서는 그리 수긍하셨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하시는 말씀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였다.

“연방제국으로부터 소식이 들어왔다.”

“놈들이 무어라고 합니까?”

“에스테반으로 수출되는 일부 품목을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앞으로는 수출과 취급을 제한하겠다고 하더군.”

역시, 그런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되겠지요. 일부 품목이라는 것은 마도구의 원자재를 뜻하는 것입니까?”

“그래. 역시나 네 예상대로 흘러갔다.”

“흐음.”

사실 정해진 미래대로 원자재가 수출 품목으로 지정되었다는 점보다는, 저들이 무슨 핑계를 대며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였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명분이 없다면 그들 역시 주변국의 눈초리를 살 것이 분명했으니까.

“신성제국의 사자가 다녀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까?”

“……눈치가 빠르군. 그렇다.”

놈들은 신성제국과 에스테반이 모종의 협의를 나눈 것이 아니냐는 점을 들어, 에스테반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것을 제한시켰다.

행여나 신성제국에 그들의 물자가 흘러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허황된 기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성제국이 마도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놈들은 마법과 신성력을 분리시키는 거짓말의 형태로 권력을 이어 갔다.

그러니 신성제국 내에서 마법은 불필요하고 삿된 힘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런 그들이 마도구라는 것을 만들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에스테반은 연방제국이 아닌 신성제국으로부터 마도구의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었을 테지.

“……뭐, 대충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대응하도록 하지요.”

“…….”

나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여유롭게 찻잔을 들었다.

한데 그것이 너무도 편안해 보였던 탓일까? 그런 내 태도를 바라보시던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알렌 에스테반. 기초 마법 기술의 연구가 끝나면 무엇을 할 셈이냐.”

“제가 다음에 무슨 기행을 벌일지 미리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크흠! 짐은 기행이라고까진 표현하지는 않았다.”

분명 들리는 어조는 비슷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벌이는 행보는 타인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에야 아버님께서는 믿고 맡겨 주고 계신다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조차 독단적인 기행의 결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앞으로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그만한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소리기도 했고.

“그렇다면 당분간은 뿌려 둔 열매들을 수확하는 것으로 할까요?”

“열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수확의 시기였다.

* * *

에스테반의 왕국 마탑으로 돌아온 마탑주, 엘레이드는 무척이나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할 일이 많았다. 국왕에게는 마도구 원자재의 연구로 바쁠 거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중요한 할 일이 있었다.

철컥-!

그런 마탑주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마탑 최상층에 자리한 그의 연구실이었다.

마탑주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문단속을 마치고는, 황급히 주머니에 있던 것을 꺼내 들었다.

투명한 푸른빛의 돌멩이…… 마력의 폭풍 속으로 들어갔던 1왕자에게 건네주었던 물건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임시로 만들어 낸 사역마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한계에 치달은 모습이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지체되었다면 내부의 데이터를 건지지 못했을 테지.

마탑주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사역마의 정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의 머릿속으로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흐릿한 것은 폭풍의 영향을 받은 시야였고, 선명한 것은 그 장면 속에 담긴 정보였다. 1왕자의 움직임부터 시작하여 그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이윽고 한 시간 남짓의 정보를 모두 흡수한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몇 초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한 시간에 담긴 기억과 정보를 모두 처리했다는 사실은, 대마법사인 마탑주에게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번쩍-!

마탑주의 몸이 사라졌다가, 이내 마탑의 전경이 비치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런 마탑주의 눈으로 마탑의 외부에 떠오르고 있는 거대한 마정석이 보였다. 그리고 이를 이루는 마법진이 대마법사의 이치에 담겼다.

……에스테반 최대의 보호 술식.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1왕자가 지닌 아티팩트나 폭풍 속에서 느껴지던 마법의 흔적과도 닮아 있었다.

아니, 같았다. 에스테반에 나타났다던 불세출의 대마법사가 만든 것은, 놀랍게도 고대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마탑주는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마법진의 정보를 흡수했다.

만약 폭풍에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그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고대의 마법으로 향하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마법사는 과거로의 흔적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 * *

아렌델에서 귀환한 이후, 내 집무실은 조지가 들고 오는 서신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당연히 녀석이 내게 편지 따위를 작성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저것들은, 말 그대로 녀석이 ‘들고’ 온 쓰레기들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쌓이고 있는 편지들을 노려보며 마법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설렁설렁 도착한 조지가 문을 열고는 집무실의 내부로 들어왔다.

철컥-!

“부르셨습니…… 이크!”

근데 하필이면 또 쌓여 있는 서신을 발로 건드릴 것은 뭐란 말인가?

이윽고 한가득 쌓여 있던 서신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새로운 일거리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들고 오지 말라 했을 텐데?”

“……이게 제 잘못입니까?”

“네놈이 들고 오지만 않았으면 되는 일이었을 터다.”

“그걸 저한테 말씀하셔도…… 아니, 애초에 저도 들고 오고 싶지 않았다고요.”

가뜩이나 추가된 일거리에 울상이던 조지의 눈에, 이번에는 억울함이 가득 담겼다.

녀석은 그러면서 남작에게 들은 잔소리를 내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결론만 말하면, 남작이 하나도 남김없이 내게 전달하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절대로 버리지 말라는 말을…….

녀석은 솟구치는 서러움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 갔다.

“저도 억울하게 중간에 끼어 있다고요. 십 분이 멀다 하고 서신이 도착하는데, 진짜로 귀찮아 죽겠습니다.”

“쯧.”

“차라리 전하께서 한마디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절단 일행을 아렌델까지 이송한 대마법사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

수도에 상주하는 귀족들을 포함하여, 전국 각지에서 연회의 초대장 따위가 날아오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약과라고 할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수도 인근의 귀족들뿐만 아닌, 저 멀리에서 날아든 서신들이 대거로 몰려들 테니까.

본래라면 이런 일은 없어야 했다.

고위 귀족이었던 아수스를 무참히 벤 것으로 저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생겼을뿐더러, 최근에는 2왕자파의 귀족을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숙청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마법사라는 존재는, 그런 귀족들에게도 용기를 내게 할 만큼 맛있는 미끼였다. 때마침 신년을 기념하자는 핑곗거리가 있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탄생일도 머지않았군.’

그런 비도르 남작은 차라리 그것이 행복했나 보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으려 하던 때보다 지금이 낫다며. 이왕이면 귀족들의 연회에 참석해 좋은 모습을 보여 주자고.

“……어쩌면 남부 대륙에 보낸 일을 복수하는 것일지도.”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의 복수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으니.

나는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잔뜩 기대감에 부푼 조지가 반색했다.

“드디어 남작님에게 한마디 하러 가십니까?!”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이윽고 조지를 지나쳐 걸어가는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

“재무부에 다녀오겠다.”

“……그러면 서신은 어쩌고요?”

“내가 오기 전까지 전부 버려 두도록.”

“…….”

“다음부터 도착하는 것들은, 정리해서 집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 가져다 두어라.”

“…….”

그렇게 남겨진 조지는 멍하니 침묵했다.

바닥에 흩어진, 그 서신이 담긴 편지지의 모양들이…… 마치 얄밉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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