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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80화 (8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0화

흔적 (4)

제국 마탑 직속 고대학 연구 학회.

으레 학회들은 제국의 다른 곳이 그러하듯 지식보다 권위와 실적이 먼저 평가받기 마련이었다. 실적이 없다면 학회에 발을 붙이기도 힘들었고, 권위자가 아니라면 그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 경우가 심했다.

“……또 왔군.”

“쯧. 지치지도 않는가.”

컨퍼런스에 참여한 레이튼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고대학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먼 학문이었다.

그저 로망만이 남아 있는, 현실성은 없는 학문.

그렇기에 고인 물을 정화해 줄 새로운 바람은 불지 않았고, 권위자라 불리며 거들먹거리는 늙은이들이 학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들의 이론과 반대되는 의견은 즉시 묵살당하고, 철저하게 도태시킨다. 또한 첨삭이라는 이름 아래에 조롱당하고, 외롭게 무너져 간다.

그렇게 어떻게든 남은 이들조차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밉보였음에도 꾸준히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레이튼은, 그야말로 학회의 골칫거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그의 위치는 컨퍼런스가 이어지는 동안 충분히 드러났다.

“이렇듯 고대의 마법사들은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마도구와 마법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저자가 색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이! 이것 봐, 레이튼.”

“……예, 학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여기는 고대학의 역사적 사실을 논의하고 증명하는 자리이지, 자네의 망상을 늘어놓는 장소가 아니야.”

“푸흡……!”

“푸하핫!”

“…….”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분위기를 거스르려 하는 이가 없었다.

한 명의 학자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채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레이튼은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입을 열었다.

“망상이라 치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고서와 역사적 바탕을 기반으로 제시하는 이론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게. 고대의 마법은 현대보다 월등히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거늘, 그런 마법사들이 구태여 색적 ‘따위에’ 마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야.”

“……마력을 전개해 주변 환경을 훑는 것은 대단히 효율적이지 않을뿐더러, 또한 일반 병사들이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구한 이 디텍션 마법이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자네의 망상이라는 말이네.”

비웃음 가득한 조소를 지은 학회장이, 건방지게 다리를 꼬며 쏘아붙였다.

“마법이 발달했던 과거에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는 마법사가 없었을까? 그리고 인간이 직접 조종하는 마력이 더욱 꼼꼼하고 신뢰성 높다는 사실을 자네가 모르지는 않을 테지.”

“그렇다면 최소한 연구 내용을 검토하기만이라도…….”

“한 번만 더 이따위 주제를 들고 왔다가는, 학회를 능멸한 대가로 그 자격을 영구적으로 제명하겠네.”

“……알겠습니다.”

레이튼은 그렇게 단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들을 품에 안고는 힘없이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무수히 많은 조롱의 시선들이 화살처럼 꽂혔다.

그에게 연방제국의 학회는 너무나도 썩어 있었다.

* * *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서점의 계산대를 지키던 소녀는 제 아비를 부르자 최대한 신속한 움직임으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라면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의도로 찾아왔는지를 묻는 것이 우선이었겠으나,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뭐, 그만큼이나 손님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다는 것이겠지만.

끼이익-!

나는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있는 의자 하나를 대강 끌어와 앉았다.

먼지가 잔뜩 쌓인 의자였으나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런 이 상황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탑에서부터 함께한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서점…… 혹 전하께서는 이곳에서 고대 마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실 생각이십니까?”

마탑주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볼품없는 서점이었다. 대략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없는, 너무나 평범한.

연방제국까지 와야 할 의미가 없었다. 소녀의 아버지를 부른 일 역시 정녕 의문이었고.

하지만 내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고대의 마법은 소실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그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바람직하겠지.”

“그렇다면 금방의 소녀, 그 아이의 아비가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허어…….”

마탑주는 감탄사 비스름한 것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고대의 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바로 오늘이다. 하지만 1왕자는 이미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너무나 태연하게 자신을 안내했다. 그것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연방제국으로.

그 확신에 가까운 행보는 내내 의문으로 남았다.

‘당최 그런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것인지…….’

이쯤 되면 차라리 현자라고 불리는 족속들보다도 알고 계신 것이 많지 않은가?

그런 마탑주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미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 조지가 서적들을 구경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먼지만 풀풀 날린 채로 읽어 내리기를 포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평범한 서점은 아닌 듯 보입니다. 포괄적이지만 마법과 관련된 서적들도 제법 존재하는군요.”

