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9화
그리폰 (2)
발견한 그리폰의 숫자는 방금 전에 날아간 녀석들까지 더해서 모두 스물이었다.
확실히 아직 본격적인 증식이 진행되지 않은 것 같으나, 그럼에도 충분히 위협적인 숫자라 할 수 있겠지.
그때, 군락지가 위치한 장소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조지가 물었다.
“그런데 저거 어떻게 유인해서 끌어내릴 겁니까? 마법사도 안 데리고 왔으면서.”
그건 맞는 말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한참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인력의 낭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대마법사인 마탑주 역시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내게도 다 계획은 있었다.
“마법사들이 있어 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어차피 마법이 닿을 거리가 아니니까 마법사는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
나는 임시 거점을 만들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천천히,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그들이 있어 봐야 나설 일이 아무것도 없단 뜻이다.”
* * *
서른의 기사들과 한 명의 남자가 숲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은밀하면서도 과감하고, 조용하면서도 경쾌한 걸음이었다.
그런 그들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1왕자가 건네준 지도에 표시된 장소에 주변으로 도착했을 시점이었다.
“뭐, 이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아직 표시된 장소에 도착하지 못한 것 같소만…….”
“적어도 이 부근에서는 여기가 가장 적합할 것 같은데요.”
“흐음…… 알겠소.”
부대를 통솔하던 기사는 남자의 호리호리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꼬이지 않게끔 잘 포장되어 있던 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기사의 목소리는 우려스러운 듯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것이 맞소?”
“뭐, 대충 알려 준 작전대로만 진행하면 되겠죠.”
다른 감각이 발달한 대신 시각이 지극히 떨어진다는 특성. 그러니 유인만 잘한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조언까지도.
그것이 다른 몬스터의 약점이었다면 곧장 믿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애초에 독수리 머리인데 정말로 시력이 나쁠지는 모르겠지만요.”
“…….”
어깨를 으쓱이는 남자, 조지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독수리의 시력이 좋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 같은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1왕자는 이미 스무 마리의 그리폰이 있다고 말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와중에 구태여 이런 행동을 시키는 것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였다.
물론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정 안 되면 나중에 따지면 되는 일이고.”
“……일단은 알겠소.”
이어진 그물의 설치는 간단했다. 제아무리 덫을 설치해 본 적 없는 기사라 해도 금방 익힐 수 있을 만큼이나.
그도 그럴 것이. 적당히 시야가 트인 기점을 주변으로 퍼진 스무 명의 기사들이, 땅에 놓인 그물의 줄을 붙들고 있는 모양새였으니까.
말하자면 단순히 그물망을 땅바닥으로 펼쳐 놓은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어디 보자…….”
마지막으로 조지는 가방에서 꺼낸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그물망의 가운데에 내려놓고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집어 들고 그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 조지를 바라보는 부대장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이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폰이 지나갈 때 사용하면 된다고 했었던가…….’
저 정체 모를 남자가 적절할 때 그것을 해낼지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의 효용성 역시도…….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슬슬 기사들의 마음속에 있던 긴장감이라는 감정도 희미하게 느껴질 때쯤, 그리폰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이 조지의 눈으로 포착되었다.
조지는 기사들에게 신호를 주듯 고개를 끄덕인 뒤에, 손에 들린 것을 즉시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며 깨어져 나간 것은, 유리병이었다.
쨍그랑!!
캬아아아악!
그들을 지나쳐 가려던 그리폰은 그 소음에 자극받았는지, 갑자기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탁 트인 시야 사이로 핑크빛의 살코기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캬악-!
슈우우욱-
그 사자의 앞다리가 먹잇감의 몸을 짓이기려던 순간이었다.
“슬슬 당기십쇼.”
“녀석을 포획하라!”
“당겨!”
신호를 받은 기사들이 땅에 놓인 그물의 줄을 거세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들이 잡고 있던 것은, 그저 평범하게 펼쳐진 그물의 줄이 아니었다.
서로 맞은편 기사의 방향으로 펼쳐진 그물의 줄을 기다랗게 잡고 있던 것이다.
즉.
캭-!
이윽고 사방에서 몰아친 장력에 의해 순식간에 오므려진 그물이 그리폰의 몸을 감쌌다.
어찌나 강하게 잡아당겼는지, 그리폰의 3미터 남짓한 몸이 이리저리 구겨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한번 부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쳐라!”
부대장을 포함해 그물을 잡고 있지 않던 열 명의 기사들이, 달려들어 무기를 휘둘렀다.
다만, 그것은 적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휘두르고 있는 것은 검집째로 뽑아 든 그들의 검이었다.
퍽-! 퍽-!
캬아아악!
머리만을 노리는 매타작. 그것은 마치 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만드는 몽둥이질과도 같았다.
괴성을 지르며 반항하던 그리폰은 아등바등하며 그물을 벗어나려 했으나, 워낙에 급격히 맞이한 습격이었던 탓에 마땅히 날개를 펼칠 빈틈이 나올 턱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물의 내구성조차도 발톱을 밀어낼 정도로 튼튼했기에, 기사들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있는 그리폰으로서는 결국 기절한 채로 바닥에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후욱, 후욱…….
