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9화
흔적 (3)
같은 시각.
나는 마탑의 최상층에서 마탑주와 만나고 있었다.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기별만 주신다면 언제든지 찾아뵐 수 있거늘…….”
마탑주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추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까지 전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나는 무심한 어조로 대답을 늘어놓았다.
“귀찮아서.”
“……예?”
“아무것도 아니다.”
마탑의 성과 발표 따위를 어째서 내가 해야 한단 말인가? 성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면 몰라도, 그딴 것은 지나가던 행인에게 돈만 쥐여 주면 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아무런 말도 없이 남작에게 맡기고 나온 것은 조금 미안하긴 하다만…… 그래도 대본을 준비해 준 남작이라면 충분히 나를 대신하여 발표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아마도?’
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사항이 아니겠지. 내 어깨가 으쓱여졌다.
“남겨 놓았던 서신은 읽어 보았다.”
“고대 마법에 관한 말씀 말이지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 쪽을 눈짓했다. 거기에는 구름 속에 드러난 마정석이 그 장대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감상하며 마탑주에게 나직이 물어보았다.
“고대의 마법을 해석할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자네가 저것을 해석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마 대마법사라면 모두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옳겠지요.”
“……그렇군.”
우선, 저 마정석 내에 담긴 술식이 고대의 마법이라는 사실은 나조차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을 눈치챌 대마법사가 없었기도 했거니와, 또 다른 비교군이 없다면 눈치채기도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이곳에서 거주하며 마법을 연마해 온 마탑주 역시. 마법 각인을 통해 처음으로 고대 마법의 성질을 인지했고, 이후 아렌델에서 폭풍을 마주한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을 곧바로 해석할 수 있었다면 아마 타국의 대마법사들이 먼저 기술을 빼앗아 갔으리라.
‘이를테면 연방제국처럼 말이지.’
현재 연방제국에 존재한다고 밝혀진 대마법사는 모두 둘.
그리고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다섯의 대마법사가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눈앞의 로드 엘레이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대륙 전체의 절반 이상의 대마법사가 연방제국에 존재하는 셈이었다.
나는 상념을 잠시 접어 두며 말했다.
“그렇다면 고대 마법 해석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지?”
“더욱 정확한 마법의 비교군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아티팩트와 동일한 것이라면, 많은 정보를 얻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군.”
이미 마법 각인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마탑주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더욱 확실한 비교군 몇 개만 있다면 저 마정석에 새겨진 고대 마법을 온전히 익힐 수 있다는 말이군.”
“예,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좋아.”
저것은 불세출의 천재가 만든 에스테반 최대의 방어 술식이었다.
전생에서도 무척 많이 신세를 졌던 만큼 저 술식에 대한 나의 신뢰는 꽤나 공고했다.
제아무리 한계를 초월한 마스터라 할지라도 한 손으로 전부를 막을 수는 없었으니.
저 술식 덕분에 연방제국의 습격이나 폭격, 여러 파괴 공작을 막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곪아 먹던 그 아수스조차도 어떻게 하지 못한 것이 바로 저 술식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것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것을 지어지고 있는 요새에……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국경지대는 물론이고 왕성에까지 새길 수만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에스테반의 수비 계획은 보다 완벽해질 것이다.’
대마법사라는 존재와 미래의 지식이 합쳐져, 완벽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몇 가지 이야기를 더 꺼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일차적인 일일 뿐이다.”
“일차적인 일이라니요?”
“해석을 통해 이론을 정립한다면 사장된 고대의 마법들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다.”
“허……! 정말로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기록 속에 남은 마법의 형태들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지.”
마탑주는 놀라움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향을 예상하기도 어려운 까닭이었으리라.
물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기는 했었으니까.
다만, 그런 일이 가능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면 앞서 말한 ‘확실한 비교군’이 필요할 터였다.
해석에 필요한, 고대 마법의 정보들이 말이다.
“……어쨌든 비교군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겠군요.”
“정보를 구해 온 이후 마법진의 해석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떻게 되지?”
“이치를 꿰는 대마법사의 권능이라면 해석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를 익히고 재현하는 것이 복잡해진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반년. 그 정도 시간이라면 충분하겠지?”
“예, 반드시 이뤄 내 보겠습니다.”
고대 마법의 흔적들을 찾는 일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탑주가 내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마 내가 고대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마 다른 아티팩트들의 행방을 알고 있지 않을까…… 라는, 그런 막연한 이유로.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분명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방대할 테니.
