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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1화 (9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1화

그리폰(4)

기사들은 어떻게든 1왕자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그들이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광경은.

“이, 이것들은…….”

무력하게 죽어 있는 수 마리의 그리폰들. 그리고 그 옆으로 파여진 바닥에서 드러난 30cm 남짓의 하얀색 알들이었다.

조지와 함께 합류한 기사들은 눈앞으로 보이는 장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가락을 까닥하며 뒤늦게 도착한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굴 바닥을 샅샅이 뒤져서 알을 찾아내라. 조금 떨어진 곳에도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하나도 놓치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그 말에 일제히 움직여 주변의 땅을 헤집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밭을 가는 것처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들은 땅속에 있는 알을 모두 꺼내 놓고는 내게 보고했다.

“전하, 땅속에는 총 마흔네 개의 알이 있었습니다.”

“그렇군.”

역시나, 라고 해야 할까?

몇 개월의 부화 주기. 그리고 성체까지 자라나는 데에 1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점을 계산하면, 회귀 전의 습격과도 대강 맞아떨어지는 숫자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쌓여 있는 알들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어루만지는 내 눈매가 신중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산란기가 막 끝난 참이었군.’

구태여 한 마리를 포획해 둥지로 유인한 이유는, 당연히 미래에 다가올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정작 가장 위협이 되는 수컷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고는 해도, 만에 하나 새끼들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위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모조리 도축해야겠지.

하지만 녀석들은 새끼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이제 막 알을 낳은 참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것들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잡은 그리폰들의 사체와 함께 모조리 수레에 싣도록. 절대로 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예? 이것들을요?”

“왕궁으로 가져가겠다.”

“…….”

명령을 들은 기사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하니 흐려졌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니고 ‘몬스터’의 알을 왕궁으로 가져가겠다니?

하지만 내 명령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의 벽면에 박힌 마정석들도 회수하도록.”

바람의 힘을 지닌 정령석.

그것은, 의외로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 * *

그리폰을 토벌하러 나선 1왕자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왕성으로 퍼졌다. 그것도 무려 그리폰의 사체들을 가지고 왔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왕성의 학자들이었다.

“전하께서 그리폰의 사체를 가지고 왔다고?!”

“예, 어서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그리폰이라는 몬스터의 사체는 생각보다 희귀했다.

하늘을 나는 탓에 잡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특정 조건을 제외한다면 그 숫자 자체가 적기에, 연구용으로 사용할 만큼의 사체를 구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싱싱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소식을 들은 왕성의 학자들은 당장 하던 일도 내버린 채로 후다닥 달려 나왔다.

하지만…….

“이, 이건……!”

정작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깨끗한 하얀색 표면을 자랑하는 거대한 알들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학자들의 입은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왕자가 토벌에 나선 것은 그리폰…… 그리고 그곳에서 가져온 알이라고 함은, 설마……!

“그, 그리폰의 알…….”

“맙소사!”

그리폰이라는 몬스터 자체도 희귀했으나, 그리폰의 알은 특히나 그랬다.

하물며 기록에도 그리폰의 알을 보았다는 언급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 1왕자가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다면 저것이 그리폰의 알이라 생각하는 학자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저들이 무어라 생각하든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셨습니까, 1왕자 전하.”

“음.”

나는 다급히 고개를 숙이는 학자들을 지나, 수레 위에 놓인 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로 조지가 따라붙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정말로 이걸 연구와 부화 실험에 사용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래.”

“……야생 조류도 아니고 몬스터의 알인데도요?”

“상관없다.”

내 어깨가 으쓱여졌다.

이 알들의 목적은 실험용이었다. 인위적으로 몬스터를 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녀석들에게 몬스터 특유의 ‘야성’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

겸사겸사 현대에 밝혀지지 않은 그리폰의 생태를 알아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지.

왕이란 미래를 대비하며 내치에 힘 쓰는 존재니까.

“그러다 왕궁 안에서 날뛰면 어쩌려고요?”

“죽이면 그만이다.”

“…….”

간단하게 나오는 답.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에 조지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태어나 봐야 알겠지만 어떻게든 패다 보면 말도 듣겠죠.”

이제야 녀석에게도 굴리면 된다는 내 지론이 주입된 모양이었다.

조지는 묘한 눈빛으로 아직은 하얀 그리폰의 알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거는 그렇다 치고. 당장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당분간 부화하기 전까지 기다리시렵니까?”

“할 일이 없지는 않지.”

“필요한 일들은 이미 일단락된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나는 딱 잘라 말하며 녀석을 쳐다보았다.

“아쉽게도 신성제국의 일이 남아 있더군.”

“아아…….”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 했다.

나오기 전 확인했던 서류, 그곳에선 분명 녀석들이 슬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했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는 짚이는 바가 없겠으나, 조만간 놈들이 준비한 선물의 소식이 들려오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상행에 장해가 될 녀석들까지 처리한 지금. 이젠 크게 걱정될 것도 없지.

그렇다면 그에 맞추어 움직이면 될 뿐이다.

‘과연 놈들이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지 기대되는군.’

나는 만족스러움에 올라가는 어깨를 으쓱이며 알을 어루만졌다.

