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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2화 (9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2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1)

급작스러운 휴가.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

오랜만에 내려간 영지에서 모두가 따뜻하게 반겨 주었고, 그의 작고 초라하지만 정겨운 정원을 오랜만에 여유 있게 산책하기도 했다.

딸과 보낸 시간 역시도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평상시보다 장난기가 많진 것 같아 조금 곤란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듬뿍 휴식을 취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정작, 그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왕성으로 복귀한 비도르 남작의 발걸음은 조금 무거워 보였다.

‘후우, 전하께서 제멋대로 행동했다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구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는 그것이었다.

정말 인제 와서긴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넘실거리고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마탑의 발표 사건으로 홧김에 휴가를 신청하고 빠져나왔다지만, 엄연히 자신은 ‘왕족’을 모시는 보좌관이 아니었던가?

그런 주제에 멋대로 휴가를 다녀왔으니…….

1왕자에게는 물론이고 교육을 받는 조지에게마저도 몹쓸 모습을 보여 버렸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주장해야 할 당연한 권리를 행했을 뿐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는 나 따위보다도 바쁘셨을 것이 분명하시거늘…….’

하물며 그에게도 귀는 있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1왕자가 마탑의 연구 폭을 늘리는 동시에 남부의 그리폰을 처리하고, 또 그들의 알을 구해 오기까지 하였다 들었다.

말인즉, 자신이 휴가를 간 사이에 처리했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남작은 울상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질끈 부여잡았다.

‘나, 나는 그런 시기에 대체 무슨 짓을…….’

그래. 이제 남작에게는 마음속의 죄책감이 자라고 자라, 1왕자가 자신에게 일을 떠맡겼다는 것이 아닌, 마탑의 성과 발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는 오해가 자체 생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전하께서는 바쁜 시기에 자신의 임무조차 내버리고 도망간 나를 무어라고 생각하실까?

……그런 조지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물론 순박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남작으로서는 그 뒤에 숨겨진 내막을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맡겼다는 그 잔혹한 진실을…….

남작의 표정이 결연하게 굳어졌다.

‘어서 전하께 사죄를 드리러 가야겠구나.’

그렇게 결심한 남작이 서둘러 왕궁의 복도를 걷고 있던 순간이었다.

“……음? 자네는 비도르 남작이 아닌가?”

“아, 후작 각하.”

복도 너머에서 중후한 목소리의 귀족이 보였다. 다름 아닌 재무대신, 발테르 후작이었다.

“요 며칠 새에 보이지 않더니, 휴가를 다녀온 모양이군. 오랜만일세.”

“오랜만에 뵙습니다, 후작 각하.”

후작은 멀리서부터 다가오며 일상을 보내듯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남작은 고개를 조아리며 정중히 답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허허허, 어찌 말도 없이 휴가를 떠난 것인가? 자네가 없으니 가뜩이나 바쁜 일상이 더욱 바빠지더란 말일세.”

“하하,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드린 것 같습니다.”

“으음! 하루 이틀만 늦었어도 재무부의 인원들이 대거 퇴사했을 걸세.”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가득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그 대화는 주로 재무부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후작은 짐짓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남작은 재무부와 1왕자 사이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나 다름없었다.

그가 없다면 1왕자의 뜻대로 일을 진행 시키는 과정이 복잡해질뿐더러, 반대로 재무부는 명령 이행에 관한 협의를 하기 위해 1왕자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이한 양상’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문득 그렇게 오랜 대화를 꽃피우던 두 사람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벌써 20분이나 넘는 시간 동안이나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탓이다.

발테르 후작은 과장된 몸짓으로 놀람을 표하고는 말했다.

“허허, 회의 준비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

“아아……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회의의 주제가 그리폰의 알을 부화시키라는 명령과 관계있는 것이었거늘, 흠…… 혹 자네도 회의에 참석하겠나?”

“죄송합니다. 저는 따로 전하를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아직 돌아와서 인사조차 드리지 못한 참인지라…….”

“음, 아쉽구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네.”

후작은 그렇게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긴 뒤, 조금은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자리를 떠나갔다.

그리고 비도르 남작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를 배웅하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으음? 비도르 남작이 아니십니까?”

이번에는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남작이 고개를 돌려보자, 정말로 낯선 얼굴의 중년의 귀족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어…… 저분은 분명 1왕자파의…….’

다행히 남작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것으로 간신히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준 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레이가 자작님?”

“저희는 거의 초면이지요?”

공손하게 다가온 그 귀족의 작위가, 자신보다 높았다는 점이었다.

남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로 팔을 휘저었다.

