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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0화 (9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0화

그리폰 (3)

마치 폭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와류를 만들며 몰아치는 협곡.

그 누구의 직립을 허락하지 않는 광오할 정도로 격한 그 현상은, 그 규모가 작다 뿐이지 마치 먼 어느 나라에서 봤던 광경과 비슷하게 보였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이 마음마저 꺾일 것 같은 태풍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환수니 뭐니 해도 결국은 몬스터지.”

또한, 나직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리도 간단하게 유인책에 걸려든 것을 보면 말이야.”

그리곤 천천히 오른팔을 뻗었다.

놈들이 바람의 영향에 들어와 있는 이상, 그것은 이미 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으니.

우우우우웅-!

순간 오른팔에서부터 방출된 막강한 마력이 바람의 원소를 머금고 뻗어져 나갔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이어진 바람. 그것은 대기를 꿰뚫고 그리폰들을 향해 나아갔으며, 이내 공중에서 놈들의 몸을 잡아끌듯 바닥을 향해 당기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유체의 흐름을 버텨 내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날개라는 가장 큰 무기를 잃어버린 놈들의 최후는 뻔했다.

슈우우우욱-!

캬악!

쿵!

놈들은 날개가 구실을 못 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매우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물론, 땅에 부딪힌 순간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금 날개를 펼쳤다. 가히 몬스터답게 질긴 생명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공권을 장악한 바람의 원소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더 이상 하늘은 녀석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한껏 즐거움으로 휘었다.

“옹기종기, 고맙게도 상대하기 썩 편하게 뭉쳐 있군.”

우우우웅-!

검신을 타고 응축되는 바람은 오러에 뒤섞여, 순식간에 붉은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단순한 바람 따위가 아니었다.

검신에 맺힌 오러와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의 힘이 마치 힘 싸움하듯 부딪힌다.

마치 너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서로를 밀어내고 엎으며 거부한다.

하지만 이는 곧 나의 ‘의지’에 의해 강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파지직-

그리고 응축되며 완성된 형태를 이루는 순간, 오러와 마력이 마찰하며 거대한 폭풍의 향연을 이루게 되었다.

……

잠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정적. 하지만 곧이어.

콰과과과광!!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미칠 듯한 굉음.

……그리고 그 쏘아진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군락지를 지켜 주던 거대한 나무도, 소란을 듣고 날아오르던 풀벌레도. 몸을 허우적대던 그리폰들 역시도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검왕의 힘과 순수한 원소가 뒤섞인 일격(一擊).

대마법사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건, 한낱 몬스터 따위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으므로.

“나쁘지 않군.”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다만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고는, 폭죽처럼 바스러져 쏟아지는 오러와 마력의 흔적들 뿐이었다.

* * *

“늦었군.”

나는 등 뒤로 다가오고 있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물었다.

“포획된 개체는.”

바람의 힘에 휘말려 허무하게 당했다지만, 기실 그리폰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창공의 지배자가 아니었던가? 마법사도 없이 포획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상처를 입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사들을 데리고 합류한 조지는 큰 감흥 없이 대답했다.

“맷집이 대단하기는 하던데요. 지금 멀쩡히 퍼덕거리고 있슴다.”

“그렇군.”

적어도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했을지언정, 전혀 문제는 없다는 소리였다.

내 시선이 등 뒤로 다가온 조지에게로 향했다.

“기사들의 피해는 없겠지?”

“기절한 그리폰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허리를 삐끗한 사람 정도는 있을 겁니다.”

“…….”

그렇게 눈매를 좁히며 조지를 따라간 곳에는, 포획한 그리폰과 녀석을 가두고 있는 철창이 보였다.

하지만 멀쩡히 퍼덕거리고 있다는 조지의 증언이 무색하게도, 녀석은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며 몸을 굳혔다.

그리고 기사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진 그리폰을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무언가 문제가 있나…….”

……얼씨구?

조지는 행여나 꾀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다란 나무막대기 같은 것으로 녀석의 몸통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은 듯 몸을 굳힌 모습은 여전했다.

물론 나로서는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의 힘 때문이군.’

오러와 원소의 힘을 융합하는 공격은 말 그대로 살기의 폭풍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을 사용한 직후였으니, 당연히 그 살기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창공을 나는 그리폰들이 바람의 힘을 감지하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아마 녀석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살기가 뒤섞인 바람을 몸에 두르고 다가오는 인간쯤이 될 것이리라.

마치 사신과 같달까.

……그것이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철창을 열도록.”

“저,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기사들은 잘 못 들었다는 듯 당황하며 반문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랐던 것은, 철장의 열쇠를 찾아 꼼지락대는 조지였다.

“이, 이런……!”

철컥-

그리고 철장의 문이 열렸다. 등 뒤에서 들린 소음에 기겁한 기사들이 펄쩍 뛰며 자세를 낮췄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직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조지는 나를 쳐다보며 이제 어쩔 심산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기껏 잡았는데 풀어 주시려고요?”

“…….”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검을 휘둘러 녀석을 가두고 있는 철창을 완전히 허물어뜨릴 뿐이었다.

서걱-

캬아아악-!