* * *

왕궁에 남아 있는 성녀의 존재는 공공연하지만 쉬쉬하는 것이기도 했다.

에스테반과 신성제국 사이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아는 이들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귀족들 사이에서는 사실 그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사실상 황녀의 신분에 버금가는 성녀. 그러한 존재에게 왕궁의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다지 긍정적인 이야기만은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그 우려와는 다르게 에스테반의 왕궁 생활은 의외로 성녀에게 잘 맞았다.

성국의 절제된 식단과 다르게 하루가 멀다고 올라오는 각종 진미. 지루하고 제한된 일정에서 벗어난 자유. 심지어 이곳에서는 하기 싫은 것이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로서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게 계속 꿈꿔 왔던 생활이 아닐까?’

잠시나마 그런 생각이 들 정도.

비록 규율이나 움직일 수 있는 제한이 있을지언정 그 또한 오히려 성국보다 가벼웠으니, 차라리 이곳을 낙원이라고 표현해도 좋았다.

‘하…… 좋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본분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앗!”

성국과의 국경이 맞닿은 서부의 땅. 연락을 받고 움직인 성녀는 드디어 에스테반으로의 여정에 오른 대규모의 사제 행렬을 발견했다.

그 어마어마한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백 명 이상.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이끄는 것은 그 많은 사제들이 아니었다.

“가르덴 대사제!”

“성녀님.”

할아버지와도 같은 인자한 미소에 성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가 대사제에게 꼬옥 안겼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느껴지는 그 온기. 무척이나 까탈스럽기로 악명 높은 대사제였지만, 그 역시도 지금만큼은 성녀를 반기며 그저 곤란하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후, 정말이지 변치 않으시군요. 대체 언제쯤 어른이 되실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응응! 대사제는?”

“성녀님을 뵙기 전까지는 걱정이 가득했거늘, 무탈하신 것 같아서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있습니다.”

“……정말로?”

“허허, 어찌 아니겠습니까.”

타인이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기쁜 것이었다. 특히나 그 상대가 가족과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배시시 웃는 성녀의 입술을 따라 신성 같은 은발이 사르륵 흘러내렸다. 대사제는 그 모습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에스테반 측의 일행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런 반가운 시선에 마뜩잖은 의구심이 맺힌 것은 그 순간이었다.

“……한데, 성녀님을 모시는 호위와 일행은 저들이 전부입니까?”

“으응? 맞아.”

대사제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신전의 마차 옆으로 나열한 성기사 열댓 명만이 보일 뿐이었다.

대사제는 눈매를 좁히며 말을 이어 갔다.

“성녀님은 성하의 뜻을 대신하는 성국의 대표나 다름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저리도 단출한 인원만을 차출하여 성녀님을 보필케 하였습니까?”

“그, 글쎄…….”

“하물며 성녀님을 따라 에스테반에 남은 이들뿐이지 않습니까? 적어도 주변 신전들에 연락을 기하셨더라면…….”

“…….”

“설마…….”

그때, 문득 대사제의 의심이 성녀를 향했다. 그런 성녀의 시선은 슬그머니 움직여 말없이 대사제의 눈길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정녕 혼나기 직전의 개구쟁이처럼 얄궂지 않은가?

겉으로도 느껴지는 불길함에 대사제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설마하니 점잖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성녀님.”

“…….”

그 나지막한 부름에 성녀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왜 아니겠는가? 그녀는 성국에 없었던 그 자유를 실컷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바로 상대는 성국 제일의 원리주의자였다.

이대로는 또 혼난다!

그러니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든 답을, 답을 찾아야…….

성녀는 서둘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교, 교리에! 교리에 분명 성직자는 사치를 금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어!”

그러고는 자신이 생각하고도 최선의 변명이라 생각했는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녀였다.

그러나 가르덴 대사제의 매서운 일침이 내리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장신구를 포함한 사치품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그랬나…….”

“아무래도 교육이 다시금 필요하겠군요.”

“…….”

성녀의 시무룩한 입이 힘없이 내리깔아졌다.

약간의 서운함이 담긴 감정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아름다운 외모 탓에 삐친 것처럼 새침하게 보이기도 했다.

물론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르덴 대사제가 그 마음을 읽지 못할 리는 없었다.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리 분별도 어려운 나이에 답답한 신전에서 살아온 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가르덴 대사제였으니까.

오히려 그로서는 지금처럼 밝은 소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더 흐뭇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성국을 위해 남기를 택한 것은 성녀였다. 그것도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를 믿고 에스테반을 떠난 가르덴 대사제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그 마음을 이해하니까 더욱 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쓱- 쓱-

“……대사제.”

성녀의 머리 위로 대사제의 나무껍질 같은 손바닥이 부드럽게 문질러졌다.

“성녀께서는 성국의 대표이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1왕자께서는 그대로 나가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을 터인데, 혹시 그분의 조언을 무시하셨습니까?”

“……1왕자는 요즘 왕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적을 정도야. 아마 많이 바쁜가 봐.”

“후우…… 그렇다 해도 부디 다시는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미안해.”

성녀는 기분 좋게 그 손길을 받아들이며 설핏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후를 나눈 것도 잠시. 사제의 대행렬은 에스테반의 수도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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