“마, 말씀을 놓으시지요, 자작님. 편하게 불러 주셔도 됩니다.”

보통 신분의 차이는 절대적인 권력의 상하를 나타냈다.

그것이 아무리 한 단계의 차이더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반대로 상대는 초면이더라도 공손한 예우를 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가온 레이가 자작은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남작께서는 1왕자파의 실세나 다름없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제, 제가 실세라고…… 요? 어찌 그런 말씀을…….”

문득, 당혹감을 내비치던 남작은 다시금 이 구도가 무척이나 ‘기이한 양상’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말을 건네온 자작. 그리고 명백한 존대를 받는 남작.

보통의 귀족들은 어쩌다 마주하더라도 신분이 낮은 쪽에서 먼저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까 후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히려 높은 쪽에서 남작인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게다가 후작과 남작의 작위는 우스갯소리로 태양과 반딧불이의 차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실제 권한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심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면식조차 없이 무시하고 지나갈지언정,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는 것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라 미처 모르고 있었다지만, 명백히 지금의 상황들은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짚이는 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는 1왕자의 명령으로 사절단을 맞이하고, 또한 무역 사절의 중심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또 어떤 때에는 타국에서 귀족들을 통솔하기도 했고, 심지어 1왕자를 대신해 마탑의 성과를 발표하는 일마저도 있었다.

……그래.

이 모든 상황 변화의 중심에는, 자신을 ‘임시’ 보좌관으로 둔 1왕자의 활약이 있었다.

불과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전의 아무것도 없던 조그만 시골의 작은 영주 시절의 모습과 비교하면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취급이었던 것이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그것을 깨달은 남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실세라니……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일개 남작일 뿐이고…….”

“예…….”

“아무 걱정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남작?!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자작님!”

“…….”

그러므로 남작은 누구보다 재빠르게 이 상황에서 도망쳤다.

일개 남작일 뿐이라며 생각해 오던 자신에게는. 차라리 부담스러운 처사일 뿐이었다.

* * *

한편.

뿌려 둔 씨앗이 결실을 맺은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왕국 서부의 국경지대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봉사의 형태로 파견 되었다라…….”

과연…… 그렇군.

수백의 치료사제들이 서부의 국경지대를 넘었다. 단순 요약하자면 무척이나 간단한 내용이었으나, 그 의미조차 간단하지는 않으리라.

“신성제국이 보인 움직임이란 게, 이것이었나.”

“아무래도 협의에 대한 진척이 미적지근한 것이 마음에 걸린 듯싶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강조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협의에 앞서 치료사제를 파견하는 것.

결론은 낙장불입을 만드는 동시에 아첨하겠다는 뜻이었다.

협의가 원활하게…… 아니, 신성철이 원활하게 무역의 계산대에 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입술이 비뚜름히 일그러졌다.

“어쩐 일로 그치들이 사제다운 행동을 하나 했군.”

“뭐, 민생과도 관련된 것이니 나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공짜 봉사 인력을 선물한 건데요.”

“그렇게 되겠지. 의도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재미있지만 말이야.”

그들도 이제 에스테반을 향한 연방제국의 정치적인 공격을 감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곧장 보는 시선을 거리끼지 않고 사제들을 파견한 것일 테지.

물론 치료사제들이 활약할수록 교리를 더욱 수월하게 전파할 수 있을 테니, 로에나를 섬기는 그들의 입장에서도 마냥 손해를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마도 ‘그’ 대사제들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 언제까지나 욕망에 충실한 녀석들이었으니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인 건가.’

그때였다.

나는 보고를 이어 가려던 조지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슬슬 오고 있군.”

“예? 누가요?”

철컥-!

조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이 시끄러워진다 했더니, 이윽고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단박에 집무실 문을 여닫은 인물은 바로 비도르 남작이었다.

“후우…….”

“……남작님?”

그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찌나 급히 달려왔는지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도망쳐 왔는지 깜빡 잊어버린 모양이다.

“오랜만이군.”

“저, 전하……! 이, 이런!”

“…….”

이윽고 들려온 내 목소리에, 남작은 자신을 바라보는 두 시선을 눈치채고는 펄쩍 뛰며 고개를 숙였다.

멋대로 휴가를 낸 것도 모자라서, 노크도 없이 1왕자의 집무실에까지 들이닥치다니…….

이를 바라보는 조지의 시선은 묘하게 씰룩거리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남작의 행동이 우스워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저.

“타이밍도 참 좋게 도착했군요.”

“그래, 나쁘지 않은 때에 도착했지.”

“……예? 지금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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