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1화
흔적 (5)
“……마법진?”
학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지만 학회는 엄연히 제국 마탑의 직속부서였다.
하물며 그는 고대의 마법을 위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지금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그리는 것이 마법진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허공을 수놓고 있는 저 푸른색의 마법진이, 단순히 현대 마법의 양식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것은, 놀랍게도 그가 연구해 오던 디텍션 마법의 술식이었다. 그것이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발동하게 된 것이다.
“내, 내가…… 내가 연구한 것이 옳았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같은 말만 반복하던 그 순간. 마법진 내부를 이루는 마나가 급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폭발의 전조, 잘못된 마법진을 그린 탓에 마력이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웅-
“……허억! 터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오히려 다치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저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육체를 터뜨리고도 능히 남을 수준이었으니.
그렇기에 레이튼은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온 세 남자를 물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서 마법진은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어, 어, 어떻게 이런…….”
레이튼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했다.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을 막을 수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이미 폭주한 마력을 잠재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연구로 목숨을 잃은 마법사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듯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바로, 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에게서부터 말이다.
“설마……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허어.”
반대로 그런 마탑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금 마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전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다른 폭발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마탑주의 표정은 밝아졌다.
“이제 어떤 느낌인지 이해했습니다. 고대 마법이란 이런 것이었군요.”
“고대 마법을 연구한 노트에서 실마리를 얻었나?”
“그렇습니다. 아직은 겉모습밖에 따라 하지 못하지만 말이지요.”
아직 확인한 것이 그것 외에는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럼에도 시작하자마자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말은, 확실한 지식과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면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은 놈이 연구한 고대 마법의 지식이 그만큼이나 정확했다는 사실이 되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더는 놀랄 힘도 없어 보이는 레이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내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마법 각인의 효능을 밝혀 낸 인물답군.’
마법 각인이라는 고대의 아티팩트의 정체를 밝혀낸 인물이자, 여러 고대의 마법적 사실들을 확립한 세기의 학자.
그는 10년 후, 고대 마법 부활 프로젝트를 이끄는 대륙의 대학자가 되는 인물이었다.
내가 찾아온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년이라는 세월이나 지난 후의 이야기였다. 현재의 능력이 어떨지 검증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마법사가 손수 그 능력에 대해 입증하지 않았던가? 이제 그 이상은 증명은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슬슬 의뢰 내용을 말하지.”
“그, 그 전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뭐지?”
그렇게 내 말을 끊는 레이튼의 표정은 너무도 다급해 보였다. 이유를 묻자, 그는 상기된 얼굴로 마탑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 방금의 그것은 정말로 제가 연구한 고대 마법이 맞습니까?”
“그렇다네. 보완이 필요할 것 같지만 틀림없지.”
“맙소사!”
학회에서 멸시당하던 그것이 눈앞에서 직접 펼쳐졌다는 사실은 두 눈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레이튼은 이미 한번 마법진이 터질 뻔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발동하신 것입니까? 분명 제가 했을 때는 되지 않았던 것을…….”
“고대의 마법은 현대의 것과 다른 흐름을 요구하네. 마법의 이해도가 다르니, 시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걸세.”
“마법의 흐름…… 다른 흐름…….”
“나 역시도 방금 자네의 연구를 보고 깨닫게 된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겠네만.”
“……깨닫는다?”
그 순간. 그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외쳤다.
“그, 그런가!”
쿵 쿵 쿵 쿵-!
그러고는 재빨리 옷을 챙겨 들고 문밖으로 달렸다.
말릴 새도 없이, 정말로 말 그대로 냅다 달린 것이다. 어찌나 급히 달렸는지 목조 바닥이 크게 울릴 정도였다.
졸지에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깨가 밀쳐진 조지는,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저 사람 대체 어디 간답니까?”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는 마탑주에게 말했다.
“기다리면 금방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마법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도록.”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기다리는 것쯤이야 간단한 일이지.”
그렇게 대강 대답을 늘어놓으며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당황한 마탑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 뜻이 아니옵고…… 저 학자를 이대로 보내도 괜찮겠냐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뭐가 문제지?”
“그는 고대 마법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할 행동은 하나뿐입니다.”
“그래.”
나는 피식 웃은 뒤에 말을 이었다.
