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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87화 (8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7화

성과 (4)

“……그렇군.”

나는 왕국 상단이 아즈란으로부터 보내온 흑철 수입에 관한 소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결과는 퍽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아래로 적힌 4배라는 가격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물건이 낳을 최종적인 가치에 비교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에 불과했으므로.

하지만 늘 그렇듯, 모두가 만족할 만한 거래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허허, 4배…… 무려 4배라니, 4천 톤에 6천만 골드…… 6천만…….”

“아쉽게도 이송에 들어가는 금액이 포함되지 않았군.”

“그렇다는 말씀은.”

결국, 또다시 예산의 늪에 빠지게 된 재무대신 발테르 후작의 눈에서 끝내 빛이 사라졌다.

흡사 죽은 물고기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눈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짐짓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 들어서 자주 보이는 표정이군. 유행인가?”

“……후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발테르 후작은 그 막막한 예산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에도 이번 일에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은, 아마 그들이 어째서 그것을 네 배나 비싼 가격에 사야만 했는지를 알고 있던 탓이리라.

“우선…… 전하, 그러면 흑철은 도착하는 대로 갈데르드 평야에 보낼 예정이십니까?”

“그래야지. 그건 놈들이 처음으로 요구한 광물이니까 말이야.”

나는 후작의 질문에 긍정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분명 흑철의 주문을 성사시킨 것은 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드워프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였지만, 그들이 어째서 수요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다루기도 어려운 흑철을 고집했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순간, 내 시선이 갈데르드 평야에서 보내온 서신에 닿았다.

투박한 글씨체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는 서신.

이런저런 내용이 적혀 있는 그 서신에는 평야 개발에 대한 진척도가 기간별로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간 광산에서 얼마만큼의 미스릴이 나왔는지. 그리고 주요 건물의 증축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 어느 정도로 지어지고 있는지 등등.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성벽 건축의 진척도였다.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그 짧은 시간 만에 벌써 기본적인 성벽의 토대를 모두 완성한 모양이었다.

‘새 소재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군. 그게 아니면 그들과 궁합이 좋았던 건가?’

전생의 녀석들은 카이멘툼을 쓴 적이 없었다. 그러니 여기까지는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최소한 올해 내에로는 틀을 잡는 것이 한계라 생각했거늘…….

기분 좋은 예측 오류였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발테르 후작에게 일임해 두었던 인력의 충원 또한 이루어졌을 터였다.

정말로 이 정도의 속도라면,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요새화를 끝마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요구한 흑철은 그 이후의 변수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네놈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 그것이겠지?’

모든 결과물은 요새화 작전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그 날.

그때가 되면 비로소 확신할 수 있을 터였다.

드워프들이 머지않아 이루어 낼, 성과들의 결정체를.

‘……그렇다면 나를 만족시켜 보도록.’

급할 필요는 없다.

그 부분에 대한 기대감은 나중을 위해 아껴 두는 것도 좋으리라.

* * *

북부 야만족의 땅과 마주한 에스테반의 겨울은 무척이나 매서웠다. 특히나 대륙을 가르는 거대한 대 산맥, ‘실 타프 그란데’를 앞에 둔 갈데르드 평야는 더욱 그러했다.

천혜의 산맥에서 내려오는 냉기. 그리고 탁 트인 평야에 몰아치는 칼날 바람.

그건,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보온이 좋은 소재를 사용한 갑옷 사이에 추가로 천을 덧댔음에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특유의 질긴 피부와 내성 탓에 추위를 심하게 느끼지 않았고, 하물며 그들은 이미 더 깊은 북부의 오지에서 수백 년을 보내왔기에 추위에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작업은 한겨울을 지세는 날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는 꽤 많은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저, 정말로 광산의 매장 추산량이 완전히 밝혀졌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소.”

광산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드워프의 말에, 상시 파견 중인 왕궁 조사원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미스릴 광산의 개발은 왕자가 떠난 이후로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진척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드워프들의 그 어마어마한 작업 속도가 있었다.

그 덕에 벌써부터 최종 추산량이 밝혀진 모양이었다.

“처음 조사 당시에는 최소 삼백여 톤에 이를 거라 말씀하셨지요. 하면 최종 추산량은 얼마나 됩니까?”

오차 범위를 생각하면 사백 정도일려나?

기실 삼백 톤도 많은 양이었다.

거기서 딱 1.5배만 늘어나도 에스테반이 세금 없이 60년은 놀고먹어도 될 금액이 나온다. 왕궁의 재무부가 바라는 수준도 그 정도였고.

하지만 이윽고 드워프의 입이 열리자, 조사원은 그저 멍청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구, 구백 톤이나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일족들이 몇 번이고 번갈아 가면서 확인했으니 틀림없을 것이오.”

“이, 이럴 수가……!”

털썩-!

다리가 풀린 조사원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경악하는 조사원과 반대로 드워프의 표정은 무척이나 흡족했다.

당연했다. 그 양이 많다면 일족에게 약속된 양도 많아질 터였으니.

심지어 무게가 여타 금속에 비해 가벼운 미스릴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정말로 많은 양의 미스릴이 일족에게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가까운 미래에 성벽이 완공되면 노동력도 추가로 충원될 것이니, 그땐, 그대들이 원하는 만큼 캐낼 수 있게 될 것이오.”

