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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88화 (8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8화

그리폰 (1)

이런 말을 내가 하기는 뭣하지만…… 조지의 몰골은 예전에 흑마법사의 지하 묘지에서 보았던 그 ‘구울’의 모습과도 무척이나 흡사해 보였다.

……그래. 그것은 흡사 살아 있는 언데드였다.

쿵-!

“여…… 여기 있슴다.”

“음.”

가뜩이나 왜소한 체구가 삐쩍 말랐다. 요사이의 일이었다. 결국 파업을 선언한 남작이 영지로 휴가를 떠나고, 모든 일을 조지 혼자서 처리하게 된 것은.

-전하! 저는 이대로는 못 삽니다……!

……뭐, 솔직히 마탑의 발표를 떠맡긴 것 때문에 삐졌다는 것은 이해는 한다만. 남아 있는 조지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유일하게 죄가 있다면 내 명령으로 쪽지를 남겨 놓은 일뿐이리라.

‘무슨 집 나간 여인네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조금은 연민의 감정이 이는 것을 느끼며 녀석이 내려놓은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 내 눈이 초장부터 흥미롭게 뜨여졌다.

“호오, 신성제국에서 드디어 움직임을 보였다는 말이군.”

예상대로 놈들은 미스릴 무역에 대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저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는 딱히 짐작 가는 것이 없었지만, 무언가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에스테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호감을 사는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저들에게 있어서 신성철은 단순한 사치품이나 그런 의미가 아니니.’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시선이 문득 조지에게로 닿았다.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뭘 하고 있지?”

“사, 살기 위해서…….”

녀석은 책상에 팔과 얼굴만을 올려 둔 채로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게 또 ‘구울’의 몰골과 잘 어우러져서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마치 땅을 뚫고 올라온 구울을 마주하는 듯한…….

나는 지끈 아파 오는 이마를 슬쩍 쓰다듬으며 조지가 가지고 온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왕국 남부에서 들어온 한 장의 보고서였다.

“몬스터?”

“……아, 그거 말이죠.”

조지는 감기고 있는 눈을 억지로 치켜 뜨며 설명을 시작했다.

“최근 그쪽에 몬스터가 기승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정확히는 그리폰인데…….”

“규모는.”

“기껏 해 봐야 두세 마리라던데요. 기사들을 보내면 해결될걸요.”

“……그렇군.”

녀석은 가벼운 것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리폰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몬스터다. 그런 그리폰에 대한 피해가 커졌다는 말은, 이미 개체 수가 늘어서 영역이 꽉 찼다는 소리가 되겠지.”

“예? 그렇다면 사실상 겨우 두세 마리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래, 시기를 생각하면 아마도 보이는 것보다 수 배는 많을 것이다.”

“……그게 무슨 바퀴벌레입니까?”

나는 그 직설적인 말에 피식 웃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물론 회귀 전에도 같은 시기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긴 했다. 내가 저지른 인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수순이리라.

하지만 그때에는 조지처럼 이를 가볍게 여긴 탓에 결국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해에 늘어난 그리폰이 또 다른 새끼를 낳았고, 또 그 수가 늘기 시작하며 대처하기 어려워진 탓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그곳이 가로막히면 아즈란으로의 통행에 방해가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면 회귀 전과 또 다른 차질을 빚을 수 있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대비하기는 해야겠지. 이대로 가다가는 아즈란과의 무역이 지체될 테니.”

“아, 예. 그러면 뭐, 어떻게 기사들을 풀어서 군락지 위치나 알아내 올까요?”

그래, 조지의 말대로 그리하면 병력을 파견할 규모를 쉽게 재단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미 규모와 위치를 짐작하고 있는 와중에? 아쉽게도 그런 미적지근한 대응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간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조지는 언제나처럼 대책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과는 달리, 그런 녀석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폰이라니…… 뭐,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때까지 저는 열~ 심히 할 일이나 하고 있죠.”

“할 일?”

“아무래도 이것저것 많지 않겠습니까? 이것, 저것.”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가 왕성을 비운 사이에 남아서 탱자탱자 쉬고 있겠다는 말이었다. 저 성격에 안 봐도 뻔할 노릇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술을 비틀었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군. 네놈도 같이 가는 거다.”

“……어쩐지 쉽게 넘어갈 것 같진 않더라니.”

녀석의 재능을 빠르게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론만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경험을 겪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꼼수를 차단당했음에도 녀석의 표정은 썩 밝아 보였다.

“남부에 다녀올 때쯤이면 남작님도 돌아오시겠죠, 뭐.”

그러면 이 지옥 같은 일거리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또 잔머리.

결국 불쌍한 것은 돌아오자마자 업무의 폭탄을 맞을 비도르 남작, 하나였다.

……업보였다.

* * *

“멈춰라.”

에스테반의 남부.

슬슬 보고서에 나와 있던 대로 그리폰이 발견되었다는 지역에 가까워졌을 즈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뒤따라오던 기사들을 멈추게 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리며, 미리 이야기를 들은 대로 나무에 고삐를 묶기 시작했다.