“자신을 무시했던 학회에 증명하러 가겠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고대의 마법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대로면 그대로 연방제국의 마탑에 그 공을 빼앗기겠지. 이 연구를 해낸 천재와 함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연방제국의 사람에게 그 사실을 고스란히 바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고대 마법에 관한 지식이 전달되었을 때의 이야기리라.
“걱정하지 말고 할 일을 하고 있도록.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마탑주는 무척이나 충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제아무리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라 하더라도 따를 만큼.
오히려 사려가 깊기에 내 뜻을 이해하고 받들려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 정도였다.
그 반면에 조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옷! 이건 에스테반 경매에까지 출품될 정도로 귀한 성인잡지잖아?!”
그 한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역시 마법이라도 배우게 하는 것이 낫겠다.
“흐이익……!”
조지의 몸이 다시금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렸다.
* * *
“허억…… 허억…….”
레이튼은 가빠오는 숨을 참으며 학회의 건물로 도착했다. 그러고는 재빨리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는 방에 다다랐다.
다행히 오전에 시작되었던 컨퍼런스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마침 마지막 발표자의 말이 끝나 갔을 타이밍이었다.
철컥-!
“……뭐야 갑자기?”
“레이튼? 저 녀석이 왜…….”
막바지에 치달은 컨퍼런스를 확인한 레이튼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그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았던 것이다.
이윽고 숨을 몰아쉰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학회장에게 다가갔다.
“허억, 제가…… 고대 마법의 발동을…….”
“뭐라는 겐가? 똑바로 말하지 못하겠는가?”
“고, 고대 마법의 발동을 증명하고 그 연구의 효용성을 입증하겠습니다!”
“……자네가 고대 마법의 발동을 증명하겠다고?”
“그, 그렇습니다!”
그 말에 학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뜸 찾아오더니, 별안간 고대 마법을 보이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인단 말인가?
하지만 마침 잘 되었다. 학회장의 표정이 이내 사악하게 미소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으래? 그렇다는 말이지?”
그렇게 학회장이 손짓하자, 단상 위에 있던 발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레이튼을 향해 조소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한번 증명해 보도록.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분명 고대의 마법이란 것을 보여 줄 수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레이튼이 재빠르게 단상 위로 올라가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윽고 손을 뻗어, 그 의문의 마법사가 그러했듯 천천히 허공으로 마법진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확신에 차 있지 않은가? 혹시나 해서 지켜보던 학회장의 가슴속으로 작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흠…….”
하지만 그 의문스러운 목소리는 학회장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튼 본인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 이게 왜 안 되는 거지?”
“지금 무얼 하는 게지?”
“그, 그게…….”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이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천천히 소멸했다. 정말로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연구해 낸 마법진을 다르게 그릴 가능성은 없었으니, 무언가 오류 같은 것이 있었다고밖에는 생각할 길이 없었다.
‘다, 다시…….’
당황한 레이튼이 다시금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정확한 모양대로 마법진을 그려 나가며 의지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법진은 또다시 올바른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발동되지 않았다. 기억 속에 남은 그 마법사의 마법진과 동일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학회장의 입에서 사형 선고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그만.”
“…….”
벌써 세 번째 마법진을 그리던 참이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멈추어진 몸은 마법진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이에, 손가락에 넘실대던 푸른 마나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봐, 레이튼. 내가 무어라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
“하, 학회장님…….”
“분명 한 번만 더 학회를 능욕하면, 영구적으로 그 자리를 제명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까는 분명히 마법진이 발동을…….”
“닥쳐라!”
“…….”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에 울렸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레이튼의 몸이 움찔거렸고, 학회장은 조소를 지으며 마법 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잠시 후, 컨퍼런스가 진행되던 방으로 경비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내려진 것은, 사회적인 죽음이었다.
“네 녀석은 이제부터 이 마법 학회의 일원이 아니다.”
“하, 학회장님!”
“학회장의 권한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레이튼을 제명한다. 이의는 허가하지 않겠다. 경비원들은 즉시 저 불청객을 끌고 나가도록.”
“학회장님……!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방금 전에는 제가…….”
“저 주둥이를 열지 못하도록 막아.”
“커윽…… 읍…….”
그렇게 입을 막힌 레이튼은 사지가 붙잡힌 채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 위로, 학회 권위자들의 비웃음 여린 시선이 내리꽂혔다.
“물을 흐리던 놈이 사라져서 다행이야.”
타의로 바닥을 기는 찰나에도 그의 눈에 보인. 명백한 적개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