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8화
흔적 (2)
“어서 오십시오.”
최근에는 재무부에 오는 일이 잦았다. 아무래도 내정에 발을 들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리고 재무대신 발테르 후작의 얼굴은 오늘도 퀭했다.
“요즈음 재무부에 들어오는 압박이 너무 거셉니다.”
“압박?”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대뜸 곤란하다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답했다.
“전하께서 원자재를 국산화하는 데에 예산을 편성해 주셨지요. 하지만 그 예산 증액의 수혜를 받지 못한 마탑의 다른 연구부서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긴 설명이었으나, 대강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자기네들도 돈을 달라는 말이군.”
“그, 그렇습니다.”
수확은 달콤한 열매를 낳지만,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인력과 투자를 필요로 했다. 또한 상품성이 없는 열매는 아무런 손길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열매가 썩어 버린다면, 관리인의 입장에서는 곤란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발테르 후작이 겪는 문제였다.
물론 그것이 내 탓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연구비가 부족했던 것은 크롬웰 탓이라는 설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연구소장으로 부임하던 크롬웰은 연방제국에 대한 간첩 활동과 개인적인 사치 등, 이런저런 이유로 지원금의 절반 이상을 착복해 왔다.
심지어 제자를 이용해서 가짜 프로젝트를 양산하는 등.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뿐이지, 그 액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
그러니 놈이 사라진 지금은 지원금이 부족할 일이 없을 터였다. 당연히 그런 녀석을 죽여 버린 것은 나였고.
그렇다고는 해도 타인의 시점에서는 그리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법사들이 반발한 모양입니다. 그럴 거면 사찰은 왜 하셨느냐고…….”
“추가되는 예산에 당연히 자기들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가.”
“……예.”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무려 세 배의 예산이었으니, 분명 자기들에게 떨어지는 것이 있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림도 없다 전하도록.”
“…….”
“아니면 내가 직접 전해 주지. 기존에 지급되던 예상도 철저히 확인해서 회수하겠다고.”
“재무부의 이름으로 전달하겠습니다.”
필요했다면 내가 먼저 증액을 명령했으리라. 어찌 되었든 마탑은 에스테반의 힘이 되어 줄 기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요한 경우에 한 해’에 불과했다.
“연구금을 늘린다고 해서 쓸 만한 연구가 나오는 것은 아닐 테지. 하물며 그만큼 진척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그렇지요…….”
연구는 결국 인력과 시간의 문제였다.
돈을 투자하는 곧이곧대로 성과가 나오는 것이면 모를까, 지금은 크롬웰을 죽여 연구비를 정상으로 되돌린 수준이면 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마탑의 예산을 증액시킨 것은, 다분히 그것이 시행착오가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구비를 쓰는 족족, 성과를 낼 것이 당연했으므로.
어쨌든. 발테르 후작이 곤란해 보였기에, 나는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왕국 상단에서의 연락은 도착했나?”
“그렇습니다. 그에 관한 보고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음.”
나는 후작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 내용을 확인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스릴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있군.”
“아무래도 혼돈의 시대 이후로 미스릴 광산들의 매장량이 모조리 말라 버렸다 보니…….”
“꼬리를 밟히지 않게끔 잘 운용하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최소 세 번의 세탁을 통해 수익금을 환수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아직 극소량의 미스릴만을 풀었음에도 벌써 꽤 높은 국고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신성제국과의 무역이나 미스릴 광산의 존재를 밝힌다면, 이만한 시세의 미스릴을 대량으로 판매해 나갈 수 있으리라.
그리고 결국 그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에스테반이 될 터였다.
“갈데르드 평야에 인력을 충원하도록.”
“설마 요새화의 계획을 앞당기실 예정이십니까?”
“그래. 슬슬 다양한 것을 시도하려거든, 그만한 돈이 필요할 것이다.”
성벽을 건설하는 것이 드워프들이라고는 해도, 이를 보조해 줄 인부가 많다면 그만큼 드워프들의 능률도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2년 내로 예정되어 있던 요새화를 1년 6개월. 혹은 그 이상까지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들의 솜씨에 따라 달린 일이겠지. 아마 나쁘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발테르 후작 역시, 아버님과 마찬가지로 내게 힘을 실어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가 가진 힘과 그 역할을 생각하면 썩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하면 신성제국의 일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신성제국이라…….”
요새가 완공되기 전에 미스릴과 식량의 무역을 시작할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안전과 전력을 확보한 뒤에 나설 것이냐. 그것을 묻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정답도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스릴은 성물을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하지. 어차피 놈들로서도 협의에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아직까지 아무런 이야기도 오가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을 테지.”
“저들이 먼저 협의에 관한 내용을 꺼내기를 바라시는군요.”