하지만 나는 단편적인 정보밖에 들어 있지 않은 아티팩트 따위를 건넬 생각은 없었다.
기왕 할 거 확실한 것을 건네는 것이 나을 테니까.
‘뭐, 슬슬 찾아가 보긴 해야 했지.’
때마침 이런 상황이 겹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리는 내 시선이, 창밖의 마정석을 멍하니 바라보는 조지에게로 향했다.
“출발한다.”
“……아, 예? 뭐요?”
멍청하게 되묻는 것을 보니, 창밖으로 보이는 마정석의 현물적 가치를 측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마탑주는 털털하게 웃었다.
“역시 재미있는 보좌관입니다. 뭇 사내는 호기심과 욕심이 많아야 하지요.”
“…….”
아무래도 마탑의 일로 콩깍지가 단단히 씐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대마법사의 눈이 잘못되었거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내젓고는, 마탑주에게 말했다.
“마력은?”
“마정석을 해석하느라 소모하긴 했습니다만,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출발한다는 말에 정신을 차린 조지가 펼친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움직인다.”
“예, 알겠습니다. 어디로 이동하면 되겠습니까?”
“여기.”
그런 내 손가락이 향한 곳은, 북부 대륙을 관통하는 어느 한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 장소를 확인한 마탑주의 눈썹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기는…….”
“그래.”
허락되지 않은 땅. 쉬이 가지 못하는 그곳.
나는 그렇게 즐거움을 숨기지 않은 채로,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황금 도시 트레카.”
그곳은, 연방제국의 옛 수도였다.
* * *
트레카는 황금 도시라는 이름답게 어마어마한 부가 집약되는 도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북부 대륙의 최중심에 자리한 도시였다. 말 그대로 대륙의 모든 상행이 드나드는 교역의 중심이라는 말이었다.
그 덕에 한때는 언제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웬만한 영지에 버금간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한 이제는 버려진 옛 황궁의 모습조차도 황금 도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도금. 멀리서도 반짝이는 수 없이 많은 보석들.
만일 이를 관리하는 병사들이 없었다면, 누구나 탐낼 만큼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과거의 영광이었다.
트레카는 이제 더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도시가 되었고, 기껏 해 봐야 황궁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이나 조금 몰려드는 수준이었다.
선대의 황제가 얼토당토않은 천도를 감행했다 했던가? 트레카의 시민들이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를 듣고 자란 레이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오늘도 손님이 없네.”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손님이라고 있겠는가?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서점을 관리하는 레이카에게는, 이 낡은 서점은 그야말로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대대손손 운영되던 서점. 조상의 손길이 남은 지역의 간판. 그런 이름은, 그녀에게 하등 쓸모없는 것이기도 했고.
도리어 국립 도서관이라는 시설들이 생긴 지금에 그 비싼 서적들을 소장할 인물이 있을 리 없었다.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구태여 돈을 들일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물며 가끔 있는 손님이라 해 봐야 상인들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일부 수단에 불과했을 뿐, 정작 돈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레이카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이딴 서점, 빨리 정리하고 떠나고 싶어.”
돈도 되지 않고 지루하기만 한 서점.
본래라면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이 서점을 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이상한 학문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않았다.
때문에 할아버지 다음으로 서점을 이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아마, 서점을 잇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유로운 상인이 되었으리라.
“남국의 바다가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떠나고 싶다고 하여도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쥐꼬리만 한 수입이라도 없었다면,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하나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그녀는 계산대에 앉아 고개만 까닥거릴 뿐이었다.
그러던 그 순간이었다.
딸랑-!
문에 부착된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왔다는 신호였다.
레이카는 실망에 찌든 얼굴을 순식간에 지워 내며 서점의 문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서 오세…… 요?”
하지만 그 말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어떠한 이유는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 사람의 행색이, 조금은 기이하게 보인 탓이다.
‘로브?’
연방제국 특유의 의상과는 너무도 다른 로브. 대놓고 외지인임을 드러내는 그 행색이, 레이카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외지인을…… 정확히는 외국인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더욱 신기했던 점은, 선두의 남자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다웠다는 사실이었다.
“똑바로 찾아온 것 같군.”
“……아.”
그 낮으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에 레이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아하게 서점 내부를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네 아비는 어디에 있지?”
단언컨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대학이라는 허깨비 같은 학문을 연구하는, 그런 괴짜 아버지를 찾는 사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