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2화
흔적 (6)
“왔군.”
어느덧 연구물을 살피는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창밖에서 드리우는 햇살이 점차 노랗게 물들어갈 때쯤, 마침내 밖으로 뛰어나갔던 레이튼이 돌아왔다.
그는 다리에 뭐가 닿는지. 팔꿈치가 문짝에 부딪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다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며 중얼거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보니 고대의 마법진을 발동하는 것이 실패했나 보군.”
“그,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허망한 물음에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되겠지.
이윽고 움직인 시선은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브로치가 사라진 것을 보면 학회에서도 추방당한 모양이지?”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그런 안타깝다는 말과는 달리 내 입꼬리는 작게 올라가고 있었다. 레이튼은 두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들거리다가 마탑주를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어째서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은 것입니까?”
“애석하지만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나 역시도 알지 못했네.”
“그렇다면……!”
그 순간이었다.
“발동할 리가 있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잔잔하게 내던져진 내 목소리에, 이번에는 그의 참담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표정 속에는 약간의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발동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것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그리 쉽게 발동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단지 이해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고대의 마법을 발동시킬 것 같았다면, 지금까지 레이튼이 그러지 못했을 이유가 없었다.
그건, 회귀 전에 있었던 고대 마법 부활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지.’
정확히는 부활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대마법사들을 비롯한 일부 엘더급의 고위 마법사들 뿐이었다.
복원된 고대의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 요구하는 연산 능력의 수준이,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높았던 것이다.
자세한 사실을 모르는 레이튼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 한데 어째서 제게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알려 주기 전에 뛰어나가더군. 그토록 바쁘게 뛰어나갈 줄은 몰랐다만?”
“그, 그건…….”
레이튼은 의표를 찔린 듯 말을 더듬었다. 순간 얻은 깨달음에 흥분해서 그런 간단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은 그 자신이었지, 오히려 연구를 증명해 준 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마법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하기 쉽게 개량되고 전파된 학문이다. 그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복원해 낸 것은 원형의 형태일 뿐이지.”
“원형의 형태와 개량…… 그렇군요, 당연하다 여겼기에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습니다.”
마탑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음에도,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그에게도 과제 하나가 추가된 격이었다.
“그런 것을 하위의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 것이 당면할 문제겠군요.”
“그래.”
회귀 전에도 이를 개량하려는 움직임이 보였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이를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프로젝트를 지휘해야 하는 레이튼이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형당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지.
‘당시 카롯트의 황제가 되었던 4황자에게 말이야.’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녀석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고,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 역시 내가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눈매가 오만하게 휘어졌다.
“억울한가? 지금까지의 연구가 옳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아무것도 증명해 내지 못한 것이?”
“그건…….”
“그렇다면 내 아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너무도 오만하지만, 누구보다 어울리는 말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황망하게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제정신을 차리고 멈추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이야기를 듣던 마탑주와 조지였다.
“……그는 연방제국의 사람입니다.”
“나도 안다.”
그것은 연방제국의 참모가 ‘되는’ 조지와 경우가 달랐다.
이미 그는 연방제국의 사람이었고, 심지어 학회라는 국가의 기관에 소속되어 있던 학자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학회에서도 제명당한 인물은 더 이상 재기할 방도가 없다.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
연방제국의 학회는 너무도 썩어 있었다.
아니. 그 뿌리부터, 근간부터 이미 썩어 있었다.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본인일 터였다.
“지금까지 무시만 당하던 그런 자네가, 그들에게 옳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하나뿐일 테지.”
“……타국에서. 손님께서 오신 곳에서 연구를 이어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
조국을 버리고 오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것이 달갑지 않다거나 무례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옳다고 말하고, 이를 증명하기까지 해 준 사람들.
학회라는 최소한의 자격마저 잃어버린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음은 한 곳으로 향했으리라.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몰랐다.
“……따라가겠습니다.”
“좋군.”
적어도 그곳에서는 지금처럼 바닥을 기는 처지가 아닌,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이 썩은 땅에서 구차하게 연구를 이어 가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곳에서는 제 연구가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제 가치를 알아봐 주신 분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그 맹세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군.”
“……!”
스르륵-
나는 내 얼굴을 감추고 있던 후드를 천천히 벗어 나갔다.
찬란한 은발의 머리카락. 저를 굽어보고 있는 오만한 핏빛의 눈.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연방제국의 땅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내 이름은 알렌 에스테반.”
에스테반의 1왕자. 그리고 장차 연방제국의 적으로 거듭날 일국의 지배자.
“그것이 네가 모시게 될 주인의 이름이다.”
