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5화
성과 (2)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신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 벨더렛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누가 그러지 아니할까.
하지만 1왕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그것을 읽고, 유행을 꿰뚫었다. 그리고 수십 배가 넘는 이윤을 만들어 냈다.
자신의 오랜 상행 경험에서 나온 지론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비웃듯 자신의 가치를 손수 증명해 낸 것이다.
‘정녕 믿을 수가 없구나……!’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사태는 눈앞에서 떡하니 벌어지고 있었으니.
게다가 이대로 멍하니 있기에는 아직 그분께서 명하신 다른 사항들이 남아 있기도 했고.
후작 부인은 조금은 조급한 눈빛으로 다시금 상인에게 물었다.
“하면 그대들이 말한 대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을 모두 팔아 주는 것이겠지?”
“예, 부인께서 이 모피의 전량이 필요하다 하시면 기꺼이 모두 드리겠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흥정하게 되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깔끔하게 물건을 판매해 주겠다는 것으로 ‘그’ 카르덴 후작가와의 인연을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1왕자께서 바라시는 일이었음에 분명할 테지.
게다가 당초의 목적은 겨우 모피의 무역으로 수익을 거두는 수준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 * *
“……허.”
아즈란의 광산지대.
무역관의 담당 직원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흑철을 거래하고 싶다는 말이오?”
“그렇소.”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벨더렛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그것이야말로 정녕 1왕자께서 바라시던 것이었음이라.
흑철은 평범한 철의 성분에 마력이 깃든 물건을 뜻했다. 물론 마력이 깃들었다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특정 지역에서 종종 생산되고는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광물’이란 것이 아즈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흑철이라…….”
광산의 관리인은 찾아온 에스테반 왕국 상단의 소식에 턱을 쓰다듬었다.
흑철은 마력이 깃든 광물답게 통상적인 철과는 그 효용이 궤를 달리했다. 뭇 미스릴이 그러한 것처럼, 오러의 전도율이 무척이나 높았던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다루기가 압도적으로 어렵고 관리가 까다롭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계약의 문제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흑철은 어차피 남는 것이고, 사고 싶다면야 정녕 팔아 주지 못할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관리인의 마음을 혼란케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두 군데나 찾아올 줄은…….”
물량은 한정되어 있었으나, 흑철의 무역을 요구해 온 곳이 정작 두 군데나 된 것이다.
한 곳은 방금 전에 찾아온 에스테반의 왕국 상단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이전부터 광산과 거래해 오던 타국의 상단.’
어느 국가라고는 들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오래전부터 거래를 트기도 했거니와,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 무역을 중점으로 수익을 올리는 광산의 관리인으로서는 마뜩잖은 상황이었다.
한 곳과 거래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뿐더러, 신의를 생각해서라도 그쪽을 우선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요즘, 그쪽에서 자꾸 귀찮게 여러 조항을 걸려 한단 말이지.’
마침 여러 가지 말 못 할 사정이 겹쳐 있는 상황.
그래도 여러 상황을 생각하면 균형을 생각하는 게 맞을 터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결국은 광산의 미래를 위해 귀찮더라도 양쪽에 물량을 나누어 주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리고 그 소식은 흑철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벨더렛과 레이카에게도 전해졌다.
“그렇군. 물건을 두고 나눠야 할 수도 있는 입장이라는 뜻이구려.”
“미안하지만 상황이 그렇소.”
“괜찮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오. 염려치 마시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벨더렛은 무역관의 직원이 미안하다며 전해 준 말에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흑철이란 말에 놀라더라니…….’
하지만 다른 상단이 이미 왔다는 사실을 한낱 상인이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다만 1왕자의 명령으로 흑철의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자신들로서는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실 한 발자국 늦게 도착한 입장에서는 이것마저도 감지덕지리라.
“……어쨌든 절반이라도 건지기는 해야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오.”
벨더렛의 씁쓸함이 더욱 짙어졌다.
물론 타국으로 가게 되면 온전한 흑철의 물량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흑철이 나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고, 아즈란이 아니라면 흑철 광산이 있는 국가를 찾기 위해, 보다 남단까지 내려가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과 금전 모든 곳에서 손해를 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카가 슬그머니 물어 왔다.
“그런데 굳이 흑철의 물량을 나누어야 할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더냐?”
“들어 보니까, 요즘 이곳의 경영 상황이 썩 좋지 않다더라고요. 그렇다면 입찰 경쟁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입찰 경쟁이라니, 그건…….”
……경쟁?
그러고 보니 1왕자 전하께서…….
“……아!”
문득 벨더렛의 씁쓸한 표정 사이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미처 지금까지 잊고 있던 1왕자의 조언이었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척이며, 광산 측 무역관 직원에게 말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음? 알겠소.”
그렇게 주머니를 살피기를 잠시. 이윽고 벨더렛의 손에 서류 한 장이 들려 나왔다.
……1왕자의 이름으로 내려온 왕국 상단의 주문 내역서.