“그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 갔다.
“이미 놈들에게는 에스테반이 처한 상황을 일러 준 상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연방제국의 무역 제재 소식이 그들에게 도착하면 어떻게 될까?”
“그건…….”
발테르 후작이 잠시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 눈이 확신으로 빛났을 때에는, 감탄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옳다구나 하며 협의를 이행하자고 달려들겠지요. 당장 두 국가 간에 오간 내용들을 공표하자고.”
“그렇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추가적인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속된 말로 밀당이라고 하던가? 여하튼 지금 상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을 이어 가는 내 눈이 작게 휘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다른 것들을 먼저 수확한다.”
“알겠습니다.”
모든 내용을 확인한 발테르 후작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 * *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바닥을 어지럽히던 서신들이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닥에는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았으며, 창문은 금방이라도 새것으로 갈아 끼운 것처럼 말끔했던 것이다.
이윽고 집무실 내부를 둘러보던 내 시선이 조지에게로 향했다.
“마탑주가 왔다 갔군.”
“바로 들켜 버렸네요.”
당연한 것을…….
내부에서 느껴지는 짙은 마력의 향기를 내가 모르고 넘어갈 리 없었다.
아마 그 많던 서신을 치운 것 역시도 마탑주의 도움이 있었겠지. 어쨌거나 마탑주에게는 조지 역시도 마탑의 정상화를 위해 움직여 주었던 은인 중 하나였으니까.
“자리에 계시지 않으니, 그 꼬맹이를 수련시키러 가겠다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더군요.”
“그야말로 맹목적인 충심이군.”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 집무실 책상 위에는 마탑주가 남기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 하나가 놓여 있었다.
힐끔 서론을 확인해 보자, 익숙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고대 마법의 흔적?’
……그렇군. 협곡에서 읽어 들인 정보를 벌써 파악해 낸 건가?
이윽고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내 표정이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 지어졌다.
[……그리하여 소인은 전하께서 확인시켜 주신 폭풍의 요인이 마탑의 거대 술식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비슷하다는 것을 감지하였나이다. 그리고 그건,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아티팩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던 마법의 흔적이었습니다. 또한, 폭풍이 나타난 시기가 그러하듯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여 결론을 짓자면, 사장되었던 고대의 마법들은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과연, 그렇군.’
고대 마법의 실존.
그건, 일개 마법사가 추측했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장황하고 과장되었으며, 그럼에도 진실에 근접한 추론이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근접’한 추론이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리라.
‘고대의 마법이라…….’
썩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에스테반을 부강하게 만들 요소로는 말이야.
나는 회귀 전의 일을 떠올리며 흡족하게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런 서신의 가장 아랫단으로, 대마법사가 가장 마지막에 남긴 글귀가 언뜻 비추어졌다.
[그리고 제가 이것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요즈음.
비도르 남작은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모시는 상관을 향해 사방에서 구애가 들어오는데, 기분이 나쁠 보좌관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본래라면 알아서 정리했어야 할 자잘한 서신들조차 함께 올려보내기는 했다. 그것은 남작 신분에 불과한 자신을 과분한 자리로 밀어 넣고 있는, 1왕자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다.
그러니 일에 채고 있는 지금에도 남작의 웃음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전하.”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던 남작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부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은 탓이었다.
똑똑-
“흠흠……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다시금 노크를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왕실 복도로 비추어지고 있는 햇빛이, 지금이 한참 1왕자께서 집무실에 계셔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성과 발표가 다가왔는데…… 잠시 어디에 가셨나…….”
음?
문득, 남작은 이런 일이 저번에도 있었다는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언제였을까? 무척이나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필시 인상 깊은 장면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래. 이를테면.
덜컥-!
“전하!”
다급하게 집무실의 문을 열어젖힌 남작이, 내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정말로 그때와 같았다.
하지만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1왕자께서 잠시, 아주 잠시 동안, 자리를 비운 것이라는 그 일말의 가능성이.
그런 남작이 절망에 빠지게 된 것은, 책상 위에 남은 쪽지를 확인했을 때 즈음이었다.
“이, 이건……!”
삐뚤삐뚤하고 밉상한 글씨체.
분명, 조지 군의 것이다. 1왕자의 것이 아닌, 그 조지의 것.
하지만 그 내용은, 놀라우리만치 그때와 닮아 있었다.
-잠시 나갔다 옵니다.
남작은 지독한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 이 장면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1왕자가 자신을 연방제국의 사절단에게로 밀어 넣었던. 그때와 말이다.
남작은 처연하게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전하께서는 곧 마탑 성과에 관한 발표를 하셔야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울부짖는 남작의 팔 사이로, 애써 준비한 대본이 우르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