“……아? 그, 그렇군요.”

조사원은 상대가 무어라 지껄이는지도 모를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드워프는 그가 어떤 상황인지 아랑곳하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당분간은 지금의 채광량을 유지하면 되겠소?”

“예, 아, 물론입니다.”

“알겠소. 자세한 사항은 조만간 대장께서 1왕자에게 직접 묻는다고 하시니, 그때 적당히 따르면 되겠지…… 그럼 일이 바쁘니 이만 가겠소.”

드워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곡괭이를 바로 어깨에 메었다.

보금자리를 찾은 드워프들은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이었다.

한편.

드워프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미스릴 광산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장간의 일부터 시작하여 식량 탐색 조까지, 정말이지 다양한 방면으로 평야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원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의 주된 작업장인 성벽을 꼽을 수 있으리라.

깡- 깡-!

정겨운 망치 소리가 평야에 울리고 있었다. 가을이 오기 전부터 건설 중이던 성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봐! 거기 벽돌이 조금 어긋났잖아!”

“아, 다시 올리겠습니다, 대장님.”

“음! 적들의 공격을 수월하게 흘리기 위해서는 한 치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돼.”

“이쯤이면 되겠죠?”

“어디 보자…… 각도가…… 좋아, 완벽하군. 그대로 작업하게나.”

깐깐하게 성벽의 작업을 감독하는 것은 드워프 대장 수르트였다. 그는 한 치의 어긋남도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증명하듯, 설계와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칼같이 오류를 잡아냈다.

마찬가지로 작업을 이어 가던 이들도 그쯤이면 질릴 법했으나, 그들 역시 드워프였다. ‘무적의 요새’라는 역사에 남을 예술품을 만든다는 열망은, 수르트에 있어서는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본능과도 같았다.

수르트는 그렇게 점차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성벽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핫! 이 정도라면 설령 인간의 군대가 십만이 몰려와도 흠집조차 내지 못하겠군!”

만일 1왕자에게 이 광경을 보여 줄 수 있었다면, 그 무감의 표정에 금이 가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으리라.

조금 아쉽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실제로 내친김에 수르트는 그 위력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저, 정말로 발사해도 되겠소?”

테스트를 도와줄 마법사의 심경 복잡한 목소리에, 수르트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앞서 말한 대로 건설 중인 성벽을 향해 공격 마법을 사용해 주면 되오.”

“……무너져도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소. 나는 그저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오.”

“아서시오. 그럴 일 없을 테니.”

우우우웅-!

마법사의 지팡이 끝에서 반짝이던 마력이 형체를 이루고 쏘아져 나갔다. 오로지 적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마법. 익스플로젼이었다.

꽤나 고위급인지라 충분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기에, 그 붉은 구 안에는 평범한 돌벽이라면 가뿐히 무너트릴 만한 폭발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쉐에에에엑!

그렇게 날아간 익스플로젼의 파동이 투박해 보이는 돌벽에 부딪혔고.

그 뒤에 이어질 파장을 예측한 마법사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콰과과광!!

“이, 이럴 수가……!”

“흠!”

성벽에 닿으며 폭발한 고위 불꽃 마법은, 정말로 놀랍게도 약간의 그을림만을 만들어 낸 채로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정말로 조금의 피해조차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수르트는 멀쩡히 서 있는 성벽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크허허허! 역시 이 설계는 충격을 최대한으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로군! 완벽해!”

그렇게 웃는 수르트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종래에 완성될 ‘천혜의 요새’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삼중의 벽. 거기에 드워프만의 건축 기술이 더해져, 말 그대로 촘촘하게 보일 정도의 요새.

정말로 계획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무적의 요새를 만들 일이 머지않은 것이다.

“좋아! 다음은 다른 속성을 시험해 보지! 거리를 바꾸거나, 복합적으로 다른 마법을 섞어도 보고…… 오늘 내로 이것저것 시험해 볼 게 많소!”

그 순간, 실험을 이어 가려던 수르트에게 한 드워프가 급히 찾아왔다.

“대, 대장!”

“음? 무슨 일이냐?”

“드디어 왕성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다 합니다!”

“뭐라?!”

수르트는 일족의 말에, 한창 실험도 잊은 채로 다급히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도착했다던 서신을 황급히 받아 들고는 그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이윽고 서신을 모두 읽어 내린 수르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아져 있었다.

“마침내 흑철이 일족의 손으로 들어오는구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퍼뜩 정신을 차린 수르트의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은, 일족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한 개의 고서였다.

조심스레 고서를 어루만지는 수르트의 손이 감격으로 작게 떨려왔다.

“드디어.”

그 척박한 땅에서는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작업이었다. 그곳은 흑철은 물론이고 남은 모든 광맥이 명을 다해 쓸 만한 광석조차 구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땅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말라 들어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제한에 가까운 전폭적인 인력지원. 온전히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된 평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마정석과 함께 들어온 흑철의 물량들까지.

자신들의 숨겨진 특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그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드워프 기술의 정수.”

그것은 개인을 넘어선 일족의 비원.

그야말로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 온, 너무도 오랜 기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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