철창이 무너지기가 무섭게 녀석의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러고는, 재빨리 도약하여 제자리에서 활공하듯 날아올랐다.

그 눈에 깊이 잠겨 있는 공포…….

녀석은 곧 나를 쳐다보더니 다급히 하늘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슬슬 놈의 거구가 점으로 보일 정도였다.

“흐음.”

……뭐, 깔끔하군.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검을 회수하며 지시를 내렸다.

“녀석을 쫓는다.”

“……기껏 잡은 것을 풀어 줘 놓고서는, 거기에서 또 쫓겠다고요?”

“먼저 움직일 테니 알아서 기사들을 데리고 따라오도록.”

“하…… 이번에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팟-!

나는 녀석에게 대답하지 않은 채로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다리 부근을 오러가 감쌌고, 그렇게 몸이 도약한 순간 바람의 힘이 부드럽게 내 몸을 떠밀었다.

숲의 장애물들을 헤치는 상황이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며 유체처럼 이동한 것이다.

그렇게 움직이기를 잠시, 이윽고 내 기감에 내내 잡히던 녀석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물론 그곳은 동료들의 흔적만이 남은 군락지는 아니리라.

내 입꼬리가 비틀어지듯 올라갔다.

‘역시.’

방금 전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군락지에 있던 것은 수컷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물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암수가 함께 있어야 하는 법.

그렇다면 과연, 나머지 암컷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위기에 처한 동물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깨어나지.’

그리고 녀석에게는 명백한 위기가 닥쳐 왔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살의를 두른 인간.

그리고 군락지에서 느껴지는 파멸적인 기운.

그런 녀석이 처음으로 찾아갈 장소라고 한다면…….

“그래, 이곳이었군.”

……바로 동족의 암컷들만 자리하고 있는 동굴.

바람의 힘 속에 감춰져 있다 하여, 어찌 보면 와이번보다 그 생태가 더 알기 어려운 그리폰의 ‘둥지’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바로, ‘새끼’들과 함께.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군. 그렇다면…….’

역시 이른 시기에 녀석들은 찾은 덕일까?

녀석들이 돌보는 새끼는 대여섯 마리 정도였다.

“이곳만 정리하면 된다는 소리겠지.”

다리를 감싼 마력을 거두며 내려앉았다. 그리곤 천천히 녀석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음?’

그러던 중 나는 동굴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을 살피며 헛웃음을 지었다.

오랜 세월 바람을 맞으며 자란 실피드의 꽃. 그것과 마찬가지로 원소의 힘을 담은 마정석들 역시 세상에 존재했다.

정령석, 그게 바로 둥지 내부에 박혀 있는 마정석들의 이름이었다.

‘과연, 녀석들이 이곳에 둥지를 만든 이유가 있었군.’

정령석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녀석들의 기척을 지워 내고 있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흐르는 바람은 감각을 속이는 동시에 동굴의 존재를 은밀하게 감추었다.

이러니 아무도 찾지 못했지.

누구도 알아내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장소. 그 이름에 걸맞은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던 것이다.

‘새끼는 여섯, 성체는 도망쳤던 녀석을 포함하여 여덟…… 인가.’

나는 엘베른을 뽑아 들며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문득,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기척을 감지한 그리폰들이 고개를 돌렸다.

저벅-

캬아악-!

캭! 캭!

이윽고 녀석들이 나를 발견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녀석들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불청객을 향한 공격의 신호였다.

하지만 그보다 내 움직임이 더 빨랐다.

우우우웅-

캬아아악!

녀석들은 갑작스러운 바람에 부딪혀 멈춰 세워졌다. 하필이면 펼쳐진 날개가 돛의 역할을 했는지, 무척이나 거칠게 잡아끌린 수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공중에서 휘청이며 균형을 잡으려던 수컷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처였다.

‘뭐, 그리폰 암컷들의 전투 능력은 수컷보다 떨어지니 당연한 일이겠지.’

어깨를 으쓱인 나는 엘베른을 뽑아 들며 녀석들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오러가 솟구치며 녀석들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서걱-!

……

꼿꼿하게 서 있던 그리폰들의 날개가 허물어지며, 동시에 녀석들의 몸이 축 처졌다.

그렇게 땅바닥으로 무너진 몸뚱어리들은 상체와 하체로 분리되어 꿈틀거릴 뿐이었다.

나는 엘베른을 휘둘렀던 오른팔을 슬그머니 회수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끝이군.”

그건 무척이나 이중적인 말이었다. 더 이상 남부에 남아 있는 그리폰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마법 각인에 저장해 두었던 마나를 모두 소모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뭐, 녀석들의 군락지에서 사용했던 마력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양이었으니 당연했다.

‘아쉽지만 당분간 바람의 힘을 사용할 수는 없겠군.’

물론 그리폰이 남아 있었다면 모를까, 놈들을 모조리 처리한 지금에는 의미가 없는 일이리라.

나는 그렇게 두 손을 가볍게 털어 내고는 기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문득 내 시선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건?’

암컷 그리폰들이 쉬고 있던 자리. 그곳에서 검풍에 의해 미세하게 드러난 것.

이런 것을 여기에서 발견할 줄이야…….

나는 그것에 다가가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건…… 나쁘지 않은 선물이 될 거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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