“그래. 그 자신이 마법과 관련된 서적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

“소녀의 아비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나는 마탑주의 말에, 의자 옆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하필이면 그게 또 기초 마법 서적이었다.

‘진짜로 한 번 배우게 해 봐?’

내 진득한 시선이 조지에게로 향했다. 대마법사와 함께 다니며 마법의 편리함을 체감한 나였다. 상시로 붙어 있을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더욱 편리할 터였다.

그때. 녀석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부르르 떨며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으윽, 웬 귀신이라도 나타났나?”

“…….”

하지만 녀석이 성실하게 마법을 배우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오히려 하던 일이나 내버려 두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산만하게 서적들을 깔짝대던 조지가 슬슬 지쳐 갈 때 즈음, 계산대를 지키던 소녀가 되돌아왔다.

그녀의 뒤에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한가득 자라난 중년의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성은…….

“고대학 학회 소속 레이튼이라고 합니다. 저를 찾아오셨다지요.”

적어도 내게는 익숙한 인물 중 하나였다.

고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마법사. 그리고 고대의 각종 비밀 들을 풀어낸 학자.

나는 로브 속에 가려진 입술을 길게 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게 의뢰할 것이 있다.”

“……아, 의뢰하실 것이 있어서 오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부전여전(父傳女傳)이라 했던가? 그 역시 딸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윽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실례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 연방제국의 황실에서 나오신 분이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지?”

나는 그렇게 되묻고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마탑주를 눈짓으로 제지했다.

그 모습이 짐짓 수상해 보일 수도 있었으나, 레이튼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무언가, 다른 귀족들에게서 느껴 보지 못했던 분위기였기에 그만…….”

“그렇군.”

“마음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내가 4황자의 움직임만을 보고 놈의 정체를 짐작했듯, 이 남자 역시도 내게서 묘한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여타 귀족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그 뒤로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정정을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일단은 타국에서 온 귀족이라고 말해 두지.”

“알겠습니다.”

학자 특유의 허례허식 따윈 없는 무덤덤한 태도였다.

“우선 내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레이튼을 따라 움직인 곳은 그의 개인 연구실로 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내부는 쌓여 있는 책들로 인해 한 발자국 내딛지도 못할 정도로 혼잡했고, 환기조차 똑바로 시키지 않은 것인지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먼지가 비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들을 밀어내더니, 이윽고 최소한의 공간이 확보되자 일행을 보며 말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십시오.”

그래도 내부를 정리한 뒤에는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는 했다. 적어도 방금 전보다는 나아진 셈이었다.

그 순간, 내부를 훑던 내 눈에 수기로 작성된 공책 같은 것들이 들어왔다.

“디텍션 마법?”

“……아, 이것 말씀이십니까?”

표지에 적힌 글귀를 따라 읽은 것이었다.

이에, 레이튼은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오늘 아침 학계에 발표했던 내용입니다.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지만요.”

“퇴짜를 맞았다?”

“그렇습니다. 고대의 마법에 관련된 연구 내용이었지만 아무래도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터나,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레이튼이었다.

하지만 표지의 글귀를 보고 노트를 주워들은 내 생각은 달랐다.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나?”

“예…… 예? 그것을 말입니까?”

그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피곤에 찌든 그 얼굴에는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상관이야 없습니다만…… 이미 반박당한 주제이니 달리 쓸모있는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애초에 귀족분들께서 시간을 들여 읽기에는…….”

“그것이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거기에 짚이는 내용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공책을 펼치며 그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곧이어 그것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내게 확신으로 다가왔다.

‘……역시.’

대단하다면 대단하다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애써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념은 짧았다.

이윽고 내 시선이 마탑주에게로 향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으로부터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노트를 넘길수록, 내용을 훑어보는 마탑주의 표정이 처음엔 가벼운 놀람, 이어서 흥미로움. 그리고 가면 갈수록 진중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적당히 시간이 지났을 때 즈음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이건 사실적인 것들을 바탕으로 작성된 논문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제가 추측하는 마법의 형태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렇군.”

그가 추측하고 있는 것들은 흔적들을 통해 짐작한 고대 마법의 양상이었다.

대마법사의 지식과 정보가 합쳐진 것이니,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이 논문이 꽤 정확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당연한 소리였다.

“뭐, 적어도 도움이 되긴 한다는 말이겠지.”

“조금은 더 확인해 볼 필요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만…….”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은 마탑주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허공에 손을 뻗었을 때에는, 이미 손가락 끝으로부터 푸른색의 기운이 선명하게 아른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은 어떤 느낌일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마탑주는 허공에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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