가히 군더더기 없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푸르르릉-

말들은 그 손길을 받아들이면서도 불편한 고삐의 감각에 투레질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기사들은 익숙하고도 순조롭게 말을 묶고는 내게로 다가왔다.

“1왕자 전하, 다음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이 주변에 놈들의 군락지가 있을 것이다. 당분간 임시로 머물 장소를 마련하도록. 전투는 불허하겠다.”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그 명령에 최대한 조심스레 짐을 꺼내고는, 주변의 나무 따위를 사용해서 은신처를 짓기 시작했다. 앞서 놈들이 진동과 소음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최대한 기척을 자제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헛! 저건?!”

“흠……!”

슈우우우웅-!

그런 기사들의 머리 위로 창공을 횡행하는 한 무리가 스쳐 지나갔다. 녀석들은 다행히 기사들을 발견하지는 못한 것 같았으나, 이미 기사들의 눈에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이 각인된 뒤였다.

“저게…… 그리폰.”

사자 몸에 독수리의 머리. 그리고 창공을 활강하는 거대한 날개까지.

그런 와중에 이제 막 뭉그적거리며 말을 묶기 시작한 조지는, 오랜 이동에 지친 근육들을 풀며 감상을 내놓았다.

“저게 그리폰인가 보네요.”

“음.”

“생각보다 큰데요?”

그리고 당장에 보이는 숫자 역시, 예상대로 보고서에 적힌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나는 그리폰에 관한 정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놈들이 속한 환수종은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여느 몬스터와 다르게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행동 양식은 차라리 몬스터라기보다, 영역을 정해 두고 활동하는 맹수에 가까웠다.

때문에 놈들에 의한 피해는 대부분 영역을 침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영역의 침범만 조심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숫자가 불어나면 그만큼 영역이 넓어진다.’

영역이 넓어지면 그만큼 활동하는 수도 많아진다.

또한 갈수록 백성들이 받는 피해는 나날이 늘어나겠지.

결국은 놈들도 야성을 지닌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인류를 적대시하는 생명체이자 무고한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골칫거리.

“……그런데 조금 높게 나는데요?”

“괜히 창공의 지배자라 불리는 것이 아니니까.”

“아니…… 저건 조금이 아니라 너무 높은데.”

심지어 구름에 가려 모습조차 흐릿하게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저 높이라면 어지간한 마법이 아니라면 닿지조차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 보자…….”

조지는 실눈을 떴다 감으며 놈들이 날고 있는 높이를 재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안경을 치켜올리며 당당하게 나불댔다.

“예, 모르겠네요. 어쨌든 높게 날고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그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간단하게 무시하며 뒤따라온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삼십 명의 기사들. 그들은 창공을 날고 있는 그리폰들의 위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에, 조금은 기가 질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이니만큼 당연한 일일 테지.’

하지만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이들은 모두 경험이 노련한 이들이었다. 적어도 무모하게 그리폰에 맞서다 죽을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즉. 지휘관이 방향성을 잡아 주면 되는 일이다.

이윽고 명령을 내리는 내 입이 천천히 열렸다.

“동요치 말고 할 일을 하도록. 놈들의 시력은 그다지 좋지 않으니 진동과 소음에만 유의하면 될 것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그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는지, 하던 작업에 마저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들에게만 일을 시킬 셈은 아니었다.

“이제 아까 말했던 그, 군락지를 찾으실 겁니까?”

“그래.”

나는 조지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폰의 군락지.

기본적으로 그리폰은 무리를 지어 사는 종족이었다. 그 안에 몇 마리나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의외로 많은 숫자가 몰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기감을 퍼뜨린다면 놈들의 군락지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으리라.

‘기감이라…….’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군락지라는 것이 이곳 산맥 어딘가에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인즉, 평소보다도 넓은 범위를 감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범위를 말이지.’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이 넓은 산맥 전체에 기감을 퍼뜨리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적어도 내게는, 원소라는 기이한 것을 다룰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었으니까.

나는 오른팔을 슬쩍 쓰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퍼져라.’

파앗-!

이윽고 그 의지와 함께 퍼져 나간 오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것처럼, 숲 구석구석을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매서운 추위를 노래하는 겨울새. 그리고 예민하게 귀를 쫑긋하는 토끼들까지.

하나하나를 거치며 조금씩 퍼진다. 그리고 퍼진 파동이 부딪히며 다시금 겹쳐지는, 그 순간…….

우웅-!

일순 그런 기감들이 바람에 휩싸여 살랑, 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조각배에 돛을 단 듯 순풍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법 각인에 내재된 순수한 바람의 힘이, 기감과 어우러져 멀리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느껴진다.’

보다 먼 거리의 기척들이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기감의 한계를 벗어나 ‘탐지’에 가까운 영역으로 빚어졌다.

3km. 그리고 더 나아가서 5km.

이제는 거진 소드마스터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거리까지, 기척이라는 감각을 장악해 낸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창공을 날갯짓하는 기척들과 그 무리의 기척을 발견했을 때쯤, 나는 흩어진 기감들을 회수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락지의 위치는 저 방향이었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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