* * *
“……네? 고향을 떠날 거라구요?”
레이튼의 딸, 레이카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말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다음 말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카, 필요한 짐만 챙겨서 나오려무나. 서점은 버려 두고 갈 거란다.”
“왜, 왜요?”
“그분들을 따라가기로 했단다.”
레이튼이 말하는 ‘그분들’이란 것이, 제 아버지를 찾아왔던 세 명의 손님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서점을 버리면 생계는 어떻게 하고…….”
“그분께서 마탑에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시더구나. 마탑주님의 직속으로 임명해 주겠다 하셨으니, 지금처럼 네게 생계를 맡기지는 않을 것 같구나.”
“…….”
슥슥-
레이튼은 그렇게 제 딸의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는 어느 정도 가지런하게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하려무나.”
“……아빠.”
“네가 상인이 되고 싶다 했던 것을 기억한단다. 원한다면 왕국 상단에서 남부 대륙으로의 무역을 맡게 해 주겠다고도 말씀하셨으니, 그리해도 좋아. 먼바다를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왕국 상단이라니…… 그건…….”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레이튼은 준비를 마친 딸을 데리고 서점의 밖으로 나왔고, 어느새 마탑주는 에스테반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내 시선이 단출한 짐만을 들고나온 레이튼에게로 향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전하.”
“전하…….”
“좋아.”
딸의 의문이 흘러나왔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마탑주를 향해 눈짓했고, 이내 눈을 감은 마탑주의 로브가 인위적인 마력의 흐름으로 조금씩 펄럭이기 시작했다.
대마법사의 권능. 텔레포트의 전조였다.
우우우우웅-!
마력이 강해졌다. 그럴 때마다 로브의 펄럭임은 늘어만 갔고, 어느새 주위로는 흙먼지가 날릴 수준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득 내 시선이 서점의 맞은편 멀리에 우뚝 선 무언가로 향했다.
저물고 있는 노을에 반짝이는, 황금색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카롯트의 옛 황궁인가.’
도금된 외벽은 영광을 상징했다. 정복 전쟁을 통해 대륙을 호령하던 그때의 영광.
이미 천도를 통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건축물이 되었다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는 에스테반에게 있어서 수탈기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참으로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역겹기 그지없군.’
파앗-!
이윽고 텔레포트의 마법진이 완성되자, 대마법사의 주변으로 넘실대던 마력의 파장이 차차 잦아들었다.
이미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두 부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황궁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마탑주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의문을 표해 왔다.
“음? 전하, 마법진이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어서 돌아가시지요.”
“잠시만 기다려 보도록.”
“…….”
마탑주가 재차 의문을 보인 그 순간, 나는 왼쪽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엘베른을 뽑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서 말이지.”
우우우우웅-!
그렇게 말하는 내 검의 위로, 어느새 핏빛의 검기가 선명하게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마탑주의 주름진 눈이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크게 뜨여졌다.
“대, 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시려고…….”
검기는 점차 응축되더니 검을 감싸는 또 다른 검의 형태를 이루었고, 이는 곧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과 융합되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기가 진동했다. 다만 그것은 마탑주가 권능을 운용했을 때와는 달리 짙은 살기를 띤 진동이었다.
……검을 감싸는 핏빛의 회오리.
대기에서부터 모이기 시작한 바람의 힘은 겉잡을 수없이 커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 온 그 어떤 검기의 형태와도 달랐다. 또한 그 어떠한 것보다도 위협적이었다.
마탑주는 그 사실을 이해하기도 전에 찾아온 폭풍에, 마침내 불안감의 정체를 깨닫고는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래, 기껏 이곳까지 왔는데 선물 하나 없이 갈 수는 없겠지.”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검을 쥐고 있던 팔이 사선으로 길게 뻗어졌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촤아악-!
콰과과과과과-!
회오리치듯 모인 바람의 힘이 폭발하며 검의 궤적을 따라 대기를 가르고 나아갔다.
그리고 그 궤적이 향한 곳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폭풍처럼. 또한 사신처럼. 일직선의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무자비한 파괴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폭풍이 향한 곳에 있던 금빛의 황궁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구구궁-!
“마, 마, 맙소사……!”
……옛 황궁이 무너졌다. 그리고 무너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색의 건축물은 무언가에 찢어발겨지듯 도려내진 상태였고, 남아 있는 부분마저 상처를 견디지 못한 채 천천히 주저앉으며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모습에 마탑주는 경외감으로 몸을 떨었고, 나는 검을 회수하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야 좀 볼만하군.”
그런 내 몸이 한 줄기 빛과 함께 마법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