곧장 그의 시선이 향한 부분에는, 가로로 그어진 작대기 하나만이 존재하는 ‘무역 예산’ 대목이 있었다.
벨더렛은 이 기가 막힌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여, 역시…….’
작대기의 의미는 예산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무한정.
그것이 뜻하는 바는, 그들에게 부여된 무역의 예산이 무한정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분명 1왕자께서는 출발 직전에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기셨더랬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용하도록. 단, 충분한 양을 확보하라.
그래. 그것은 완벽한 확신이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대체 흑철의 무역에 ‘얼마든지’ 사용할 일이 무어가 있겠냐며 의문을 품고 기억 속에서 잊었던 벨더렛이었으나, 지금 상황을 조합해 보면 이 상황마저도 1왕자가 읽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벨더렛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그것에 대한 감상이나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상대 상단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소?”
“물량을 나누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 말이오?”
“그렇소.”
그 질문에 광산 무역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오. 관리인께서 내리신 권고니 이미 전해졌을 터요.”
“그렇다면 상대 상단에게 이 말을 전해 줄 수 있소이까?”
“말해 보시오.”
……됐다.
일순, 서류를 손에 쥔 벨더렛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흑철 물량을 두고 입찰 경쟁을 하자고 말이오.”
* * *
광산의 회의실. 양국의 상단이 각각 맞은편의 자리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은 것은 광산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직접 이 경쟁을 조정하겠다 말하며 이 자리에 참석했다. 아마도 이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테지, 어찌 보면 그가 고민하던 모든 걱정이 사라질 수도 모르는 자리였으니.
“크흠!”
이윽고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헛기침을 남긴 관리인이 입을 열었다.
“양국의 상단 모두 경쟁 입찰에 찬성하게 되어 이 자리가 열렸소. 특이하게도 서로 같은 제안을 했다고 했다 하더구려. 내 말이 맞소?”
“그렇소.”
그 말대로였다.
놀랍게도 흑철의 물량을 두고 경쟁하자고 제안한 것은, 상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 광산을 오직 자기네들이 독점해야만 된다는 듯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인으로서의 감이 벨더렛을 자꾸 자극했으나, 그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에겐 방책도 있었으니.
아마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겠지. 그는 긴장감에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관리인이 재차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광산의 입장에서 또한 그것이 나을 수도 있지. 어찌 되었든 흑철의 가격을 더 쳐준다는 것이니까. 그러니 그대들이 정녕 그것이 좋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소.”
그렇게 말한 관리인의 시선이 상단 직원들을 훑었다.
“이쪽은 에스테반에서 온 왕국 상단이오. 그리고 이쪽은 마드라에서 온 왕국 상단이고.”
‘……마드라?’
벨더렛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마드라. 그것은 연방제국의 아래, 자세히 말하자면 연방제국과 아즈란 사이에 있는 북부의 국가였다.
그런 곳에서도 흑철을 노리고 있었다니…….
“크흠!”
그런 벨더렛의 상념을 뚫고 관리인의 재차 이어진 헛기침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이윽고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을 때는, 이미 경쟁의 출발 신호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슬슬 이야기를 나눠보지. 무역에 할당될 흑철의 물량은 4천 톤이오.”
“……흐음.”
4천 톤. 한 개의 광산에서 생산된 물량의 전부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마드라 측의 상단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제안 하나를 드려도 괜찮소이까?”
“말해 보시오.”
“고맙소.”
발언의 허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 상대의 눈에 비추어진 감정은 ‘오만함’이었다.
“우리는 에스테반 측에서 제시한 가격의 2할을 무조건 더 얹어 드릴 것을,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바요.”
“뭐, 뭐라……!”
“……!”
상단의 관리인과 벨더렛. 그리고 레이카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굳었다.
에스테반에서 제시한 가격의 2할을 ‘무조건’ 더 얹어 주겠다.
그 말은, 상대가 얼마를 부르든지 간에 자신들이 경쟁에서 이길 거라는 말을 직선적으로 한 것과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그건 오만한 자신감의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 싸움의 시작을 알리기 전에 벨더렛이 느꼈던 감각 그대로였다.
그러자 관리인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어떠한 가격을 제시하던 그것의 2할을 더 얹어 드리겠소.”
“허어…….”
초장부터. 그것도 상대의 제안을 듣기도 전부터 이런 선언을 하다니…….
관리인의 곤란하다는 시선이 에스테반으로 향했다.
“에, 에스테반 측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
벨더렛은 침묵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상대가 얼마를 부르던 2할이라고 했는데, 자신들이 그것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깔끔하게 당신들이 가져가라고? 아니면 우리는 그것보다 더 많이 쳐주겠다고?
정상적인 경쟁을 생각한 벨더렛에게는, 이 상황 자체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 있게 나섰을 때에 이런 일도 있을 거라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귓가에 다가온 레이카의 입술에서 조금은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리자님. 저 사람들, 아무래도 연방제국의 사람 같아요.”
“……뭐라고?”
벨더렛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