기사들은 기절한 그리폰을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며 격한 숨을 몰아쉬었다.
단순히 죽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정말로 아무런 피해 없이, 그것도 마법사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한 그리폰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조지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이제 대충 가지고 돌아갑시다.”
아직도 이런 것에 놀라기에는, 지금껏 조지가 보아 온 것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 * *
한편.
그리폰 포획 성공의 소식을 들은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리폰의 군락지.
열댓 마리의 그리폰들이 몸을 누인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폰을 포획하는 데에 성공했단 말이지.’
역시 기사 서른 명이라면 단박에 포획이 가능할 거라는 내 계산이 맞았다.
만일 이번 기회에 실패했더라면, 기사들이 다시금 정비를 마치고 포획을 시도했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한 마리를 포획한 이상, 다른 녀석들은 그저 죽여야 할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래, 가차 없이 죽여도 아무런 문제 없는 잔챙이들.
‘더 이상 기다리기 지루했는데 잘 됐군.’
내 시선이 놈들이 머무는 군락지에 잇따랐다.
집단 생활을 이루는 그리폰들의 특성에 어울리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거대한 집합이나 다름없었다. 족히 십 수 미터는 될 법한 커다란 나무 아래로 놓인 낙엽들. 촘촘히 그 주변을 둘러싼 나뭇가지.
그러한 것들의 위로는, 열다섯 마리의 그리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로잡힌 한 놈을 제외하더라도 네 마리가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물론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자리를 비운 녀석들이라 하더라도, 금방 이곳에 찾아오게 될 터였으니까.
스릉-
허리춤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엘베른은 옅은 쇳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어찌나 조용히 뽑혀 나왔는지 가까이에 있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몰아치는 바람에는, 그런 녀석들조차도 이상함을 느끼고 경계토록 만들 만한 힘이 존재했다.
휘이이이잉-!
캬아악!
캬악-!
그리고 그제야 내 모습을 발견한 그리폰들이 날개를 펼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 거대한 날개가 힘의 원천이라 하던가? 하얀 날개를 바짝 펼치며 위협하는 모습은, 참으로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녀석들이 군락지에 찾아온 불청객을 그대로 두고 보는 일은 없었다.
“오도록.”
캬아아아악!
챙!
순식간에 벌어진 교전. 엘베른을 든 내 손이 가장 먼저 쏜살같이 날아든 그리폰의 발톱을 완력만으로 가로막아 섰다.
녀석은 자신의 발톱이 고작 검 한 자루에 가로막히자, 이번에는 부리를 내세우며 나를 꿰뚫으려 시도했다. 그런 녀석의 날카로운 부리는 그 자체로도 장검에 필적할 수준이었다.
“호오.”
하지만 나는 발톱으로부터 무표정하게 검을 비틀어 빼내며 녀석의 공격을 도리어 허용했다.
검이 들려 있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콱-
케에엑-!
녀석은 내가 손을 뻗는 것을 확인하자 도망가려 했지만, 반응했을 때는 이미 그 목이 붙잡힌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의 공격에는 반응조차도 할 수 없었다.
회수되었던 오른팔의 검이 녀석의 머리를 관통하며, 깔끔하게 숨을 거두어 간 것이다.
푹.
……절명.
3미터를 상회하는 거대한 몸집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허무하게 몸을 늘어뜨렸다.
창공을 배회하며 기사들을 질리게끔 만들었던 그 모습과는, 너무도 상반된 장면이었다.
털썩-
나는 왼팔에 잡혀 늘어져 있는 그리폰의 몸을,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게끔 저 멀리 던져 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남은 그리폰들이, 동료의 시체를 바라보며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었다.
키에에엑-!
캭! 캭!
하지만 그건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더 얇고 멀리 퍼져 나가는 신호.
녀석들이 나를 위험한 요소라고 판단하고는, 자리를 비운 그리폰들을 불러낸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민지도 모르고.
“단순한 놈들.”
덕분에 신호를 들은 그리폰들이 놀라운 속도로 군락지에 합류했다.
캬아아아악-!
그 최종적인 숫자는 열여덟.
녀석들은 동료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수백 미터를 올라간 뒤에야, 쐐기처럼 나를 노리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선적으로 나를 배제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리폰들의 힘은, 점차 가속도를 더해 눈에 간신히 스치는 수준의 속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웅-!
창공을 휩쓰는 듯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닥에 뿌리를 내리듯 안정적으로 자리한 군락지들이 모조리 휘말려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태풍 따위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한 그리폰들의 몸이 우뚝 굳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을 어찌하랴? 녀석들은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흔들리며 최대한 날개를 펼치려 애쓸 뿐이었다.
그때, 그런 녀석들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캬아악!
바람이 시작되는 곳. 그 태풍의 근원의 아래에서.
……태연하게 발걸음을 누비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